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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몽고의 별~ 5~
밝은 햇빛 아래 그 사람의 얼굴을 보자 포석약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그 사람, 이목이 그림 같
이 수려하고 미소를 머금은 얼굴. 바로 몇 달 전 눈 속에 스러져 있는 것을 구해 주었던 그 미모의 청년이었다.
[여기가 어딥니까? 남편은 어찌 되었나요?]
남자는 손을 설레설레 흔들며 말하지 말라는 시늉을 했다.
[제가 친구들과 함께 마침 이곳을 지나다 관병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는 것을 보고 공교롭게도 은인을 구할 수 있
었습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계속 말을 했다.
[지금 관병들이 우리를 쫓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잠시 농가를 빌어 쉬고 있는 중인데 외람 되게도 제가 은인
의 남편이라고 속일 테니 절대로 탄로가 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포석약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남편은 어찌되었나요?]
[지금 몸이 쇠약하시니 가만히 계십시오. 좀 쉬시고 몸이 회복되면 제가 천천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포석약은 그의 말을 듣고 걱정이 됐다. 아무래도 남편 양철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만 같아 불안하기만 했다.
[그....그이가.... 어찌 되었나요?]
그러나 그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조급해 하셔도 소용없습니다. 몸을 돌보셔야 할 때입니다.]
[제 남편이 죽었나요?]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관병들에게 살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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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약은 이 말을 듣자 눈앞이 캄캄, 다시 정신을 잃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정신이 들었을 때 그녀는 흐느
껴 울고 있었다. 그 사람이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포석약은 계속 흐느꼈다.
[어떻게 죽었습니까?]
[부군의 나이는 이십여 세. 키가 크고 어깨가 우람하며 손에는 긴 창을 들고 있습니까?]
[네 바로 그 사람입니다.]
[내가 때마침 세 명의 관병과 싸움을 하고 있을 때 보니 한 명의 관병이 슬그머니 그의 등뒤로 돌아가 한 창에 찔
러 버리고 말았습니다.]
포석약은 남편에 생각이 미치자 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날 온종일 포석약은 물 한 모금, 죽 한 술 뜨지 않고 남
편을 따라 굶어 죽으리라 결심했다. 그런데 문제의 젊은이가 부드럽고 따뜻하게 종일 옆에 붙어서 재미있는 얘기
를 들려주려고 했다. 포석약도 자기 태도가 지나치다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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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함을 여쭈어 보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제가 곤궁에 빠진 것을 알고 구해 주셨나요?]
그 사람은 잠시 머뭇거렸다.
[제 성은 완안(完顔)이요. 이름은 열(烈)이라 합니다. 부인과 이렇게 만난 것도 천생 연분인가 합니다.]
포석약은 <천생 연분>이라는 말을 듣자 얼굴을 붉히고 돌아누워 버렸다.
그러나 마음속에 왈칵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어 다시 물었다.
[당신은 원래 관병들과 한 패가 아닌가요?]
[아....아닙니다.]
완안열은 당황해 했다.
[당신이 관병들과 함께 도사를 잡으러 왔다가 부상을 입지 않았나요?]
[그날 저는 정말 재수가 없었죠. 나는 임안부로 가려고 그 마을을 지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날아온 화살에 그
만.... 만약 부인이 구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귀신도 모르게 죽고 말았을 겁니다. 그날 그래 무슨 도사 때문에 그
랬나요?]
[아, 길을 가다가 그런 일을 당하셨군요. 저는 도사를 잡으러 온 일행인 줄 알고 구해 드리지 말까 했었는데....]
그러면서 포석약은 그날 관병들이 구처기(丘處機)를 어떻게 잡으려 했고, 어찌 어찌 하다가 참패를 당한 경과
를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완안열은 그녀가 말하는 동안 멍하니 정신 나간 사람처럼 넋을 잃고 바라다보고만 있었다.
포석약은 뒤에야 그의 그러한 태도를 눈치챘다.
[아니 도대체 제 말씀을 듣고 계신 거예요?]
[예 예, 나는 지금 우리가 어디로 달아나야 관병들에게 잡히지 않을까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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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약은 눈물을 흘렸다.
[난... 남편이 저 세상으로 가 버렸으니 나 혼자 살아 무얼 하겠습니까? 혼자 가세요.]
완안열은 정색을 했다.
[부인! 남편께서 관병들에게 살해되셨는데 원수 갚을 일은 생각도 않고 죽을 길만 찾으신다면 남편이 지하에서
눈을 감으실 수 있겠습니까?]
[약하디 약한 아녀자의 몸으로 어떻게 원수를 갚는단 말입니까?]
[제가 재주는 없사오나 부인을 도와 원수를 갚아 드리겠습니다만, 원수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겠나요?]
[관병을 인솔하던 무장은 단천덕(段天德), 얼굴에 파란 흉터가 있는 사람예요.]
[이름을 알고 있으시니, 일이야 그리 어렵지 않겠습니다.]
그는 부엌으로 들어가 흰죽 한 그릇과 소금에 절인 계란을 가지고 돌아왔다.
[몸을 돌보시지 않고 어찌 원수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포석약은 지당한 말이라고 생각되어 죽 그릇을 받아 들고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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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포석약은 옷을 단정히 입고 침대에서 내려와 머리에 빗질을 하고 한 조각의 흰 천을 찾아 흰 꽃을
만들어 머리에 꽂고 남편의 소복을 대신했다.
이때 완안열이 들어와,
[길에서 관병들이 사라졌으니, 우리도 이제 떠납시다.]
포석약이 그를 따라 집 밖으로 나오니 완안열은 속 주머니에서 몇 닢의 돈을 건네 집주인에게 주자 주인은 말
두 필을 끌어내었다. 포석약이 탔던 말은 화살에 맞았었는데 완안열이 상처를 치료해 준 것이다.
[어디로 갑니까?]
완안열이 눈짓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보는 데서 더 묻지 말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를 부축, 말에 올려 태우고 2필의 말은 가지런히 북쪽을 향해 떠났다. 10여 리를 지나자 포석약이 물었다.
[나를 데리고 어디로 가시나요?]
[우선 조용한 지방을 찾아 지내면서 혼란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다 당신 남편의 시체를 찾아 안장하고 서서히
그 단천덕이란 자를 찾아 원수를 갚읍시다.]
포석약은 성격이 부드러운 사람이라 자기보다 더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는 완안열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
[완안 상공(相公), 나는 어떻게 이 고마운 신세를 갚아야 하나요?]
[내 생명은 부인께서 구해 주신 것이니 내 일생을 부인께 바쳐 분골쇄신함이 마땅히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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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하루종일 달려 저녁 때 장안진(長安鎭)에 닿아 여인숙에 들었다.
포석약은 마음이 불안하여 슬그머니 구처기가 주고 간 단검(短劍)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결심했다.
(만일 저 사람이 예의 없이 굴면 그땐 이 단검으로 자살할 수밖에 없다.)
완안열은 여인숙의 심부름꾼을 불러 두 다발의 볏집을 가져오라고 한 뒤, 그 심부름이 물러가자 방문을 닫아
걸고 볏짚을 방바닥에 깔고 누워 포석약에게 잘 자란 인사를 한 뒤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포석약의 마음은
계속 두근거리기만 했다.
문득 생각이 죽은 남편에 미치자 한숨만 쉴 뿐, 촛불도 끄지 않고 포석약은 단검을 손에 꼭 쥔 채 옷을 입고 침대
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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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 章. 모여드는 괴한들
다음날 아침, 포석약이 일어났을 때 완안열은 벌써 일어나 마구를 챙겨 놓고 아침 식사까지 준비해 놓았다. 밥
상에는 닭고기 조림, 돼지고기, 순대, 구운 생선과 참중나무순을 넣고 끓인 향기가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죽 한
사발이 놓여 있었다.
밥을 다 먹자 여인숙의 하인이 보따리를 하나 들고 들어왔다. 이때 완안열은 밖에 나가고 없었다.
[이게 뭐에요?]
[상공(相公)이 아침 일찍 시장에 나가 사오신 옷입니다. 옷을 갈아입고 길을 떠나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포석약이 보자기를 끌러 보니 그것은 소복 단장할 하얀 상복이었다.
'젊은 남자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세심하고 빈 틈이 없담.'
새 옷을 갈아입으니 정신까지 산뜻해지는 듯했다.
두 사람이 말을 타고 가다가 저녁나절 협석진(峽石鎭)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앞에서 처참한 비명이 들렸
다. 포석약은 놀란 새가슴이 되어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려 했다.
[무서워할 것 없소. 우리 건너가 구경이나 합시다.]
완안열이 웃으며 말했다. 길 모퉁이를 돌아서자 5명의 병사들이 손에 긴 칼을 들고 노인과 장정, 그리고 젊은 여
인의 길을 막고 있었다. 그 중 2명의 병사가 노인의 보따리를 뒤져 돈을 자기들 주머니에 쑤셔 넣고 있었다.
다른 세 놈이 젊은 여자의 가슴을 만지며 희롱하니 여자는 울며 소리 질렀다.
[도적 같은 관병들이 또 무고한 백성을 괴롭히고 있군요. 자 우리 빨리 가요.]
포석약이 서두르자 완안열은 웃고만 있다. 이때 그 무리 중의 한 녀석이 포석약과 완안열을 보고는 소리 질렀다.
[무얼 하는 연놈들이야? 게 섰거라!]
완안열은 달아나지 않고 오히려 녀석 앞으로 나섰다.
[네놈들은 누구의 부하들이냐? 내 앞에서 썩 꺼져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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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병사들은 외적과의 싸움에선 늘 지기만 하면서도 백성에 대한 횡포는 말이 아니어서 노략질과 부녀자 간
음 등에는 누구에게 뒤떨어질세라 날뛰는 판이었다.
그들은 완안열이 혼자요 포석약이 또 보기 드문 미인이라 마침 잘 걸려들었다고 생각했다. 그 중 한 녀석이 휘
파람을 불자 각기 병기를 들고 대들었다.
포석약이 큰일났구나 걱정하고 있는데 갑자기 쉭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중 한 명이 가슴에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완안열의 손에는 금빛 찬란한 활이 들려 있고 그가 화살을 당길 때마다 한 놈 한 놈 쓰러져 네 놈이 계속 쓰러졌
다. 마지막 남은 한 녀석이 사태가 불리함을 알고 몸을 돌려 줄행랑을 쳤다.
완안열은 빙그레 웃으며 활에 화살을 재우면서도 쏘지 않았다. 그가 5, 60보쯤 달아났을 때 완안열은 고개를
돌려 포석약을 보며 웃었다.
[저놈이 세 발짝만 더 가거든 놈의 목을 맞힐 테니 보시오.]
그놈은 죽어라 달리기만 하는데 화살이 시위를 떠나더니 유성처럼 날아 놈의 목 뒤로 꽂혔다.
[정말 활을 잘 쏘시네요!]
포석약이 칭찬하자 완안열은 몸을 날려 말에서 내렸다. 다섯 명의 병사들 몸에 꽂힌 화살을 뽑아 활통에 다시
챙기며 말에 올라 길을 떠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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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돌연 길 왼쪽에서 관병 한 떼가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포석약은 또 간담이 싸늘해졌다.
[아이쿠 큰일났구나!]
완안열이 채찍을 들어 말 엉덩이를 후려치자 두 필의 말은 달리고, 뒤에 오던 관병들은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병사들을 보자 소리를 질렀다.
[저놈들을 잡아라!]
말을 달려 쫓기 시작했다.
포석약이 한참 달리다 뒤를 돌아보고 혼비백산했다. 뒤를 쫓는 관병은 줄잡아도 1천여 명. 투구와 철갑으로 무
장한 폼이 관병 가운데서도 정예인 듯한데 완안열의 활 솜씨가 제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혼자서야 어찌 당해 낼
수 있으랴. 포석약이 타고 있는 말은 며칠 전 화살을 맞은 일이 있었다.
무리하게 달린 탓으로 상처가 터져 선혈이 흐르며 점점 속도가 느려지는 데 관병들은 바짝 뒤를 쫓아왔다.
완안열이 이를 보고 포석약의 말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려 팔을 뻗어 포석약을 자기 말에 태우고 다시 달리기 시
작했다.
그때 10여 기의 말이 돌연 지름길로 달려와 길을 막았다. 완안열은 길이 막힌 것을 보자 어쩔 수 없이 말을 멈췄
다. 포석약은 놀라는데 완안열은 오히려 태연하다. 한 명의 무관이 손에 큰 칼을 들고 말을 달려 앞으로 나섰다.
[말에서 내려 오랏줄을 받지 않고 무얼 꾸물거리느냐?]
[너희들은 한승상(韓承相)의 친병들이냐?]
완안열이 웃으며 묻자 무관은 어이가 없었다.
[네놈은 누구냐?]
[네가 나를 몰라보겠거든, 이 편지를 봐라.]
그 무관이 눈짓을 하니 병사 한 명이 와 편지를 받아 가고 무관이 펼쳐 보다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말에서 내
려 땅에 엎드렸다.
[소관(小官)이 대인(大人)을 못 알아 뵈었으니 만 번 죽어 마땅하오나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소서.]
<다음은 소설 영웅문>~제1부~몽고의 별~ 6
■ 출처: 김용의 소설 영웅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