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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삶에서 필요한 예술
삶의 마지막 순간에 사람들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
할 거예요.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 그런데 니체
는 삶이 유한하고 무상함에도 불구하고, 짧은 삶에
의미가 있는 영혼을 추구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비
극적 인식입니다. 니체의 비극은 '불구하고'에 있어
요. 다 알고 있죠. 우리의 삶은 짧아요. 그럼에도 불
구하고 우리에게 삶의 영혼을 추구하라고 합니다.
그것이 삶을 가볍게 사는 방식이라고 이야기합니
다. 니체에게는 이러한 삶의 방식을 구현한 고대 그
리스의 신이 있었습니다. 바로 디오니소스입니다.
로마 시대에는 바쿠스라고 했는데요. 디오니소스는
주신(酒神)입니다. 포도주의 신이며 도취와 망각의
신이에요.
니체는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두 신이 있다고 이
야기합니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입니다. 《비극
의 탄생》이라는 최초의 저작을 보면 이 두 신에 관
해 서술되어 있습니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
스적인 것은 예술의 충동을 대변하는 두 가지 원칙
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두 가지
종류의 삶의 방식입니다.
아폴론은 빛의 신이에요. 빛이 있으면 사물을 똑바
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사물을 규정하고 정의 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폴론 없이 살아갈 수 없어
요. 끊임없이 허구를 만들어내고 환상을 만들어냅
니다. 허구와 환상은 좋은 말로 표현하면 비전이죠.
어떤 면에서 비전은 우리가 볼 수 있는 환영과 같습
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길을 걸어갈 수 없어
요. 뭔가 보여야 해요. 목표가 있어야 해요. 그 목표
를 내가 만듭니다. 내가 만든 삶의 목표는 나의 삶
이 유지되는 짧은 시간에만 작용하기 때문에, 한낮
허구와 환상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에게
는 의미 있는 환상이라는 거예요. 이것이 아폴론적
인 거예요.
그런데 기존의 비전에 묶여 있으면 새로운 것을 받
아들이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때로는 도취와 망각
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술을 마셔야 합니다. 아폴론
적인 것이 너무 강할 때는 사람들의 유대감이 잘 안
느껴집니다. 아폴론적인 것은 어떤 것을 다른 것과
구별하는 개별화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자
신이 원하는 것만 주장하면 충돌이 일어나고 소통
이 필요하다고 그러죠. 소통이 필요할 때 우리는 술을 마십니다. 디오니소스를 부릅니다. 서로 독립된 객체가 아니라 너와 내가 모두 하나의 생명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것이 축제입니다. 디오니소스 축제입니다. 디오니소스를 통해서 우리는 이 삶이 수많은 고통과 불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만하다고 느낄 수 있어요.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왜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필요한지 이렇게 말합니다.
"개개인이 자신을 구원할 환영(비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고통의 세계 전체가 필요하다."1 허구예
요. 픽션입니다. 허구지만 그 허구를 만들어내기 위
해서는 고통으로 가득 찬 세계 전체가 필요합니다.
이런 정신으로 비전을 만들어내야 된다는 이야기
죠. 이것이 바로 니체가 이 세계를 받아들이는 태도
입니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삶을 움직
이고 예술을 이끄는 두 가지 원칙이라고 볼 수 있습
니다. 우리는 예술 없이 삶을 가볍게 생각할 수가
없어요. 계속 골머리를 앓으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
지? 이게 정말 삶일까? 나의 진정한 모습은 어디에
있지' 이렇게 고민하면 우리는 삶을 살아내지 못해
요. 삶을 이끌어갈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만
큼 예술가적인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니체
는 "삶은 예술을 통해 구원된다."라고 이야기했습
니다. 이 예술은 삶의 예술입니다. 실존의 예술이에
요.
이 때문에 니체의 유명한 말, "세계는 오직 미적으로만 정당화된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과학적 인식만으로는 세계가 설명이 안 돼요. 왜 이렇게 고통이 많습니까? 왜 이렇게 불의가 많나요? 왜 이렇게 갈등이 발생하고, 어떻게 저런 전쟁을 벌일 수가 있죠?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삶을 살아야만 하고, 살아갈 수밖
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을 가볍게
만들 수 있는 예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니체는 우
리가 진리로 몰락하지 않기 위해서 예술을 필요로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세상에 대한 인식에도 불구
하고 우리는 몰락하지 않습니다. 예술이 있기 때문
에. 여러분이 삶의 예술가가 된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가볍게 뛰어
넘을 수 있는 댄서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니체
의 가르침입니다.
※참고 문헌 : 이진우. 《니체의 인생 강의> 휴머니스트. 2015. 157~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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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원리와 디오니소스 원리"(니체)
디오니소스 원리
독일 철학자 니체(F. Nietzsche)는 참된 예술이 두 가지 원리를 잘 결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질서, 조화를 상징하는 아폴론 원리이고 또 하나는 혼돈, 고뇌를 상징하는 디오니소스 원리입니다. 예술이 진짜 아름다움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려면 아폴론 원리의 조화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밑에 디오니소스 원리의 고뇌와 혼돈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삶도 계산하고 예측하는 이성 또는 로고스(logos)가 강하면 안전하지만 무미건조합니
다.
반면 앞뒤 재지 않는 열정 또는 파토스(pathos)가 강하면 불안전하지만 재미있고 생생하게 꿈틀거릴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디오니소스는 신
과 사람의 자식은 신이 될 수 없고 영웅만 될 수
있다는 규칙을 깨고 유일하게 신의 반열에 오릅
니다.
그러나 디오니소스는 하늘 나라에 살지 못하고
땅 위에 살면서 신이라는 걸 의심받고 제우스 무리에게 패한 티탄들의 박해도 받습니다. 그때 디
오니소스는 포도주나 환각제로 의심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환각 상태에 빠트립니다. 디오니소스는 사람과 닮은 신, 하늘 나라에서 놀고 먹는 신들과 달리 땅에서 고생하고 고뇌하며 박해받는 신입니다.
디오니소스 파티
고대 그리스에는 디오니소스 신을 숭배하는 신앙이 널리 퍼집니다. 해마다 3박 4일로 열리는 디오니소스 파티의 절정은 셋째 날 어스름해진 저녁에 여신도들만 언덕에 모여 새끼 늑대나 염
소를 맨손으로 잡아죽이고 생살을 뜯어먹는 의례입니다. 환각 상태로 디오니소스 신의 살과 피
를 먹고 시들해진 삶을 되살리는 것이 이 의례의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