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진홍 벌레요 사람이 아니니이다.(시22:6)
- 레위기 14장과 함께
나는 진홍벌레요, 사람이(이쉬-남자가) 아니니이다. 사람(아담)의 비방거리요, 백성에게 멸시를 받고 있나이다(수동 분사형) (시 22:6)
1. 시 22편 개요
인류 구속을 위해 천상의 아름다운 영광가운데 계셨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브라함이 그분의 날들을 볼 것을 즐거워 하였던 분이셨으며(요 8:56-58), 모쉐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이집트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기던 대상이 바로 그리스도이셨습니다(히 11:26) 다윗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불렀습니다(마 22:43-44) 그들은 단지 그리스도께서 예수아(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실 것이라는 것을 몰랐을 뿐이지 동일한 인물이신 창조주이시며 구속자이신 메시아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시편 22편은 메시아 시편으로 알려진 몇, 몇 시편들 중에서도 메시아의 고난을 가장 잘 예언한 시편으로 알려졌습니다.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께서는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행 4:25) 예수 그리스도의 처지와 심령, 그분의 아버지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죽기까지의 순종, 그분을 둘러싼 이방인들(개)에 의해 손들과 발들이 찔리는 상황(시 22:16),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22:1), 겉옷과 속옷을 제비뽑나이다(22:18) 등의 말씀으로 십자가 상황을 가장 잘 예언한 시편으로 알려졌습니다.
2. 십자가 형벌- 16절
16절에서 “그들이 내 손들과 발들을 찔렀나이다,” 로 번역될 수 있는 사본은 불과 3-4개인 반면 990개 가량의 맛소라가 “ 사자처럼 그들이 내 손들과 발들에 ( 물고) 있나이다” 로 번역될 수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유대인들이 이 구절의 예언이 십자가 예언이라는 것을 배척하는 이유로 언급됩니다. 그러나 비록 다수 맛소라처럼 사자처럼 손들과 발들에 있는 이유는 사자가 손들과 발들을 물고 있는 상황을 말한다 할 수 있으며 그것 역시 십자가 상황을 말함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사본들이 어찌되었든 이 구절이 손들과 발들이 사자에게 물린 것과 같은 메시아의 고난 상황을 말함은 분명하다 할 것입니다.
이 십자가 형벌 방식(시 22:16-18)은 기원전 700년 경부터 페르시아에서 실행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만 다윗이 이 예언을 행한 것은 그보다 300-350년 앞선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오늘날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 의해 그러한 예언이 보존되어 왔다는 것은 놀라운 예언의 성취와 증거능력을 보여준다 할 것입니다. 페르시아에서 실시되던 십자가 형벌 제도가 그리스에 먼저 전파되었는지 혹은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침략하였을 때 유입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알렉산더 대왕이 레바논의 두로에서 2천여명을 십자가형으로 처형한 것은 큰 사건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 후로 예수님의 십자가 형보다 100년 앞선 주전 71년 경 이탈리아에서 스파르타커스 난 반란자들 6천여명이 로마 남부에서 십자가 형을 받은 사건은 이미 로마제국내에서 십자가 형벌 제도가 자리잡았음을 알게해줍니다. 예수님 십자가로부터 30년이 못되어 300명 가량의 유대인들이 십자가 형을 받았고, 그후 유대전쟁에서 수만 혹은 수십만의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박힌 사실은 사실은 예수님 당시에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마 27:25) 하고 외쳤던 유대 군중들 자신들이나 그들의 직계 자손들이 그 형벌을 직접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이 시편 22편은 메시아에 관하여 성취되어진 여러 예언들이 포함된 매우 중요한 메시아에 관한 예언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시편 22편 6절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3. 톨라아트 - 벌레인가 진홍벌레인가?
6절에서 사용된 단어 벌레의 원어는 톨라아트로서 톨라아의 변화형입니다. 이 단어는 샤니라는 단어와 함께 붙어서 진홍벌레의 진홍색 혹은 진홍벌레의 진홍색실 이라는 단어로 여러 번 쓰였는데 그것이 쓰인 구절들은 성경 전체에 43개 구절이며 그 중 34곳을 킹제임스 성경은 scarlet (진홍, 주홍)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톨라아트가 대부분 샤니와 결합하여 진홍색실 혹은 주홍색실을 가리키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머지 9군데 중 한곳은 이사야1장 18절로서 “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라는 말씀에서 주홍으로 번역되었고 영어로는 crimson 으로 같은 색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나머지 8곳을 벌레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톨라아를 벌레로 번역한 나머지 8군데 중에서 주목할만한 곳은 출16:20에서 만나를 다음날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그 벌레들을 표기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 벌레들은 상식적으로 진홍벌레가 아닌 구더기(고자리)를 의미함이 문맥상 분명해 보입니다.
따라서 시편 22편 6절에서 나는 벌레요, 라고 번역한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번역자는 문맥을 살펴서 해당되는 번역을 적용해야 하며 이 구절의 경우 사람(아담)의 비방거리요, 백성에게 멸시를 받는다는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당연히 그냥 벌레로 번역함이 문맥상 더 타당하다c고 판단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톨라아트 자체만으로도, 진홍벌레를 의미하는 예는 이사야서 1장 18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전에도 톨라아트 자체만으로도 CRIMSON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문맥상의 뜻을 감안하면
진홍벌레로 번역되는 것입니다.
I.worm, scarlet stuff, crimson
1. worm - the female 'coccus ilicis'
2. scarlet stuff, crimson, scarlet
A. the dye made from the dried body of the female of the worm "coccus ilicis"
4. 진홍벌레-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
고대 이집트에서는 붉은 색으로 옷감들을 물들일 때 그러한 색의 피를 내는 조개들을 사용하여 물들였습니다만 카나안과 시내반도 지역에서는 이 진홍벌레들을 모아서 그것들을 깨부수어 피와 진액을 모아 옷감들과 실들을 물들였습니다. 그것이 홍색실이나 홍색 옷감들을 의미하는데 사용된 것은 이런 사용 배경에 있습니다(출 26:1, 31, 36, 27:16, 28: 5, 6, 8, 15, 33, 35:6, 23, 25, 35,36:8, 35, 37, 38:18, 23, 39:1, 2, 3, 5, 8, 24, 29, 레14:4, 6, 49, 51, 52, 민 4:8, 19:6) 또 애가 4장 5절에서도 이 단어는 홍색(Scarlet) 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성막의 열폭 앙장들, 휘장,문장에 들어간 빨강색들은 바로 수천 수만 마리의 진홍벌레들이 피흘리고 죽음으로 내놓은 색상들이 모아져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성막에 사용된 모든 재료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는 것을 성막을 공부하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거기에 사용된 흰색은 예수 그리스도의 죄없으심, 순전하심을 나타내며, 청색은 천상의 영광을 입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자주색은 금과 함께 만왕의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반면, 이 진홍색(홍색)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주로서 피흘리고 죽으신 속죄 사역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막에 접근한다면 맨 처음 성막의 문장(門帳)을 만날 것입니다. 그 문장은 성막의 뜰 포장의 전면(동편)의 폭이 전체가 50 큐빗인데 반하여 문은 20 큐빗으로 매우 크게 보인다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출 27장) 그것은 누구나 들어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보편적 은혜를 가르치는 상징으로 이해됩니다.
바로 그 문장에 사용된 붉은 색실들은 이 톨라아트를 깨뜨려 그 피로 물들여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위해 부서진 예수 그리스도의 몸(고전 11:24)을 생각나게 해줍니다.
5. 또한 제사장들의 겉옷 위에 입었던 에봇에도 이 홍색실이 사용되었습니다.
에봇이란 구속함을 입었다는 뜻이며 그것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었는데, 구약시대에는 이러한 상징물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이 그림자로 나타나졌습니다. 이제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나무에 매달리사 피흘리고 죽으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으며 그 사실을 믿는 모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은 (롬 13:14, 갈 3:27) 제사장들입니다(벧전 2:9, 계 1:6, 5:10)
거듭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에봇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에봇을 입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하나님이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으며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입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에 의해 당신의 모든 죄가 사해졌음을 믿는다면 당신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에봇을 입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을 섬기고 그분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6. 나무에 올라가 죽는 진홍벌레들
원래 이 벌레는 나뭇잎들 위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이 진홍벌레들의 특성을 창조 과학자이며 수년전 부르심을 받은 헨리 모리스 형제의 연구를 통해 살피면서 저를 사로잡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것들의 암컷들이 새끼들을 낳을 때는 상수리 나무들 위로 올라가서 나무에 완전 밀착하여 붙은 다음 배가 터져서 죽음으로 새끼들이 나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연어들이 알들을 한번 부화시키면 죽는 것처럼 진홍벌레의 암컷들은 나무에 붙어서 배가 터지면서 새끼들을 낳고 죽습니다. 그것은 죽으면서 몸안에 있던 피와 진액을 완전히 쏟아내고
그것이 죽은 나무 위에는 피가 흥건히 묻습니다.
그 암컷 진홍벌레들이 새끼들을 잉태하여 나무위로 올라갈 때에는 죽기를 이미 각오하고 올라가는 것이며 그 나무위로부터 내려올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배가 터져 죽으면서 수백마리의 새끼들이 나오고 그 배가 터질 때에 붉은 물이 나오고 그것이 나무에 뿌려졌습니다. 물론 이 붉은 물이 헤모글로빈이 포함된 혈액과 같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붉은 진액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생각나게 하는 것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진홍벌레가 죽은 후 3일이 지나면 붉은 색이 다시 하얗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사야서 1장 18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사야 장 18절
Come now, and let us reason together, saith the LORD: though your sins be as scarlet, they shall be as white as snow; though they be red like crimson, they shall be as wool.
1:18 לְכוּ־נָא וְנִוָּכְחָה יֹאמַר יְהוָה אִם־יִהְיוּ חֲטָאֵיכֶם כַּשָּׁנִים כַּשֶּׁלֶג יַלְבִּינוּ אִם־יַאְדִּימוּ כַתּוֹלָע כַּצֶּמֶר יִהְיוּ
이제 오라! 함께 변론하자, 예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너희 죄들이 진홍같을지라도 눈과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벌레처럼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시기 위해 나무위에 매달리셨으며 거기서 피흘리고 죽으셨습니다.(벧전 2:24) 그리하심으로 예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영광에 참여하게 하신 것입니다(히 2:10)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는데(요 12:24) 떨어져 죽은 밀알과 그 밀알로 말미암아 열매로 맺어진 많은 열매들은 실제로 아주 동일합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양자들 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상고하면 신화(神化)라는 믿음이 성경적으로 근거없는 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영적 성장의 과정이나 성화에 이르는 시차에 대하여 잘 살피거나 반영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톨라아트라는 곤충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이 구절에서 진홍벌레를 의미했던 것으로 번역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게 들립니다.
예수님은 한 마리의 진홍벌레로 나무 위에 달리셨으며, 또한 사람의 비방거리로 매달리셨으며, 백성에게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그분은 오늘날도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시고 계시지만 그분을 믿고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하시지 않습니다.(히 2:11)
이제 이 진홍벌레의 진홍이 성경에서 사용된 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선명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되는 레위기 14장을 살펴보겠습니다.
7. 레위기 14장
1 여호와께서 모쉐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니라. 2 이것이 그의 정결례의 날에 문둥병자의 율법이니, 그는 제사장에게로 데려와질 것이니라. 3 제사장은 진영 밖으로 나가서 살펴볼 것이며, 보라, 문둥병의 재앙이 문둥병자에게서 치유되었으면, 4 제사장은 정결함을 입을 자를 위하여 살아있는 정결한 새들 두 마리와 백향목 나무와 진홍벌레의 진홍실과 우슬초를 취하도록 명하고 5 제사장은 그 새 한 마리를 살아있는 물위에서 토기그릇안에서 도살하도록 명하고 6 그는 그 살아있는 새를 그것과 함께 백향목의 나무와 우슬초를 취하고, 그것들과 살아있는 새를 살아있는 물위에서 도살된 새의 피에 담근 다음, 7 문둥병으로부터 정결함읊 입을 자위에 일곱번 뿌릴 것이며 그를 정결하다 할 것이며, 살아있는 새를 들판 위로 보낼 것이니라.
여기서 보시는 바와 같이 문둥병자의 정결례 때에는 한마리의 새가 질그릇 안에서 죽어야 했으며 그 피를 백향목과 우슬초를 진홍벌레의 진홍색실로 묶어서 문둥병자의 몸에 7번 뿌렸습니다. 여기서 진홍벌레의 진홍색실은 샤니 톨라아트를 번역한 것이며 이는 다음의 상징법 분석을 통해서 보시게 되는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함이 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바로 시편 22편 6절에서 말하는 톨라아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과 그분의 상징이던 진홍벌레와 연결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진홍벌레 곧 톨라아트로 여기셨고 그것에서 나온 진홍으로 물들인 진홍색실이 이 정결례에서도 쓰였던 것입니다.
이제 레위기 14장을 분석해봅니다.
8. 두 마리의 정결한 새들 –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문둥병자가 정결하게 되던 날에 그의 정결례를 위하여 제사장은 그 문둥병자를 진영밖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때 그는 살아있는 정결한 새들 두 마리를 취하여 가져 갔는데, 정결한 새란 성경적으로 정결함을 의미하며 타조, 황새, 독수리, 매, 부엉이, 가마우지, 펠리칸 등은 아무리 씻어도 정결한 새가 아닙니다. 비둘기 꿩, 매추라기 등은 정결한 새에 속합니다. 그러한 새들 두 마리를 제사장은 취하여 진영 밖으로 나아가야 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 희생제사용 동물이 한마리로서는 죽고 다시 부활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줄 수 없었으므로 두 마리를 취하여 한 마리로는 죽으심을 다른 한 마리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없으신 분으로서 한 마리의 정결한 새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다른 한 마리가 날려 보내졌던 것처럼 아버지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레위기 14장4,6에서 한 마리의 정결한 새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고 죽으심을, 다른 한마리가 부활하심을 보여준 것이었다고 믿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 아닐 것입니다.
레위기 14장
4 제사장은 정결함을 입을 자를 위하여 살아있는 정결한 새들 두 마리와 백향목 나무와 진홍벌레의 진홍실과 우슬초를 취하도록 명하고
그날에 피흘리고 죽으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그 분 자신이 죽으셨던 사실을 증거하시며 그분은 세세토록 살아계십니다.(계 1:18)
그날에 한마리의 정결한 새는 죄없지만 문둥병자를 위하여 피흘리고 죽었습니다. 문둥병자 같이 흉악하게 보이는 죄들을 가진 인생들도 그러한 피로 정결하게 될 필요가 있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피흘리고 죽으셨습니다.
레위기 14장
6 그는 그 살아있는 새를 그것과 함께 백향목의 나무와 우슬초를 취하고, 그것들과 살아있는 새를 살아있는 물위에서 도살된 새의 피에 담근 다음, 7 문둥병으로부터 정결함읊 입을 자위에 일곱번 뿌릴 것이며 그를 정결하다 할 것이며, 살아있는 새를 들판 위로 보낼 것이니라.
이 살아있어 날려보내지는 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보여준 것입니다.
9. 질그릇 안의 보화 – 예수 그리스도
이 정결한 새는 질그릇 안에서 도살되었습니다.
레 14장
5 제사장은 그 새 한 마리를 살아있는 물위에서 토기그릇안에서 도살하도록 명하고
질그릇, 토기그릇은 흙으로 지음받은 인생들을 의미하며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함은 분명하다 할 것입니다. 천성의 영광가운데 계셨던 예수님은 인자가 되셨습니다. 인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비록 비천한 모습으로 보이셨지만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자 질그릇 육신을 입고 피흘리고 죽으셨던 것입니다.
고후 4장
6 이는 어두움속에서 빛이 비추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지식을 조명하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들 가운데에 비추셨느니라. 7 그러나 우리가 이 보화를 토기 그릇들 속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한량없음이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속하여 있도록 함이라.
당신 안에 이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십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버려진 자입니다.(고후 13:5) 당신은 새생명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날 필요가 있습니다!
10. 백향목 –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그분의 몸
어느 교회에서 교회 내부 구조 변경을 하느라고 내부의 나무 한 토막을 잘랐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나무는 백향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잘라진 나무에서 나오는 향기가 몇 주간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저희 집 뒤뜰에 데크를 만든다고 백향목 기둥등들을 세웠는데 12년이 지나는 동안 다른 나무들은 썩어서 버렸는데, 백향목 기둥들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 백향목은 자신의 육체로 수많은 선행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며 또한 그것은 좀처럼 썩지 않음을 인하여 썩지 아니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한다고 믿어집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행 2:27, 시 16:8-11).
이 세상을 살고 간 사람들의 수는 아마 1천억이 넘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 죄를 범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살아계시는 동안 선한 일들을 행하심으로 하나님앞에 자신을 향기로운 생축으로 드리실 수 있었습니다. (엡5:2).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결코 썩음을 당할 수 없었던 백향목이었습니다.
11. 우슬초-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다윗은 그의 회개의 기도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결하게 되리이다(타호르), 나를 씻으소서 그리하면 내가 눈보다 희게 되리이다. (시 51:7)
여기서 다윗은 우슬초가 자신을 정결하게 함을 믿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우슬초는 여러 번 동물 희생의 피를 찍어서 죄인에게 혹은 제사장에게 뿌리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오기 전날 밤 유월절에 어린양의 피를 뿌릴 때에도 우슬초가 사용되었습니다(출 12:22)
그리하여 우슬초는 피뿌림을 증거하고 문둥병자에게 피뿌리는데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믿고 증거하는 능력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능력은 말씀에 있습니다. 즉 우슬초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며 그것은 죄를 정결케하는 능력을 가진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요 3:5) 여기서 물은 침례나 세례 받을 때의 물이 아니라, 바로 정결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죄로부터 정결케하는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말씀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을 증거하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피흘리심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고 (히 9:22)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온전한 피흘림의 희생제사를 드렸다고 성경은 가르치기 때문입니다(히 9:14, 28, 10:12, 10:16-19)
우리는 이 우슬초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에 근거한(비록 그것이 모형이나 그림자라 할지라도), 죄로부터 정결하게 하는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셨습니다(요 1:1).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도 사람들이 신포도주를 우슬초에 메어서 올리었으나(요 19:29) 받으시고 마시지는 않으셨으며 마지막 한마디 “ 그것이 이루어졌다(테텔레스다이)” 라고 외치셨습니다(요 19:30)
또한 출애급 당시에 이스라엘인들의 문설주와 인방에 양의 피를 뿌릴 때 사용된 것이 바로 우슬초였습니다(출 12:22) 그것은 우슬초가 바로 그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로 피뿌림을 받은 가정임을 증거하는데 사용되었음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우슬초가 또 다른 측면의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그것은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레위기 14장
6 그 살아있는 새를 그것과 함께 백향목의 나무와 우슬초를 취하고, 그것들과 살아있는 새를 살아있는 물위에서 도살된 새의 피에 담근 다음, 7 문둥병으로부터 정결함읊 입을 자위에 일곱번 뿌릴 것이며
12. 마임하임- 살아있는 물, 생명수 예수 그리스도
한마리의 살아있는 정결한 새는 질그릇 안에서 잡아지되 그 질그릇은 살아있는 물위에 띄우든지 그위에 붙들린 채 그 안에서 한 마리의 새가 도살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를 여러 성경들은 흐르는 물로 번역하였습니다만 원래 원어는 마임하임으로서 살아있는 물 혹은 생명의 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다음의 성경말씀을 상고하면 그 물이 어떠한 물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줍니다.
고전 10장
4 모두가 함께 영적인 음료수를 마셨느니라. 왜냐하면 저희가 뒤따르는 영적인 반석으로부터 마셨음이니, 그 반석은 그리스도이셨느니라.
광야에서 2백만이 40년 동안 농사짓지도 않고 살았다는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들이 어떻게 생존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구절에서 그것이 흐르는 물이 되었든 반석에서 나온 살아있는 물이 되었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4장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녀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하나님의 선물과 ‘나에게 마실 것을 달라’고 네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를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는 네게 살아있는 물을 주었으리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우리 인생들에게 살아있는 물이요, 생명수(계 22:1) 입니다.
문둥병자를 위한 정결예식에서의 정결한 새는 살아있는 물 위의 질그릇 안에서 잡아졌습니다.
문둥병자들처럼 죄인들인 인생들은 생명수 예수 그리스도의 토대위에서 정결함을 입습니다.
13. 진홍색실 –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성령님
이제 그 백향목과 우슬초는 진홍색실로 묶어졌으며 그것은 도살되어진 새의 피가 있는 질그릇 안에 담가져서 피가 찍어지도록 되었으며 살아있는 새도 또한 그 피를 묻히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피가 묻은 우슬초와 백향목 살아있는 새에 의해 정결함을 입는 문둥환자게에 뿌려졌습니다. 그 문둥환자에게는 죽은 새의 피가 일곱번 뿌려졌던 것입니다(레 14:7). 그런 다음 제사장은 정결하다 하고 선포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상에서 피흘리고 죽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일곱번 피뿌림을 받게 하셨습니다. 당신이 이 사실을 믿는다면 당신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일곱번 뿌림을 받은 것입니다.
이때 우슬초와 백향목을 묶는데 사용된 진홍색 실은 바로 진홍벌레들을 깨뜨려서 피흘리고 죽게함으로 나온 피와 진액에 실들을 담가서 물들인 것이었습니다. 그 실들로 백향목과 우슬초를 묶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하나되게 하는 띠로(엡 4:3)도 해석되는데 성령님께서는 바로 인류를 위해 피흘리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계십니다. 그 띠에 묻혀진 진홍벌레의 진액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었으며 그 띠는 그분의 피흘리심을 증거하는 성령님의 사역을 말해준다고 믿어집니다.
14. 성 밖에서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제사장이 문둥환자를 진영밖으로 데려나가고 진영밖에서 살아있는 새가 도살되어진 것(레 14:3)은 예수님이 성밖에서 고난당하신 것과 흡사합니다.
히브리서 13장
12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자기 피로 말미암아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하여, 성문 밖에서 고난 당하셨느니라. 13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능욕을 짊어지고, 진영 밖의 그분께로 나아가자.
이제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아가서 피흘리고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일곱번 뿌림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는 그분이 인도하시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15. 시편 22편과 레위기 14장의 연결
시편 22편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부르짖으셨던 “ 내 하나님 내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남기셨나이까? (버리셨나이까?)”를 미리 볼 수 있을 뿐아니라. 손들과 발들을 문 이방인들을 통해서 십자가 사실을 미리 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톨라아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 사용되었으며 그분의 고백 또한 인류를 위해 피흘리고 죽는 진홍벌레로 자신을 보시는 것이 그 시에서 암시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생명수(계22:1) 살아있는 물이시고(요 4:10), 피흘리고 죽는 정결한 새이었고, 우슬초이셨으며, 썩지 아니할 향기의 백향목이었고, 진홍벌레이셨으며, 질그릇 안의 보화이셨습니다.그분은 살아서 날아간 새(레 14:7)처럼 부활의 상징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분은
히브리서 12장
2 믿음의 근원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주목할지니, 그분은 자기 앞에 놓인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고, 부끄러움을 무시하시더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을 당신을 위해 이루셨습니다.(요 19:30)
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당신이 십자가의 사실이 당신을 위해 이루어졌으며 당신의 모든 죄가 사해졌다는 것을 믿는다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일곱번 뿌림을 받은 것입니다.
16. 예수 그리스도- 인류의 영원한 대제사장
반대로 당신이 아직도 어떤 죄는 사해지지 않았으며 용서해달라고 간구해야 하고 하나님이 용서하셔야 한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그 위대한 십자가의 진리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당신이 그래도 죄가 나타나고 죄를 범하는 것을 볼 때에는 그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요일 1:9) 그분으로부터 그 죄마저도 이미 십자가에서 사해졌음을 깨닫게 해주시는 죄사함의 경험을 얻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죄사함의 확신이며 거듭남입니다. 오늘날 자꾸만 하나님께 죄를 용서해달라고 매주일 간구하면서 이미 모든 죄를 사해주신 십자가에서 일어난 사건은 언급도 안하는 종교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로마 카톨릭이며 그들의 미사는 기독교의 예배와 정반대로 십자가 사실을 증거하거나 기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신 자꾸만 죄를 용서해달라며 쿠키와 포도주를 들어올려 희생제사(미싸)를 드립니다. 그리하면 그들은 그 희생제사가 하느님께 받아들여져서 개인들이 지은 죄들이 용서되어지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미 2천년 전에 이루어진 십자가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 외에 어떠한 희생제사도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로마 카톨릭이 매주일 자꾸만 미싸(미사=희생)를 드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의 영원한 효력을 안믿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한번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함을 깨닫는 거듭남의 경험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는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히 10:12) 이제는 더 이상 제사드릴 것이 없습니다!(히 10:18)
이제는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되는데 새로운 죄가 나타났을 때에는 그 죄마저도 이미 십자가에서 사해진 것이 믿어지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죄를 고백하는 것과 이제 새로이 죄를 용서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미 죄가 사해진 사실을 깨닫게 해주시고 믿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인정하고 신뢰할 때 가능해집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며 죄를 고백하였을 때에는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그 해당 죄마저도 이미 사해졌던 사실을 깨닫게 하시고 믿어지게 하심으로 날마다 거룩함을 입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의 영원한 효력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며 그 속죄 희생에서 우리의 과거의 죄들 뿐만 아니라, 미래의 죄도 사해졌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과거마저도 예수님 십자가 당시에는 미래였습니다. 그 당시 미래였던 우리의 과거의 죄들이 사해졌다면 우리의 미래의 죄들 또한 당연히 사해졌음을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속죄 희생을 무효화시키는 어떠한 제사 의식이나 예배의식에도 동의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어느 유명한 기독교 목사는 자꾸만 하나님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이미 모든 죄를 사함받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전혀 언급도 안합니다. 이 사람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일까요? 그 사람 밑에 장로로 있다는 사람들의 믿음은 어떻겠습니까? 자꾸만 용서되어진 죄들을 용서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은 예수님을 또다시 보내주면 피흘리고 죽게하겠다는 말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하며 성경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 피흘리심과 죽으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의 피흘리심은 인류 모두의 죄값을 지불하였습니다. 그분의 피흘리심, 속죄 희생은 영원한 효력을 갖습니다. 그 진리를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는 매우 소중한 자산입니다!
이를 인하여 우리 모두는 주 하나님께 우리 죄를 위하여 피흘리고 죽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와 찬송을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대제사장으로서 자기 피로 드리신 십자가에서의 희생제사를 기억하고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기억하고 믿고 증거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주 하나님은 그것을 믿음으로, 의로 인정하고 계십니다.
주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11년 6월 18일 하토브
2026 년 3월 3일 하토브 수정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