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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년 8 월 4 일 토요일 무더운 맑음
온다는 비는 결국 내리지 않고
목말라 타들어가는 작물들의 힘겨운 배웅속에
풀천지 가족의 짧은 휴가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구름산 아우 부부와 함께 하기로 한
남도 맛기행인 셈인데
다섯가지 진미 ( 민어 꽃게 갈치 낙지 홍어 ) 를 자랑하는
풀천지의 고향 목포로의 가슴 벅찬 여행이었다.
구름산 아우 부부는 다음날 ( 4 일 토요일 )
서울에서 세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KTX 로
목포역에서 11 시 반 도착 시간에 합류하기로 하고
풀천지 가족은 스타렉스를 몰고
전날 ( 3 일 금요일 ) 저녁 8 시 반경에
일찌감치 출발하였다.
가는길에 영주에서 만당해장국으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흥겨운 기분으로 한참을 가는데
가고자 하는 방향이 거꾸로이다.
원활하고 편안한 여행을 위해
구태여 필요없을것 같은 내비게이션까지 구입하여
공을 들인 경로 탐색대로 신나게 가고 있었는데
내비게이션 아가씨의 엄청 친절한 안내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해장국집으로 방향을 틀어 잠깐 식사하였을 뿐인데
그만 경로를 통째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봉화에서 목포까지는 장장 6 시간 반 이상이 걸리는
440 km 남짓의 국토 횡단과도 같은 긴 여정인데
지름길로 추정되는 88 고속도로 경유지는
사고 다발지역이라 피하기로 하고
상주를 거쳐 대전을 경유하여
중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를 거쳐
서해안 고속도로까지
조금 돌아가더라도 안전한 코스를 택하여 놓은 것인데
잠깐 경로를 무시한 풀천지 가족을
자존심 강한 요즘 젊은 아가씨처럼
제멋대로 심술을 부려버린 것이다.
쾌적한 여행을 위하여
안동 IC 에서 다시 경로 탐색을 하여
북상주 IC 로 방향을 잡고
전혀 열받지 않으려 애를 쓰면서
부지런히 달려 새벽 다섯시 경에
오매불망 그리던 목포 앞바다에 도착하게 되었다.
마음같아선 아무곳에서나 술한잔 하고 싶었지만
속이 편안해야 끝없이 이어지는 맛기행을
충분히 즐길수 있으므로
찜질방에 들러 조신하게
먼길 여독부터 풀기로 한것이다.
다음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났는데도 시간이 조금 남아
풀천지의 모교 유달 국민학교를 잠깐 들리기로 하였다.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어린시절 고향의 아름다운 추억은
평생 애절한 그리움으로
가슴 따뜻한 세월의 어머님이 되어
힘겨운 우리네 인생을 위로하고 지켜주는 힘이 되어 줄것이다.
개구쟁이 어린 소년이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고향을 떠나 서울로 전학을 떠나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악착같이 살아가면서
가슴 한켠에 한시도 잊은적이 없던
교장선생님 훈화말씀 듣던
정겨운 교정에 돌아와
긴 세월을 견디고
짧은 한숨으로 구슬피 울어대는
매미들의 회한을 가슴에 안아본다.
가난했던 그 시절은
평생토록 모질게도 그립고도 아름다웠는데
현관을 지키던 박제된 호랑이는
그자리에 그대로 남아
허망한 세월을 꾸짖고 있었다.
풀천지가 떠나온 세월만큼
모교를 지켰음직한 중년의 여선생께서
40 여년만에 모교를 찾은 어리석은 풀천지를 위하여
지난 세월의 발자취를 설명해 주신다.
현관 복도 벽면에는
고향 떠난 탕아들을 위하여 마련되었음직한
모교의 성장 연표가 한눈에 알기 쉽게 가슴에 젖어온다.
일본인 거류민단 목포심상소학교로 개교될 당시
1898 년 학급수 1 학생수 24 명의 전교생으로 시작하여
1945 년 해방과 함께 일본인 교장으로부터 학교 인수
유달공립학교로 개교하여
유달 국민학교로 개칭하게 되었고
목포에서 가장 큰 국민학교로
고향의 역사를 함께 해온 것이다.
풀천지도 이제사 처음 보는 학교 연혁을 살펴보니
풀천지가 태어날즈음 1950 년대를 거치며
학생수가 5,000 명 남짓에 이르게 되었는데
풀천지의 어린시절을 가난한 풍요로 이끌었던
오천명 남짓의 학생들은 다 어디로 가고
빌딩과 아파트로 꽉 채워진
화려하게 탈바꿈된 겉모습과는 달리
금년도 학생수가 삼백명도 채 되지 않는다 한다.
깜짝 놀라 반문하는 풀천지에게
그나마 애들이 얼마나 빈곤한 상황에 처해있는지
안타까움을 토로하는데
사업에 성공하여 금의환향한
성공한 모교생이 되지 못한
소박한 농부 풀천지는
학부모와 선생들의 의식이 바뀌어
소박한 삶으로의 가치가 바뀔수 있다면
어린애들의 빈곤이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수 있음을 역설하며
혹시나 필요했음직한 후원금 대신
스스로 부끄럼없는 농부의 자격증을
대신 남겨두고 돌아왔다.
키 작은 아버지의 머리 높이 만큼 밖에 되지 않았던
목포역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남도를 아우르는 통로역 답게
국제 공항 대합실같은 면모로
돌아온 탕아를 낯설게 반겨주었다.
코흘리개 어린 시절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께서
서울로 발령을 가시고
몇달만에 한번씩 목포에 내려오실때
7 남매 줄줄이 목포역에 마중나갔던
그리운 추억이 먹먹하게 젖어온다.
그때는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무엇보다 소중했던 시절이었지 않았는가 ?;
이미 한가족보다 더 진한 우정으로 맺어진
구름산 아우 부부를
추억의 고향역에서 맞이하는 감회를
어느 누가 짐작할수 있을 것인가 ?
몇시간이고 연착이 될때마다
추위에 덜덜 떨며 기다리던 추억의 세월을 지나
구름산 아우는 KTX 로
풀천지는 아들이 운전하는 스타렉스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도착된 목포역에서 반가이 만나
맛 기행에 대한 얘기부터 신나게 나누어본다 ~
남도의 진미 목포의 맛기행을
여러차례 다녀온 경험이 있는 구름산 아우가
미리 인터넷으로 충분히 검색한 결과를 합하여
첫번쨰 맛기행은 꽃게 무침과 갈치 전문점인
초원식당으로 정하게 되었다.
마침 싱싱한 갈치를 직접 손질하고 있었는데
일단 한번 냉동되면 맛이 떨어지는 생선이기에
과연 목포까지 내려와야지
이렇게 싱싱한 맛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신기하게 구경하는 도시 촌놈들에게
주인 여자는 한술 더떠
생갈치 한마리에 자신들이 구입해온 가격이 6 만원씩이라며
갈치찜의 진수를 자신있게 보여줄 태세이다.
자식을 낳은 주인여자의 결혼한 딸들이
풀천지의 유달국민학교 후배들이다.
괜히 반가운 마음에 메뉴판을 살펴보니
목포 오대진미중
갈치와 꽃게를 한꺼번에 맛볼수가 있게 되었다.
이번 풀천지 가족의 목포여행은
나름대로 가족 여행의 의미가 큰 셈이었는데
이미 한 가족과 다름이 없는 편안함으로
깊은 정이 흠뻑 든 구름산 아우 부부를
풀향기 아내가 강력 추천하여
즐거이 함께하게 된것이다.
맛있는 여행을 위하여 ~ 건배 ~
흐미 ~ 맛기행 사진을 그토록 신경썼는데
깜박하고 사진찍기전에
처음부터 먼저 먹어버리고 말았다 ~
요즘 신종 맛기행 블로그에서
음식 소개를 하면서
다 먹고난 빈접시만 보여주고 만다는데
우린 다행히 비빔밥이라도 보여줄수 있게 되었다.
곧이어 기대하던 갈치찜이 나오게 되었다.
일단 맛부터 조심스레 탐색해보기 위해
꽃게무침덮밥 3 인분과
갈치찜 3 인분을 먼저 시켜보았는데
요즘 제철이 아닌 꽃게무침의
2 % 서운한 맛을 말끔히 잊게 해줄
입에서 살살 녹는 놀라운 맛의 갈치찜과
무엇보다 풀천지가 먹고 싶었던
젓갈과 게장 남도의 밑반찬들의 깊은맛이
어찌나 맛깔스레 입안에 감겨오는지
추가로 음식 시키는걸
깜빡 잊을만큼
실로 오랫만에 제대로된
깊은 음식맛에 흥건히 취해보았다.
이번 목포 맛기행의
첫번째 입맞춤은
대단히 짜릿한 셈이 되었다.
풀천지와 구름산이 만나면
일정한 식사의 규율이 전혀 필요가 없게 된다.
세발낙지와 함께
목포의 최고진미로 손꼽히는 홍어집으로
바로 출발하였는데
마침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구름산 아우 제수씨는
뒤늦게 어쩌다 맛본 홍어의 맛에 환장하는
풀천지 가족들과 달리
홍어를 먹을줄 모른다는데
제대로 된 홍어를 먹어보면
생각이 바뀔수도 있었을텐데
여름 홍어는 맛이 떨어지기도 한 철이기도 하여
결국 홍어는 안타깝게도 기회를 잡지 못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홍어 대신 민어를 먹기로 하였다.
민어 하면 당연히 예쁜이님이 소개해준
유명한 영란횟집이 최고이지만
구름산 아우가 이미 가본곳이라
맛기행의 취지를 살리는 의미에서
또다른 민어 맛집 용당골을 가보기로 하였다.
서울에서 목포로 시집오자마자
횟집을 하게 되어 목포 아줌마가 다 된
젊은 주인여자의 구수한 입담으로
맛깔스런 남도 밑반찬들이 푸짐하게 어울리는 가운데
겨울이면 방어
여름이면 최고의 횟감으로 꼽히는
민어회의 싱싱한 맛은
쫀득한 부레와 쫄깃한 뱃살 껍질 맛과 어울려
여름철 회맛의 진미를 제대로 살려주었다.
상에다 다 놓을수 없을만큼
주인여자의 푸짐한 몸매만큼이나
넉넉한 밑반찬들로 먹는 즐거움을 안겨주었지만
무언가 결정적인 허전함을 채우지 못하고
영란횟집을 다음에 한번 가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배터지게 즐겼으니
눈터지게 즐길 차례가 되었다.
저멀리 목포대교가 보인다.
사람들은 모를것이다.
목포대교가 세워지는 순간에
아름다운 추억이 슬프게 사라졌다는 것을...
어렴풋한 기억에
고기잡는 어선을 중선배라 불렀던 기억이 난다.
힘든 농부들 보다
더욱 위험하고 고달픈 어부들이
목숨을 걸고 파도에 잠기도록 생선들을 가득 싣고
항구에 들어서면
목포항 선창가 유곽들의 창녀들이
분화장 짙게 하고 마중 나오곤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불쌍한 어부들에게
가련한 창녀들의 어설픈 눈웃음이
누구보다 더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었을성 싶다.
이번 여행은 풀향기 아내 덕분이다.
풀향기 아내의 주장대로
더블캡 트럭 대신 스타렉스를 구입하게 되었고
그동안 미루기만 했던 풀천지의 고향 목포여행을
망설임없이 기분좋게 떠날수 있었고
풀천지 가족과 만날때마다
가장 맛있는 즐거움을 듬뿍 안겨 주었던
구름산 아우 부부와 이번 여행을 함께 하자는 제의 역시
풀향기 아내의 탁월한 선택 덕분이었다.
과연 그지없이 훌륭한 선택이 아닐수 없었음을
목포 여행 내내 행복하게 느끼어 보았다.
목포 대교를 자동차로 건너 보는데
구비구비 작은 섬들이
이룰수 없는 꿈들이 되어 끝없이 이어져 있다.
누군가 자그마한 섬에
언젠가 편안히 쉬고 싶다면
못다한 욕심들을 아낌없이 버려야 할것이다.
무엇을 위해 만들어 놓았는지
목포 대교 가는길은
멈추어서도 안되고
천천히 쉬어가서도 안되게 되어있다.
인생의 종착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
사람들은 끝없이 떠나기 위해
돌아올 길을 영원히 잃게 되면서
삶과 죽음의 종착역 조차 알지 못할 뿐이다.
목포앞 작은 바다를 꽉 채우고
크나큰 유람선이 떠돌아 온다.
알아보니 목포와 제주를 정기 운항하는 쾌속 여객선이다.
목포에서 제주까지 3 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선전해 놓고
실제 상황은 4 ~ 5 시간이상 걸려
고객들의 불만이 쏟아지는 모양이다.
몇날 며칠 걸려도 가기 힘든 제주를
꼭 3 시간만에 가지 않으면
큰 문제가 되는 것일까 ?
과대선전 현혹하는 상술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효율만 쫓아가는
지나치게 편리한 이기주의도
더욱 큰 문제임을 어찌 자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
인생의 여행은 빨리 가려 할수록
소중한 아름다움들을 놓치고 마는 법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시간에
하나뿐인 우리 인생의 시간을
얽매여갈 필요가 무어 있겠는가 ?
바다낚시 하는 이에게 고기가 잘 잡히냐고 물어보니
낮에는 숭어와 학꽁치 밤에는 아나고가 잘 잡힌다 하여
얼만큼 잡았느냐고 물어보니
아직 한마리도 못잡았댄다.
낚시꾼의 빈 낚싯대에는
이루지 못한 인생의 꿈이 걸려있고
공을 쳐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우리네 인생의 꿈이라는게
이루지 않아도 되고
악착같이 이룰 필요도 없는
어느 낚시꾼의 허망한 꿈과 다를게 없을 것이다.
지나는 길에 문득 못난이 빵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40 년 전통이라는 간판 문구에 끌려
추억을 더듬어보려 한것인데
문이 닫혀 있다.
오랫만에 찾은 고향 목포의 추억도
대부분 문이 닫혀있고
대신 서울 위성도시와 다름없는
섣부르게 발전된 도시의 모습들만
화려하게 문을 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추억의 문을 찾으려면
숨어있는 옛맛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 거려볼수밖에 없는 것이다.
못난이들만 살아가는 세상에
잘난이들의 허황된 꿈이
추억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유달산이 있는 유달 국민학교를 나오셔서 유달나시군요. ㅎ구경 잘 하고 갑니다.
그런 셈이 되었군요 ~
오랫만에 고향의 추억을 품에 안아보니
유달나더군요 ~
목포에 정착하셨으면 좋았을걸
가끔 들어와서 멋진구경 잘하고 있습니다.
늘
저는 목포가기전 송정리입니다.
좋은 기회를 지나쳐 버렸군요.
이젠 신이쁜님이 아무때고
봉화 나들이를 한번 하시면 참 좋겠군요 ~
정겨운 인연 기대하며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