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정해영
기형적으로 자라버린 새끼 말, 생김과 덩치가 똑같다 어미와 구별이 어려워 며칠 밥을 굶기고 먹이를 내밀 때 먼저 입을 갖다 대는 놈이 새끼다
말로는 할 수 없는 빈 행간들이 지평선 위를 지나간다 보이지 않는 것을 굽어볼 수 없는 먼 눈, 목젖이 타들어가는 독초를 씹다가도 흘리거나 뱉지 못한다 새끼가 다친다
평생 독한 것만 차지하던 어미가 아프다
자유와 평화라는 말처럼 어울리는 말도 없을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자유와 평화처럼 상호 적대적이고도 원수같은 말도 없을 것이다. 자유는 평화의 권리를 침해하고, 평화는 자유의 존재 근거를 무너뜨린다. 한 사람의 자유는 타인의 평화를 짓밟고, 한 사람의 평화는 타인의 자유의 멱살을 움켜쥐고 전쟁을 선포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추한 전쟁이 골육상쟁이듯이,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자유와 평화라는 말은 거의 성립하지 않는다.
“기형적으로 자라버린 새끼 말”은 “생김과 덩치가 똑같”지만, “어미와 구별이 어려워 며칠 밥을 굶기고 먹이를 내밀 때 먼저 입을 갖다 대는 놈이 새끼”라고 한다. 자식은 어미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자 그 모든 것이다. 어미는 자식에게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은 물론, 그 모든 것을 다 주지만, 자식은 그러나 어미의 뜻과는 다르게 자기 자신의 마음대로 그 어미의 뜻을 거스르며 살아간다. 책임만 있고 권리가 없는 것은 어미의 역할이고, 권리만 있고 책임이 없는 것은 아들의 역할이다. 어미는 자나깨나 자식 사랑으로 그 모든 것을 다 내어주지만, 이 어미가 늙고 병들면 그 어떤 자식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
“말로는 할 수 없는 빈 행간들이 지평선 위를 지나간다”는 것은 어머와 자식 사이의 기나긴 불협화음의 세월을 뜻하고, “목젖이 타들어가는 독초를 씹다가도 흘리거나 뱉지 못한다”는 것은 어미의 자식 사랑이 무조건적이며 일방적인 자기 희생임을 뜻한다.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안하무인과도 같은 자유의 횡포에, 너무나도 일방적이고 희생만을 강요당하는 평화는, 그러나 그 자유와의 골육상쟁의 전쟁을 선포하지 못한다.
이미 어미와 자식 간의 자유와 평화는 물 건너갔지만, 새끼가 다칠까봐 차마 독초를 뱉지 못하고 다 삼킨다.
“평생 독한 것만 차지하던 어미가 아프다.”
정해영 시인의 [어미]----, 그의 시는 천둥이고 번개이다. “평생 독한 것만 차지하던 어미가 아프다”라는 말에, 그 어느 자식놈이 눈시울을 붉히거나 통곡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우리는 모두가 다같이 영원한 불효자이자 패륜아에 지나지 않는다.
시의 깊이는 사유의 깊이이고, 이 사유의 깊이는 천둥과 번개처럼 모든 인간들의 마비된 의식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