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인을 만난 것은 지난 7월 11일이다. 박 시인은 7년간의 침묵을 깨고 광화문 사거리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레바논에 전투병 대신 재건과 의료 지원을 위한 부대를 파병하자는 내용이었다. 장대비가 내렸고, 그는 우비를 입고 거리에 섰다. 수첩과 카메라를 든 취재진도 있었다. 나눔문화 대학생 회원들은 “10초만 시간을 내달라”며 지나치는 시민들에게 서명을 부탁했다. 웃는 얼굴로 흔쾌히 응하는 사람도,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도 있었다.
“누구나 나름의 고통과 아픔이 있지요.그것을 나누고 승화하면 사랑과 희망이 시작됩니다. 상처야말로 당신이 가진 최고의 보물이에요”
어느 무관심한 자(者)의 편지
고백하겠다. 레바논과 이스라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뉴스를 보면서도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 내 앞가림도 바쁜 세상, 먼 나라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며 가슴 아파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고백하겠다. 박노해 시인의 책을 구입한 것은 그들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었다. 책의 디자인과 사진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박노해를 알고는 있었지만 무관심했다. 그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먼 나라 레바논에 카메라와 수첩을 들고 가서 직접 찍고, 손으로 적어온 글들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낯선 무슬림 아이들이 소 같은 눈망울을 하고 있는 흑백사진은,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그래, 시작은 호기심이었다.
책을 덮을 무렵에야 알았다. 소처럼 순박한 눈을 하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에는 사실 깊은 슬픔이 어려 있다는 것을.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이, 지워지지 않을 글씨로 새겨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를 괴롭힌 것은 부끄러움이었다.
숱하게 걸었을 광화문 거리에서, 나는 박노해 시인이 나눔문화 회원들과 함께하고 있는 ‘Save Lebanon’ 운동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들이 없는 거리만을 골라 걸었을 리는 없다. 그들을 ‘투명인간’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무관심’이었다. 신나는 음악으로 귀를 막고, 바쁜 일상을 핑계 삼아 눈을 감고 걸었던 거리에서, 그들은 레바논 아이들의 평화를 지원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슬픔을 담고 있는 아이들의 눈빛은 결국, 눈물을 불렀다. 하산(6)의 집은 폭격으로 무너졌다. 하산의 누이 자이납(8)은 벽돌 더미에 깔렸다. 하산은 살았지만 누이는 죽었다. 같이 흙장난하고 놀던 누이는 명분이 모호한 전쟁에 삶을 빼앗겼다. 하산은 ‘혼자 살아남아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소 같은 눈망울에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동심의 눈물이 담겼다. 나도 모르는 새 눈물이 흘렀다. 무관심의 눈물은 차가웠다. 박노해 시인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인터뷰는 나눔문화에 있는 박노해 시인의 개인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간간이 눈을 감고 있던데,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우리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곳에서 시위를 하고 있지만 레바논 아이들의 머리에는 폭탄과 총알이 떨어지려 하고 있습니다. 혼자라도 알려야 합니다. 슬프고 고독하지요. 외면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을 이해합니다. 다들 ‘먹고살기’ 위해서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것이지요. 이런 문제에 대해 모른 척하고 가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그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선함과 의로움과 사랑이 지하수처럼 흐르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잠깐 발을 멈추는 것이 어려울 뿐. 평화운동가와 혁명가, 로맨티스트가 가슴속에 한 명씩 살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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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박노해 시인의 카메라 앞에 선 아이들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음을 잃었다. (아래) A PLANE VS A CHILD, 죄 없는 아이의 얼굴에 튄 폭격의 파편. | |
레바논 현장의 진실이나 아이들의 절망과 고통, 공포, 슬픔 다 알면서도 내가 모자라고 무력해서, 전투병 파병조차 막아내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내가 조금만 더 힘이 있다면’, 그런 힘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위도, 힘도, 명예도 탐내지 않고 7년간 묵언 했습니다. 7년이면 다 잊혀지지요. 꾸준히 활동했다면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젊은 세대도 저를 알 것입니다. 이럴 때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고통받는 레바논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그러나 정말 가치 있고 옳은 일은 작지만 꾸준히 밀고 가다 보면, 언젠가는 피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씀이신데요, 많은 분들이 서명에 동참하고 아이들을 위해 얼마씩 돈을 내주셨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다른 삶에 관심 가질 수 없는 나름의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그 고통을, 같은 고통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고통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의 치유도 마찬가지지요. 우리도 몸과 마음이 무척 고통스러울 때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라고 느끼지 않겠습니까. 외롭고 슬프고, 실패하면. 그 상처의 치유도 나눔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보다 더 힘들고 절박한 인류에 관심을 갖고 뭔가 작은 것이라도 나누려고 할 때, 내면의 상처도 치유되는 것입니다.
●‘나눔’을 통한 ‘고통의 치유’라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고,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인식과 ‘직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과 직면하게 하는 박 시인의 힘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배고파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남의 배고픔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왜 밥을 굶어, (밥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지’하고 생각할 수도 있죠. 남에게 억울하게 폭력을 당해보고, 짓밟혀보지 않은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큰 절망이고 고통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제 ‘힘’은, 저 자신이 가난과 고통과 슬픔, 억울함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그리고 내 안에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과는 핏줄처럼 이어져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들과 제가 한 몸이라고 느낀다면, 발가락 하나가 아파도 손이 가듯이…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상처가 있고, 가난, 아픔이 있지요. 그것을 개인으로 끌어안을 때는 절망, 고통이 되지만, 승화하고 나누면 그것으로부터 인간의 사랑과 희망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상처야말로 당신이 가진 최고의 보물이고 힘입니다.
●레바논 현지에서 아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실상을 ‘직면’했을 때의 충격을 설명하실 수 있나요?
온몸에 힘이 빠져서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시를 쓸 수 없을 정도로. 살아 있는 인간이, 살아 있는 집과 마을을 거대한 폐허로 만드는 그런 사람들은, 과연 인간인가. 이렇게 어린아이들을 이토록 무참하게 학살한 이들이 인간인가. 말을 잊었습니다. 시도 쓸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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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광화문 네거리에서 의료, 재건부대 파견을 위한 1인 시위 중인 박노해 시인. (아래) 카메라 앞으로 아빠의 사진을 들고 나온 리안(5) 리안의 아빠는 전사했다. | |
* 박 시인과 동행했던 건국대 히브리 중동학과 최창모 교수는, “박 시인이 카메라를 들게 된 것도 충격 때문에 시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책에 실린 사진들은 모두 흑백인데, 마지막 장의 아이들 사진만 컬러입니다. 각자 그린 그림을 들고 있는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이 도드라집니다만, 어떤 의도가 있으셨는지요?
흑백만 찍다가 예수 최초의 기적이 있었다는 까나 마을에 노을이 지는데, 그 노을 아래 선 아이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순간만은 아이들을 컬러로 찍어주고 싶었지요. 까나 마을에 가서 전시회를 열어주려고요. 아이들에게는 복수심도 없고 부모, 친구가 다 죽고 폭격 더미에서 살아남아도 증오가 없습니다. 순수한 평화의 마음을 곱게, 영원히 잊지 말고, 변치 말고, 평화의 올리브나무처럼 자라라고, 곱게 담아주고 싶었습니다.
●이 기사를, 혹은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세요?
사람은 자기 자신, 자기 나라에 대한 관심은 누구나 타고납니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관심,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관심, 국경 너머의 관심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은 지구시대죠. 우리 아이들은 지구를 품고 자라야 합니다. 이 지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면, 지구시대 시민의 자격도 없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고통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국경 너머에서, 너무나 많은 곳에서 날마다 벌어지고 있는 일상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우리는 그 위에서 이 정도의 안정과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딛고 선 존재의 발밑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할 때, 우리는 바로 설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돌아보고, 둘러보고, 그것으로부터 사랑과 행복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요. 여러분이 그런 놀라움을 눈물로 끌어안아주기를 바랍니다.
●‘세계시민’이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지구시민’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데요.
‘세계시민’이 더 대중적이지요. ‘지구시민’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하나뿐인 우리 지구 문제, 그 문제에 대해서도 지구적으로 생각하자는 의미입니다. 세계는 인간과 인간, 나라와 나라의 개념이지만, 지구시민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삶터를 포함해 평화, 생명, 나눔의 문제를 포괄합니다.
●다분히 회의적인 시각에서 질문 드립니다. 인간도, 세상도 결국 모순 덩어리인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에는 선도 있고 악도 있죠. 공존합니다.
누군가는 ‘어차피 그런 것이 세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 어떤 변화의 가능성을 읽으십니까?
인간은 누구나 자기 안에 천사와 악마가 있습니다. 포르노부터 고전까지. 문제는 ‘어느 쪽에 물을 주고 정성을 기울이느냐’입니다. 그 선택에 따라 비율이 달라지지요. 그것이 인격이고, 인간성입니다.
맞습니다. 세상은 모순 투성이지요. 전쟁은 있어왔고, 악은 존재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길과 객관적인 현실 앞에, 어느 편에 설 것인가 하는 문제, 즉 선을 더 키울 것인가, 악을 더 키울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체념하는 순간, 폭력, 악의 기득권 안에서 침묵의 동조자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전쟁을 하는 세력, 불의한 방법으로 기득권을 가져가는 세력들은 항상 국민의 이름으로 저지르지요. 이스라엘, 미국도 마찬가지고 세계의 모든 나라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국민은 어떤 국민인가.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는 침묵과 무관심이, 그쪽의 지지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않는 그 자체, ‘지구시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그 자체로 악의 지지자가 되는 것이지요. 귀 기울이고, 들여다보고, 말하고 나누어야 합니다.
*박 시인은 늘 힘들 때면 가슴에 새기는 사례가 있다며,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에서 있었던 일화를 들려줬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때 겨울, 백악관 앞에서 백인 남자가 촛불을 들고 1시간씩 서 있었습니다. 퇴근길마다 그러니까 출입 기자들이 물었죠. “당신 혼자 이러고 있으면 뭐 하느냐”고, “그 촛불 하나 가지고 뭘 할 수 있느냐”고. 그래도 묵묵히, 겨울 내내. 퇴근길에 침묵으로 서 있다가 돌아갔습니다.
그 남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촛불 하나가 전쟁을 멈추게 하고 정의로 미국을 돌릴 수 있는 힘이 없을 수도 있다.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마저 이 무거운 어둠 속으로 휩쓸려가는 것을 도저히 스스로 용납할 수 없다. 이 촛불은 나를 지키기 위한 양심의 촛불이다.”
그 촛불이 모여서 최초로 베트남군 철수를 이끌었지요. 미국을 구한 시민사회의 힘입니다. 우리는 너무 똑똑하고 지식이 있어 미리 해석하고 말지만, 세상은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부르는 대로 손발로 참여하고 나누는 사람들에 의해 바뀌는 것입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평화도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이뤄진 것입니다. 어느 역사의 시기나 마찬가지지요. ‘내가 뭘’, ‘나 하나가 뭘’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너무 무시하지 마십시요. 자기 안에 무시무시한 힘이 숨어 있습니다. 도토리알 안에 참나무가 숨어 있듯. 그것이 바로 백성이 주인이라고 하는 민주주의 아닙니까. 작지만 냉소하지 말고 너무 똑똑해서 체념하지 말고 나누고, 드러내고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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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인이 전쟁에 지친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마련한 ‘평화마음그리기’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들고 선 마르다 마흐무드 샬흡(5). 그림에 쓴 글씨는 ‘평화’ | |
●레바논 아이들의 눈망울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눈인 것은 분명한데, 어른의 눈빛을 하고 있더군요. 레바논 아이들 중 누가 가장 생각나시나요?
하산. 너무나 예쁜 아이입니다. 총명하고 똑똑한 아이. 한국에 있었다면 영재일 겁니다. 그 아이는 부모를 지키기 위해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장난감 총을 들고 순찰을 돕니다. 하산은 자기가 아버지를 못 지키고 죽은 누나를 지키지 못한 것에 자책감을 가지고 있어요. 죽은 누나를 생각하면 하산의 해맑은 미소가 매의 눈으로 변하는, 강인한 의지가 있지요. 하산의 눈물, 그 속에서 레바논 아이들의 평화의 미래를 보기도 합니다. 이번에 가면 하산을 보겠지요. 평생 어떻게 살아갈지. 친구를 잃고, 누나를 잃고, 피투성이로 살아난 여섯 살짜리 아이가. 미안하다고 울부짖던, 장난감 총을 들고 순찰을 도는 저 아이가, 저 오지 마을의 아이가 어떻게 자라날지 지켜볼 것입니다. 조만간에 가볼 예정이에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까나 마을에 평화도서관을 지었고, 난민촌에 학교를 지원합니다. 배우고자 하는 아이들은 줄을 서고 있는데, 돈이 없어서 어려운 실정입니다. 길거리에서 모금하고 그 비용을 가지고 학교를 뿌리 내리게 할 겁니다.
창가에 보면 까만 머리들이 난리예요. 학교는 작고 수용 인원은 40명뿐인데, 수십 명 아이들이 배우겠다고 나무 위에 올라가서 쳐다보고, 무등 타고 올라가서 보고. 까만 눈동자들을 빛내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공포를 치유하고, 글도 배우고. 아이들 컴퓨터도 설치해주면 좋을 것 같고… 한 달 1백만원에 아이들의 온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아요. 이제는 의미만으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인생에는 삼미(三味 )가 있지요. 돈 맛, 재미 그리고 의미입니다. 그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의미는 사라지고, 돈 맛과 재미만 두 발로 세계화를 향해 뛰어갑니다.
삶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좋은 우유를 얻기 위해서는 좋은 초지를 만들어야 하고, 그 위에 소를 키우고, 소는 좋은 풀을 뜯어 먹고 사는 것이지요. 기본이 없으면 건강할 수 없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예요. 문화의 원동력인 시, 음악, 미술, 연극과 같은 기본적인 것들이 죽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꿋꿋하게 갈 것입니다. 7년 동안 묵언하면서도 그렇게 해왔고 누가 알아주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갈 것입니다. 작가로서는, 딱 3백 명의 독자를 보고 합니다. 30명은 너무 고독하니까요. 3백 명만 있다면 온 심장을 녹여서 쓸 수 있습니다. 충실한 독자 3백 명을 보고 갑니다. 언젠가는 그들이 빛과 소금처럼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요. 옛날처럼 30만 명이, 3백만 명이 책을 본다고 해도, 진정한 독자 3백 명이 빠져 있다면 나는 죽은 작가입니다.
박노해 시인을 만나기 전, 그의 목소리를 상상했다. 이런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목소리를 가졌을까를 상상했다. 평화로운 목소리였다. 먼 나라 레바논 아이들의 참상을, 고통과 절망을 마음에 담은 사람의 진중한 목소리는 이미 그 모든 것을 보듬어 안은 듯했다.
사실, 팍팍한 일상에서 100% 자발적일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나눔’이 아름다운 이유는, 누구도 그것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원상희 ■사진제공 / 나눔문화(www.nanum.com, 02-634-1977)·출판사 느린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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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 ^^
예!
저도 박기평 시인<필명 박노해>좋아 합니다.
공동체 마을 이끌고 있는 ,,, 신부 박기호가 형이지요.
제 속이 후련 합니다.
좋은 시 많이 공유하면
좋은 세상 오겠지요,,,
20년전 저도 그 사람을 좋아 했습니다. 그 사람 자체가 노동자의 희망이 였습니다.
하지만 자금의 시대에선 그 양반을 잃컬어 강남좌파라 부름니다. 부르조아 보다 못한
한 낤 쓰레기로 보입니다 제 눈에는
예
그런 측면으로 비판 받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