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꽃 피는 4월 하순 심리적으로 감성·충동 더해 ‘도탄에 빠진 백성 구원’에 부푼 꿈으로 바로 의기투합 “우리 셋은 의형제를 맺기로 하늘에 약속했다. 마음과 힘을 합쳐 어려운 나라를 구하고 백성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 태어난 때는 다르지만 죽을 때는 같이 죽기로 맹세한다.” 삼국지를 보면서 가슴이 찡했던 부분이다. 세 영웅이 형제의 의로 뭉쳐 세상으로 나오는 계기가 된 도원결의 장면이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이 이미 죽었으니, 누런 하늘이 오리라. 때는 갑자년이요,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푸른 하늘인 후한은 망하고 누런 하늘인 황건적이 승리할 것이라는 노래를 앞세워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던 황건적이었다. 그러나 관군이 전열을 가다듬자 형세가 바뀌었다. 조정에서도 이 기회에 황건적을 완벽하게 토벌하기 위해 의용군을 대대적으로 모집했다. 나라를 사랑하고 의기가 있는 젊은이들이 의용군에 가담한다는 소식을 들은 유비는 속이 탔다. 같이 힘을 합쳐 황건적을 무찌를 병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냐, 우선 장비와 관우와 이야기를 해 봐야 하겠다. 이 둘만 해도 일당백의 영웅 아니던가!” 유비는 예전에 칼과 차 단지를 황건적에게 빼앗겼을 때 황건적을 단숨에 물리치고 차와 칼을 돌려주었던 장비의 용맹스러운 모습을 떠올렸다. 아울러 장비와 당당하게 결전을 벌였던 또 다른 장수 관우가 있었다. 유비는 주막으로 장비와 관우를 불러 흉금을 터놓고 상의했다. “세상이 너무 어지럽습니다. 황건적이 도적이 돼 횡행하니 불쌍한 백성들만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조정에서는 의용군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아무런 힘이 없으나 같이 힘을 합쳐 일어선다면 하늘이 우리를 도와줄 것입니다.” 유비의 진솔한 말에 장비와 관우는 감동했다. 이들은 곧 형제의 의를 맺어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로 의기를 투합했다. 나이는 관우가 가장 많았으나 관우가 유비에게 맏형 자리를 양보했다.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가장 큰 형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유비가 첫째, 관우가 둘째, 장비가 셋째가 됐다. 이들은 유비의 집 뒤뜰에 있는 복숭아밭에서 결의식을 하게 된다. 그런데 별로 가깝지도 않았던 이들이 갑자기 왜 의기를 투합했을까? 그리고 이들은 왜 복숭아밭에서 도원결의를 했을까? 어릴 때 삼국지를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이다. 먼저 별로 가깝지도 않았던 이들이 의기를 투합한 데는 날씨가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복숭아꽃이 피는 4월 하순 무렵에는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변한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들떠 떠들고 싶어지고, 움직이고 싶어 한다. 동물의 모습도 겨울과는 판이하다. 어항 속의 금붕어는 색깔이 화려해지면서 쉴 새 없이 헤엄을 친다. 동물원에 가보면 꿩은 벼슬을 붉게 물들이고, 공작은 수놈이 암놈 앞에서 멋지게 날개를 펴 프러포즈를 한다. 코끼리도 힘차게 콧바람 소리를 내며 등등해진다. 사자나 호랑이도 눈부터 달라진다. 동물학자들에 따르면 동물의 이러한 변화는 봄이 되면서 햇빛이 강해지면 호르몬의 분비가 왕성해지고 신경이 자극을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일조시간이 길어져 눈으로 들어간 햇빛이 뇌하수체를 자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복숭아꽃이 피는 계절은 심리적으로 더욱 감성적이고 충동적이 된다. 깊이 생각하고 따지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옳다고 믿는 감정 하나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왜 이들은 결의 장소를 복숭아밭으로 정했을까? 천지신명께 맹세하는 자리라면 사원 등 더 좋은 장소가 많았을 텐데 말이다. 아마도 유비는 복숭아에 전해지는 중국인의 심성을 이용했던 것 같다. 중국에서 복숭아는 신선과 옥황상제가 먹는 신성한 과일이다. 중국미술에서 복숭아는 이상의 세계에서 자라는 과일로 묘사된다. 중국인들에게 복숭아는 귀신을 쫓는 강력한 힘이다. 그렇기에 도연명도 인간이 가장 살고 싶은 이상향이 무릉도원이라고 말한 것이다. 유비는 복숭아꽃이 활짝 핀 곳에서 결의를 함으로써 자기들의 미래가 보장된 것이라는 심리적 효과를 노렸던 것이 아닐까? 적을 물리치는 강력한 힘과 장차 황제의 소망과 함께 백성들을 도탄에서 건져내 무릉도원의 삶을 살게 해 주자는 의미 말이다. [TIP] 유비·관우·장비 삼국지에 올라타다 “하늘의 상제시여. 이 나라가 지금 황건적의 발호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가뭄과 한파로 먹을 것도 없는데 황건적의 난으로 백성들은 굶어 죽어가는 형편입니다. 저희가 오늘 형제의 의를 맺어 힘을 합쳐 황건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하며,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하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우리에게 용맹과 지혜를 주시고 삼 형제 같은 날 같이 죽도록 해 주십시오.” 이들이 복숭아나무 밭에서 의형제를 맺은 사건을 후대 사람들은 도원결의(桃園結義)라고 부른다. 이들이 결의를 맺은 뒤 의용군을 모으니 300명이 몰려왔다. 인근을 지나는 장사치에게서 말 50필, 금은 500냥, 철 1000근을 얻은 이들은 무기를 만들고 장병들의 갑주도 갖췄다. 비로소 유비, 관우, 장비가 삼국지의 장정에 올라탄 것이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