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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마태복음 7:7~12
기도하는 방법 서론은 우리들의 가시떨기 같은 마음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그 마음의 시선선의 변화를 노력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10년 전부터 선과 악을 절대로 보지 않고 상대성으로 봅니다. 상대성의 선과 악은 내 마음에 들면 선이고, 내가 싫으면 모두 악한 것입니다. 이 문화가 이미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에게 자리 잡아 매우 위험한 상황입니다. 왜 이것이 위험한 것일까요? 그리스도인의 믿음 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도 말씀보다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악이라고 보는 시선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교자들의 입에서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의 설교를 전하기가 매우 어려운 현실이 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악이라고 말하면 그걸 왜 내게 말하지. 내가 부담되는 말을 들으러 교회 왔는지 알아. 쉼을 얻으러 왔지! 라는 반응이 나온답니다. 이건 잘못입니다. 불쾌하고 듣기 싫은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살펴야하는 것인데 그렇게 받아들이지 안 아요. 그래서 어떤 교회 성도들에게서 나오는 현상이 목사님 생활비조차 주지 않는답니다. 나가라는 거죠. 듣기 싫은 소리 한다는 거죠. 저 역시도 이런 말씀을 주실 때 어느 순간부터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순화시키고, 또 순화시키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좋지 않은 현상입니다. 이 말을 하는 이유가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도움 받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기 전 내 마음을 하나님의 거울에 비추는 생활이 우선되어지지 않으면 기도의 열매를 수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필요한 것을 기도하는데 열매가 맺혀지지 않아요. 그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를 전하기 쉽지 않아요. 그걸 성도들이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목회자들이 전하기 꺼려할까요? 성도들이 싫어하고, 외면하고, 마음을 닫기도 하고, 설교자의 숨을 조이는 결과물로 다가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빼고 전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러나 직설적으로 지금까지 임했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난 후로는 많이 순화시킨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은 여러분 안에 거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거침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에 자리 잡은 가시떨기 같은 마음, 생각, 말과 행동을 뽑아내는 성령님의 역사로 나타나기를 되길 바랍니다. 저는 우리 주향기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기도가 다 이루어지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길 소원하고 있습니다.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복의 그릇을 사용하시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복을 내게 사용하시도록 만드는 길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대게 기도는 큰 기적이 필요할 때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그리스도인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네 살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생각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를 드리는 자가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복의 그릇을 얻는 것입니다. 이모든 것을 함축해서 기도는 나의 마음의 밭을 하나님의 축복의 밭으로 개간하는 것이다. 이게 저의 결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6장에 하늘에 보물을 쌓는 생활과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그 다음으로 오늘 본문에서 기도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라 가르치셨습니다.
구하는 것은 나의 필요를 하나님께 말하여 알리는 기도, 찾는 것은 구한 것을 주신 줄 믿고 일어나 찾는 행동이고, 두드리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기도한 것을 찾아봤는데 마음에 끌리는 것이 있다면 두드리는 것이고, 둘째는 그 마음의 드는 것을 하나님께 제가 이것을 찾았습니다. 열어주세요. 라고 하나님께 두드리는 거예요. 그리고 이 두드리는 기도에는 중요한 마무리가 필요합니다. 고집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에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이 되게 해 주세요. 라는 마무리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했는데 왜 기도가 응답이 없고 기도하기전이나 후나 달라진 것도 없고, 아니 더 안 좋아 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답을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를 설명해 주신 말씀에서 찾았습니다.
길가 밭은 말씀이 뿌려졌을 때 깨닫지도 못했는데 악한(타락한 자)자가 와서 빼앗아갑니다. 이런 마음은 우리들 가운데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마음의 밭은 말씀을 들으러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돌밭은 말씀을 듣고 내가 예수를 믿어야겠다! 하고 결심하고 즐거워하다가 조금 환난이나 박해가 오면 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마음 역시도 우리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환난과 박해를 견뎌냈기에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다음은 가시떨기 밭과 좋은 밭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가시떨기 밭을 설명 할 텐데요. 좀 거침이 될 것입니다. 혹시 찔림이나 거침이 되거든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뽑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그것을 허락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밭은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절대 존재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밭은 믿음의 생활의 모든 기간 동안 언제든지 임할 수 있으니 우리들은 항상 깨어서 살피고 이 밭이 내 마음에 자리 잡지 못하도록 항상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누구나 마음의 가시떨기가 있을 수 있어요. 왜 있을까요? 이 사람도 이미 예수님을 믿은 사람입니다. 성령님을 모신 사람입니다. 이는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 아멘하고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가시떨기가 있어요.
어떻게 성령하나님이 거하시는 내 마음에 거할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내가 허용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시떨기를 그대로 남겨놓아요. 없애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 때문에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고 가시 떨기가 뿌리 채 뽑히도록, 뽑아서 내버리려고 몸부림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놓는 것입니다.
저는 아버님이 산을 개간한 밭과 논에 농사를 지어봐서 가시나무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압니다. <추석 산소벌초> 씨를 뿌리려고 밭을 노타리(흙을 잘게, 곱게 부스는 것)치고, 그 후에 골을 켭니다. 그리고 씨를 뿌리고 나면 분명히 가시나무를 다 뽑아버렸는데 가시나무가 자라나요. 여러 군데서. 그러면 작다고 무시하면 곡식을 추수하기 전 그 밭은 가시나무에 점령되고 맙니다. 보는 족족 뽑아버려야 합니다. 뿌리까지, 끊어지지 않게. 가시나무는 뿌리번식이기 때문에 뿌리를 잘게 잘라내면 잘려진 모든 뿌리가 잘아납니다. 그래서 농부는 가시나무가 밭에 보이면 땅을 파서 뿌리 채 뽑아냅니다. 곡식이 망가지는 한이 있어도. 그래야 그 밭에서 더 많은 소출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중생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상을 살려고 하면서 내 마음에 가시가 보이면 즉시 회개하고 그것을 뽑아야 하는데, 성령하나님의 외침의 반응하지 않아요. 뽑지 않고 내버려둬요. 예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많은 분들이 그대로 내버려둡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끌어 않은 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요. 묵상도해요. 설교도 들어요. 배워요. 공부도해요.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그럭저럭....
그는 말씀을 통해 은혜 받는 것도 그렇게 많지 않고, 그 말씀이 내 인격과 삶을 바꾸고 변화시키지도 못하고, 그 말씀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아름다운 행복을 맛보지를 못해요. 왜 그럴까요? 가시가 있으니까. 그래서 말씀을 막 짓누르고,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역사하지 못하도록 막으니까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일을 안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을 가시가 막기 때문에 우리가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를 무엇이라 해석해 주셨나요?
눅8: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예수님께서 가시를 세 가지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첫째 이생의 염려 이것은 무얼 먹고 살까? 앞으로 어떻게 살까? 내일은 무슨 일이 생길까? 수많은 염려를 가지고 고심하는 것을 일컬어서 마음의 가시떨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염려를 대하는 자세를 가르치셨을 때 내일 일을 오늘 염려하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재물유혹 재물의 대한 욕심 즉 재물의 대한 탐욕입니다. 재물의 대한 탐욕이 마음 있어요. 그래서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돈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생활을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향락입니다. 즐겁게 살자. 그저 세상사는 재미로 즉 세상사는 목적이 재미있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먹고, 재미있게 지내고, 그저 하루하루 즐기는 거예요.<지금의 시대의 모습이죠.> 이것이 인생의 목적이 된 사람 이예요. 이런 마음을 같고 사는 거예요.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생할 생각은 안 해요. 그냥 재미있게, 행복하게 살고자하는 쾌락 주의자입니다.
이것은 일시적이고 표면적이며 충동적인 육체의 쾌락을 위해 영혼의 존귀한 가치를 망각하는 것으로 숭고한 영혼이 조금씩 잠식되어 마침내는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생의 희락은 크게 둘로 나눕니다.
첫째는 그 자체가 죄악이 되는 술 취함, 음란한 행위, 폭력 등이며 둘째는 그 자체는 죄악이 아니나 심하게 빠져들 경우 죄가 될 수 있는 유흥, 스포츠 등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떨기가 세 가지만 있다고 해서 내 마음에 이 세 가지만 있다고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만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른 것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교만도 있을 수 있고, 완악함도 있을 수 있고, 게으름도, 고집<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고집>, 시기, 질투, 외면 등등의 여러 가지가 다 있을 수 있으나 예수님은 이 세 가지가 대표적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그 시대나, 지금이나 미래의 세대에도 대표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작용해서 하나님의 뜻과 생각에서 멀어지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는 내 마음에서 대표적으로 말씀을 저항하는 저항세력입니다. 말씀과 충돌하는 악한 마음입니다. 말씀에 대해 항상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육적인 것들입니다. 이것이 내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되어 있는데 왜? 어떻게 있을까요? 내가 허락하니까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내버려두니까 있는 것입니다. 잘 들어야합니다. 내버려 두니까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족족 뽑아버리려고 달려들면 절대 내 마음속에 절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뽑아내야 하는 것을 알지만 그냥 내버려두고 공생하려고 방법을 찾는 거예요. 여기서 열매 즉 응답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가지고 천지를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예수님을 죽음에서 살리셨고, 하나님은 말씀을 가지고 저와 여러분을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 거룩한 백성을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과 권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구하면 받는 것입니다. 찾으면 찾아낼 것입니다. 두드리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신 말씀이 내 인생의 삶을 이루어지게 만드는 것의 첫 번째가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가시떨기 같은 마음과 싸우고, 살아지기를 위해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가시 떨기는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가 기뻐하시지 않는 말이나 행동으로 정리하면 완벽할 듯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반듯이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 가시밭 같은 것을 뽑아내지 않으면 하나님이 복 주시려고 준비하신 그릇이 사용되지 못한다는 것을요. 기도는 하나님이 내게 복 주시려고 준비하신 복의 그릇을 사용하시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요. 때론 그 준비된 것보다 30,60,100배로 더해서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시는 분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하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우린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예수님으로부터 부여받았습니다.
오늘부터 남은 모든 시간의 영역 안에 여호와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복의 그릇을 사용하시되 즐거움으로 사용되게 하는 기도를 올려드리는 기도가자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