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前 경부고속도로의 기적…그때처럼 다시 또 `하면 됩니다`
경부고속道 50돌…박경부 기념사업회장 인터뷰
- 공사감독으로 부임했지만 현장서 살다시피 하며 근무
- 힘들어서 `아오지탄광` 별명 그래도 근성·성공 DNA생겨
- 77명 희생자 위령사업 추진 청년들에 희망도 전하고파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나라 국민의 스승이에요.
대표적인 사회간접자본(SOC)으로 산업 발달과 경제 발전에 기여했고 온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불어넣었죠."
대한민국 경제의 압축적인 고도성장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린다.
한강의 기적을 연출한 결정적 장면 중 하나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1970년 7월 7일 개통한 '경부고속도로'를 꼽는다.
1인당 국민소득이 142달러에 불과했던 1967년 당시 정부 예산의 23.6%인 429억7300만원을 투입한 '초대형 국책사업'이었고
시기상조, 졸속, 환경파괴 등 반대 여론이 많았지만 2년5개월간 900만명이 참여한 대역사(大役事)였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15시간 이상 걸리던 서울~부산 간 소요시간은 5시간대로 단축되며 물류와 산업구조에 대대적인 변혁을
가져왔다. 202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 50년을 맞아 서울 동작구의 한 카페에서 매일경제와 만난 박경부 경부고속도로기념사업회
회장(80)은 50여 년 전 공사 현장과 개통식에서 있었던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1968~1970년 경부고속도로 대전공구 감독관으로 현장을 누빈 박 회장은 대한민국 산업화에 일조했다는 자부심으로
한평생을 살아왔다.
1968년 2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울 말죽거리에서 경부고속도로 공사 첫 삽을 떴을 때만 해도 박 회장은 도로 건설과는
인연이 없었다.
1966년 8급 공무원으로 공직을 시작한 그는 항만시설국에 근무하며 프랑스 기술연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출범 직후부터 높은 업무 강도로 '아오지 탄광'에 비유된 경부고속도로건설사무소에서 일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사업에 인력난을 겪던 건설부가 "각 국당 2명씩 인력을 보내라"는 차출령을 내리면서 그의 인생은 새 국면을 맞았다.
박 회장은 1968년 10월 경부고속도로 대전공구 시험계장으로 발령을 받는다.
그는 대림산업이 시공하는 19.3㎞ 구간 교량건설과 포장공사 감독관을 맡았고,
이후에는 대전육교~당재터널 33.7㎞ 구간의 포장공사도 감독했다.
당시 공사는 익히 알려진 대로 '속도전'으로 이뤄졌다. 공기 단축을 위해 갖가지 방법이 도입됐다.
박 회장은
"통상 하나의 공정을 마치면 시공사에서 감독관에게 점검을 요청하지만 나는 틈틈이 현장에서
그때그때 현장을 확인했다"면서
"시공사가 철근을 다 조립한 후 철근 간격이 안 맞으면 이를 뜯어내고 다시 작업을 해야 하지만 조립할 때
현장에 가서 규격을 봐 주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
터파기를 하면 표고 측정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시공사가 의뢰해 오기 전에 미리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현장소장이 육군 중령이었는데, 공기를 단축하니 나를 최고로 봤다.
그렇게 일하다 보니 내가 유명 감독관이 돼 버렸다"고 회상했다.
겨울철 연탄을 피워 콘크리트를 양생하는 방식도 경부고속도로 공사를 계기로 보급된 것이라고 한다.
포장 작업을 하며 바쁠 때는 새벽 6시에 출근하고 자정이 다 돼 퇴근하기를 반복했다.
현장 근로자들은 3교대로 근무를 하면 되지만 감독은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3교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많았다.
그는 "당시 20대였으니까 젊은 혈기로 밤낮없이 일을 했다"고 덧붙였다.
경부고속도로 공사를 계기로 박 회장의 인생 진로는 항만기술자에서 도로기술자로 바뀌었다.
박 회장은 "고속도로 작업을 하다 보니까 성취감이 생겨 현장 작업을 마치고도 항만국으로 안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남해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 통일로 건설현장을 누볐고 도로계획과장으로서 전국 국도건설 계획을
직접 수립하고 대전지방국토관리청장을 지내기도 했다.
퇴직 후에도 한국방재협회 회장을 지내는 등 토목과 인연을 놓지 않았다.
그는 2014년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한 간부 등으로 구성된 '7·7회' 마지막 회장에 취임했다.
7·7회는 매년 7월 7일 금강휴게소 부근에 설치된 위령탑에서 당시 공사 중 사망한 77명의 순직자를 기려 왔다.
40여 년간 사적 모임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7·7회는 지난해 사단법인 '경부고속도로기념사업회'로 거듭났다.
기념사업회는 준공 50년을 맞는 202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기여한 580여 명분의 명패석을 준공탑에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기념사업회를 꾸린 이유 중 하나는 청년 세대와의 소통도 있다.
막냇손자가 2020년 스무 살이 됐다는 박 회장은
"청년들에게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져라, 적극적으로 해라, 부지런해라'라고 당부하고 싶지만
젊은 사람들한테 그렇게 얘기한다고 듣겠느냐"면서
"이런 얘기를 어떻게 청년들에게 쉽게 전달할지 연구해야 한다.
기념사업회는 그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윤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