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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물음과 답이 옳다면 은평구의 몸통 전체가 파헤쳐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원주민들의 가슴을 짓이기고, 그들을 멀리 내쫓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보상비는 수백만원에 불과한데 아파트 한 평 값이 1000만원이 넘을 때 그들이 선택할 길은 무엇인가? 은평구는 대한민국 재개발의 상징이다. 구 전체가 거대한 공사 현장으로 변해버린 은평구를 통해 재개발의 빛과 그림자를 이코노미스트가 심층취재했다. 지난 11월 22, 23일 찾아간 서울시 은평구 진관내동은 마치 폭격 맞은 전쟁터 같았다. 집들이 대부분 철거돼 스산했고, 인적은 드물었다. 고물을 수집하는 소형 트럭만 분주할 뿐이다. 곳곳에 붙어 있는 ‘이주대책 수립 요구 관철’‘철거 반대’와 같은 플래카드와 전단지가 찬바람에 날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변해주고 있었다. 이곳은 몇 년 후면 105만 평의 화려한 도시로 변신할 것이다. 통일로 건너편은 이미 공사가 시작돼 타워크레인이 거대한 몸집을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옛것을 해체하는 전사들 같았다. 올해 환갑인 이성구(남·가명)씨는 반쯤 부서진 집 마당에서 건너편 공사 현장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대낮인데도 취한 상태다. 그는 “갈 곳이 없다”고 했다. 지난해 7800명, 올해 9200명이 떠난 마을에 남은 몇 안 되는 주민이다. “집이 하천을 메운 시유지에 있어서 보상비가 거의 없어. 무허가 집인데, 300만원 준데. 그 돈으로 어디를 가?” “3000만원 갖고 어디로 가나요” 옆에 있는 김제일(43·남)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12년 전 마포에 살다가 재개발이 되면서 진관동으로 이사 온 그는 또다시 쫓겨나야 할 판이다. 그는 “5년 동안 투쟁하다가 포기하고 떠난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이제 내 집 지켜보겠다고 남은 사람은 몇 안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들에게 ‘서민주거 안정’이라는 뉴타운 개발의 취지는 헛소리다. 서울시와 시행사인 SH공사는 ‘충분한 보상이 됐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 지역은 30년 동안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다. 그래도 시골 같아 재미있게 살았다던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문제는 이들이 새롭게 탈바꿈할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들이 어찌 새로 지은 반듯한 아파트에 들어가고 싶지 않겠는가? 진관동 입구 무허가 슬래브집에서 살다가 불광동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 온 김미영(40·여·가명)씨가 그런 경우다. 김씨는 할인마트 판매직으로 일하고, 남편은 일용직 노동자다. 김씨의 가족은 방 두 개짜리 13평 집에서 보증금 100만원, 월세 10만원을 주고 6년 동안 살았다. 뉴타운 개발로 김씨 가족은 한 달 전 이주비 3000만원을 받고 이사했다. 뉴타운이 완성되면 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다지만 걱정이 앞선다. “벌이가 시원치 않아 월세도 제대로 못 내고 살았는데, 새로 임대주택에 들어간다 해도 2억원이나 되는 보증금을 어떻게 마련하고, 월 관리비는 감당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딱지(입주권)라도 팔 수 있었다면 모르지만, 그것도 불법이라 일단 들어가야 하긴 할 텐데….” 그나마 김씨는 사정이 좋은 편이다. 이곳에 23년 동안 살았다는 황정순(78) 할머니는 하천 부지에 지어진 집에서 살고 있다. 황 할머니 가족은 아직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 12월 중순이나 돼야 이사할 것 같다고 했다. 둘째 아들 내외와 손자까지 함께 살았는데, 보상받은 돈으로는 네 식구가 갈 곳이 마땅치 않아서였다. “아들이 우유 납품을 하는데, 겨우 대출을 받았나 봐. 그 돈 합해서 연신내나 불광동으로 전세 간다지? 다시 돌아오기는 힘들지. 비싸서 어디 올 수나 있겠어? 여기서 나간 사람들 죄다 전세로 갔어. 저기 경기도 넘어 이사 간 사람도 많아.” 실제로 그랬다. 본지가 은평구청에 확인한 결과 지난해 은평 뉴타운 이주민 중 같은 구 안으로 전입한 비율은 16%였다. 올해는 절반 가량이 불광동·구산동·연신내 등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나마 지난해보다 올해 보상비가 많아서 같은 구 내로 이주하는 비율이 늘었다. 그렇다면 지난해 진관내·외동을 떠난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차라리 북한으로 가게 해달라” 유중공 은평구 의원은 “은평구가 그나마 집값이나 전·월세도 서울 다른 지역보다 쌌는데, 받은 보상비로는 어디 갈 수 있는 데가 많지 않다”며 “경기도 양주·장흥·고양시 변두리로 많이 이사했다”고 말했다. 양주와 고양시 소재 부동산에 확인해 봤다. 양주시 소재 부동산 중개인은 “문의는 많았는데, 양주는 개발 기대 심리로 땅값이 올라 계약이 성사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고양시 쪽은 다수의 부동산 업체에서 “은평구에 살던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확인해줬다. 특별히 군락을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고양동·관산동·덕양구 변두리 쪽 싼 전·월세를 찾아 많이 이주해 왔다는 것이다. 멀더라도 살 곳을 찾아다닐 수 있는 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뉴타운 이주민 중 정말 심각한 것은 공공용지 땅 거주자, 무허가 세대, 세입자, 영세 상인들이다. 아직까지 폐허가 된 동네를 떠나지 못하는 50여 가구가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방아다길 인근에 13가구, 울푸레길 주변에 40여 가구다. 은평 뉴타운 공공용지 주민 대책위원장인 백숙자(59·여)씨는 사무실로 쓰는 낡은 컨테이너를 혼자 지키고 있었다. 그는 “3-1지구 하천부지에 200가구 정도가 살았는데, 버티고 버티다 3000만원 받고 다 나가고 13가구만 남았다”고 했다. 손은 차갑게 얼어있었지만 5년간 싸워온 만큼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갈현동에서 진관동으로 오는 박석고개를 ‘망해서 넘어오는 고개’라고 해요. 그만큼 하루 벌어먹고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았어요. 집도 다닥다닥 작은 평수가 대부분이고. 집 있는 사람이래봤자 15평짜리에 평당 보상비 700만원 받으면, 1억정도잖아요.
이 돈이면 수도권 일대에서 살 곳이 없어요. 일단 거주할 곳은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서울시장님한테 컨테이너 박스라도 제공해 달라고 요구했어요. 지난번 구청장이 왔을 때 내가 이랬어요. 차라리 이북으로 넘어가게 해달라고. 그런 다음 탈북하면 정착금하고 살 집이라도 나오니까요.” (이곳 주민들에 따르면 입주권은 지난해 7000만~8000만원에 거래됐고, 올해는 1억5000만원까지 팔렸다고 했다. 하지만 입주권 전매는 불법이다.) “처음 약속과 너무나 달라요” 이곳에 터전을 잡았던 영세 상인들도 눈물을 머금고 대부분 떠났다. 한 시민단체가 보내 온 ‘사진 속(사진 참조)’ 상인들. ‘영세 상가 죽이는 게 뉴타운 사업이냐’고 외치던 이들은 늘봄식당 214만원, 신신스튜디오 307만원, 대명식당 300만원, 풍년식당 270만원의 영업보상비를 받고 어디론가 떠났다. 은평 뉴타운 3지구 진입로에서 17년 동안 순댓국집을 운영해 온 김금녀(54·여)씨는 아직 갈 곳을 찾지 못했다. “여기서 순댓국 팔면서 아이들 셋 다 가르쳤수.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20만원으로 여태 장사하고 사는데 보상금 660만원 준다면서 나가라고 하네. 길 건너편 사람들은 사업자번호(허가 상가)가 있다고 몇천 만원씩 받고 나갔는데, 난 이 돈 받고 어디 가서 장사를 하나. 2월까지는 나가라고 하는데, 나는 그 돈 받고 못 나가. 구파발에서 가게 얻으려면 권리금하고 해서 3000만원은 있어야 하는데. 내가 상가 분양권 달라고 했어? 그저 몇십 년 이곳에서 먹고 살았으니 조그만 가게 차려 먹고 살 수 있도록 적정한 보상만 해달라는 거 아니야. 장사를 그만둬야지.” 문제는 쫓겨나는 신세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관동 이주민 중 상당수는 자녀 학교, 직장 문제로 불광동·녹번동·응암동 등 같은 은평구로 전입했다. 집값이 오르고 전세난이 심하지만, 그래도 서울 시내에서 은평구만큼 싼 곳을 찾기도 어렵다. 문제는 이주해 온 곳마저 ‘재개발’이 된다는 데 있다. 은평 뉴타운이 개발되면서 불광 3구역으로 이사 온 이모(54·여)씨는 재개발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그저 보증금과 월세가 싼 곳을 고른 것이다. 이 지역은 이미 주민의 80%가 이주 신청을 했다. 나머지는 이씨처럼 재개발 인가가 난 후 이사를 온 세입자들이다. 그는 은평 뉴타운에서 무허가로 장사를 했다. 그는 형편없는 영업보상비를 준다는 소리에 기가 막혀 영세상인 대표를 맡아 투쟁하다가 결국 쫓겨난 신세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이씨의 눈에 금세 눈물이 고인다. “옆집 숟가락 수까지 다 알고 사는 동네에서 이사 비용 몇 배씩 챙겨가는 위장 전입자들 눈감아주는 공무원들이 너무 원망스럽더라고요. 북한에 쌀 보내는 돈으로 우리 같이 없는 사람이나 살려주지. 나라 개발하는 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생각해가며 해야지요. 법만 내세우기 전에 진짜 은평구 주민이 누군지 먼저 가려냈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처음 개발한다고 했을 때 집주인·세입자·무허가 세대 모두에게 권리를 공동으로 부여한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어요. 이제 갈 곳도 없어요. 갈 데까지 가보는 거지 뭐.” 그의 말대로 현재 어떤 정책과 법도 이씨를 구제해 줄 방도는 없다. 진관외동에서 35년 동안 살던 이금선(67) 할머니는 독거노인이다. 남편과 오래전 이혼했고 돌봐줄 자식도 없다. 이 할머니는 위궤양·당뇨 등 각종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그동안 30여만원 되는 생계보조금으로 살았다. 7만원은 방세를 내고, 병원 치료비를 빼면 월 10만원이 생활비의 전부였다. 이 할머니는 지난 추석 즈음, 오순도순 말벗이라도 할 친구들이 있었던 정든 마을을 떠나야 했다. 이주비는 500만원. 지역 복지관의 도움으로 불광동에 월세 10만원짜리 단칸방으로 옮겼다. 이마저도 다시 곧 비워줘야 한다. 이사한 동네도 곧 재개발 예정지이기 때문이다. 이금선 할머니는 또 어디로 가야 할까? 35평 아파트 한달새 1억 올라 은평 재개발의 슬픈 아리랑은 비단 진관동에서 이사 온 주민들 얘기만은 아니다. 은평구 내 29개 재개발 지역에서도 ‘새마을’을 만들겠다는 명분 아래 이삿짐을 싸야 할 가족이 많다. 특히 세입자나 소형 평수 주택소유자 중 상당수는 은평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3년 전 불광동 신축빌라로 이사 온 박은미(37·여)씨는 집주인으로부터 내년 4월까지 집을 비워달라는 얘기를 들었다. 재개발에 들어간다는 말은 들었지만 막막했다. 이미 이웃들은 하나 둘 이사를 해, 박씨가 살고 있는 빌라의 여덟 집 중 네 곳은 빈집이다. 박씨는 살 곳을 알아봤지만 가진 돈 갖고는 구할 수 있는 집이 거의 없었다. 그는 “양주시 쪽 집값이 싸다고 해서 집을 알아봤지만, 그쪽도 매물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불광동 건너편 신사동에 보증금 2700만원, 월세 23만원짜리 빌라를 계약했다. 전세로 살다가 월세 신세가 된 것이다. 그것도 지금 살던 집보다 더 작은 집으로 더 많은 돈을 내고 들어가게 된 것이다. 박씨는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울컥하지만 별달리 방법은 없었다”며 울먹였다. 은평구는 현재 불광 1구역, 응암 6구역 등 2곳의 재개발이 완료됐고, 29개 구역이 재개발에 들어갈 예정이다. 재개발 열풍은 서울에서 재정자립도가 세 번째로 낮고, 상대적으로 집값이 쌌던 은평구를 들쑤셨다. 은평 뉴타운 영향으로 인근 M아파트는 2001년 1억9500만원(35평형) 하던 것이 지금은 4억5000만원에 거래된다. 최근 한 달 사이에 호가가 1억원이 더 뛰었다. 은평 뉴타운 고분양가 논란이 있던 직후다. 은평 주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심했다. 신사동 H아파트 28평형을 2002년 1억600만원에 구입했다는 서경석씨는 “비슷한 시기에 통일로 인근 아파트를 구입한 지인의 얘기를 듣고 망연자실했다”고 말했다. 서씨의 집보다 3배 넘게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아파트도 그 사이 4000만원 정도 올라 내심 좋아했는데, 몇 억원이 올랐다니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라고 했다. 서민 주거 안정은 ‘헛구호’ 이러한 분위기는 지난 20일 주민총회를 연 H 2차 아파트에서도 확인된다. 이날 주민 대표는 “집을 내놓을 때는 꼭 관리실을 통해 내놔야 한다”며 “제대로 집값을 받으려면 물량이 적을 때 집값을 올려놔야 한다. 30평 이상 아파트는 2억7000만원 이하로는 절대 내놓으면 안 된다”고 주민들에게 당부했다. 이 지역은 재개발 구역에 포함된 곳이 아니지만, 뉴타운에서 재개발로 이어지는 여파의 흔적이다.
남진 서울시립대 교수는 “뉴타운의 경우 원주민 재정착률이 20% 정도 되는데, 은평구의 경우 저소득층 비율이 높은 것을 감안하면 10% 이하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종선 은평구 의원도 “이대로라면 개발지역 내에 은평 본토민 90%가 이사를 가야 한다”고 밝혔다. D부동산 대표는 “불광3구역의 경우 12월 말까지 분양신청을 받는데, 주민 중 82%는 이주 신청을 냈다. 분양 신청자 중 원주민은 20% 정도 되겠지만 분양가가 점점 높아지기 때문에 최종 입주시 원주민 재입주율은 10%로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부터 1년 전 한 여론조사 전문기관이 은평 뉴타운 지역 교화와 함께 주민 38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57%는 재입주할 의사가 있고, 분양가를 고려해도 45%는 재입주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뉴타운 역시 재정착률이 15%를 넘기기 힘들다고 말한다. 결국 서울시와 은평구가 서민 주거를 안정시키겠다며 추진하는 뉴타운과 재개발 정책은 ‘서민 물갈이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개발이 발표되는 시점부터 어쩔 수 없이 물갈이를 당하는 은평구 서민들이 살 곳을 찾아 전전하는 동안 은평구청장과 구의원은 ‘구정질문’ 시간에 이런 대화를 나눴다. K 구의원 : 은평구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평당 2000만원이 넘는 고급 아파트를 지어 재산세 많이 내는 부자들이 살도록 해야 한다. 노재동 구청장 : 은평 뉴타운 아파트 분양가 문제에 대해 자치구가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다. 고분양가와 관련, 언론의 방향이 잘못됐다. 은평 뉴타운은 고품격 주거환경을 만든다. 그렇게 무리하게 분양가를 책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들을 뽑아준 서민들은 무엇을 느낄까? “설혹 낙원을 건설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들의 것이지 우리 것이 아니었다. 낙원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우리에게는 주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를 낙원 밖 썩어가는 쓰레기더미 옆에 내동댕이칠 것이다.” 200쇄를 넘긴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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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내땅 50평이면 왜 추가 분담금 없이 50평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하나. 정부 차원에서 최소한 내땅 평수 만한 아파트를 추가 분담금 없이 입주 할 수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