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아 고는 마치 인공지능 알파고처럼 냉정하게 경기하다가 마지막 홀에서 핀 30cm 옆에 공을 붙여 버디를 잡고 거포 아리야 주타누간을 무너뜨렸다. 한 타 차 공동 2위에 오른 전인지(22하이트진로)도 돋보였다. 위기는 많았지만 한 번도 미소를 잃지 않았고 16번홀에서 첫 보기가 나올 때까지 선두 경쟁을 했다. 우승은 놓쳤지만 전인지로서는 한 달 만에, 그 것도 전 세계 최고 선수들이 굳은 각오로 참가하는 메이저대회에서 복귀해 빼어난 성적을 냈다. 미국 골프계에서도 전인지와 장하나(24BC카드)의 아버지 간에 일어난 싱가포르 공항 엘리베이터 부상 사건은 화제다. 미국 미디어에 의하면 LPGA 투어 캐디들은 이를 러기지 게이트(Luggage-Gate)로 명명했다고 한다. 전인지를 다치게 한 가방(Luggage)에 굵직한 사건을 의미하는 게이트(gate)를 붙여 만든 조어다. 두 선수가 아직 앙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듯하다. 미국 골프다이제스트는 “두 선수가 드라이빙 레인지의 정반대쪽에서 연습했다”고 보도했다. 게이트라는 단어까지 등장한 것을 보면 매우 큰 일이고 그만큼 전인지가 받은 상처도 컸을 것이다. 그는 “쉬는 동안 너무 우울해서 식욕도 의욕도 다 잃었다”고 말했다.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몸도 아직 완전하지 않고 경기감각도 떨어졌다. 그래서 이번 대회에서 보기 위기가 유난히 많았다. 10위 이내 선수 중 전인지만 유일하게 그린 적중률이 70%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2라운드에는 그린을 놓친 홀이 6번이나 나왔다. 놀랍게도 전인지는 이 여섯 홀에서 다섯 번 파 세이브를 하고 나머지 한 번은 버디를 잡았다. 그린을 놓친 6개 홀에서 1언더파를 친 것,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든 것이다. 최종라운드에서도 전인지는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지만 16번 홀 이외에는 보기가 없었다. 전인지의 쇼트게임은 싱가포르 부상 이전보다 오히려 좋아졌다. 전인지를 가르치는 박원 JTBC골프 해설위원은 “4주 쉬는 동안 골프의 기본을 다시 점검했다. 또 풀스윙을 할 수 없어 특히 쇼트게임에 전력했다. 그래서 이번 주 파 세이브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았는데도 잘 해냈다”고 말했다. 농구 선수들은 오른손을 다치면 왼손으로 드리블 연습을 하면서 양손을 잘 쓸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전인지도 한 달 공백을 발전의 디딤돌로 쓴 것이다. 전인지는 “몸이 다친 것은 안타깝지만 길게 봐서 쇼트게임 실력이 좋아진 것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도 전인지는 이 대회에서 부진했다. 당시 3미터 이내에서 놓친 퍼트가 아주 많았다. 전인지는 “퍼트에 대해서 완전히 다시 생각했고 한국에 돌아와 다시 공부하고 준비했다. 이를 계기로 지난해 US오픈 등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원 위원은 “인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것을 찾아낸다. 부정적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전인지는 함께 경기했고 우승한 리디아 고에 대해 “오늘 경기는 직접 혹은 TV에서 본 것 중 리디아의 최고 경기였다. 침착했고 경기를 즐기는 모습이 훌륭했다. 선의의 경쟁을 하며 더 발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인지는 장하나와의 사건을 “다 지난 일”이라고 털어버렸다. 1, 2라운드 장하나가 바로 뒷 조에서 경기하는데 평상심을 잃지 않았다. 전인지는 “필드를 밟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성적이 아니라 메이저대회에서 다시 경기할 수 있는 것, 경기를 잘 한 것에 감사한다. 성적이 아니라 행복하려 왔다”고 말했다.
마지막 홀 버디, 끝까지 추격한 전인지 주요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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