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정복 이후 대부분 파괴된 잉카 제국의 유적들과 다르게 원형 가까이 보존된 채로 발견되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마추픽추는 ‘잃어 버린 공중 도시’로 불리며 이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여행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왜 먼 옛날 잉카인들은 건축 자재조차 나르기 힘든 첩첩산중에 자급자족이 가능한 하나의 완벽한 도시를 건설했을까?
이에 대해서는 스페인 침략 이후 스페인을 피해 황금을 가지고 건설한 최후의 도시였다는 주장이나
종교적인 목적의 도시였다는 주장 혹은 단순히 잉카 왕족의 여름 피서를 위한 별장이었다는 주장 등
다양한 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확한 진실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단순히 하나의 건축물 혹은 문화유산이라는 의미를 넘어 스페인 정복 이전의 남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상징인
마추픽추에서 번성했던 잉카 문명을 다시금 되돌아 보게한다
인간의 발길이 미쳤으리라고는 도저히 짐작도 되지 않는 안데스의 연봉들이 솟아 있는 해발 2천5백 여 미터의
바위산에 비밀의 도시가 자리하고 있다니 참으로 신기하다. 잉카제국 최후의 수도로 여겨지는 곳이다.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잉카문명이 낳은 고대 고원도시 마추 피추 그 이름 앞에 붙여지는 수식어도 먾다. ' 잉카의 잃어버린 도시','비밀의 도시' 또는 '공중의 도시'라고 한다. 마추 피추 본 이름의 뜻은 ‘나이 든 늙은 봉우리’란다.
성수기 거의 5분마다 출발하는 편도8~12$(시기별 탄력적용하는 듯?) 35인승 마추피추행 셔틀 버스는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13시까지 운행되며,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로 내려오는 버스는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7시 30분까지 운행된다. 구불구불 산길을 30여분 오르는 동안에도 길의 위험보다 산세의 감상보다 날씨변화에 기대감을 가지며
자연에 섭리를 거슬리려는 심리는 인간 본연의 이기심이 아닐까?
마추픽추 우리는 오늘 요번 여행의 최고 하이라이트인 안데스의 고봉들이 펼치는 환상적인 세계에 보석처럼 여겨지는
잉카인들의 가장 위대한 유물 마추픽추를 보러간다. 현지 가이드는 없이 지난 해 답사를 하고온 후배 부부가 가이드를 대신한다.
우린 아침 일찍 출발 하기 위해서 어제 마추픽추에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마을 에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호텔에서 잤다. 마추픽추로 오르는 셔틀 버스가 우리가 하룻 밤 묵은 이 마을의 동쪽으로 기차길이 나 있는 곳 옆에 정류장이 있다. 저 버스 표시가 있는 곳이며 저런 형태의 35인승 버스다
저곳에서 버스표를 판매하는데 편도는 9달러, 왕복은 17달러 수준이었다.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버스는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13시까지 운행되며,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로 내려오는 버스는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7시 30분까지 운행된다. 이곳에서 마추 픽추 입구 까지는 꼬불 꼴불한 산길을 따라 굽굽이 올라 가지만 30분이 체 안걸린다.
우린 하루에 두차례 오전8시와 10시에 예약제로 200명씩만입장이 되는 후추픽추와 와이나피추를 8시 타임에
예약을 해 두었기에 그곳 부터 먼저 오른후 마추피추그뒤에 천천 구경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어제 밤에도 비가 내리더니 오늘도 왠지 날씨가 심상치 않다. 이슬비도 오락가락하고 구름도 몰려 다닌다. 우기인 요즘 이곳의 날씨는 하루에도 몇번씩 변화를 일으키고 늘 이런편이란다.
이곳이 후추피추와 와이나피추로 올라가는 입구 검표소다. 우린 표를 보여주고 통과했다.
그런데 구름은 더 짖어지고 빗방도 뿌린다. 후추피추보다 큰 봉우리인 와이나피추는 구름속에 묻혀서 형태도 보이지 않는다. 우린 후추피추만 오르고 와이나피추는 포기 하기로 했다.
지난 해 다녀온 후배 부부가 길도 좁으며 계속 계단이며 오늘 같이 비가 오는 날은 길이 미끄러운데 힘들게
올라 가 보았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그 보다 낮은 봉우리인 후추피추로 만족 하잔다. 그렇지 않아도 어젯밤 무거운 가방을 끌고 계단길을 오르 내려 이곳에 오기전 까지 재활치료 받던 어깨와
허리 상태가 좋지 않으니 그러자고 했다.
구름은 점점 더 짙어져 산봉우리들을 삼켜 버린다.
후추피추쪽에서 본 마추피추 모습들이다.
우리가 셔틀 버스를 타고 꼬불 꼬불 올라 온 길
우린 이제 하산 한다.
후추피추쪽에서 본 마추피추 모습들이다.
후추피추에서 내려 오면서 마추피추 내부를 들러 왔다.
콘돌 신전 / 반원형 석조물은 콘돌부리의 힌 깃털을 상징
잉카제국의 간략 역사. 12세기 초 만코 카팍의 아들 신치 로카가 그의 누이동생 마마 쿠라를 왕비로 맞으면서 잉카는 신화가 아닌 역사 시대로 들어선다. 잉카는 로카왕의 손자 마이타 카팍 시대에 지배 면적이 확대되었고 제9대 파차쿠티 유판키( 1438~1471) 시대에는 인구가 1100만 명이나 되었다.
16세기 초에는 안데스산맥에서 태평양 해안에 이르기까지 면적이 10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할 정도로
대제국이었고 황제를 정점으로 정치와 사회제도도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었다.
잉카인들은 읽고 쓰지를 못했다. 그들은 ‘키푸라는 결승문자를 사용했는데 노끈의 빛깔이나 매듭으로 여러 가지 뜻을 표시했다. 그들은 동물의 힘을 빌리거나 바퀴를 사용하지 않고 도로 · 계곡을 잇는 적교(吊橋) · 농업용수로 · 거대한 성채를
스페인 정복 이후 대부분 파괴된 잉카 제국의 유적들과 다르게 원형 가까이 보존된 채로 발견되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마추픽추는 ‘잃어 버린 공중 도시’로 불리며 이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여행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왜 먼 옛날 잉카인들은 건축 자재조차 나르기 힘든 첩첩산중에 자급자족이 가능한 하나의 완벽한 도시를 건설했을까?
이에 대해서는 스페인 침략 이후 스페인을 피해 황금을 가지고 건설한 최후의 도시였다는 주장이나
종교적인 목적의 도시였다는 주장 혹은 단순히 잉카 왕족의 여름 피서를 위한 별장이었다는 주장 등
다양한 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확한 진실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단순히 하나의 건축물 혹은 문화유산이라는 의미를 넘어 스페인 정복 이전의 남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상징인
마추픽추에서 번성했던 잉카 문명을 다시금 되돌아 보게한다
인간의 발길이 미쳤으리라고는 도저히 짐작도 되지 않는 안데스의 연봉들이 솟아 있는 해발 2천5백 여 미터의
바위산에 비밀의 도시가 자리하고 있다니 참으로 신기하다. 잉카제국 최후의 수도로 여겨지는 곳이다.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잉카문명이 낳은 고대 고원도시 마추 피추 그 이름 앞에 붙여지는 수식어도 먾다. ' 잉카의 잃어버린 도시','비밀의 도시' 또는 '공중의 도시'라고 한다. 마추 피추 본 이름의 뜻은 ‘나이 든 늙은 봉우리’란다.
성수기 거의 5분마다 출발하는 편도8~12$(시기별 탄력적용하는 듯?) 35인승 마추피추행 셔틀 버스는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13시까지 운행되며,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로 내려오는 버스는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7시 30분까지 운행된다. 구불구불 산길을 30여분 오르는 동안에도 길의 위험보다 산세의 감상보다 날씨변화에 기대감을 가지며
자연에 섭리를 거슬리려는 심리는 인간 본연의 이기심이 아닐까?
마추픽추 우리는 오늘 요번 여행의 최고 하이라이트인 안데스의 고봉들이 펼치는 환상적인 세계에 보석처럼 여겨지는
잉카인들의 가장 위대한 유물 마추픽추를 보러간다. 현지 가이드는 없이 지난 해 답사를 하고온 후배 부부가 가이드를 대신한다.
우린 아침 일찍 출발 하기 위해서 어제 마추픽추에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마을 에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호텔에서 잤다. 마추픽추로 오르는 셔틀 버스가 우리가 하룻 밤 묵은 이 마을의 동쪽으로 기차길이 나 있는 곳 옆에 정류장이 있다. 저 버스 표시가 있는 곳이며 저런 형태의 35인승 버스다
저곳에서 버스표를 판매하는데 편도는 9달러, 왕복은 17달러 수준이었다.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버스는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13시까지 운행되며,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로 내려오는 버스는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7시 30분까지 운행된다. 이곳에서 마추 픽추 입구 까지는 꼬불 꼴불한 산길을 따라 굽굽이 올라 가지만 30분이 체 안걸린다.
우린 하루에 두차례 오전8시와 10시에 예약제로 200명씩만입장이 되는 후추픽추와 와이나피추를 8시 타임에
예약을 해 두었기에 그곳 부터 먼저 오른후 마추피추그뒤에 천천 구경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어제 밤에도 비가 내리더니 오늘도 왠지 날씨가 심상치 않다. 이슬비도 오락가락하고 구름도 몰려 다닌다. 우기인 요즘 이곳의 날씨는 하루에도 몇번씩 변화를 일으키고 늘 이런편이란다.
이곳이 후추피추와 와이나피추로 올라가는 입구 검표소다. 우린 표를 보여주고 통과했다.
그런데 구름은 더 짖어지고 빗방도 뿌린다. 후추피추보다 큰 봉우리인 와이나피추는 구름속에 묻혀서 형태도 보이지 않는다. 우린 후추피추만 오르고 와이나피추는 포기 하기로 했다.
지난 해 다녀온 후배 부부가 길도 좁으며 계속 계단이며 오늘 같이 비가 오는 날은 길이 미끄러운데 힘들게
올라 가 보았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그 보다 낮은 봉우리인 후추피추로 만족 하잔다. 그렇지 않아도 어젯밤 무거운 가방을 끌고 계단길을 오르 내려 이곳에 오기전 까지 재활치료 받던 어깨와
허리 상태가 좋지 않으니 그러자고 했다.
구름은 점점 더 짙어져 산봉우리들을 삼켜 버린다.
후추피추쪽에서 본 마추피추 모습들이다.
우리가 셔틀 버스를 타고 꼬불 꼬불 올라 온 길
우린 이제 하산 한다.
후추피추쪽에서 본 마추피추 모습들이다.
후추피추에서 내려 오면서 마추피추 내부를 들러 왔다.
콘돌 신전 / 반원형 석조물은 콘돌부리의 힌 깃털을 상징
잉카제국의 간략 역사. 12세기 초 만코 카팍의 아들 신치 로카가 그의 누이동생 마마 쿠라를 왕비로 맞으면서 잉카는 신화가 아닌 역사 시대로 들어선다. 잉카는 로카왕의 손자 마이타 카팍 시대에 지배 면적이 확대되었고 제9대 파차쿠티 유판키( 1438~1471) 시대에는 인구가 1100만 명이나 되었다.
16세기 초에는 안데스산맥에서 태평양 해안에 이르기까지 면적이 10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할 정도로
대제국이었고 황제를 정점으로 정치와 사회제도도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었다.
잉카인들은 읽고 쓰지를 못했다. 그들은 ‘키푸라는 결승문자를 사용했는데 노끈의 빛깔이나 매듭으로 여러 가지 뜻을 표시했다. 그들은 동물의 힘을 빌리거나 바퀴를 사용하지 않고 도로 · 계곡을 잇는 적교(吊橋) · 농업용수로 · 거대한 성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