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지역에 폭염과 가뭄이 장기화하면서 생활용수와 공업용수, 농업용수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아직 대규모 제한급수나 공장 가동 중단으로 이어진 사례는 없지만, 운문댐과 영천댐 등 주요 수원의 저수율이 빠르게 떨어지면서 대구와 포항, 경주 등 일부 지자체는 취수원 변경과 대체 용수 확보에 나섰다. 농촌에서는 하천을 굴착하거나 관정을 새로 개발해 논밭에 물을 공급하는 등 가뭄 피해를 막기 위한 긴급대책이 추진되고 있다.
특히 포항·경주·영천·경산·청도 등 경북 동남부지역의 상황이 상대적으로 심각하다. 최근 강수량이 평년 수준을 크게 밑도는 데다 폭염으로 생활·농업용수 사용량까지 늘면서 댐과 저수지의 물이 빠르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기준 주요 댐 저수율은 보현산댐 16%대, 김천부항댐 25%대, 운문댐 27%대, 군위댐 29%대, 성덕댐 30%대, 영천댐 33%대 수준으로 파악됐다. 안동댐과 임하댐도 각각 40% 안팎에 머물며 가뭄 관리 단계에 들어갔다.
대구의 주요 식수원인 운문댐은 지난달 가뭄 ‘심각’ 단계에 진입했다. 대구시는 운문댐에서 공급받는 물의 양을 줄이는 대신 낙동강과 금호강 취수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가뭄이 더 장기화하면 금호강 도수로를 추가로 가동해 운문댐 의존도를 낮춘다는 방침이다.
현재까지 대구지역 수돗물 공급에 직접적인 차질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 이어질 경우 운문댐 저수율이 추가로 하락할 수 있어 대체 취수원 확보와 수질 관리가 동시에 요구된다. 낙동강과 금호강 취수 비중이 높아지면 녹조와 원수 수질 악화에 따른 정수처리 부담도 커질 수 있다.
포항은 형산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해수가 상류로 역류해 취수원 염도가 상승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포항시는 유강정수장 취수원을 형산강에서 영천댐과 임하댐 계통으로 긴급 변경해 생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현재 포항지역 수돗물 공급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주요 수원인 영천댐 저수율이 계속 낮아질 경우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포항시는 영천댐 저수율이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일부 지역의 제한급수까지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공업용수 공급에도 아직 직접적인 차질은 발생하지 않았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와 포항철강산업단지 입주업체들은 영천댐과 임하댐 등에서 공급되는 공업용수를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 정상적으로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포항제철소는 사용한 물을 자체 처리해 재이용하고 포항시 하수처리수를 공업용수로 활용하는 등 물 사용량을 줄이고 있다. 그러나 가뭄이 장기화하면 자체 재이용시설이 부족한 중소 철강·도금·화학업체들이 먼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구 성서산업단지와 달성산업단지, 구미국가산업단지에서도 공업용수 부족으로 공장을 멈춘 사례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이들 지역은 낙동강 본류에서 대체 취수가 가능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전자·반도체·도금·섬유 등 수질에 민감한 업종은 원수 수질 악화에 따른 생산비 증가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농촌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달 27일 기준 경북지역 저수지 평균 저수율은 58.2%로 지난해 같은 기간 76.1%, 평년 71.6%보다 크게 낮았다.
지역별로는 경주가 42.4%로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고 포항 44.1%, 청도 50.1%, 경산 52.3%, 영천 54.5% 등 경북 동남부지역의 저수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반면 영주와 예천, 김천 등 북부와 서부지역은 동남부보다 상황이 나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주는 올해 누적 강수량이 평년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에 머물면서 농업용수 부족이 현실화하고 있다. 특히 벼 출수기를 앞둔 외동읍 등 일부 농촌지역에서는 논에 댈 물을 확보하기 위해 덕동댐 방류량을 조정하고 하천을 굴착해 물을 끌어올리고 있다.
경주시는 사용하지 않는 마을상수도를 농업용수로 전환하고 신규 관정을 개발하는 한편 양수기와 송수호스 등을 농가에 지원하고 있다. 생활용수 확보를 위해 시민과 관광업계를 대상으로 절수운동도 추진하고 있다.
여름 성수기를 맞은 보문관광단지 호텔과 리조트, 감포와 불국사 일대 숙박업소에서는 아직 단수나 영업 중단 사례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호텔과 리조트는 객실 샤워시설과 수영장, 사우나, 세탁시설, 조경 등에 많은 물을 사용하는 만큼 가뭄이 장기화하면 관광업계도 영향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포항시는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긴급예산을 투입해 하천 굴착과 다단 양수, 관정 신설, 용수로 정비에 나섰다. 오천읍과 동해면, 장기면, 구룡포읍, 흥해읍, 청하면 등 밭작물과 과수 재배지역을 중심으로 용수 부족 여부를 집중 점검하고 있다.
농작물 피해도 우려된다. 벼는 출수기에 물이 부족하면 이삭 수가 줄거나 수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사과와 복숭아, 포도 등 과수는 과실이 제대로 자라지 않거나 햇볕 데임과 낙과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고추와 참깨, 콩 등 밭작물도 잎이 마르고 착과가 줄어들 수 있으며, 시설채소 농가는 관정 수량 감소와 관수비 증가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폭염까지 겹친 축산농가에서는 가축 음용수 사용량 증가와 고온 스트레스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경북도와 각 시·군은 가뭄대책 상황실을 운영하며 저수지와 관정, 하천 수위를 점검하고 있다. 물 부족 지역에는 양수기와 급수차를 배치하고 관정 개발과 하천 굴착, 용수로 정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와 경북도, 대구시, 한국수자원공사도 최근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주요 댐의 방류량과 용수 공급량을 조정하기로 했다. 하천유지용수와 농업용수 공급량을 일부 줄여 생활·공업용수를 우선 확보하고 낙동강과 금호강의 대체 취수량을 늘리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대구·경북의 가뭄은 당장 수돗물이 끊기거나 공장이 멈추는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생활·공업용수 공급을 유지하기 위해 농업용수 공급을 줄이고 취수원을 변경하는 등 지역 간, 용도별 물 배분은 이미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많은 비가 내리지 않을 경우 농촌지역의 농작물 피해가 먼저 확대된 뒤 생활용수와 관광·산업 분야로 영향이 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주요 댐의 실시간 저수량과 용수 공급 가능 기간을 공개하고, 농작물 피해와 중소기업의 공업용수 확보 상황을 지역별로 세밀하게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