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장편소설 잃어버린 그 이후3(2021.12.6.)
세상 속으로 떠나는 여행
청림출판(1995)
김윤희_서울 마포에서 태어나 줄곧 그곳에서 성장했으며, 대학에서는 무용을 전공했다. 84년 여름 사랑하던 사람과의 아픈 사별을 겪은 후, 그 체험을 담은 장편소설 잃어버린 너 1,2권을 출간해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으며, 이번에 새로이 완결편인 3권 잃어버린 너, 그 이후-세상 속으로 떠나는 여행을 출간했다. 이외에도 장편소설 나 홀로 되어 남으리를 출간한 바 있으며, 현재 외딴 곳에 홀로 칩거하면서 새로운 글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그대들은 죽음의 비밀을 알고 싶어하는구나
그렇지만 그대들이 죽음을 생명의 중심 속에서 찾지 않는 한 어떻게 그것을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밤에만 보이는 눈을 가진 올빼미는 낮에는 눈이 멀어 빛의 신비를 밝힐 수 없는 것을, 만일 그대들이 죽음의 영혼을 보길 원한다면, 그대들의 마음을 생명의 본체를 향해 열라. 강고 바다가 하나인 것처럼, 삶과 죽음도 하나이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바람 속에 알몸으로 서서 햇빛에 녹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숨이 멎는다는 것, 그것은 불안한 조수로부터 숨을 해방하는 데 불과한 것. 숨이 높이 차오르고 널리 퍼져서 어떠한 번민도 없는 신을 찾고자 하는 것, 그 외에 달리 무엇이라 말할 것인가?_칼릴 지브란
들어가기에 앞서
김윤희 씨의 장편체험소설 잃어버린 너가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이 86년 초겨울. 그후 이 책은 1백50만부가 넘는 초베스트셀러가 되어 수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TV(MBC베스트셀러극장)와 영화(강석우, 김혜수 주연의 잃어버린 너)화면을 통해 세상에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 베트스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로 우리 곁에 자리잡은 잃어버린 너는 일본어 판으로도 금년(95년)7월에 출간되었으며 국내의 모 TV방송국에서는 미니시리즈로 제작하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해 오고 있다.
잃어버린 너를 아직 못 읽은 독자를 위하여, 그리고 이미 읽은 독자의 기억을 돕기 위히여 그 대강의 줄거리를 여기 밝혀둔다. 작가가 10여 년의 침묵 이후 다시금 속내를 열어보이고 있는 이 책 잃어버린 너, 그 이후 –세상 속으로 떠나는 여행은 같은 연장선 위에서 읽혀져야 하고, 이해되어져애 하는 까닭이다.
그때 우리집은 서울 마포에 있었다. 맏이였던 나는 그곳에서 할아버지와 기계공장을 경영하시던 부모님, 그리고 세 여동생과 막내 남동생, 이렇게 여덟 식구 대가족의 일원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생활도 그 당시로서는 꽤 넉넉한 편이었다.
운명적인 만남은 내가 모 여대 무용학과 1학년에 갓 입학해 다니고 있던 4월의 어느 날, 화창한 봄햇살 아래 이루어졌다.
야, 너 드디어 대학생이 됐구나!
그 사람의 첫 음성이었다.
고3시절 퇴계로의 한 무용연구소에서 연습을 하고 있던 내 앞에 그는 대학생의 신분으로 나타탔던 적이 있었다. 그는 연구소의 유일한 남자 연습생이었던 괴짜 친구를 만나러 왔던 길이었는데, 그때 그와 나는 지나치며 인사를 한 차례 나누었던 것이다.
나 기억 안나? 나 엄충식이라구. 너는 김윤희고...모르겠어?
네 알아요. 안녕하세요?
그 사람 엄충식, 나 김윤희. 우리 두 사람의 길고도 짧은 역사의 시작이었다.
그의 집은 명륜동. 사업과 함께 정치계와도 연관 맺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보다 두 살 위인 여동생 정미가 그의 집 식구 면면이었다. 그는 3학년이었으나 군대를 다녀온 터라 나에 비해 훨씬 연상이었다.
그를 만난다는 일은 그와 형제나 다름없는 친구인 이종환 씨도 더불어 만나게 됨을 의미했다. 이후 우리 세 사람은 늘상 한몸처럼 어울려 지냈고, 유쾌한 농담이 떠날 새 없던 종환 씨는 우리 세 사람의 관계를 혈맹의 관계로 명명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 간격으로 혈맹의 관계끼리의 만남은 정례화되었고, 이에 따라 그에 대한 나의 호칭도 자연스럽게 아저씨에서 오빠로 옮아갔다. 이렇듯 즐거운 나날은 어느덧 한 해랄 넘겼고, 다시 시간이 지나 나는 대학에서 두 번째의 겨울방학을 맞이했다.
졸업을 눈 앞에 둔 그에게서 미국 유학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때 비로소 나에게 있었던 그는 오빠 이상이었음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어는 틈엔가 나는 사랑을 앓는 여자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정 연휴가 지난 1월 6일, 새해 첫 일요일로 기억한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고, 그로부터 며칠 후 우리의 만남은 양가 어른들의 내락을 받기에 이르렀다.
3학년 신학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무용실기 창작으로, 그는 유학수속 준비로, 종환 씨는 회사원으로서의 새로운 생활로 세 사람 모두 정신없이 바쁜 삶이 이어졌다. 그리고 찾아온 8월의 폭염, 마침내 모든 수속을 마친 그는 삼고초려보다 더한 정성과 고집으로 우리집을 드나든 끝에 할아버지의 반대를 꺾고 우리의 약혼식을 성사시켰다. 그 날짜가 9월 15일 오후 3시, 내 인생의 방향이 오직 한 곳으로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1968년9월27일, 그는 몇 년이 될지 모르는 별리를 뒤로 한 채 미국으로 떠났다. 서로의 애틋하면서도 행복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안부편지가 몇 번이나 오갔던가. 그러나 같은 해 11월30일 태평양을 날아온 청천벽력의 소식은 우리의 무지개빛 미래를 삽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고도 남았다.
교통사고, 중태.....그리고 열흘 후 어머니인지 아버지인지의 입을 통해 나온 죽었단다!라는 한 마디 말......
쓰러질 듯한 몸을 이끌고 찾아간 명륜동에서 장래 시어머니가 되셨을 분은 결별은 선언한다. 그 아이 몸도 하도 엉망이라 미국에 간 남편이 그곳에서 장례까지 치르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와 우리는 인연이 안 닿은 것 같다. 결혼식도 안 치른 마당에 충식이까지 죽었으니 너는 내집 식구가 아니다. 이것은 내 남편의 부탁이기도 하다...
나는 자리에 눕고 말았다. 입은 아예 다물어 버렸고, 음식은 들어가는 대로 토해낸 데다가, 심한 불면증도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어쩌다 잠이 들라치면 악몽에 시달리다 소스라쳐 일어나는 등 나는 거의 실신 상태에 빠졌다. 내 방문의 잠금 장치는 할아버지에 의해 파괴되었고, 혹시나 하고 나의 자살을 염려한 가족들로부터 감시를 받아야만 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말문을 연 것은 그가 죽은 이듬해 4학년 2학기부터였다. 그 당시 아는 아침에 눈을 뜨면 늘 하던 습관대로 충식 씨 잘 잤어요? 하고 조그만 소리로 인사를 하고는, 그와 즐겨 듣던 페르퀸트 조곡을 들으며 등교 준비를 했다. 내가 없는 사이 어머니께서 다 태워 버리는 바람에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우리 두 사람의 사진은 없어졌지만, 나의 시간은 그대로 정지한 상태였다.
아무 감동도 없이 새해가 밝았다. 그리고 어느날 종환 씨의 반가운 목소리가 전화선을 탔다. 오랜만에 만난 종환 씨로부터 들은 전혀 뜻밖의 소식은 명륜동 어머니께서 벌써 몇 달 전에 주무시던 중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것, 그리고 아버님께서는 사업관계로 문제가 생겨서 교도소에 수감중이라는 것, 명륜동 집은 이미 남의 손으로 넘어가고 말았다는 것.....
그러나 더욱 놀라운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충식 씨가 서울에 있다는 것! 멀쩡히 살아서 서울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
사고 소식을 듣고 아버님께서 미국으로 가셔서 충식일 보니까 너무 엉망이서 그 녀석 같지가 않더래요. 특히 얼굴은 사람의 형상이 아니랍니다. 매일 계속되는 수술에도 불구하고 얼굴은 회복되지 않고 몸의 모든 기능은 오른손 하나만 남기고 마비가 되고 말았으니 아버님의 심경이 오죽했겠어요. 그래서 윤희씨가 아예 충식일 단념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히셨던 거죠.
종환 씨도 그 비밀을 지키려고 했었으나 나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다 못해서, 또한 쑥대밭이 된 집안에 어머니까지 잃은 그가 하도 안쓰러워서 망설이던 끝에 내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그 길로 종환 씨를 채근해 그가 머물고 있다는 약수동 산꼭대기의 한 초라한 셋방을 찾았다. 방안에 그가 있다건만 댓돌에는 신발이 놓여있지 않았다. 신발에 그에겐 이미 무용지물이 되었음을 뜻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북받치는 설움과 함께 그의 이름을 부르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가구 하나 없이 옷이 담긴 세 개의 트렁크, 방바닥에 초라하게 놓여 있는 몇 권의 원서, 그리고 스텐으로 된 환자용 변기.....일 년만에 다시 살아 돌아온 나의 약혼자는 자리에 누워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쓴 채 나를 외면했다.
윤희야 나는 그때 죽은 거야. 이제 날 봐서 어쩌겠다는 거야. 나가! 너 안 나가면 나 진짜 죽어 버린다. 그 역시 울고 있었다.
마침내 드러난 그의 얼굴은 천형이라도 받은 듯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특히 왼쪽 얼굴은 심한 화상을 입은 것 같이 벌겋게 변색된 데다가 잔뜩 일그러져 있었고, 귀가 있던 자리는 그냥 밋밋할 뿐이었다.
심경소설
세상 속으로 떠나는 여행
에세이
지난 시간들 속으로 어제
창가에서 기다리는 아침 오늘
떠남, 그리고 돌아옴 내일
글을 맺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