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삿갓 시(詩) / 백발 한 (白髮恨)
진 종일 산속을 걷다가 어느 오막살이에서 하룻밤을 지새운 김 삿갓이
다음날 아침 상투를 다시 틀려고 거울을 들려다 보다가 적이 놀랐다.
‘아니 내 머리가 어느새 이렇게 반 백이 되었던가?’
머리카락을 헤집고 다시 살펴보니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았다.
그 옛날 백낙천(白樂天)은 흰머리 한 올을 발견하고도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지 않던가.
白髮生一莖 (백발생일경) : 어느새 하얀 머리카락 한 올이
朝來明鏡裏 (조래명경리) : 아침 거울 속에 나타나 보이네.
勿言一莖少 (물언일경소) : 한 가닥 뿐이라고 안심하지 말라
滿頭從此始 (만두종차시) : 이제부터가 백발이 될 시초니라.
백 낙천은 흰머리 한 올을 보고도 늙어 감을 한탄했는데 나는 이미 반 백이 넘었지 않는가.
김 삿갓은 백발이 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무심히 넘길 수가 없어서
지나온 반 생을 회고하며 다음과 같은 백발 한(白髮恨)을 읊었다.
嗟平天地間男兒 (차평천지간남아) : 넓고 넓은 천지 간에 대장부 사나이야
知我平生者有誰 (지아평생자유수) : 내 평생 지낸 일을 뉘라 서 알 것이냐.
萍水三千里浪跡 (평수삼천리랑적) : 삼천리 방방곡곡 부평초로 떠돌아서
琴書四十年虛詞 (금서사십년허사) : 사십 년 긴 긴 세월 글과 노래 허사였네.
靑雲難力致非願(청운난역치비원) : 청운의 꿈 어려워 바라지도 않았으니
白髮惟公道不悲(백발유공도불비) : 나이에서 오는 백발 슬퍼하지 않노라
驚罷還鄕神起坐(경파환향신기좌) : 고향 꿈에 놀라 깨어 일어나 앉으니
三更越鳥聲南枝(삼경월조성남지) : 한밤중에 새 울음소리 남쪽 가지에서 들리네.
<출처 : 暮山紫 이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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