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죽 / 이자야
여인의 남편은 늘 시들시들 아팠다. 직장에 나가지만 건성이었다. 언제나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휴일이면 종일 텔레비전 앞에서 좀비처럼 늘어져 있었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그런 남편의 몸에 한두 가지 병이 찾아들었다.
먼저 당뇨가 심해졌다. 위장도 나빠졌다. 이빨도 상하고 기운도 약해졌다. 더불어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도 사라졌다. 그냥 나가는 직장이니 마지못해 나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사라지는 판에 오직 하나 느는 것이 있었다. 식탐이었다. 먼저 육식을 탐했다. 의사는 고기를 멀리하라고 했지만 그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밥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었다.
따라오는 것은 비만이었다. 그는 몸을 지탱하기가 어려워졌다. 언제부터인가 고관절도 나빠졌다. 다리를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립선도 나빠졌다. 남자구실도 못했다. 각방거처가 시작됐다. 함께 살아서 부부였지 이건 한 마디로 원수였다. 그런데도 그놈의 성깔머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걸핏하면 소리를 지르고 패악을 부렸다. 제 성질에 제가 못 이겨 병이 점점 더 위중해졌다.
그런 어느 날 밤이었다. 남편은 일이 밀려 과로를 했다. 축 처진 몸으로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남편은 자리부터 찾았다. 반쯤 혼절한 모습이었다.
여인은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남편을 보고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싣고 갔다. 의사들이 바쁘게 응급치료를 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남편이 링거 병을 매단 채 겨우 입을 떼었다.
“나 배고파. 뭐 먹을 거 좀 없나?”
이튿날 저녁 그는 고집을 부려 퇴원을 했다. 이제 며칠 동안 침대 위에서 휴식을 취할 참이었다. 그런데도 먹는 것은 자꾸 댕겼다.
“뭐 먹을 거 좀 없어? 나가서 돼지고기 한 근만 사와.”
그러나 여인에게는 그런 남편의 모습보다는 의사의 말에 더 신경이 쓰였다.
-절대로 육식을 멀리하세요. 체중부터 줄여야 하니까 과식하지 마세요.
의사는 먹는 것을 조심하라고 신신당불 했다. 그런데도 남편은 또 돼지고기가 먹고 싶다고 짜증을 부렸다. 여인은 그 말을 못 들은 척 가벼운 식사를 대령했다. 푸성귀만 가득한 식탁을 보고 남편은 화부터 버럭 냈다.
“이게 뭐야? 나 밥 안 먹어, 너나 먹어!”
남편은 침실로 도로 들어가 누웠다. 여인은 기가 막혔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여인은 급히 출입문을 열었다.
옆집 6호실 아줌마가 음식 그릇을 받쳐 들고 서 있었다.
“어마, 어쩐 일이세요?”
6호실 사모님이 대답했다.
“이 집 사장님이 입원한 걸 알고 병문안도 못하고, 좀 어떠세요?”
“많이 좋아졌어요. 고마워요.”
“제가 죽 한 그릇을 끓여 왔어요. 사장님 드리세요.”
6호실 사모님이 죽 그릇을 내밀었다.
“어머, 이걸 어떡하나?”
“아니에요. 그냥 경상도에서 자주 끓여 먹는 갱죽이에요.”
“냄새가 근사하네요. 고마워요.”
여인은 죽 그릇을 들고 들어왔다. 그 소리를 듣고 있었든지 어느새 남편이 거실로 나오면서 말했다.
“누가 뭘 가져왔어?”
“옆집 6호실 아줌마가 당신 그리러 죽을 끓여 왔어요.”
“어디봐.”
남편은 얼른 죽 그릇을 뺏어들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맛있네! 이게 뭔 죽이야?”
“경상도에서 끓여 먹는 갱죽이래요.”
“갱죽? 갱죽이 이렇게 맛있어.”
남편은 정말 맛있게 죽 한 그릇을 얼른 비워냈다. 그 다음날부터였다.
남편은 찬이 시시하면 그 죽 타령을 해댔다.
“당신도 그 갱죽 좀 끓여 봐.”
하도 갱죽 타령을 하기에 여인은 6호실 사모님을 찾아갔다.
“그 죽 끓이는 레시피 좀 알려 주세요.”
6호실 여인이 웃으며 일러주었다.
“별 거 아니에요. 먼저 김치를 덤벙덤벙 잘라 넣고요. 그 위에 콩나물을 알맞게 얹으세요. 양념 조금 간장 대신 소금을 조금 뿌리세요. 육수를 잘박하게 넣고 잠시 끓이다가 먹다 남은 식은 밤 있죠. 그걸 넣는 거예요. 푹 퍼지도록 넣고 끓이면 돼요. 경상도에서 없이 살 때 양식 불리려고 그렇게 해먹던 음식이에요.”
그날 저녁 여인은 남편이 보는 앞에서 갱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정성을 다해 끓인 죽 한 그릇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남편은 정신없이 몇 숟갈 떠먹다가 문득 숟가락질을 멈췄다.
“왜요?”
“뭔 맛이 이래. 이건 6호실 아줌마 갱죽이 아닌데.”
“아니에요. 내가 제대로 듣고 그대로 끓였는데?”
“아니라니까. 나 안 먹어!”
남편은 핑하니 침실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계속 6호실 사모님 타령이었다.
하도 복장이 터지자 여인은 다시 6호실 사모님을 찾아가 갱죽 끓이는 지도를 받았다. 그 뒤 몇 번이고 정성껏 죽을 대령하는데도 남편은 그때마다 투정이었다.
“당신 솜씨가 왜 이래. 제대로 6호실 아줌마처럼 끓여봐.”
부아가 치민 여인은 어느 날 남편이 출근하기를 기다렸다. 남편이 나가자 6호실 여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죄송스럽지만 오늘 저녁 우리 집 웬수가 들어오면 제가 끓인 이 죽 좀 들고 와서 우리 집 초인종 한번 눌러주세요.”
6호실 여인과 입을 맞춘 여인은 퇴근시간에 맞춰 자신의 손으로 죽을 끓였다. 그리고는 그 죽을 약속한 대로 6호실로 들고 갔다.
그날 저녁도 남편은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후줄근한 모습으로 식탁 앞에 앉았다.
“밥 줘!”
여인은 두 말 없이 남편의 앞에 밥그릇과 채소들을 올려놨다.
“또 이놈의 푸성귀야?”
“당신 몸에 육식은 안 좋대요.”
“그래도 돼지고긴 괜찮아. 고기 좀 올려봐!”
그때였다. 초인종이 울렸다. 여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출입문을 열었다.
6호실 여인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 그리려고 갱죽 한 그릇 가져왔어요.”
“어마, 고마워서 어떡하나, 호호호.”
여인은 자신이 끓인 죽을 도로 들고 들어왔다.
“옆집 아줌마가 죽 끓여 왔네요.”
“어디 봐!”
남편은 허겁지겁 죽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외쳤다.
“바로 이 맛이야! 당신도 좀 이렇게 끓여봐!”
세상의 여인들이여. 이게 남정네들이다. 훔친 사과가 맛이 있고, 음식도 제 여편네보다 남의 여자 음식 맛이 낫다는 게 남자라는 짐승이다.
이이고 맙소사.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