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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와 함께 공차기를 하고 있는 나 의원. 그는 유나가 자신감을 갖고 몰두할 수 있는 취미와 직업을 찾아주는 것이 큰 과제라고 말한다.
“탄핵 이후 나라가 두 동강으로 나눠지는 것을 보고, ‘아,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정치가 화합하는 쪽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편 가르기로 인한 극한 대치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더라고요. 그때 꼭 국회의원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마침내 지난해 4월 총선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단 그가 국회에 들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장애인특위 설치를 주장한 것이다. 보건복지위에서 장애인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보건·복지 문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지난해 7월 국회의원들의 연구모임인 ‘장애아이, We Can’을 만든 그는 “다행히 지난 연말 (장애인특위 설치에 대한) 여야 합의를 이끌어 냈다”고 말했다.
“인식의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만들었어요. 장애인이나 장애아에 대해서 많이 알고 이해하면 모든 정책을 입안할 때 자연스럽게 배려하게 되지 않을까 해서요. 모임에서 공청회를 열어 장애인 조기교육이나 조기치료의 문제, 학령기 장애아의 체육활동 등을 다루기도 했어요.”
부모만큼 아이의 상태를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 의원은 또 특수교육에 부모가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신참 국회의원으로 의욕을 갖고 정신없이 보낸 지난 1년을 돌아보면 그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소홀했던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정치인이 된 후에는 귀가시간이 늦어져서 평일에 집에서 저녁을 먹는 날이 거의 없어요. 남편과의 관계도 같은 법조인일 때와는 사뭇 달라졌죠. 옛날에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기 때문에 참 편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쪽 분야에 대해 남편이 전혀 모르니까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데 대화시간은 오히려 줄어들고…. 아이들에게도 항상 미안하죠. 지난 연말, 12월24일이었던 것 같아요. 저희는 요즘도 네 식구가 한방에서 자거든요. 누워서 유나한테 ‘유나야, 너 엄마한테 바라는 것 한 가지만 이야기해’ 그랬더니 ‘엄마 아주 가끔 일찍 와’ 하더라고요(웃음).”
일하는 엄마를 이해하며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유나를 보면 나 의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맙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그는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는 유나가 간혹 밖에서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았다며 시무룩해할 때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가끔은 차라리 딸과 자신이 바뀌었으면 하고 기도한다고.
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아이보다 하루만 늦게 죽는 게 소원’이라고. 딸의 미래를 생각하면 나 의원도 한숨이 절로 나온다고 한다. 그는 당장 내년에 유나를 어떤 중학교에 보낼 것인가를 걱정하고 있다. 요즘은 대안학교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대부분 지방에 있고,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초원이 엄마가 초원이에게 ‘엄마는 너보다 하루라도 늦게 죽는 게 소원이야’ 하고 말하는데 저 역시 제가 없을 때 누가 유나를 돌볼 것인가, 유나가 과연 독립적으로 살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고민이죠.”
나 의원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악용해 손가락질당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지만 앞으로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며 자신과 같은 고민을 더 이상 한 개인이나 가정이 짊어지고 갈 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해결해줄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