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 아가 4,12】
“…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그대는 닫혀진 정원, 봉해진 우물”‘닫혀진 정원’은 동정성을 나타내며 교회에 대한 비유이다. ‘닫혀진 정원’ 안에 있는 ‘봉해진 우물’은 입교자들에게만 허락되는 성사를 가리킨다.‘닫혀진 정원’은 동정성을 나타냅니다. 순결이라는 담으로 사방이 둘러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봉해진 우물’은 동정성을 나타냅니다. 그 근원에서 하느님의 모상이 빛나도록 순결의 봉인이 손상되지 않게 지키는 것은 겸손이라는 샘과 우물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함이라는 순결은 육신의 순결과 부합합니다(암브로시우스 『서간집』 59 (“사제들에게 보낸 편지”)).그리스도의 신부, 곧 교회가 ‘닫혀진 정원’이라면, 닫혀진 것은 바깥 사람이나 속된 사람들에게는 열릴 수 없습니다. 샘이 봉해졌다면, 바깥에 있는 사람은 그 샘에 다가가 마실 수도 샘과 함께 봉해질 수도 없습니다. 생수가 솟는 우물도 그것이 하나라면 안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바깥에 있는 사람은 그 물로 생기를 얻을 수도 거룩하게 될 수도 없습니다. 안에 있는 이들만 마시고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된 물이기 때문입니다(키프리아누스 『서간집』 69,2).
교회에 관한 비유
이 이야기는 교회에 관한 비유로,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적 표상으로 읽을 때 더 잘 이해됩니다. 아가에서 보듯이, ‘정원’ 곧 낙원은 교회를 가리킵니다. 낙원의 네 강은 네 복음서를, 열매 맺는 나무들은 성인들을, 그 나무의 열매들은 성인들의 행적을, 생명 나무는 당연히 성인들의 성인인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13,21).
【성경본문 : 아가 8,1-2】
“아, 당신이 내 어머니의 젖을 함께 빨던 오라버니 같다면! 거리에서 당신을 만날 때 누구의 경멸도 받지 않고 나 당신에게 입 맞출 수 있으련만. 나를 가르치시는 내 어머니의 집으로 당신을 이끌어 데려가련만”교회는 세례받았다는 공통점으로 하나인 가족이다. ‘어머니의 집’은 거룩한 가르침이 전수되는 곳이다.
세례를 뜻하는 ‘젖’
교회의 ‘젖’이 세례 성사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빤다’는 말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입니다. 세례 받은 이들이 눈처럼 하얀 젖을 빨듯 그분을 찾기 때문입니다. “거리에서 당신을 만날 때 … 나 당신에게 입 맞출 수 있으련만”은 ‘육신 밖에서 당신을 만나면 신비로운 평화의 입맞춤으로 그대를 얼싸안는다’는 뜻입니다. ‘아무도 그대를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아무도 그대를 밖에 세워 놓고 문을 닫아걸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그대가 영적 은총의 잔을 마실 수 있도록 당신을 어머니 교회의 지성소와 감추어진 곳들로, 모든 비밀스러운 신비들로 데려갈 것입니다’(암브로시우스 『발렌티니아누스의 죽음』 75).
하느님 말씀에 문을 열다
“당신을 이끌어 데려가련만.” 하느님의 말씀을 안으로 모시는 것은 마땅히 할 일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께 문을 열라고 영혼을 두드리시기 때문입니다. 문이 열려 있지 않으면 그분은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문을 열면, 들어가 함께 잡수십니다(묵시 3,20 참조). 신부는 이런 식으로 말씀을 안으로 모셨습니다. 모심을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암브로시우스 『이사악 또는 영혼』 8,71).
노성기 신부(한국교부학연구회·광주가톨릭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