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경환동지 덕에 다시 사색에 잠겨보았다. 성동구치소 가는 길..
성동구치소로 면회는 처음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성동구치소가 친근했다. 10년전 내가 살았던 바로 그 곳...
그래서 더욱 사색의 길로 쉽게 갔나 보다... >
박 현 선
감옥은
1평 남짓
밤에도 끌 수 없는 30촉짜리 등
하루에도 수없이 힐끗 힐끗 감시하는
뻥 뚫린 철창
사랑하는 이와
보고싶은 이와
있고 싶은 곳과
단절된 세상
그런데
어느 목사님은 감옥을
기도원이라 하고
어느 수배자는 감옥을
임대아파트라 하고
어느 시인은
창살 안으로 독재정권을
가둬놓고 감시하는 스스로를
교도관이라 하고
어느 가장은
부인 사랑 아이 사랑
가슴 뜨겁게 회상하고
더 큰 사랑 간진하게 하는
사랑의 용광로라 하고
감옥은 폭압자에게 있어
억압의 상징
감옥은
국가보안법 딱지를 단
우리에게 있어
감옥은
투쟁의 진앙지
< 구치소 정문으로 가려면 구치소 사거리 담장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담장 중간 쯤이 바로 문경환 동지가 있는 7동이다. 이렇게 잘 아는 이유는 내가 있던 방 옆방에 동지가 있기 때문이다.>
구치소 담장
별로 높지 않은
담장
종이비행기 힘껏 날리면
당신 철창 사이로 비껴 날아가
내 손 온기 사라지기 전에
당신 손에 닿을 텐데
별로 튼튼히 보이지 않는
여기 저기 금가고 부서진
담장
광화문 사거리에 모였던 촛불,
담장 위 고리에 걸고
한 줄의 줄다리기만 해도
우르르 쾅쾅 자빠지고
당신 두 발로 나와
당신 손 잡을 텐데
조금만 기다려 주오
그리 하지 않아도
분명 당신 만날 수 있을 꺼요
내 아직 밖에 있고
우리 천막 굳건히
보신각에 있고
촛불이 겨울을 반기고 있소
담장 안 당신
조금만 기다려 주오
<그립고 보고싶었던 동지를 보았다. 낯익은 방에서..>
10년, 강산만 변했다
10년,
강산만 변했다
구치소 접견실
공안수 면회실
1번방
나 매번 접견할 때 들어갔던
그 방 그대로다
동지의 오른 가슴
시뻘건 송곳으로 박아놓은 수번
공안수 번호
59번
내 가슴에 칼날로 박아 넣었던
100번 이하 번호
그 번호 그대로다
동지 뒤에 붙어있는 꼬리표
죄명 국가보안법
죄명 이적단체 구성, 가입
죄명 이적표현물 소지, 배포,
죄명 반국가단체 고무찬양
. .
. .
. .
10년전,
한총련에 붙어있는 그 꼬리표
그 법, 그 마녀
10년,
죽이지 못한 그 법
실천연대 다시 붙어
그 법 그대로다
<면회가는 길, 곰곰히 생각을 했다. 문경환 동지에게뭘 해주면 가장 좋아할 까... 전날 밤 고민, 고민하다 생각해 낸 건.. 동지와 동지의 아내가 목소리 주고 받게 하는것.. 하지만 주변에서는 절대 안된다고 하고, 못하게 한다고 하고.. 갈등이었다...>
60초 사랑
접견시간 10분
동지 안부 묻고
실천연대 동지들 안부 건네고
쪽지에 가지런히 써갔던
소식 전하고
그리고
전화기 꺼내 통화를 눌렀다
전화기 밖으로
며칠 전
400리 떨어진 곳에서
남편 손대신
차디찬 쇠붙이 잡고
아이를 낳은
동지의 아내가 나왔다
아이 낳은 아내에게
한 마디 해 줄 수 없었던
동지
아이의 아빠에게
한 마디 해 줄 수 없었던
동지의 아내
유리창 넘어 마이크 속에서 들려오는
퍽이나 쉬어 보이는 아내의 목소리
보는 눈이 있어서 일까
듣는 귀가 있어서 일까
아무렇지 않는 다는 듯한 표정
미세하게 떨리는 동지의 목소리
“고생 많았어.”
짧게 대답하는 동지의 아내
“... 응..”
아내의 대답에 침묵하는 동지
그리고
“몸은?.. 건강은?”
아내의 짧은 대답
“괜찮아...”
전화기 들고 있는 떨리는 손
전화기 끄라고 고함치는 교도관
그렇게 지난 60초
교도관 미친 성화에
동지의 아내에게 미안하다 하고
전화기의 종료 단추를 눌렀다
< 무심코 문경환 동지가 필요하다던 책들을 무심코 챙겨준 이에게 건네받고 접견 물품실로 들어섰다...>
애국 사전
감옥서 공부한다고
넣어달라던
국어사전
영어사전
사무실 그대 책상에
꽂아져 있던
낡은 사전 두 개
구치소 접견물품 접수창구서
다시 꺼낸 사전 두 개
그대 수번, 이름 적기위해 넘긴
영어사전 표지 뒷장
그곳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그대 아내의 이름, 그리고 수번
수번 이름 쭉쭉 줄 긋고
다시 쓴
동지의 수번
동지의 이름
더 낡은 국어사전
넘긴 표지 뒷장
이번에
그대 이름과 옛날 수번
한동안
적지 못하는
그대 이름 그리고 수번
이 땅에 태어나
함께 시련 겪는
애국의 한길 같이 가는
국어사전
영어사전
< 동지를 만나고 난 후 애졸이던 가슴이 많이 풀어졌다. 그리고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문경환 동지가 구치소를 접수 했을꺼라는 생각...>
구치소 촛불의 배후
구치소에
촛불이 켜졌어요
한 평 남짓
감옥에
또 한평 남짓
접견실에도
성동뿐아니라
서울에도
영등포에도
수원에도
실천연대 촛불이 켜졌어요
구치소 안
이 방 저 방
촛불이 번지네요
교도관들에게도 번지고
소지들에게도 번지네요
아!
이 촛불의 배후는
누구일까요
< 구치소를 나왔다. 그리고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사무실로 왔다. 시속 90km를 넘기며 잠실대교를 건넜다. 그리고 한강에게 말했다...>
겹견 후
달려라 애마야
액셀 팍팍 땡기며
다시 간다
광화문으로
그대 철문 나오면
비어있을 방
그 방 주인
잡으러
문경환 동지 덕에 사색을 하게되고 황선동지 덕에 시를 완결짖고 또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동지들에게 참으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