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불빛 아래/마주앉은 당신은/언젠가 어디선가/본 듯한 얼굴인데
고향을 물어보고/이름을 물어봐도/잃어버린 이야긴가/대답하지 않네요
바라보는 눈길이/젖어있구나/너도나도 모르게/흘러간 세월아
어디서 무엇을 하며/어떻게 살았는지/물어도 대답 없이/고개 숙인 옥경이
무명가수 태진아를 우리나라 톱 가수로 만들어준 노래가 바로 ‘옥경이’다.
경쾌한 리듬으로 돼 있지만 사실 내용은 슬프다. 슬픈 기미는 첫 부분부터 보인다. ‘희미한 불빛아래’ 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밝지 않은 희미한 불빛 아래라는 공간 설정은 ‘밤의 유흥업소 불빛’을 떠올리게 한다.
이 노래의 화자는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회사를 다니며 사는 3,40대 사내라 보면 무난하다. 사내는 어느 날, 봉급쟁이의 고달픔을 잠시라도 잊고자 퇴근 후 맥주나 양주를 파는 술집에 갔다. 희미한 조명불빛 아래 손님을 대하겠다며 여 종업원이 마주 앉았는데 분명 언젠가 어디선가 본 듯싶은 얼굴이다. 그녀에게 고향을 물어보고 이름을 물어봤지만 잃어버린 이야기인 듯 대답하지 않는다.
여기서 그녀의 ‘잃어버린 이야기’를 짐작해본다.
“그녀는, 어릴 적 시골고향에서 함께 자란 초등학교 동창이다. 자식을 일찍부터 도시로 유학을 보낼 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내의 집안형편과 달리, 그녀의 집안형편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몇 년 안 돼, 서울로 올라와 처음에는 영등포의 옷 만드는 공장에 취직했다. 얼마 안 되는 봉급이지만 시골에 있는 동생들 학비도 대고 그랬는데…… 열악한 환경의 근무라 몸이 병들면서 결국 사표를 내고 공장을 떠나야 했다.”
그렇게 꼬인 그녀의 도시 생활은 이제 유흥업소에서 손님을 맞아, 마주앉아 술을 따르는 종업원 신세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에서 같은 초등학교를 다닌 남자 동창이 손님으로 온 것이다. 남자 동창― 사내가 분명 어디서 본 듯하다고 고향을 물어보고 이름을 물어보지만 아무 답을 할 수 없이 억장이 무너지는 그녀. 결국은 ‘바라보는 눈길’이 젖어 있을 뿐이다.
여기서 ‘바라보는 눈길이 젖어 있구나’란 표현이 정말 문학적이다. 바라본다는 시각적인 표현과 젖어 있다는 촉각적인 표현이 어우러진 공감각적 표현의 절구(絶句)가 아닌가. 일시적으로 유행하다가 사라질 운명에 처한 노래라고 ‘유행가’라 일컫지만, 나는 ‘옥경이’란 유행가가 오래도록 살아남는다면 바로 ‘바라보는 눈길이 젖어 있구나’란 기막힌 표현 덕분일 거라 믿는다.
사내는 마침내 ‘너도 나도 모르게 흘러간 세월아’라고 속으로 절규한다. 그녀보다는 나은 삶이지만 그러나 처음 서울로 올라와 유학생활을 시작할 때의 희망찬 포부를 떠올린다면 초라한 봉급쟁이에 불과한 자신의 처지다. 그래서 가수 태진아는 이 부분에서 절규하듯 목소리를 높인다. 소설의 구성단계로 친다면 ‘절정’에 속한다.
옥경이 노래에는 대한민국 민초들의 애환이 담겨 있다. 도시화 산업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전통적인 농촌이 붕괴하는 데 따른, 가슴 아픈 모습들이 역력하다. 이런 슬픈 이야기를 슬픈 리듬으로 이끌지 않고 오히려 경쾌한 리듬으로 이끎으로써 옥경이 노래는 대중들에게 부담 없이 전달돼 절묘한 성공을 이루었다.
‘경쾌한 리듬의 슬픈 사연’. 이것이 옥경이 노래에 대한 내 정의(定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