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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에 그녀는 가까이 다가 온 연말파티 준비로 바빴다. 파티 관련 파일들을 들고 엘리베이터
에서 내리는데 도혁이 다가와 파일을 받아 들었다. 혜영은 무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그도
어리숙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의 사무실 책상 위에 파일들을 놓고 그가 나갔다.
“고마워요.”
작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도혁은 고개를 숙이고 슬쩍 입가에 미소를 짓고는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점심 식사 후 휴게실에서 혜영은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녀의 정면으로 보이는 다진 뒤편에 도혁이 창가에 기대어 그녀와 같은 속도로 커피를 마셨다.
“요즘 연애하니?”
다진의 말에 혜영이 고개를 저었다.
“파티 준비로 잠잘 시간도 부족한데 무슨 연애..”
“하긴 일이 많긴 하더라.”
“난 파티는 그냥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혜영이 커피 잔을 들자 도혁도 다시 잔을 들었다. 커피 잔에 가린 혜영의 입가와 도혁의 입가에 미소가 스치듯 지나갔다.
그녀의 집 옥상 에서 두 사람이 모포 하나를 같이 나누어 덮고 이어폰을 하나씩 나누어 음악을 들었다.
“추운데.. 그냥 당신 집에서 편하게 음악 들으면 안 돼?”
혜영이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왜?”
“그냥요..”
하지만 혜영은 자신의 집에 그가 있으면 숨을 제대로 쉬기가 어려웠다. 그녀 혼자 살기 적당한 집은 그가 들어오면 무척 작게 느껴지고, 공기도 뜨거운 것 같고, 긴장감에 숨도 제대로 쉬기가 힘들었다.
도혁이 그녀의 머리 위에 자신의 턱을 대고는 피식 웃었다.
주말이 찾아오면 그들은 보통 연인들 같은 데이트를 했다. 함께 근사한 곳에서 식사하고, 사
람들이 없는 곳에서 손을 잡고 나란히 걷기도 했다. 어두운 영화관에 따로 들어가 나란히 앉
아 서로에게 기대어 영화를 보기도 했다. 주로 낮에 만나 해가 지기 전에 헤어졌다. 그들의
데이트는 마치 유명한 사람들이 사람들 눈을 피해 데이트 하듯 두 사람이 만나고 헤어졌다.
어느 밤에는 그가 지친 얼굴로 그녀의 집을 찾아왔다. 문을 열고 혜영이 그의 코트 깃을 잡아
당겼다. 그의 등 뒤로 문이 닫히고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어깨에 기대었다. 혜영이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가 손을 들어 그녀를 끌어안고 그녀의 목에 얼굴을 묻고 숨
을 깊게 들이마셨다.
“수고했어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를 더욱 끌어당겨 안았다. 혜영이 손을 들어 그의 등을 토닥였다.
다음 날 아침. 혜영은 아침식사 준비를 마치고 걸음을 옮겨 자신의 침대에서 자고 있는 도혁
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가 악몽을 꾸는 듯 움찔거렸다. 혜영이 손을 들어 그의 볼을 감쌌다.
그가 눈을 번쩍 뜨고 그녀의 손목을 잡아챘다.
“어?”
그녀가 중심을 잃고 그의 품에 쓰러졌다.
“당신 품에 안겨서 좋긴 한데요.. 아.. 아파요..”
“아.. 미안해..”
도혁이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 벌써 그에게 잡힌 그녀의 손목이 붉어져 있었다.
“괜찮아요.”
혜영이 손을 들어 땀에 젖은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안 좋은 꿈 꿨어요?”
그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응..”
“어떻게 도와줄까요? 이렇게?”
혜영이 고개를 숙여 땀에 젖은 그의 이마에 뽀뽀를 했다.
“아니면.. 이렇게?”
그의 오똑하고 날카로운 코끝에 뽀뽀를 했다. 그가 한 숨 섞인 미소를 지었다. 그가 손을 들어 그녀의 뒷머리를 잡아 자신에게 가까이 당겼다.
“이렇게..”
그리고 부드럽게 입맞춤을 했다. 잠시 후 그의 품에서 벗어난 혜영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숨을 쉬어.. 키스하다 사람 잡겠어.”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되어서.. 아침 먹어요.”
혜영이 양 손으로 붉어진 볼을 감싸고 몸을 돌려 주방으로 갔다. 도혁이 침대에서 일어나 숨을 길게 내쉬었다.
“바닥에서 자는 거 안 불편했어?”
주방으로 가면서 도혁이 물었다.
“괜찮았어요. 어디에서든 잘 자는 편이라.”
“미안하네..”
혜영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눈을 찡그리며 머리를 약간 기울였다.
“두통약 필요해요?”
그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애써서 만들어 줬는데..”
“괜찮아요.”
그가 다가와서 혜영의 이마에 입술을 눌렀다.
“조심해서 가요.”
“응.”
그가 몸을 돌려 코트를 집어 들고 현관문을 열었다.
“잠깐만요.”
“응?”
그녀가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그에게 찬합을 내밀었다.
“먹고 싶을 때 먹어요. 그래도 싫으면 안 먹어도 괜찮아요. 많이 만들어서 나 혼자 다 못 먹거든요.”
그가 찬합을 받아들었다.
“고마워.”
“네.”
그가 문을 닫고 아래로 내려가는 소리를 들은 혜영이 달려가 책상 위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
다. 그가 고개를 들어 그녀에게 손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그녀도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그리고 책상에서 내려와 주방으로 가서 음식이 담긴 접시들에게 비닐 랩을 씌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포트에 물을 올렸다.
집에 도착한 도혁을 진혁이 썩은 표정으로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젠 아예 외박을 하고 오셔?”
“미안하다.”
“그건 뭔데?”
“아.. 아침 먹었어?”
도혁이 찬합을 진혁에게 내밀었다.
“아직. 삽사리푸들이 만들어 준 거야?”
“응.”
찬합을 열어 본 진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안 먹고?”
“그냥..”
도혁이 냉동실 문을 열어 얼음을 담은 봉지를 가져와 소파에 누워 눈 위에 올려놓았다.
“음음~. 그건 뭔가 예감이 안 좋은데..”
진혁이 걱정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뭔데? 삽사리푸들 때문에 1년 동안 괜찮더니 다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 거야?”
도혁이 턱에 힘을 줄 뿐 말을 하지 않자 진혁이 “쯧!” 혀를 찼다.
“아, 뭐냐고!”
“능력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야.. 모두 바라는 일이긴 하지만.. 왜?”
도혁은 자신의 능력이 사라지는 바람에 집행 할 때 타깃에게 자신이 주사를 놓아야했다. 늘
그렇듯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녀가 떠오른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저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의 인생을 마감하게 만들고 그녀를 찾아가지 말
았어야 했다. 그녀를 보고 그렇게 감정적으로 무너지지 말았어야했다. 그녀의 집에서 잠들지
말았어야 했다. 사람을 죽인 손으로 그녀의 손목에 멍을 들게 했다. 하지만 제 때 정신을 차
리지 않았다면 그녀의 손목이 아닌 목을.. 잡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두려웠다. 그녀에게 제
일 위험한 것은 그들도, 범죄자도 아닌.. 자신이라고 생각이 들자 무서웠다. 그의 눈에서 눈물
이 흘러 얼음주머니 아래로 흐르자 진혁이 “헉!” 숨을 들이마셨다.
“진짜.. 왜 이러냐고! 안 하던 짓을 해.. 형~!”
원성과 미수가 진혁이 불러서 집으로 왔다.
“형수도 왔어?”
“애도 아니고.. 문을 왜 걸어 잠갔대?”
“몰라요~.”
도혁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있었다. 원성이 문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진혁을 바라보았다.
“방에 틀어박혀 있는 녀석을 어쩌라고..”
“영감이 못 봐서 그렇다니까? 형이 울었다고.. 눈물을 흘렸다니까?”
원성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것 같으냐?”
진혁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1년 전에 삽사리푸들이 뭔 말을 했나 그 후로는 머리 아프단 소리도
안 했단 말이에요. 어제.. 집행하고 그 여자 집에서 잠까지 자고 아침에 와서는.. 사랑하는 여
자랑 잠까지 잤으면 입이 귀에 걸려 와야지 울긴 왜 울어! 젠장..”
원성이 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문에 대고 말했다.
“뭐가 고민인지 말을 해야 우리가 도와주던지 하지.”
“아 됐어! 당신이 문 열어. 내가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 줄 테니까!”
미수가 문으로 달려들자 원성이 그녀를 안았다.
“진정하라고.. 도혁이 아무것도 못 먹은 것 같으니까 뭐 좀 만들어 줄래?”
“얼른 데리고 내려와.”
“응.”
미수가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진혁이 원성을 바라보았다.
“열쇠 있는데.. 열어?”
“옛날 생각 안 나? 우리가 열면 어디로 도망가서 며칠 안 나타난다..”
“이런 제길.. 아니 무슨 형이 저러냐고.. 잘 하다가 왜 꼭.. 말을 하라고! 왜! 그 여자가 형 싫
대? 그건 아니지. 싫은 사람 아침 먹으라고 찬합까지 챙겨줄리 없으니까. 그럼 뭐냐.. 잘.. 못
했어?”
진혁이 탐탁지 못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수 있겠다. 저 녀석은 그 쪽으로는 영.. 그렇지?”
“그렇죠. 그 쪽으로는 관심도 없었으니까..”
“아.. 잘 안 됐나보다.”
“음.. 그렇다면 뭐.. 울 수 있지.”
두 사람이 대화를 하자 도혁이 문을 열고 그들을 노려보았다.
“어. 문 열었다.”
진혁이 발을 들이밀어 다시 닫지 못하게 했다.
“나한테 말을 하지~. 그 쪽 방면으로는 내가 쫘~~악..”
“됐어. 그런 거 아니야. 아니에요.”
“그럼 뭔데?”
도혁이 시선을 내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뭐 좀 먹자. 응?”
원성이 도혁을 데리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이거 뭐야? 혜영이가 만들어서 보내 준 거야? 음식 솜씨 좋은데? 나중에 회사 그만 두면 나랑 동업하자고 할까?”
미수만 다른 분위기로 말하자 진혁이 그녀를 흘겨보았다. 미수가 입술을 뾰로통하게 하고는 상을 차렸다. 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혜영이 만든 음식을 바라보던 도혁이 한 숨을 내쉬었다.
“헤어지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방법을 모르겠어요.”
“혜영이가 싫어?”
도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럼 삽사리푸들이 싫대?”
“그런 게 아니라.. 제가..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까 봐요.”
세 사람이 놀란 숨을 들이마셨다.
“미쳤어?” “그건 좀..” “그래.”
진혁, 원성, 미수가 동시에 말하고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에?” “그건 좀..” “왜?”
미수가 고개를 저으며 두 손을 들었다.
“난 도혁씨가 뭘 고민하는지 알겠는데? 문제는 왜 그러냐는 거지. 원성씨 같은 경우는 내가 범죄자들이나 그 가족들에게 납치되어 나쁜 일을 당할까봐 걱정되어서 였는데.. 도혁씨도 그래?”
“그것도 걱정이 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니에요.”
“그럼?”
“....”
“이유를 알아야 우리가 도와줄 수 있어. 우린 도혁씨 가족 아니야? 가족한테 말 못할 고민이
도대체 뭐래?”
“그래. 그건 형수 말이 맞아.”
“악몽을 꿨는데.. 하마터면 나를 깨우려고 다가온 혜영이 목을 꺾을 뻔 했어요.”
세 사람의 숨이 다시 멈추자 도혁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것 봐요.. 말 해도..”
“미안.. 미안해. 하지만 정확하게 알아들었어. 도혁씨가 자신도 모르게 혜영이를 다치게 할까봐.. 그게 두려운 거지?”
도혁이 눈을 감고 짧게 끄덕였다.
“음.. 같이 방에 들어갈까?”
“형수~.”
“미수야..”
미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 쪽 눈을 찡그렸다.
“도혁씨.. 이거 먹어. 혜영이가 당신 먹으라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만든 음식이야. 혹시 잠을
잘 못자는 도혁씨가 깰까봐 조심조심 하면서 말이야. 그리고 그런 고민은 혜영이한테 직접 말
해. 그럼.. 혹시 알아? 의외로 쉽게 결론이 날지.”
“하지만..”
“하지만 다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혜영이가 도혁씨 옆에 있겠다고 하면.. 그렇게 해. 대신 다시 한 번 더 혜영이를 다치게 하면 그 때는 나도 가만히 안 있을 테니까.. 정신 차려. 알았어?”
“네..”
“밥 먹어.”
도혁이 자리에 앉았다.
“다 같이 먹어. 혜영이가 넉넉하게 싸서 보냈네.”
원성과 진혁도 자리에 앉자 미수가 숟가락과 젓가락을 그들 앞에 내려놓았다. 미수가 도혁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밤에 그가 그녀를 찾아왔다. 하루 종일 고민을 했는지 얼굴이 조금 상해 있는 그녀를 보며 미
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그를 집 안에 들어오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옥상에서 마주보고 있었다. 혜영의 어깨에 모
포를 둘러준 도혁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추운데.. 그냥 집에서 말하면 안돼요?”
“안 돼..”
“왜요?”
“당신이랑 집에 있으면.. 제대로 내 생각을 전하기도 전에 당신 입술을 찾고 싶을테니까..”
그의 노골적인 말에 혜영의 얼굴이 붉어졌다.
“조.. 좋아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요?”
도혁이 숨을 길게 내쉬고 양 손을 모으고 고개를 조금 숙였다.
“헤어지자.”
“흡!”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숨을 들이마신 채로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10초가 넘어가자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숨 쉬어..”
“하아.... 이유가 뭔데요?”
혜영이 손을 들어 바람에 날리는 앞머리를 볼펜뚜껑으로 다시 고정시켰다. 그가 눈으로 그녀의 손목의 푸른 멍을 바라보았다. 혜영이 그의 시선을 느끼고 모포안으로 손목을 숨겼다.
“이거 때문이죠? 미안해서 그러는 거라면 난 괘..”
“틀려.”
혜영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손목이.. 아니었어. 당신.. 목이었어. 마지막에 정신을 차려서 궤도를 수정한 거야.”
“아..”
그녀가 마른 침을 삼켰다. 그가 그녀의 두려운 감정을 느끼고 눈을 감았다. 혜영이 시선을 들
어 그를 바라보았다. 버려지길 기다리는 겁 많은 강아지.. 그녀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
녀가 코앞에 있다는 걸 알았지만 눈을 뜨지 않았다.
“악몽을 꿀 때.. 깨우는 다른 방법을 찾아볼게요. 멀리에서 뭔가를 던진다던가.. 고무공같은 거 말이에요. 그럼 괜찮지 않을까요? 내가 너무 가까이에서 한성씨를 깨워서.. 그래서 그래요. 처음이라.. 다음에는 조심할게요. 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인 채 서서히 눈을 떴다.
“그러니까 헤어지자.. 도망가라.. 그만 하라고요. 난 그럴 생각 없으니까.”
“혜영아.. 제발..”
“제발.. 도망가지 말라고요? 헤어지자고 하지 말고 내 옆에 있어 줘요..? 죽을 때까지.. 나를.. 사랑해 주세요..”
그가 손을 들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
“경고 했어.. 더 이상..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해. 무섭지 않아?”
“정말 무서워지면.. 그 때 말 할게요. 내가 한성씨를 많이 사랑해서 그런지.. 지금은 하나도 안 무서워요. 오히려 한성씨 옆에서 있으면 안전하다는 느낌이 드는걸요?”
도혁이 피식 웃었다.
“내가 만든 음식 먹었어요?”
“응. 다 같이 먹었어.”
“맛있었어요?”
“응. 당신은.. 먹었어?”
“네..”
그가 천천히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그리고 잠시 후 입술을 뗀 그가 속삭였다.
“거짓말.. 커피만 마셨네..”
“허! 앞으로 음식 먹은 날은 키스 없어요..”
“그런게 어딨어..”
“그런 말까지 들었는데 내가 하게 해줄까 봐요? 꿈도 꾸지 마세요..”
그가 웃음을 터트리며 그녀의 입술을 다시 찾았다. 그녀가 행복한 한 숨을 내쉬며 그의 셔츠를 살며시 잡았다.
*****
퇴근 후 혜영이 풀문에 들어가자 원성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어.”
“죄송해요..”
“괜찮아. 올라가봐.”
혜영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고개를 들자 그가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그의 멋진 모습에 그녀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난 회사에서 바로 왔는데.. 집에서 씻고, 옷도 갈아입고 온 거예요?”
“응.”
“치.. 두근거리게..”
“그렇게 멋진가?”
“몰라요..”
그의 앞에 서자 그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보고 싶었어?”
“왜 항상 질문이에요? 보고 싶었어.. 라고 해야죠.. 그리고 내 대답은.. 네.. 저도 보고 싶었어요.. 사무실 다시 옮길 생각 없어요?”
“다시 옮기면 그녀들이 시끄러워 질거야. 요즘은 조금 시들한 것 같던데?”
“한성씨가 잘 안 보이니까.. 배 안 고파요?”
“고파. 저녁 먹고 만약에 일이 없다면.. 게임 할까?”
“게임이요? 음~. 후회할지도 모르는데..”
도혁이 미소를 지었다.
저녁 식사 후에 두 사람은 거실 바닥에 마주 앉아 있었다.
“아직도 게임하고 있는 거야?”
미수가 다가와 그들이 하는 바둑판을 바라보다가 “이거 먹고 얼른 집에 가. 늦었어. 우리도 좀 쉬자.” 라고 말하고는 고개를 저으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축하해요.. 당신이 이겼네요.”
도혁이 미소를 지으며 혜영을 바라보았다.
“치.. 이건 처음부터 공평하지 않은 게임이었어요. 내 심장소리, 움직임을 다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좀.. 져 주면 어때서..”
“그럼 재미가 없잖아. 다음엔 져 줄까?”
“됐거든요?”
혜영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도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바둑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
다.
“재미있었어?”
혜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집에 가야겠어요. 너무 늦었어요.”
“그래.”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는 혜영을 보며 도혁이 피식 웃었다.
“왜요?”
“뭔가 흘리고, 묻히고.. 그래야 닦아주고.. 핥아주고 그러지..”
그녀의 얼굴이 펑.. 하고 터지듯 붉어졌다. 그녀의 얼굴을 보며 그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뭐.. 꼭 뭔가 흘리고, 묻히고 그래야 그러나? 그냥 하면 되는 거지.. 안 그래?”
그가 다가오자 혜영이 고개를 돌려 아이스크림을 마구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른 가요.”
그가 웃음을 참으며 일어나 그녀의 뒤에 섰다.
“데려다 줄게.”
“괜찮아요.”
“옥상 위를 뛰어 다니는 것 보다 옆에서 걷는 게 더 좋아.”
혜영이 그를 따뜻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저희 갑니다.”
“그래. 조심해서 가.”
“죄송해요.. 다음에 봬요.”
“또 보자.”
가게를 나왔지만 그는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자신의 코트 주머니 안에 함께 넣었다. 혜영
이 손을 들어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가 그녀를 바라보다가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참..”
“왜요? 뭐.. 놓고 왔어요?”
“아니? 눈 감아 봐.”
혜영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직 주위에 사람들도 있고..”
“심장소리를 봐서 당신이 상상하는 게 뭔지는 알겠는데.. 그거 아닌데?”
“아니에요? 그럼.. 뭐에요?”
“눈 감아.”
도혁이 그녀를 마주보며 말하자 혜영이 눈을 감았다. 도혁이 그녀의 손을 잠시 놓고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 그녀의 앞머리를 쓸어 올려 핀을 꽂았다.
“됐어.”
“어? 머리핀이에요?”
혜영이 손으로 핀을 빼려고 하자 그가 그녀의 양 손을 자신의 손 안에 가두었다.
“예뻐.. 어울린다.”
“나도 보고 싶어요.. 무슨 모양인데요? 이럴 거면 뭐 하러 눈 감으래요? 어차피 안 보여줄 거면서..”
“춥다.. 얼른 가자.”
도혁이 그녀의 손을 잡고 걸음을 빨리 하자 그녀는 거의 뛰다시피 그의 뒤를 따라갔다. 어느
새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허리를 구부리고 숨을 헐떡이고 있던 혜영이 허리를 펴고 그를
바라보았다.
“들어가서 차 한잔 할래요?”
그가 고개를 저었다.
“음~. 그러고 싶지만.. 그러면 집에 가기 싫을 테고.. 결혼 안한 여자가 혼자 사는 집에 자꾸 가는 것도.. 좀 아닌 것 같고.. 갈게.”
“멋지시네요~.”
“서운하지는 않고?”
“그렇게 거리를 두면서 신경 써 주는 남자.. 좋아해요.”
혜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드러난 이마 위에 입술을 눌렀다.
“차갑네.. 들어가.”
“조심해서 가세요.”
“응.”
혜영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거실을 가로질러 책상 위로 올라갔다. 그가 어느새 맞은 편
건물 옥상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혜영이 손을 들어 인사를 하자 그가 미소를 짓고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위험하게.. 조심해서 가요..”
그녀가 창가에 이마를 댔다가 책상 위에 놓인 작은 거울을 들어 어떤 모양인지 기대로 가득한 표정으로 머리핀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야..?”
혜영이 인상을 찡그리며 손을 들어 머리핀을 빼고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바라보았다. 짧은 뽀
글머리를 한 꼬마가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는 안경을 쓰고 빨간색 망토를 어깨에 매고 있는 캐
릭터 핀이었다.
“얘가.. 난가..? 이런 캐릭터가 있나? 얼굴은 해리포터, 머리는 양배추인형같은데.. 어깨에 빨
간 망토는 왜.. 이게 뭐야..”
혜영이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가 눈을 감고는 어깨를 들썩였다.
“진짜.. 웃겨.. 이걸 어디에서 샀지?”
그녀가 웃음을 터트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가 경고를 해주기 위해 타깃을 만나러 갔다가 타깃이 갖고 있던 총에 다리를 맞았다. 다리에서 피를 흘리며 집에 오자 진혁이 그를 부축했다.
“조금만 기다려. 영감이 오는 중이야.”
“일단.. 욕실로..”
“응.”
두 사람이 1층 욕실로 옮겨 바닥에 도혁을 앉혔다. 서랍장에서 끈을 꺼내 총알이 박힌 위쪽을 묶고 수건을 꺼내 일단 지혈을 했다. 도혁이 고통스런 숨을 몰아쉬었다.
“형.. 괜찮아? 영감이 왜 안 오지?”
진혁이 안절부절 못하자 도혁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이런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 사이코패스가 총을 갖고 있는 걸 몰랐어?”
“응. 고분고분하길래.. 금방 끝날 줄 알았지.”
“피하지.”
“피한 거야, 인마.. 끄응..”
도혁이 눈을 감으며 고통을 참고 있었다.
“그 여자.. 오라고 해?”
도혁이 놀란 눈을 뜨고 고개를 저었다.
“부르지 마..”
“왜? 그 여자 있으면 좀.. 마음이 편할 거 아니야..”
“이런 모습.. 보여주기 싫다..”
“어처구니가 없다. 형 애인이면 이런 일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보여주기 싫어?”
“16년이 지나도.. 네 녀석도 익숙하지 않은 일을.. 어떻게 보여 주냐..”
진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도혁을 바라보았다.
“그 여자가.. 그렇게 좋아?”
도혁이 피식 웃다가 신음소리를 내며 인상을 찡그렸다.
“웃음소리 듣는 것도 좋고, 강아지 같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좋고.. 내가 하는 말에.. 심장
이 콩닥콩닥 뛰는 것도 좋고, 붉어진 얼굴로 수줍게 미소짓는 것도 좋고.. 그 중에 제일 좋은
건.. 따뜻한 향기.. 그 옆에 있으면 아무리 추워도 따뜻해 질 것 같은.. 봄 들판 향기가 나.”
“미쳤어.. 미쳤다고! 다리에 총알이 박혀서 피를 한 바가지를 흘리고 있는데 그 여자 생각에 배실배실..”
도혁이 손을 들어 진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딨냐!”
“욕실! 영감~! 왜 이렇게 늦었어!”
“구급약상자 꺼내 와.”
“네.”
진혁이 사라지고 원성이 피로 젖은 수건을 떼어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그래도 아프잖아. 조심하지.”
“진혁이랑 같은 소리.. 조심.. 한 거라고요..”
“쯧.. 입은 살아 있네..”
그 후 원성이 그의 상처에서 총알을 빼내고 치료를 했다. 그에게 진통제를 주고 침대에 눕혔다. 기력을 잃은 도혁이 잠에 빠져들었다.
“말.. 해야지?”
“하지 말래요. 이런 모습 보여주기 싫대나? 하여간.. 똥폼은..”
“연애라는 게 그런 거야, 인마.”
“삽사리푸들한테 봄 들판 향기가 난대요. 웃겨.. 그 콩깍지가 벗겨지면 엄청 후회할 거야. 아~! 내가 왜 하필 이렇게 여자 같지도 않은 삽사리푸들이랑 연애를 했나 하고..”
원성이 진혁을 바라보며 웃다가 한 숨을 내쉬었다.
“걱정할 텐데..”
“출장 갔다 해야죠, 뭐..”
“그래. 가서 미수 데리고 이쪽으로 와야겠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지켜봐야 할 것 같으니까..”
“네.”
원성이 밖으로 나가고, 진혁은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사에는 출장으로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는 서류를 제출했다.
회사에 출근한 혜영은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점심 식사 후 휴게실
에 그가 나타나지 않자 그녀는 조금 신경이 쓰였다. 일거리를 만들어 그의 사무실 앞에 서서
노크를 했다. 하지만 안에서는 대답이 없자 그녀가 살며시 문을 열고 안을 바라보았다.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직원이 말했다.
“아.. 박한성씨 오늘부터 외부 출장이래요. 아침에 서류제출 되었다는데요?”
“아.. 그래요?”
“연말파티 때문에 들르신 거예요?”
“네..”
“혼자 하셔야 해서.. 힘드시겠어요.”
“괜찮아요. 그럼..”
혜영이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출장..? 그런 말 없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전화를 해도.. 되나? 혹시..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
그녀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퇴근하면서 풀문에 가서 물어봐야겠다.”
혜영이 핸드폰에서 시선을 거두고 일을 했다.
진혁이 열이 조금 떨어진 도혁을 바라보다가 문을 닫고 나왔다. 도혁의 핸드폰을 바라보던 진혁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아니.. 애인이 전화 없이 출장이라는데.. 전화를 안 해? 도대체.. 알 수가 없는 여자라니까.. 쯧..”
진혁이 핸드폰을 내려놓고 컴퓨터로 걸음을 옮겼다.
풀문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혜영이 원성을 바라보았다. 피곤해 보이는 원성이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어쩐 일이야?”
“저기.. 물어볼 게 있는데.. 여기에서는 조금..”
“출장간거?”
“아.. 네..”
“오래 안 걸릴거야. 갑자기라서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
“아.. 그랬어요? 감사합니다. 말씀해 주셔서. 그럼.. 가 볼게요.”
“그래. 조심해서 가.”
혜영이 인사를 하고 나가자 미수가 원성에게 다가와 말했다.
“왜 말을 안 해 줘?”
“보여주기 싫다는 데 어쩌나?”
“하여간 남자들은.. 그런 사소한 것을 숨기면 여자들은 엄청 불안해 한다는 걸 모르나?”
“혜영이는 안 불안해 보이는데?”
“참고 있는 거지. 자기 애인이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 쯧..”
미수가 고개를 저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원성이 멀어져가는 혜영을 바라보았다. 어깨가 쳐진 채로 걸어가고 있었다.
“말해 줄걸 그랬나?”
도혁이 눈을 떴다.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음.. 괜찮은 것 같은데..”
그가 시트를 젖히고 총알을 맞은 자리를 만져보았다. 상처가 아물어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그가 거실로 나가자 진혁이 그를 바라보았다.
“일어났어? 밥 줄까?”
도혁은 냉장고 문을 열고 물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래. 얼마나 잤냐?”
“음.. 정확히 125시간 40분... 41분.”
도혁이 놀란 표정으로 입가에 흐른 물을 손등으로 닦았다.
“내가.. 5일이나 잤다고?”
“응. 괜찮아. 출장은 일주일이라고 냈거든.”
“혜영이한테 연락 없었어?”
진혁이 턱을 괴고 도혁을 바라보았다.
“응. 그 여자.. 이상해, 형. 어떻게 자기 애인이 연락도 없이 출장을 가서 5일이나 연락이 없는데 전화 한 통, 메시지 하나가 없어. 뭐.. 이래? 형을 정말 좋아하는 거 맞아?”
도혁이 날짜를 바라보았다. 금요일 오전 10시였다.
“출근해야겠다.”
“이따 저녁에 만나. 그 몸으로 무슨 출근. 어차피 회사에는 별 말도 못하면서..”
도혁이 끄응..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어떻게.. 지금 뭐하고 있나 보여줘?”
진혁의 말에 도혁이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그래.. 좀 보자..”
도혁이 진혁의 컴퓨터로 걸어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혜영은 머리에 그가 사 준 핀을 꽂고 책상에 일을 쌓아놓고 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솔희가 들어왔다.
“야.. 쉬엄쉬엄 해.. 무슨 일을 몰아서 하냐?”
“응.. 바쁜 게 좋아서. 왜?”
“그냥. 요즘 그 녀석이 안 보이는데.. 신경 안 쓰여?”
“별로. 출장 갔대잖아. 그 정도로 박한성씨한테 관심 있지 않아.”
“그래?”
“그래.”
혜영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왜 일을 몰아서 하는 것처럼 보일까? 요즘 다시 잘 안 먹고, 잘 못자는 것 같은데..”
“그래? 커피 말고 주스 마시는데.. 왜 그럴까? 네 말대로.. 나를 좋아해 줄 만한 남자 만나볼까?”
“우리 삼촌 경찰서에 새로 온 신입 형사가 있는데 괜찮대~. 엄마가 너 소개시켜 주고 싶어하시더라고. 어떻게.. 자리 마련해?”
“어떤 사람이 괜찮은 건데?”
“음.. 집안도 괜찮고, 재정도 넉넉하고, 건강하고, 키도 크고, 얼굴도.. 준수하게 생겼대. 착하고, 술, 담배 안하고.. 그러면 되는 거 아니야?”
“너무 완벽한 거 아니야? 나도 그런 사람 한 명 알고 있는데.. 별로야.”
“그래?”
“응.”
혜영이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럼 넌 어떤 남자가 좋은데?”
“....”
혜영이 눈물이 고인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솔희가 당황해서 혜영을 바라보았다.
“야.. 너 왜 울어.. 응? 야..”
솔희가 티슈를 뽑아 혜영에게 건네었다. 눈물을 닦은 혜영이 어색한 웃음을 터트렸다.
“잠을 못자서 그런가.. 무슨 조울증 환자같아.. 툭하면 눈물이 나고..”
“에고.. 오늘은 말 하고 일찍 퇴근해. 너 다음 주에 할 일까지 했으니까 보내 주실거야.”
“그래야 할까봐..”
“야~. 힘내~.”
“응.”
혜영이 슬픈 미소를 짓는 걸 보고 도혁은 가슴이 아파왔다.
“퇴근하면 만나러 가.”
“가면.. 만나 줄까..?”
“애인인데.. 형수처럼 발로 걷어찰까?”
도혁이 진혁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가 한 숨을 내쉬었다.
일찍 퇴근한 혜영이 지하철 안에서 머리를 기대고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한 숨을 내쉬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풀문에 들렸다.
“언니.. 저녁으로 먹으려고요.. 이거 포장해 주세요.”
“그래. 얼굴 많이 상했다..”
“그래요? 일이 많아서 좀 피곤해서 그래요. 일찍 먹고 자면 내일은 괜찮을거에요.”
“돌아오면 엉덩이 발로 걷어차줘.”
미수의 말에 혜영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
원성이 혜영에게 물었다.
“네. 괜찮아요.”
전혀 괜찮지 않아 보이는 혜영을 바라보며 원성이 안타까운 미소를 지었다.
종이가방을 들고 집에 도착한 혜영은 올라가는 계단을 바라보며 한 숨을 내쉬었다.
“언제 4층까지 올라가냐..”
그녀는 난간을 손에 잡고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밟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도혁이 다가와 그녀를 옆으로 안아들었다.
“어!”
놀란 혜영이 커다래진 눈으로 그의 목을 감싸고 그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출장 잘 다녀왔어요?”
“웃지 마..”
“그럼.. 울어요?”
“차라리 다른 여자들처럼 화를 내는 게 당신 건강에 좋아.”
혜영은 대답대신 그의 목을 더욱 끌어안고 그의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혜영이 한 숨을 내쉬었다.
“한성씨 냄새.. 좋다..”
도혁이 턱에 힘을 주고 그녀의 집까지 올라갔다. 그녀가 건네는 열쇠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침대에 앉히고 신발을 벗겨 현관에 놓고 돌아와 그녀 앞에 앉았다. 혜영이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감쌌다.
“보고 싶었어요. 정말.. 정말.. 보고 싶었어요. 출장이 힘들었나 봐요. 얼굴이 상했는데..”
도혁이 손을 들어 그녀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았다.
“말없이.. 연락 없이 있을 수밖에 없었어.”
“이해해요. 그런 걸로 화 안 내. 그럴 거면 처음부터 한성씨.. 사랑하지 않았을 거예요. 내가 감당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시작한 거예요.”
“왜 잘 못 먹었어?”
“안 넘어가니까. 억지로 먹으면 체하고..”
“잠은..”
“그건 저도 몰라요. 피곤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건강하게 내 앞에 있는 한성씨 얼굴 보니까 안심이 되었는지.. 조금 졸린 것 같기도 해요.”
그녀가 조그맣게 하품을 했다.
“출장 안 갔어.”
“알아요. 한성씨가 말하는 출장이.. 우리가 보통 말하는 그런 출장이 아니라는 거.”
도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팠어.”
혜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팠어요? 어디가.. 어떻게.. 병원은.. 못 갔을 테고.. 그럼 집에 있었어요?”
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가..”
혜영이 눈으로 그의 상처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자 그가 그녀의 손목을 놓고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들어 올려 자신을 보게 했다.
“경고를 하러 나갔다가 타깃이 쏜 총에 맞았어. 허벅지에 한 방. 피해서 깊게도 아니고, 위험한 자리도 아니었고.. 하지만 진통제를 맞고는 잤어. 그래야 빨리 회복이 되거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지금은 괜찮아요?”
“거의..”
혜영이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말은 전화로 해도 충분했어요. 굳이 와서 그 다리로 나를 안고 4층까지 올라오고.. 왜 무리를 하는 거예요? 내가..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도혁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내가 당신이 보고 싶어서. 진혁이가 알리려고 했는데 피를 좀.. 흘려서. 그 모습을 보
여주기 싫었어. 그리고 어차피 진통제 맞으면 계속 자니까 당신이 있어도 모르고. 괜히 걱정
할 것 같아서 말하지 말라고 했더니. 오히려 더 걱정시킨 것 같아서 미안해.”
혜영이 고개를 저었다.
“많이 아팠어요?”
도혁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보고 싶었어.. 건강해져서 얼른 오고 싶었는데 깨어보니 5일이나 잤더라고..”
“어차피 출장이 일주일이라 다음 주 월요일만 기다리고 있었어요. 오늘.. 만나러 오지 않아도 괜찮았어요. 혹시.. 덧나거나..”
“아니야. 괜찮아.”
혜영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었다. 도혁이 손을 들어 그녀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당신 향기가 너무 그리웠어. 당신 옆에 있으면 따뜻하고, 싱그럽고.. 행복하게 하거든.”
“음.. 듣기 좋은 목소리.. 그런데 자꾸 그렇게 머리를 쓰다듬으니까..”
“졸려?”
그녀가 키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뭘 좀 먹고 자.”
“조금만요.. 아주 조금만..”
그녀가 그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도혁이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겉옷을 벗겨 주었다. 이불을
덮어주고 손으로 머리카락을 넘겨주고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짧게 입술에 입
맞춤을 하고 자신도 그 옆에 앉아 그녀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기처럼.. 잘 자네..”
도혁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도혁이 식사준비를 마치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이불로 입을 가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나.. 코 골았어요?”
“아니.”
도혁이 고개를 저었다.
“이는.. 안 갈았어요?”
“응? 이도 갈아?”
“안 갈아요..”
혜영이 키득거렸다.
“밥 먹자.”
“네.”
혜영이 일어나 욕실로 뛰어 들어가 양치질을 하고 얼굴과 머리를 만지고 밖으로 나왔다. 그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가 엄지로 그녀의 손등을 살살 쓸었다.
“간호사 자격증을 딸까 봐요.”
“뭐?”
“앞으로 또 언제 다칠지도 모르고..”
“됐어. 원성이 형이 있으니까.. 당신은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돼.”
“알았어요.. 조심.. 한 거죠?”
도혁이 키득거렸다.
“응. 조심 한 거야.”
“네.. 더 뜨겁게 기도할게요. 한성씨 안 다치고 아프지 말라고..”
“그래 줘..”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낮 데이트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 되는 것 같아서 좀 그런데?”
미수가 두 사람을 흘기듯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죄송해요.”
“괜찮아. 천천히 먹어.”
“형수님. 고맙습니다.”
미수가 손을 들어 도혁의 어깨를 토닥이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들은 지금 원성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는 집을 깨끗하게 정리할 테니까 식사는 우리 집에서 해요. 죄송해서.. 불편해요.”
“기대할게. 파티 준비는 잘 되고 있는 거야? 도와달라는 말을 안 해서..”
“딱히 부탁할 일이 없네요.”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씽긋 웃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함께 보낼까?”
그의 말에 혜영이 상기 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물어보고 싶은 건 참지 말고 물어 봐.”
“안 된다고 하면 실망하게 되니까요. 그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기도 하고, 그런 기분 느끼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그래요.”
“응. 같이 보냈으면 좋겠는데. 당신은 그 동안 어떻게 보냈어?”
“음.. 주로 혼자 크리스마스 영화 유료다운 받아서 와인이랑 케이크랑 먹으면서 밤새 영화 보면서 보냈죠. 한성씨는요?”
“시작은 진혁이랑 형이랑, 형수랑.. 일이 생기면 중간에 나가야 하고.. 그래서 올해는 우리들이랑 함께 보내면 어떨까.. 생각했어. 내가 중간에 나갔다 와도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까..”
“덜 미안할 것 같아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동생 분은 제대로 만난 적 없으니까.. 인사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 녀석.. 까칠하게 굴지도 몰라.”
“괜찮아요.”
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의 손바닥에 코를 묻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가 그의 손에서 고개를 들자 그가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바라보았다.
“잠깐만..”
그가 어두운 표정으로 입가에 미소를 살짝 만들고는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거실에서 벗어나
뒤쪽으로 나갔다. 그녀는 물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몸을 돌려 통화를 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통화를 마친 그가 들어오지 않고 난간을 잡고 숨을 길게 내쉬는 모습을 보며 그
녀는 마음에 불안이 찾아왔다. 하지만 심호흡을 하며 심장박동이 빨라지지 않게 했다. 그에게
자신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걸 알게 하면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였다. 다행히 그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그가 표정을 애써 밝게 하며 그녀에게 다가와 몸을 구부려 그녀의
머리에 입맞춤을 하고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도 밝게 미소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난
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할 말을 머릿속으로 고르고 있는 게 보였다. 그녀가 의자에서
일어나 코트와 가방을 들었다.
“왜?”
“피곤해요. 집에 가고 싶어요.”
“내가 저녁을 망쳤지?”
“한성씨가 아니라 지금 전화한 사람이 망친 거죠.. 괜찮아요. 가야 하면 그냥 가야 한다고 말하면 돼요.”
“미안해.”
그녀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일어나요.”
“응.”
그들이 내려가려고 하는데 원성이 올라왔다. 그가 도혁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했다. 혜영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밖은 어둡지 않고, 가까우니까 뛰어 갈게요. 집에 도착하면 <집> 이라고 메시지 보낼 테니까.. 여기에서 헤어져요. 그럼 아저씨.. 다음에 봬요.”
“어.. 그래.. 미안..”
혜영이 고개를 저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도혁이 힘든 표정을 지었다. 원성이 손을 들어 그의 어깨에 올렸다.
“갑자기 널 왜 부른 거냐?”
“모르죠. 아마도.. 13년전 일 때문에 부르는 것 같아요.”
“그게 언제적 얘긴데.. 널 다시 부른다고 그들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가? 하여간 책상에 앉아서 뭘 하겠다고.. 같이 가자.”
“혼자가 좋아요. 형.. 오토바이 좀 빌려주세요.”
“그게 좋겠냐?”
“네.”
원성이 방에 들어갔다가 열쇠를 갖고 나와 그에게 던졌다.
“조심해서 다녀와라.”
“저 사람 좀.. 살펴주세요.”
“알았다.”
도혁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좋은 여자지?”
도혁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원성을 바라보았다.
“너무 좋아서 탈이죠..”
그가 웃을듯, 말듯 희미한 미소를 짓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잠시 후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멀어져가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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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는 사랑이 그런 거라서.. 요즘 독한 드라마 같은 사랑은 가끔 이해하기 힘들때가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