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무엇이 되는 삶을 지속하는 한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는다"
<가치 있게 나이 드는 법> 펴낸 전혜성 박사 <자료 : 월간중앙(이임광 칼럼니스트)(2010년 12월 자료)>
전혜성 박사는 올해 여든하나다(2010년 자료). 그런데 그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생의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 같다. 서 있다는 표현도 맞지 않다. 잠시도 쉬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쓴 책 제목처럼 ‘가치 있게 나이 드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전혜성 박사는 한국의 위대한 어머니이자, 세계적인 사회학자다. 열아홉에 이화여대 영문과 2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디킨슨대에서 경제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보스턴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보스턴대·예일대 등에서 강의하고, 예일대 비교문화연구소(HRAF) 연구부장으로 재직했다.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와 비슷한 중국·일본·베트남 등의 문화를 비교연구해 그 특징을 찾아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인 1960년대에 비(非)로마자를 코드화하는 비교문화정보체계를 만들었다. 이 시스템을 토대로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과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하며 한국 문화와 한국학 선양에 힘썼다.
전 박사는 현재 동암문화연구소(East-Rock Institute) 이사장을 맡고 있다. 1952년 남편과 함께 설립한 한국연구소(Korea Institute)가 모태인 동암문화연구소를 통해 미국 내 한국학 연구를 활성화하는 한편 동아시아 법과 문화를 비교연구해 인류학과 사회학 발전에 족적을 남겼다. 특히 소수민족, 유색인종으로 차별받으며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민 1.5~2세대 젊은이에게 우리 문화의 뿌리를 알려왔다.
전 박사의 여섯 자녀를 포함해 여덟 명 가족 모두 11개 최고 학위를 취득하고, 자녀 모두 하버드대와 예일대를 졸업했다. 1988년 미 교육부는 전 박사 가족을 ‘동양계 미국인 가정교육 대상’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지난해 첫째 아들 고경주와 셋째 아들 고홍주가 오바마 행정부 차관보급에 임명됐다.
전 박사는 베스트셀러 저자기도 하다. <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 사람으로 키운다> <여자야망사전> 등이 있다. 또 한국 국무총리상, KBS 해외동포상, 미 코네티컷 주지사상, 비추미 여성상 등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2004년 ‘한인 이민 100주년 준비위원회’가 주관한 지난 100년간 미국에 가장 공헌한 한인 100인에 남편 고(故) 고광림 박사, 고경주, 고홍주와 함께 선정되기도 했다.
끝은 없다, 언제나 시작이다
전 박사는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공부와 연구, 봉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전 박사는 지난해 미국 코네티컷 주에 위치한 비영리 노인복지기관인 휘트니센터에 들어가 살고 있다. 175명의 노인이 독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아파트 형태로 만들어진 이곳은 전혀 노동을 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편안한 잠자리와 안락한 시설, 맛있는 음식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고 모든 일을 척척 해주는 직원이 223명이나 있다.
하지만 이곳 노인들은 그 어떤 비즈니스맨보다 바쁘게 살고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한다. 전 박사는 막상 휘트니센터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왠지 처량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그곳에서 할 일이 무엇인가, 그곳에 가지 않는다면 못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48년 전 미국에 유학 와 기숙사에 들어갔던 각오를 다시 다졌다. 다행히 그곳은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할 일이 많은 기회와 행복과 감사의 공간이었다.
휘트니센터는 자율공동체로 각종 커뮤니티를 만들어 서로 의견을 나누어 결정한다. 전 박사는 그곳 이웃들의 생활을 관찰하며 깨달은 바가 크다.
“그곳 노인들에게서 보람이 있으면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곳에서는 아흔이 넘은 노인도 정신 건강은 30대밖에 안 돼 보일 정도랍니다.”
전 박사는 휘트니센터에서 보고 들은 것을 쓰기로 했다. 그 책이 바로 <가치 있게 나이 드는 법>이다. 은퇴 후의 막연하고 불안한 여생을 보내는 해법을 담았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자녀교육서부문뿐 아니라 에세이부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는 저자가 됐다. 가치 있게 나이 드는 법을 관통하는 한마디는 이것이다. “끝은 없다. 언제나 시작이다.”
휘트니센터에서는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도 자리에 앉아서 끊임없이 일을 한다. 병원에 있는 아이들과 노인들을 위한 담요·모자 등을 짜 기증하는데 몸이 불편한 이들도 손가락만 움직일 수 있다면 참여할 수 있어 호응을 얻고 있다. 전 박사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센터 주변을 돌며 깡통을 줍는 아흔이 넘은 파멜라 렌디로라는 노파를 소개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노인에게 전 박사가 “왜 이런 힘든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노파의 대답은 이랬다. “지금 내 위치에서 할 수있는 의미있는 일이니까요.” 깡통을 치우면 깨끗해서 좋고 주운 깡통을판 돈을 센터에 기증하면 센터 재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 노파가 전직 정치학 교수라는 사실이다. 전 박사는 바쁘게 살면 늙을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체력이 떨어져 무엇을 하든 젊었을 때보다 몇 갑절 힘이 들지만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휘트니센터에는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그들은 이웃과 사회에 작으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세상 다 산 사람 같은 표정으로 멍하니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전 박사는 휘트니센터의 또 다른 이웃을 소개했다. ‘하나님의 망치’라 불리는 로버트 레인이란 노인이다. 그는 전력을 적게 소모한다는 친환경 전구를 구해 와 200가구를 돌며 전구를 직접 교체해주었다. 그 역시 명문대 교수를 지낸 사람이다. 전 박사가 말했다.
“깡통을 줍는다고, 절전 전구를 달아준다고 환경운동가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에베레스트도 한 줌 흙에서 시작된 것 아닐까요?”
삶은 세상에 진 빚을 갚는 것
전 박사는 나이 든 사람도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면 혈기왕성한 젊은이처럼 살 수 있다고 역설한다.
휘트니센터에서 봉사를 즐기는 노인들이 감기에 걸려 입원을 하더라도 놀라울 정도로 회복이 빠르다는 사실이 그것을 입증한다고 했다. 휘트니센터 노인은 모두 부자지만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아 부자가 된 사람은 없다.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자립심이 강하고 자기 관리도 철저합니다. 그런 사람이 성공도 하고 부자도 되는 것 같습니다.”
전 박사는 휘트니센터의 각종 프로그램을 한국에도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가끔 한국에 와 국내 최고 시설을 자랑하는 실버타운에 들어가 사는 지인을 방문할 때마다 놀라곤 한다.
“한국의 실버타운은 그저 돈 많은 회사가 돈 많은 노인을 편안하게만 해주는 상업적 시설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휘트니센터의 노인공동체 같은 것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자식을 놔두고 노인복지시설에 가는 것을 꺼리고 두려워하는 경향이 강하다. 심지어 자식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까지 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의 노인문제는 심각하다. 원인이 무엇일까? 전 박사는 나이 듦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자식과 함께 살 거라고 믿고 모든 걸 자식에게 주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얘기다.
전 박사는 물었다. “한국에서는 장관까지 지낸 공직자와 정치인이 은퇴하면 왜 대부분 무직이 될까요?” 혹시 남을 위해 정치를 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정치를 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전 박사의 첫째 아들인 고경주 미 보건부 차관보는 사직서를 지니고 다닌다고 한다. 자신이 아니면 못하는 것을 찾아 그 일을 하지 못하면 자신이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사명감으로 공직을 맡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고 차관보는 병원과 의사, 제약회사, 담배회사 등으로부터 열세 번이나 고소를 당했다. 의료시스템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온갖 압력을 받았지만 그는 정면으로 돌파해 소송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자신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을 위해 싸웠기 때문이다.
사직서를 품고 다니는 사람은 무서울 게 없다. 오바마 정부에 아는 사람이 없는 그가 요직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정의를 위해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성향 때문이었다.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나중에 자신마저 잘살지 못하지만,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은 자신까지 잘살 수 있다”는 게 전 박사의 지론이다.
전 박사가 말하는 가치의 사전적 의미는 ‘쓸모’와 ‘보람’이다. 그는 보람에 좀 더 높은 점수를 준다. “나이를 먹으면 세상에 쓸모가 적어질지 몰라도 보람이 커진다면 가치 있게 살 수 있습니다. 가치 있게 나이 든다는 것은 보람의 크기를 키우는 것입니다.”
전 박사는 일생을 통해 얻은 지혜를 후세에 전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이라고 말한다. 그가 들려준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
그가 지금 살고 있는 휘트니센터에는 세계 곳곳에서 온 노인이 있다. 한국사람은 전 박사뿐이다. 그는 그곳에서 한국을 알리는 외교관이라는 소명을 발견했다. 센터 거주민을 위한 스터디 프로그램을 찾아 한국 문화 강연을 했다. 마침 동암문화연구소와 협력관계인 성신여대의 도움으로 한국 전통 의상을 알리는 전시회를 열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티셔츠와 청바지를 한국 전통 복식과 접목해 선보인 세미나를 성공리에 마치면서 전 박사는 비교문화학자로 일을 시작한 때를 떠올렸다. 당시에는 미국에도 아이를 여섯이나둔 그가 일을 하고 있다는것에대해 모성애가 부족하다며 빈정대는 사람이 있었다. 비(非)로마자 문화정보를 전산화하는 일도 동양문화에 관심없는 서양인에게 그 필요성을 인식시키기란 쉬운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 박사는 미국에, 나아가 세계무대에 한국 문화를 제대로 알려 동·서양 문화 교류의 물꼬를 트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이룬 것을 데이터화해 남기고자 한다. 그 소명을 동암문화연구소와 함께할 생각이다. 전 박사는 재능이란 모두를 위해 쓰라고 신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라고 믿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살아갑니다.”
전 박사의 어머니는 딸에게 “사람은 절대 재주가 덕을 앞서면 안 된다”고 했고, 아버지는 “세상에 얼마나 이익을 주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위대함이 결정된다”고 가르쳤다.
몇 해 전 쓴 책에서도 밝혔듯이 전 박사는 한 번도 아이들에게 엘리트가 되라고 말한 적이 없다. 재주로 덕을 베푸는 방법을 터득하라고 가르쳤다. 큰아들 고경주가 의학을 선택한 것도 그랬다.
“경주는 남을 돕고 싶어 의술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더 많은 사람에게 의료 혜택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보건부 차관보가 됐습니다.” 국무부 법률 고문으로 있는 셋째 아들 고홍주도 인준 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직에 봉사하는 것이 나의 일생에서 진 빚을 갚는 길입니다.”
이 말 한마디로 자신의 재주로 덕을 실천하는 삶의 의미를 미국 사회 전체에 알렸다. 전 박사가 말했다. “타고난 재주라 해도 그것이 빛을 발한 것은 사회시스템이 도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젊음보다 아름다운 나이 듦
전 박사는 1996년 방송 인터뷰에서 10년 후 계획을 질문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하고 있는 연구를 계속할 계획입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예순일곱이었다. 10년 후면 대부분 은퇴를 생각할 나이였다. 그러나 그는 그로부터 10년 동안 계획대로 공부와 연구를 계속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전 박사가 남편을 잃은 깊은 슬픔과 우울증을 극복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은 세 가지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정직하게 사는 것. 둘째,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을 수시로 평가하고 반성하는 것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한다. 조금이라도 젊어지기 위해, 젊게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런 이들에게 전 박사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젊어질 수만 있다면 젊어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왜, 누구를 위해 젊어지려고 하는가?”
가치 없는 젊음보다 가치 있게 나이 듦이 훨씬 아름답다.
<자료 : 월간중앙(이임광 칼럼니스트) 2010.12월 ?일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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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마음의 정원 ♬ 탱크정신Blog 원문보기 글쓴이: 슈퍼탱크
첫댓글 좋은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