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장
빌립보인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초기에 내가 마케도니아에서 나올 때에 나와 더불어 주고 받는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밖에 없었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교회는 건물의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지금의 한국교회가 각교회별로 집단화 되어 있으나 사실은 믿음의 성도들은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다만 지역이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한국교회가 건강할 때에 지어진 교회들의 이름은 대부분이 지역명의 교회였었습니다. 지금은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그런 명칭을 잘 쓰지 않지만 성경적으로 교회이름은 그 지역을 붙이는 것이
맞습니다. 즉 빌립보교회는 빌립보지역의 성도들의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도들 사이에는 의견이 다르고 해석이 다를 수 있지만 우리는 모두 동일한 하나님 한분을 섬기는 하나의 교회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는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두 번 나의 쓸것을 보내 주었음이라.
바울이 어려움에 처할 때에 빌립보 지역의 성도들이 도와주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선물을 구하고자 함이 아니라 너희의 회계에 풍성한 열매를 구하고자 함이니라.
여기에 나오는 회계는 회개의 오타가 아닙니다. 실제로 회계, 재정을 의미합니다.
Not because I desire a gift: but I desire fruit that may abound to your account.
KJB 빌립보서 4장 17절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도움이 곧 그들의 재정의 풍성함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하니라. 나는 너희가 보낸 것을 에파프로디도로부터 받아서 풍족하게 되었노라. 이는 향기로운 냄새요, 받으실 만한 희생제요, 하나님을 참으로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
빌립보 성도들의 회계의 풍성함으로 되기를 바울이 원한 것은 빌립보의 성도들의 헌물과 헌신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에파프로디도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죽게 되었다고 빌립보서 2장에 언급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는 빌립보 성도들과 바울의 연락과 교류를 도왔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헌신과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모두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카인과 아벨의 제사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고 카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카인과 아벨의 제사가 어떤 차이를 가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략적인 유추는 해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지금 한국교회에도 카인의 예배를 드리는 자들과 아벨의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본능으로도 느껴집니다. 하나님을 주로 생각하는 예배와 그렇지 않은 예배로 나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한국교회에 카인과 같은 예배가 많이 존재하며, 그런 예배는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 예배자는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영광 가운데서 그의 풍요함을 따라 너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라.
빌립보서 4장 15절 ~ 19절
바울이 필요로 하는 물질은 이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풍요하게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빌립보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에 통로가 된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의 통로가 되는 것이 우리의 최종적인 삶의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