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일상생활에 있어서 만가지를 다 헤아리고 갈 수는 없는 거지요. 그러나 자기가 타고난 성품대로 물가에 피는 꽃이면 물가에 피는 꽃대로, 돌이 놓여있을 자리면 둘이 놓여있을 만큼의 자리에서 자기 몫을 다 하고 가면 모시는 것을 다 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서 딴 사람이 모시고 가는 것을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지요. 있음으로 즐거운 거니까. 동고동락同苦同樂관계거든요. 요샌 공생共生이라고도 하는데 본능적으로 감각적으로 편하고 즐거운 것만 동락하려고 든단 말이에요. 그런데 고苦가 없이는 낙樂이 없는 거지요. ... 더불어 함께 하는 것이지요, 즉 공생하는 건데. 공생관계는 각자를 긍정해주는 것이란 말이에요. 각자를 긍정해줘야 모시는 것이 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제 주머니에 넣으려고 하지 않겠지요. 상대방이 있게끔 노력하는 거니까. 그것이 제가 생각하기에는 시侍의 극치가가 아니겠나 생각합니다. [장일순. 나락 한알 속의 우주 중]
한님.
오늘 바람따라 '전체성' wholeness 이란 말씀을 주셨습니다.
전체에서 부분이 나오고, 부분을 존재하게 하는 전체.
알.수.없.음.
이 이야기를 들으니, 장일순 선생님의 우주적이란 말씀이 떠올랐지요.
부처님, 하나님도 전체성의 또 다른 이름으로 이천여년전 부터 사람들이 불러왔던 것을 보면
인간내면 깊은 곳의 통찰이 실로 대단한 것이구나 생각 해봅니다.
그것을 양자역학이라는 과학적 시선으로 증명하고 있다고 하니요.
새식구 교육, 수련 숙제 등으로 여러 책들을 뒤적여 보다가,
불교, 그리스도교, 도교, 천도교 등 온갖 집안 말씀들의 낙처가 하나의 달을 가리키고 있는 듯 보여 괜히 신이 났어요.
하나인 전체를 개별의 입장과 처지, 위치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이름붙여도 비불변성의 진리는 오롯하구나.
사랑이신 당신께서 잘 가르쳐 주십시오.
당신께로 난 길을 잘 따라 갈 수 있는 눈과 귀를 주시길요.
당신이 계셔 내가 있습니다.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