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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회사직원들에게 연말 파티 초대장을 돌렸다. 한 사람, 한 사람씩 찾아다니면서 말이다.
“잘 읽어보시고 궁금하신 사항은 홈페이지에 올려주세요.”
다들 그녀가 돌리는 초대장을 바라보았다.
“예쁘다.. 만드느라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컨셉이 있어요?”
“평범한 연말 파티 하는 회사 별로 없어요. 그래서 저희도 이번에는 컨셉을 잡은 파티를 할 거랍니다. 파트너 동행이에요. 물론 혼자 오셔도 되구요..”
“가면 무도회?”
“미녀와 야수?”
“전통적인 커플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해요. 전통적인, 격조 있는 커플이어야 해요. 이상한 컨셉으로 오신 분들은 다른 옷을 입혀드릴 거에요.”
직원들이 웃음 터트렸다.
“드레스 코드도 그 안에 다 적혀 있어요. 참고 하세요.”
그녀는 최호성에게 초대장을 내밀었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그녀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왜 집에 간 거죠?”
“저도 모르겠어요. 절 밀치고 가셔서..”
“아.. 죄송해요..”
“이번 파티에서 주인공이 되실 수 있어요. 자신감을 갖으세요. 하지만 저에게 하셨던 방법은 추천드리지 못하겠어요.”
“네.”
그녀가 초대장을 건네고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그의 사무실문을 두드리기 전에 그가 문을 열었다.
“연말 파티 초대장을 같은 주최자에게 건네야 한다는 사실이.. 좀 그런데요?”
“죄송합니다.”
그가 초대장을 받으며 일부러 그녀의 손가락에 스쳤다.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끼며 그
를 흘겨보았다. 그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만들고 초대장 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외국이야?”
“뭐 어때요? 여자들 드레스 입는 거 좋아하거든요.”
그가 그녀를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았다.
“그럼 전 바빠서..”
몸을 돌려 다른 직원들에게 향했다.
“코스프레야?”
다진이 비웃듯 말했다.
“네 의견을 적극 반영한 건데.. 넌 싫어? 네가 미녀가 되는 건데?”
“난 가만히 있어도 미녀야.”
“네~.”
혜영이 약간 비아냥거리듯 대답했다.
“인기투표도 하지 그래?”
“그럴 건데.”
그녀는 다른 직원들에게도 초대장을 건네고 손을 털며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솔희가 그녀를 사무실로 밀어 넣고 자신도 들어온 후 문을 닫았다.
“뭐야.. 누굴 데려 오려고 이런 컨셉을 잡을 거야?”
“너도 호진씨랑 함께 와. 동반 1인까지 참석 가능하니까.”
“그야 물론이지. 아니.. 누구냐고.”
혜영이 솔희를 바라보았다.
“왜.. 말하기 어려운 사람이야?”
혜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말 안 해주는 건데?”
“나는 네가 비밀을 지켜주는 친구라고 생각해.”
“물론이지.”
“심지어 호진씨에게도 말 안 할 자신 있어?”
“그건 좀..”
“그렇다면 말 못해.”
“왜?”
“너에게 거짓말 하는 건 싫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도 싫거든.”
“좋아. 맹세해. 호진씨에게도 비밀이야.”
“진짜?”
“그래.”
“나 만나는 사람 있어. 아직 사귀는 건 아니고.. 한 두 번 정도..”
“누군데?”
잠시 후 솔희가 자신의 입을 양 손으로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혜영의 어깨를 때렸다.
“아.. 아파..”
“미쳤어!”
“안 미쳤어. 정상이라고..”
“그럼 왜 하고 많은 남자 중에.. 그.. 아.. 그.. 씨.. 몰라. 하필 왜 그 루저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냐고!”
혜영이 피식 웃자 솔희가 다시 그녀를 때렸다. 하필 멍든 곳이라 그녀가 움찔했다.
“뭐야.. 내 힘이 쎘어?”
“아니야.. 팔이 멍들었어.”
“멍?”
솔희가 그녀의 소매를 걷어 붙이더니 조금 보랏빛이 도는 팔을 보고는 숨을 들이마셨다.
“뭐야? 왜 이래?”
“며칠 전에.. 최호성씨가 저녁 같이 먹자고.. 싫다고 했더니 억지로 끌어 당겨서 멍들었어.”
“그것 봐. 박한성같은 남자랑 자꾸 말을 하니까 루저들이 떼로 달려들잖아.”
“좋은 사람이야.”
“어딜 봐서. 응?”
“비밀로 해 준다고 약속했어.”
“그건 그렇지만.. 아직 사귀는 건 아니라고 했지? 그럼 그만 만나.”
“그 사람이 날 좋아하는 것 보다 내가.. 더 좋아해.”
“미쳤어~. 미쳤어.. 너를 어떻게 하면 좋냐..”
혜영이 고개를 숙이며 미소 지었다.
“박한성으로는 아무리 가면무도회라고 해도 다진이 파트너 못 이겨. 너 다진이가 누굴 잡았는지 알기나 해?”
“누군데?”
“신유빈.”
회사에서 남자들 입에 오르내리는 신데렐라가 다진이라면 그녀와 함께 여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프린스 차밍 중 으뜸인 남자가 바로 그였다.
“그래? 어차피 나 혼자 갈 거야.”
“뭐?”
“말 했잖아. 처음부터 다진이 이길 생각 없었다고.. 사람 보는 눈이 다른 것 뿐이야. 다진이는 유빈씨 같은 남자가 최고의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난 그 사람이지만.. 그 사람은 싫대. 그 날 그냥 집에 있는다고..”
솔희가 다시 그녀의 등을 때렸다.
“그런 바보같은 놈이 뭐가 좋다고.. 네 파트너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집에 있어? 그것도 남자라고.. 에구 이 바보야!”
혜영이 배시시 웃자 솔희가 눈을 흘기며 사무실을 나갔다. 잠시 후 그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괜찮아? 여러 번 맞던데..>
“대단한 사람이네요.”
<남자 같지도 않은 나를 기어코 데리고 가려고?>
“네.. 당신은 가면을 쓰고 멋지게 나타나 나랑.. 춤 한 곡만 추고 바람처럼 사라지면 돼요.”
<최선을 다하는 당신의 남자가 되도록 하지.>
“훌륭한 마음가짐이에요. 난 지금부터 파티 플래너랑 실내 장식 마지막 결정하러 가요. 거기에서 바로 퇴근할 거니까.. 기다리지 마시라구요.”
<나도 바빠..>
“치..”
전화기 너머로 그의 웃음소리가 들려오자 그녀의 심장이 뛰었다. 그녀는 숨을 내쉬었다.
<내가 그렇게 좋아?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것 보다 더?>
“치사하게 이러기에요?”
그가 웃으며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파티플래너를 만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토요일 아침에 느긋하게 잠을 자고 난 후 눈을 뜨고 TV를 켠 혜영이 욕실에 가서 씻고 나왔다. 주스와 샌드위치를 식탁위에 올려놓고 서서 먹고 있었다.
“지난 밤 사건 사고 소식 알려드립니다. **동에 사는 30세 박모씨가 지난 밤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혜영은 주스 컵을 식탁 위에 떨어뜨렸다. 떨리는 손으로 냅킨을 뜯어 식탁과 바닥에 흘린 주스를 닦았다. 그리고 TV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박모씨는 손목과 발목에 결박된 흔적이 있고, 팔에 주사바늘 자국이 있는 것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사인은 과민성 쇼크에 의한 사망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 박모씨는..”
그녀는 더 이상 귀에 아나운서의 다른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귀에서 웅웅거리며 먹먹함이 느껴졌다. 그녀는 핸드폰을 바라보았지만 그에게 전화하지 못하고 가만히 침대에 앉았다.
한반장이 시체부검실을 찾았다.
“과민성쇼크?”
“음식물에 의한 건 아니고, 약물에 의한 것으로 보여. 여기 봐봐.. 피를 여러 번 뽑힌 것 같아.”
“왼팔에 타투 있어?”
“있어.”
한반장은 부검자가 보여주는 타투를 바라보았다. 역시 별 안에 꽃이 그려진 타투였다.
“다른 건.. 없어?”
“없어. 깨끗해.”
“다른 게 혹시 나오면 연락 줘.”
“응.”
한반장이 고갯짓으로 그들을 불렀다.
“뭔지 모르겠지만 인간실험이다. 어깨에 별과 꽃 타투를 한 사람들 명단 다 찾아. 그들을 주시한다.”
“네.”
왠지 이 일이 좋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예감에 그는 혀로 입 안을 쓸었다.
“적당히 했어야지.”
소진이 남자에게 말했다.
“되는 것처럼 보였단 말이야.”
“장난해? 살인은 안 된다고 했지!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을 망쳐?”
“우리한텐 시간이 별로 없잖아. 그래서 그랬다구!”
“앞으로 한 번 더 일을 이렇게 만들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일단 한 명만 더 만나고 다른 지역으로 움직이자. 더 이상 이 방법으론 안 되겠어.”
소진이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돌려 나갔다.
“드디어 사망자가 나왔어. 누군지 몰라서 경고 1번을 줄 수가 없네.”
“타투는?”
“있어. 30세. 여성. 그런데 30세 여성 2명이 신고를 했었어. 그들 역시 왼쪽에 타투가 있고.”
“이러는 게 어떨까? 신고자와 피해자 비슷한 타투를 한 30세 여성들을 찾아내서 보호하면서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원성의 말에 도혁과 진혁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넌 혜영씨한테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원성의 말에 도혁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내 경험으로 봤을 때.. 지금 집에 있을 거야.”
도혁이 뭔가를 알아차린 듯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형수랑 다른데?”
“그렇지? 미수는 1분 만에 전화했는데..”
“그런 점에서 삽사리푸들.. 괜찮은 것 같아.”
“그래?”
“응. 보통 여자면 호들갑떨면서 전화해서 물어봤을텐데.. 신기한 여자야.”
“착한 사람이지.”
원성이 진혁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원성의 핸드폰이 울리자 진혁이 “에헤~.” 라고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형수는 참을성이 너무 없어..”
원성이 미소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
“응. 미수야.. 아니야.. 응..”
원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진혁이 중얼거렸다.
“난 절대로 여자에게 잡혀 살지 않을 거야.. 쯧.. 저게 뭔 짓이야..”
원성이 옆에 있는 고무공을 진혁에게 던졌다. 진혁이 오른쪽으로 피했는데 공이 정확하게 오른쪽으로 휘어서 그의 이마를 맞혔다.
“하하하..”
진혁이 웃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표정을 바꾸며 원성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이 소파 뒤로 넘어갔다.
“헉!”
<자기야. 왜 그래?>
“아니야.. 일어나 인마!”
“아.. 아퍼..”
진혁이 다친 팔꿈치를 다른 손 손바닥으로 쓸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혜영은 비슷한 뉴스를 돌려보고 있었다. 그 때 그녀의 현관 벨이 울렸
다. 흠칫 놀란 그녀가 리모콘을 떨어뜨렸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리모콘을 집어 침대위에
올려놓고 현관으로 가서 구멍으로 살폈다. 긴장한 표정의 그가 보였다. 그녀는 소리없이 긴장
을 풀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했다. 자물쇠를 풀고 현관문을 연 그녀가 그를 바라보았
다.
“아침부터 연락도 없이.. 웬일이에요? 설마.. 보고 싶어서 왔어요?”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그가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그녀
가 그의 가슴에 코를 대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좋다.. 샤워했나봐요.”
“당신도 한 것 같은데?”
그녀가 수줍게 미소 지었다. 그가 신발을 벗고 그녀를 옆으로 안은 채로 침대에 앉았다. 그리
고 그녀가 보고 있던 TV를 바라보았다. 그의 품에서 벗어나서 TV 리모콘을 잡으려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날 봐..”
혜영이 떨리는 시선을 들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내가 아니야.”
“알아요.”
“알아?”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죄를 지은 적도 없고, 유죄 판결을 받은 적도 없는 모범시민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귀 아래가 아니라 팔에 주사바늘 자국이 있었다고 했고요.”
“그것만으로도 내가 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녀는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만약.. 당신이 한 일이라면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만약.. 여기에 내
자리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당신이 오늘이든, 내일이든.. 일주일 후든 언젠가는 말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당신이 왔잖아요. 내가 걱정할까봐.. 오해하고 있을까봐..”
그녀가 손으로 그의 심장을 가리켰다.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 끌어올려 손가락에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정말.. 정말..”
그가 턱에 힘을 주었다.
“사랑해..”
그녀가 숨을 들이마셨다.
“사랑해. 당신은 내 인생에 처음이고.. 다시는 없을 사람. 내가 하는 일이 위험하고.. 당신을 힘들게 할지 모르지만 놓치기 싫어. 당신만 좋다면..”
그가 그녀의 손에 입맞춤을 다시 하며 시선을 들어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대답.. 안 해 줄 거야?”
그가 그녀에게 물었다.
“꿈도 꾸지.. 마요..”
그가 피식 웃었다.
“다 알고 있으면서.. 내 심장이 지금 어떻게 뛰는지.. 내 호흡이 얼마나 불규칙한지.. 다 알면서 물어요?”
“말해 줘.. 듣고 싶어..”
그녀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사랑해요..”
그가 웃으며 그녀를 품에 안고 팔에 힘을 주고 손을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얼마나 그렇게 안고 있었을까.. 그가 그녀를 밀어내고 침대에 그녀를 앉히고 자신은 일어났다.
“그럼 오해도 풀렸고.. 가 볼게.”
“음?”
그녀가 눈을 깜박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침.. 아니 점심 같이 먹어요. 집에서 먹어도 좋고, 나가서 먹어도 좋구요.”
그가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글세..”
“뭐에요.. 방금 전에 고백하고는 그냥 간다고요?”
“주스.. 엎질렀어?”
“어떻게 알았어요? 아.. 냄새가 나요?”
그가 여전히 등을 돌린 채로 고개를 저었다.
“당신 티셔츠..”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입고 있는 티셔츠를 바라보았다. 헐렁한 티셔츠 속에 속옷을 입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녀가 팔을 들어 X자로 가슴을 가렸다.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오늘은 외출할 생각이 없어서 샤워하고 편한 옷을 입고 아침 먹다가 뉴스를 들어서.. 또 당신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요..”
“저녁 6시. 데리러 올게.”
“네.”
그가 현관으로 향했다. 그녀가 발걸음을 떼자 그가 급하게 말했다.
“아니야. 나오지 마.”
그가 구두를 신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고 문이 닫혔다.
“얼른 잠가.”
그가 밖에서 말했다. 그녀가 여전히 붉은 얼굴로 걸음을 옮겨 현관 자물쇠를 잠갔다.
“이제 됐어요..”
“이따 봐.”
“네.”
하지만 그의 구둣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문을 사이에 두고 그녀가 물었다.
“안 가요?”
“가야지..”
“준비하는데 10분밖에 안 걸리는데.. 차에서 기다리고 있을래요?”
“그러지.”
그의 구둣발소리가 들렸다. 혜영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욕실로 뛰어갔다.
10분 후 그녀는 1층까지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 차에 기대어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걸어갔다. 그가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정확하죠?”
“엄청난 스피드야. 집안의 모습은 대충 그려지지만..”
그녀가 눈을 흘기며 차에 올랐다. 그도 차에 올랐다.
“어디 갈까?”
“어디 가고 싶어요? 애인이 생기면 가고 싶었던 곳이 있어요?”
그가 고개를 저었다.
“없어. 나는 평생 혼자 살 생각이었거든. 오래 살 생각도 없었고..”
그녀가 손을 뻗어 그의 왼손을 잡았다.
“음..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응?”
“내가 가고 싶은 데로 가야지, 뭐.. 출발해요.. 고고고~”
그가 웃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규린이 찬모와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 찬모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이 죽었어. 어떻게 생각해?”
규린의 표정이 심각했다. 찬모가 다가와 그녀를 안았다.
“내가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널 지켜 줄 거야.”
“웃겨.. 내가 널 지켜주겠지.”
찬모가 그녀의 머리에 얼굴을 기대고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팔을 토닥였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
“응.”
“만약에 내가 잘못되어도 너는 네 할 일을 해야 해. 알았지? 나를 살리겠다는 바보같은 생
각하면.. 가만 안 둘거야.”
“응...”
“어라? 얘기 다 끝났으면 집으로 가든가 여기로 와야지. 어디 가는 거래?”
진혁이 풀문에서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 도혁의 시계에 부착된 센서 표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미수와 원성이 깜박이는 센서표시를 바라보며 말했다.
“끄라고 말 해줄까?”
“응.”
“형수, 영감~. 다 들려요~. 꺼지기만 해 봐..”
그런데 센서가 정말 꺼졌다.
“어~어? 뭐야.. 왜 끄냐고..!”
“데이트 하는 것까지 뭘 알려고 하냐? 하여간..”
진혁이 몸을 홱 돌리며 두 사람을 흘겨보았다. 그 때 문이 열리며 늘씬한 미녀가 들어왔다. 노트북을 닫은 진혁이 구레나룻에 물을 묻혀 만지며 그 여자의 뒤를 따라 갔다. 미수가 혀를 차며 진혁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좋아?”
“겨울 바다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지금 당신은 회사의 모습이 아니니까 다른 여자들이 바라보게 하고 싶지 않다고요.’
“그래? 춥지 않아?”
그가 그녀의 옷깃을 여며주었다.
“닭살인데..”
“그런가?”
그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뭘 이정도 가지고..”
그가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 그녀의 얼굴이 금방 붉어졌다.
“이 정도는 되어야 바닷가에서 저러는 건 좀.. 그렇다..정도지.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는데 뭘..”
그가 대답을 하지 못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바닷가를 걸어갔다.
“당신에 대해 말해 봐.”
“음...”
“왜?”
“당신을 사랑해요.”
그가 멈춰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신에 대해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나를 행복하게 하면 어떻게 하나?”
“당신을 사랑하지만.. 말 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뭐.. 별로 기억하는 것도 없기도 하지만..”
“당신은 건강했나? 공부는 잘 했어? 데이트는.. 내가 몇 번째야? 내가 물어 본 건 그런 건데.. 하고 싶지 않은 말은 안해도 돼. 나도.. 나에 대해 다 말할 수 없으니까..”
“미안해요.”
그가 고개를 저었다.
“어려서 죽을 뻔 한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9살 때 큰 사고를 당해서 그 전 기억이 없지만.. 하지만 잘 넘어가서 지금까지 감기도 잘 안 걸리고 건강한 편이에요. 공부는 보통.. 데이트는.. 비밀이에요.”
“응.. 모르는 척 해 줄게.”
그녀가 그를 흘기듯 올려다보았다.
“나도 연애는 처음이고, 당신도 처음이고.. 뭘 어떻게 하는 건지 동생이나 형한테 배워야 할 입장이라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그렇게 해요.. 연애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응.”
두 사람은 다시 걸음을 걸었다.
늦은 시간 두 사람은 풀문(Fullmoon) 에서 마주 앉아 아무도 없는 레스토랑 안에서 식사를 했다.
“변장은 왜 한 거야?”
긴 머리 가발과 화장을 한 그녀를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회사 사람 중 80%는 내가 여기에서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알고, 또 박한성이라는 남자와 식
사를 했던 곳이라고 알고 있어서 회사 사람들이 자주 온다고.. 미수언니가 말해줬거든요.”
그가 피식 웃었다.
“웃지 마요. 당신도 안경이라도 쓰라고 할 걸.. 혹시 에반스냐고 다가와서 물어보면 어떻게 해요..”
“아니라고 하면 돼. 아주 정색을 하면서..”
그녀가 그 상황을 상상하고는 피식 웃었다.
“벌써 상상했어?”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살짝 감았다가 떴다.
“에반스 윌리엄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만든거야?”
“영국에서 가장 흔한 이름을 연결한 것 뿐이에요.”
그가 미소를 지었다.
“부모님은 외국에 계시다면서요?”
“기록으로는..”
“아니에요?”
그녀는 그에게 괜한 걸 물었다고 생각하고는 시선을 내리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해요. 나도 대답하지 못할 질문을.. 잊어버려요.”
그녀가 포크를 들어 스테이크를 한 조각 찍어 입에 넣었다.
“난 태어날 때부터 고아였어.”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곧 고개를 저었다.
“하지 마요.. 안 궁금해요.”
“진혁이는.. 내 동생은 길에서 만났어. 그 녀석도 가족이 없어서 길에서 생활했는데 힘이 없어
서 건드리는 녀석들이 많았지. 난 힘이 센 편이어서 그 녀석들을 때려주고 손을 잡고 그 거리
에서 나왔다. 그래도 결국은 다른 거리에서 생활했지만.. 진혁이가 내 유일한 가족이야. 당신
에 대해 말하라고 부담주기 위해서 한 말은 아니야.”
그가 스테이크를 입에 넣으며 말하고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윙크를 살짝 했다.
“저도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미안해요.”
“이해해. 내가 어렸을 때 말이야..”
그녀가 인상을 찡그리며 그를 흘겨보자 그가 소리를 내며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미수가 2층에서 고개를 들어 원성을 바라보았다.
“자기.. 도혁씨가 웃는 거 본 적 있어?”
“응.”
“미소 말고, 저렇게 소리 내서 웃는 거 말이야.”
“보통은.. 도혁이가 저렇게 웃으면 무서워.”
미수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원성을 바라보았다.
그 날 그녀의 집 앞에서 도혁은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
“잘 자.”
“조심해서 가요.”
“응.”
마주잡은 두 손을 놓고 혜영이 집으로 올라갔다. 책상 위에 올라가 그가 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창문에 손가락을 대고 행복한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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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은 의자에 묶여 있는 배우 최예나를 바라보았다. 정신을 잃은 채 의자에 묶여 있던 최예나가 고개를 들었지만 눈이 가려져 있어서 아무것도 못 보는데도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안녕?”
소진이 그녀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누.. 누구세요?”
“알거 없어. 우리가 궁금한 거 하나만 알려주면 그만이야.”
“뭐.. 뭔데요?”
“그 타투.. 누가 해 줬어?”
최예나의 왼쪽 어깨에는 그들이 찾고 있는 타투와 가장 유사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모.. 몰라요.”
소진이 빨간색 굽이 뾰족한 구두를 들어 그녀의 허벅지위에 살며시 내렸다.
“약에 취해서 한 건가?”
그녀가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저었다. 소진이 천천히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사실만 말해. 그럼 집으로 보내줄 테니까.. 심장.. 터지겠네..”
최예나의 입에서 흐느낌이 터져 나오고 소진의 입가엔 미소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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