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산(虎巖山)
호암산(虎巖山)은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산으로 관악산 서쪽 끝 봉우리이다. 산자락에 호압사가 있어 호압산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원래는 금주산 · 금지산(금천의 주산)이라고도 불렀으며 산세가 호랑이 형상을 닮았다하여 호암산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산자락에 많은 별장이 위치하여 주민들은 별장산이라고도 부른다. 옛날에는 시지산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호암산 산행은 경부선 석수역과 관악역, 호압사, 시흥계곡에서 시작할 수 있다. 호암산에서 삼성산을 거쳐 관악산까지 등산도 가능하다.
호암산 자락에는 불영암이라는 암자가 있으며 근처에 있는 석구상(石狗象)은 호암산성안에 있는 연못인 한우물(서울 호암산성, 사적 제343호)로부터 동북쪽 50m 지점에 있는 동물석상이다. 관악산의 화기를 누름으로써 한양에 화재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다는 조선시대의 도읍설화와 연관된 해태상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 석상이 해태보다는 개의 형상에 더 가깝고, <시흥읍지> ‘형승조’에도 이를 뒷받침해줄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석구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길이 1.7m, 폭 0.9m, 높이 1.0가량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부각되어 있고 발과 꼬리부분 또한 잘 묘사되어 있는 등 석상기법이 세밀하고 사실적이다. 한우물 근처에서는 ‘석구지(石拘池)’라는 명문이 새겨진 석재가 발견되었는데 한우물이 석구지라 불린 것은 석구상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호암산 신랑각시바위 조망대 지점과 석구상 부근에서 호암산성 성벽 흔적을 볼수 있으며 찬우물 갈림길에서 호압사 방향으로 빠지면 전망대가 있는 정상으로 올라갈수 있다. 호암산 정상은 민주동산으로도 불리며 헬기장과 국기계양대가 있다. 조금 더 내려가면 서울 강남방향 전경을 내려다 볼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남산 서울타워, 63빌딩, 국회의사당,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 등이 한눈에 보이며 관악산 정상 기상관측소와 KBS 송신소 철탑도 볼수 있다. 정상에서 하산할 수 있는 코스 중 관악구 방향 호압사 코스는 바위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 구간이 있으며 등산로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금천구 방향 불영암 한우물 코스로 내려가는 경우 안양 삼성산 방향으로 잘못 내려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호암산 정상은 행정구역상 금천구가 아닌 관악구 소관에 들어가며 정상입구 지점은 서울 금천구, 관악구,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세 지역이 만나는 곳이다.
전해오는 이야기
호암산에 북쪽을 향해 금방이라도 뛰어갈 듯한 호랑이 형상의 바위가 있는데, 이 호랑이가 한양을 향해 날뛰는 형상을 하고 있어 금천현(현재 금천구)의 지세가 쇠퇴하고, 금천현이 쇠퇴하면 결국 한양까지 재앙이 옮겨올 것이라는 풍수지리설에 의해 조선 태조는 이 바위 북쪽에 활에 해당하는 궁교(弓橋)와 사자에 해당하는 사자암을 지어서 호랑이를 날뛰지 못하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사자암은 관악산 줄기인 삼성산 국사봉 아래에 있는 사찰로, 1398년(태조 5) 무학대사 자초(自超 1327∼1405)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사자암이 있는 삼성산과 인근의 호암산은 산의 형세가 북으로 내달리는 호랑이 형국이라 풍수상 조선의 수도 한성에 좋지 않았다. 무학대사는 그 기세를 막기 위해 사자 형상을 띤 국사봉 아래에 사자암(獅子菴)을 세웠고, 호암산에는 호랑이를 제압한다는 의미를 지닌 호압사(虎壓寺)를 세웠다 한다.
주변환경
호암길은 이 길이 통하는 관악산의 지봉인 호암산(虎岩山)에서 유래되었다. 호암길은 관악구 신림동 신림로에서 산복터널을 거쳐 금천구 시흥동 시계에 이르는 폭 20m, 길이 5,000m의 4차선 도로이다. 이 길은 1993년 7월 23일 이름 붙여진 호압사옆의 호압산길에서 비롯되었다. 호압산길은 2000년 6월 16일 호암산의 측면 도로이므로 ‘호암’의 명칭을 사용하되, 등산로를 연상하게 되는 ‘산’자를 빼고 호암길로 변경하였다.
[이야기가 있는 걷기] 호암산길
미디어펜 기사 입력일 : 2022-03-27
글 : 윤광원 취재본부장
호랑이산 등줄기에서 역사를 만나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서울 금천구의 주산은 호암산(虎岩山)이다.
조선왕조 건국과 한양 천도 이후,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꿈에 호랑이가 자주 나타났다. 반은 호랑이이고 반은 모양을 알 수 없는 이상한 괴물이 눈에 불을 내뿜으며, 궁궐을 들이받으려 했다. 군사들이 화살을 쏘아댔지만, 괴물은 아랑곳없이 새로 짓던 궁궐을 여러 번 부숴버렸다.
태조가 침통한 마음으로 침실에 들었을 때, 어디선가 “한양(漢陽)은 비할 데 없이 좋은 도읍지로다”하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한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호랑이 머리를 한 산봉우리가 한양을 굽어보고 있었다. 잠에서 깬 태조는 왕사(王師)인 무학대사를 불러 꿈 이야기를 했다. 이에 무학대사는 호랑이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산 꼬리에 호압사를 창건하게 됐다. 호랑이를 누른다는 뜻의 호압사(虎壓寺)다.
산 이름은 당연히 호암산이 됐다.
정상부를 밑에서 보면, 영락없이 호랑이의 등을 닮았다.
해발 325m의 험준한 바위산으로, 민주동산(民主童山)이라고도 부른다. 군사독재 시절,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이 산에서 자주 모여 민주주의 회복을 염원했다고 해서, 이런 별칭이 붙었다.
호암산의 능선은 계곡을 따라 길게 이어져, 수도권전철 1호선 석수역(石水驛)과 ‘관악역’ 인근까지 계속된다. 삼성산의 또 다른 산줄기도 이 곳에서 끝난다. 마치 말굽자석 모양으로 두 산줄기가 경인교대 골짜기를 감싸고 나란히 달려 내려가, 비슷한 지점에서 끝나는 것.
오늘은 이 호암산을 올라본다.
1호선 관악역(冠岳驛)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간다.
‘경수대로’를 따라 조금 가다가,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건넜다. 맞은편에는 ‘한마음 선원(禪院)’이 위용을 자랑한다.
‘삼막로’를 따라가다가, 4번째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접어든다. 식당들이 많은 ‘먹거리 촌’이다. ‘삼막 칡 냉면’ 앞에서 왼쪽 골목으로 접어들어 조금 오르면, ‘굴다리’가 보인다. 바로 제2경인고속도로(第二京仁高速道路) 밑을 통과할 수 있는 지점이다.
굴다리를 지나니, 바로 산길이 시작된다.
가파른 계단을 힘들게 오르면, 능선(稜線) 길로 이어진다. ‘금강사’로 갈 수 있는 삼거리를 지나, 석수역 방향으로 간다. 숲 사이로 경인교대(京仁敎大) 캠퍼스가 내려다보인다.
석수역으로 내려갈 수 있는 삼거리를 지났다. 길옆에 돌탑 2개가 있다. 하나는 수직으로 높이 쌓았고, 다른 하나는 옆으로 펑퍼짐하게 넓다.
사거리를 지나 직진한다. 이 산줄기는 ‘석수능선’이다.
유순한 흙길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거친 암릉(岩稜) 길로 바뀐다. 오른쪽 장군능선 너머에서, 관악산이 손짓한다.
이윽고 예사롭지 않은 돌무더기가 보인다. 바로 호암산성(虎岩山城) 성문 터다.
호암산성은 사적으로 지정된 옛 산성으로, 신라(新羅) 때부터 있었다. 산 정성을 중심으로, 빙 둘러 쌓은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둘레는 1547m이며, 그 중 약 1016m 정도 성벽의 흔적이 남아있다.
6세기 후반~7세기 초반, 신라가 삼국통일(三國統一)을 하는 과정에서 축성, 군사적 거점 및 행정 치소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근 절벽에는 ‘신랑(新郞)·각시바위’, 일명 ‘사랑바위’가 있다.
옛날 호암산 아랫마을에 믿음직한 총각과 어여쁜 낭자(娘子)가 한 마을에 살면서,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 그러나 양가 집안이 대대로 원수 사이여서, 집안 사람들은 이들의 관계를 반대하며 다른 사람과 혼인을 시키려 했다.
낭자는 야밤에 집을 나와 홀로 산에 올라, 목숨을 끊으려 했다. 이를 안 총각은 그녀를 찾아, 깊은 밤 온 산을 헤메다가, 절벽 위에 홀로 서서 세상을 하직하고자, 기도(祈禱)를 하는 낭자를 발견했다. 이들은 손을 맞잡고 흐르는 눈물을 서로 닦아주며, 꼬박 긴 밤을 지새웠다.
이들의 애절(哀切)한 사연은 달님에게까지 전해졌다.
달님은 이들이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도록, 그 자리에 우뚝 선 바위로 만들어주었다.
그 후 아랫마을에서는 선남선녀(善男善女)들이 이 곳에서 손을 맞잡고 사랑을 고백하면, 혼인을 할 수 있게 되고 결혼 후에는 옥동자를 점지해 줬으며, 백년해로(百年偕老)했다고 한다.
전설(傳說)처럼, 신랑각시바위는 젊은 남녀가 서로 꼭 껴안고, 마주보며 서 있다.
바위 아래, 금천구의 시가지가 넓게 펼쳐진다. 광명시 ‘구름산’도 보인다.
계속 길을 따라가면, 곧 제2우물지(第二井址)가 보인다.
산성 내 식수원 확보를 위해, 삼국시대 때 신라가 조성한 석축 우물터로 추정된다.
조금 더 가면, 오른쪽 언덕 위에 석구상(石狗像)이 나타난다.
조선시대 《경기읍지》 중 《시흥읍지》에 따르면, ‘호암’이라는 바위가 현의 진산인 금지산(호암산)에 있는데, 그 모양이 호랑이를 닮아서, 한양으로 도읍을 삼을 때 이 호랑이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호암의 북쪽에 돌로 만든 사자(獅子)를 묻고, 남쪽에는 돌로 만든 개를 묻었다.
‘해태상’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형태가 개에 가깝다고 해서 석구상이라 부른다. 1990년 ‘제1우물지’ 발굴조사 당시, 조선시대 건물에서 석구지(石狗池)라고 새겨진 석재가 확인됐다.
석구상은 길이 1.7m, 높이 1.0m 가량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발과 꼬리도 명확하다.
석구상 앞에서 왼쪽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제1우물지’, 즉 한우물(大水井)이 있다. 사적으로 지정된 한우물은 ‘큰 우물’ 혹은 하늘 못(天井)이란 뜻이다.
삼국시대 처음 축조돼, 조선시대에 증축된 연못으로, 길이 22m, 너비 12m, 깊이 1.2%다. 네 변을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용보(龍洑)라는 별칭이 있다. 가뭄 때는 기우제를 지내고, 전시에는 군용으로 사용했다.
1991년 통일신라와 조선시대 두 시기의 못을 함께 복원했다.
문무왕(文武王) 때 당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해 축조한 것으로 보이며, 임진왜란 때는 선거이(宣居怡) 장군이 왜군과 싸우면서 군용수로 사용했다고 전한다.
한우물 바로 옆은 ‘불영암’이다.
아담한 대웅전(大雄殿) 법당 앞에는 길 양쪽으로 멋진 돌탑들이 늘어서 있다. 그 옆으로 지붕만 있는 종각에 범종과 목어 등이 달려 있고, 한쪽엔 돌절구와 맷돌 등 산성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암자 뒤에는 바위 위에 큰 불두(佛頭) 하나가, 사바세계를 굽어보고 있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기가 막히다.
다시 능선을 따라 걷는다. 지형이 가팔라 ‘깔딱고개’라 불리는 고개도 지난다.
곧 호암산 정상이다. 정상은 바위에 태극기가 꽃혀 있어, 국기봉(國旗峰)이라고도 한다. 밑에서 올려다본 정상부는 아찔한 암벽(岩壁)이다.
반대편으로 건너와 잠시 쉬다가, 가파른 계단 길을 한참 내려간다.
드디어 호압사가 나왔다.
금천구의 유일한 전통 사찰인 호압사에는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8호인 ‘석(石) 약사여래(藥師如來 좌상(坐像)’이 모셔져있고, 도량 내에는 500년이 넘은 수령의 보호수 느티나무 2그루가 사찰의 오랜 내력을 대변해 준다.
절 마당 한복판에는 마치 오대산 월정사(月精寺) 같은, ‘8각 9층 석탑’이 장관이다. 호압사 본전은 약사전(藥師殿)이다.
절 입구의 배불뚝이 달마상이 익살스럽다. 그 불룩한 배를 만지며 소원을 간절히 빌면, 이뤄진다는 속설이 있다. 그 옆 동자불(童子佛)은 참 귀엽고, 절집에서 파는 아메리카노 커피는 ‘가성비’가 좋다.
호압사 옆 차도로 바로 하산한다. 제법 가파른 아스팔트 도로다.
저 아래 산문, 즉 일주문이 보인다. 호암산문(虎巖山門)이란 현판을 달아 놓았다.
‘벽산아파트 3거리’를 지나 ‘관악산 벽산타운 1단지 아파트’를 끼고 우회전, ‘금하로’를 따라 내려간다. 이 동네는 ‘시흥2동’이다. ‘동일여자고등학교’ 앞을 지났다.
도로 옆에 시흥향교(始興鄕校) 터 표석이 보인다.
조선시대에 공자 등 성현들을 봉안하고 유생들을 교육시키던 곳으로, 1944년 일제가 과천향교(果川鄕校)에 통합시켰다고 한다.
도로 가운데, 큰 은행나무가 보인다. 수령 800년 이상 된 노거수다.
여긴 아마도 시흥 관아(官衙)가 있던 곳 같다. 은행나무는 관아 입구에 많이 심었던 수종이다. 한옥 담장도 조금 있다. 시흥은 조선시대 현감(縣監)과 현령이 다스리던 고을이다. ‘현’ 치고는 격이 가장 높았다.
그 옆에는 비석이 몇 개 서 있다.
금천구 시흥5동의 은행나무가 서있는 부근을 예전부터 ‘비석거리’라고 불러왔다. 시흥현령의 선정비(善政碑) 4기가 서 있기 때문이다.
현령 김병이, 이장혁, 조용구, 방천용의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들이다.
건너편 전통시장은 ‘은행나무시장’이다. 조금 더 가면, 은행공원(銀杏公園)도 있다.
금하로를 따라 계속 가다가 ‘금빛공원’을 지나고, ‘시흥사거리’와 ‘금천파출소’ 앞을 거쳐 좀 더 가면, ‘서해안고속도로’와 안양천(安養川)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전철 1호선 금천구청역(衿川區廳驛)이 있다.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호암산&삼성산&관악산]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