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업 - 정독과 다독의 조화
질문
스님께서 1일1촉을 강조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스님 말씀대로 책을 읽으면 너무 책을 가볍게 여기게 될까 우려됩니다. 모름지기 책은 정독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래야 남는 것이 있지 않을까요?
독서하는 이유?
촉독과 정독 중 무엇이 유용한지는 상황마다 다릅니다. 그렇기에 먼저 독서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법우님은 독서를 왜 하시나요? 저는 항상 이렇게 강조합니다.
'독서는 정신이 밥을 먹는 것이다.'
밥을 먹지 않으면 운동을 아무리 해도 육체가 건강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혹사를 시키는 개념이기에 몸이 더 망가질 것입니다. 정신도 밥을 먹지 않으면 건강해지지 못합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현대 사회의 정신을 평가한다면 영양실조 그리고 빈사상태입니다. 이런 평가의 근거가 되는 지표는 독서량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21년 조사한 국민 독서실태에 따르면 한국의 성인 5명 중 3명은 독서를 전혀 하지 않는 상태라고 합니다. 정신의 식사량의 절대부족하여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정신의 식사가 단행본 독서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의 영상 컨텐츠,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등의 텍스트와 사진 등을 통해서도 정보를 섭취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런 컨텐츠는 일종의 정크푸드입니다. 먹으면 먹을수록 건강을 해치는 쓰레기를 찾아 먹고 있는 것입니다.
정크푸드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 두 가지를 꼽습니다. 첫째, 정보의 정확성입니다. 잘못된 정보는 먹으면 먹을수록 오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잘못된 뉴런의 연결은 지식체계 곳곳에 오류를 심어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둘째, 먹을수록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특징입니다. <인스타브레인>에서 강조했듯이 사람들이 많이 접촉하는 대중매체는 대중들의 몰입을 훔쳐갔습니다. 먹을수록 점점 주의력을 분산시킨다는 것, 이것은 정신을 망가뜨리는 특징입니다.
독서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이처럼 두뇌에 정보를 제공하고, 이 정보를 소화하여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집중력이 계발되고, 몰입의 힘이 증장되어야 합니다. 이런 결과물이 바로 정신의 체력이고 건강입니다. 건강한 정신에서 지혜가 샘솟기 마련입니다.
왜 촉독인가?
1일1촉을 강조할 때 이런 문장을 반복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넷플릭스 대신 1일1촉"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합니다. 첫째, 넷플릭스를 포함한 다양한 정크푸드가 아닌 독서를 즐기는 것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둘째, 독서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하고 부담 없이 책에 접촉하는 연습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통계를 보셨듯이 5명 중 3명은 독서를 전혀 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밥 먹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훈육하려면, 일단 밥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부터 사라지도록 해야 하는게 이치 아닐까요?
<묘법연화경>에서는 인간완성인 성불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세 가지 수행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자신이 성불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는 올바른 마음가짐입니다. 둘째는 앞서 성불의 길을 걸어간 불보살의 모습에서 감동하여 수행의 동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셋째는 마음가짐과 동기가 망상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화될 수 있도록 만드는 오종법사행이라는 구체적인 실천원리입니다.
오종법사행은 수지, 독, 송, 서사유통, 위인해설의 5가지입니다. 수지는 <묘법연화경>을 비롯한 가르침을 친근하게 지니는 것입니다. 독이란 독서로써 정보를 먹는 것입니다. 송이란 암송으로써 배운 내용을 새기는 과정입니다. 서사유통이란 다시 이 가르침을 몸으로 쓰는 과정을 통해 기억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위인해설이란 온 몸과 온 마음으로 배우고 새긴 내용을 다시 인출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설명하는 과정입니다. 이 오종법사행은 인풋 그리고 아웃풋 독서를 포함한 매우 정밀한 뇌과학적 배움의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을 통해 살펴보면 독서를 하지 않아 정신적 빈사상태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독서를 유도하는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수지'의 과정입니다. <일독일행 독서법>에서는 독서를 시작하는 방법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아직 책장이 없다면 책장부터 구입하라. 그리고 그 안을 자신만의 책들로 차근차근 채워나가라. 그것만으로도 독서광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다리를 놓는 셈이다."
모든 종교와 철학에서 강조하는 의식성장의 제1원칙은 바로 '원리악우 친근현선'입니다. 최선을 다해 친근해야 하는 지혜로운 이는 물론 사람도 포함되지만, 지혜로움의 조건인 도서도 해당됩니다. 그렇기에 독서의 시작은 무조건 '수지'부터입니다.
1일1촉은 독서가 아닌 촉서입니다. 일단 하루에 한번이라도 책에 접촉하자는 의미입니다. 수지하고 친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넷플릭스에 열광하는 과정도 그 시작은 어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에 설치하고 가까이하는 것 아니었나요? 넷플릭스 대신 전자책 대여 서비스를 설치하세요. 그리고 추천영상 대신 추천도서를 그냥 접촉해보세요. 훓어보세요. 구경해보세요. 시작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촉서하는 순간 두뇌는 독서하는 모드로 변화가 시작됩니다.
1일1촉과 만독의 조화
촉서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오종법사행 중 1단계에 해당될 뿐입니다. 1단계를 수료했다면 이제는 2단계, 3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기에 전 촉서를 잘 하시는 분들에게 정독을 강조합니다. 제가 알려드리는 정독법은 소의경전 만독법입니다.
가볍게, 부담없이, 설렁설렁 촉서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너무 대비되나요? 그럼 촉서의 또 다른 목적을 소개해야 하겠군요. 촉서는 수지를 위해이기도 하지만, 탐색의 의미도 매우 강렬합니다. 관심사와 신분, 삶의 목적과 원하는 바 등을 고려하여 스스로의 본분사에 어울리는 교과서를 찾는 과정이 바로 촉서입니다. 최소 30년간 지속적으로 시간을 투자하여 공부해야 할 소의경전을 선택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교과서 후보가 정해졌다면, 그 후보들을 검증하기 위해 입체적인 관점으로 정보를 살펴보는 과정입니다. 즉, 촉서는 정독할 도서를 결정하기 위한 탐색과정인 것입니다.
스스로의 본분사가 수행자라면 당연히 수행법에 어울리는 소의경전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교과서에 시간을 장기투자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30년을 최소단위라고 생각하기에 만독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선택한 교과서는 <입보살행론>, <법구경>, <묘법연화경>, <금강경> 총 4권입니다.
교과서가 결정되었다면, 촉서는 그만두고 교과서만 계속 읽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촉서는 만독을 시작한 이후에도 분명한 쓰임새가 있습니다. 촉서의 의미와 효율은 중심이 되는 교과서를 결정하는 시기를 분기점으로 하여 180도 달라집니다. 먼저 교과서가 없을 때의 촉서는 수지 그리고 탐색에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교과서가 결정된 뒤에는 촉서를 통해 접촉하는 모든 정보는 교과서의 장기투자를 돕는 근거가 됩니다.
예를 들면 제가 선택한 교과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보리심'입니다. 보리심의 완성을 위해 30년을 공부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 경우 다양한 주제의 촉서는 보리심을 수행하는데 힌트를 주는 소재가 됩니다. 시간관리에 대한 촉서를 한다면? 보리심 수행을 위해 시간관리를 하게 될 것입니다. 기후재앙에 대한 촉서를 한다면?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기후재앙을 막는 방법을 실천할 것입니다. 건강에 대한 촉서를 한다면? 보리심을 완성할 때까지 이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는 공부를 할 것입니다. 모든 촉서의 주제가 보리심이라는 전공을 위한 수단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알게 모르게 정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체성에 따라 독서법은 달라집니다. 하지만 의식의 성장을 위해 독서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은 공통입니다. 먹지 않으면 건강을 해치고 나아가 죽기 때문에, 독서는 정신의 생존을 위한 필연입니다. 취향과 건강에 따라 식사법이 달라지듯, 정신건강과 정체성에 따라 독서법이 달라져야 합니다. 물론 영양실조 상태라면 독서법 따질 것 없이 일단 무조건 먹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수행자의 독서는 정독을 통해 실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독을 통해 구슬을 구해야 합니다. 이 정독과 다독을 조화롭게 실천할 때 비로소 멋진 목걸이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실과 구슬 모두가 있을 때 자신의 깨침과 타인을 돕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보리심을 현실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첫댓글 정독과 다독을 조화롭게 실천하기!
밝게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