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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새물 농장
아브라함은 75세에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을 개척했다는데 이제 내 나이, 3월이면 만 75세이니 결단을 내려야 한다. 몇 천년 전 사람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는 시대만 다를 뿐 누구든 인간 본성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니 나도 그 옛날 어른과 비슷한 심리 상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교도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지움으로써 죽으면 끝이라는 단정, 말하자면 그러한 세속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아닐까. 그렇게 함으로써 생과 사의 관계를 원활하게 연결하는 작업이리라. 과거나 현재나 시간의 비중은 같은 것이니, 성경에서 일어나는 사건도 오늘의 일로 간주하고 예수님 말씀을 살아 계신 어르신의 말씀으로 믿고 경청하는 것이 독실한 신앙이리라.
하지만 그런 신앙을 갖지는 못한 나에게까지 가장 이야기를 많이 해 주신 분은 예수님이다. 선친이 목사님이어서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들었으니 그 시간을 더해 보면 엄청난 시간일 것이다. 그런 연유로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아브라함의 결단력을 본받아 입버릇처럼 ‘봄새물’농장을 개척하겠다고 말한 지가 40여 년인데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으니 이러다가는 꿈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일단 떠나야 한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젊어서부터 내 꿈은 오전에 일하고 오후엔 독서도 하고 글을 쓰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었다.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조화라는 면에서 이상적인 생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긴 지금도 그렇게 지내고 있긴 하다. 문학회 활동-카페에 글 올리기도 하고 가끔 피아노 연습을 하는데 두 가지 다 취미 생활로 형체와 빛깔이 뚜렷한 시간이다. 만일 ‘피아노 두드리기’가 없었다면 역동성도 없고 무덤덤하게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을 것이다.
컴퓨터 작업을 할 때는 KBS ‘콩’을 클릭하여 음악과 함께 흘러가는 시간을 만끽한다. 시간이 선물하는 다양한 맛, 음악은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2016년부터는 퇴촌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꿈에 좀 넓은 농장을 그리면서도 피아노에 시간을 많이 쏟고 있다. 하지만 농장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작은 농장을 마련한다면 주말은 정과 함께 보내고 주중엔 틈틈이 밭일을 하며 피아노도 계속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어려서부터 원래 가졌던 꿈-너무나 막연했지만-은 농부였다. 존경하던 분은 씨 없는 수박을 만드신 우장춘 박사님이었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우리 가족이 강원도 북평-지금의 동해시 바닷가로 피서를 가서 민박을 하고 있을 때 우장춘 박사님이 돌아가셨다는 라디오 뉴스--1959년 8월 11일-를 듣고 큰 상실감에 휩싸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장춘 박사님처럼 살고 싶어서 나는 서울대학교 농과 진학에 뜻을 두었다. 하지만 감상적인 진로 의식을 가졌던 까닭에 대학에 입학할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필수적이고 구체적인 학업과 꿈을 연결시킬 능력이 없었다. 꿈도 그 실현을 위한 준비도 엉성했던 것이다. 꼼꼼히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철저한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은 꿈을 실현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는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20여 년이 흐른 1979년에 상일여고 교사로 부임하고 선린촌이라는 양계 마을에서 살게 되면서 김성도 장로님을 이웃으로 만났는데 청와대에 씨 없는 수박을 납품한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분은 바로 우장춘 박사님의 제자로 건국대학교에서 근무했던 분이었다.
박사님한테서 배우지는 못했지만 장성해서 그 제자를 스승으로 모시게 된 셈이다. 텃밭에 배추를 심을 때 장로님이 여러 가지 기초적인 농사 지식을 전수했다. 기억나는 것은 배추 씨 뿌리는 요령이었다. 잘 마른 계분을 뿌리고 밭을 깊이 간 후에 이랑을 만들고 먼저 손바닥으로 몇 번 쳐서 적당한 간격으로 씨 심을 자리를 만든 후 배추 씨 서너 개씩 뿌리고 그 위에 고운 흙을 적당하게 뿌린다. 다져진 아래 흙은 밀도가 높아 활발한 모세관 현상이 일어나 충분한 수분을 공급함으로써 발아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되고 나중에 두툼하게 씨를 덮은 고운 흙은 아래 층과 달리 공기층이 많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솜이불을 덮은 것처럼 보온과 함께 수분이 증발을 막아 준다 것이었다.
그야말로 끈질긴 인연이다. 내가 우장춘 박사님의 제자는 아니지만 나이 들어 당신의 수제자를 이웃으로 만났으니 우장춘 박사의 학통이 봄새물 농장으로 한 발 다가섬에 도움이 되었음이 분명했다. 꿈이 너무나 막연하여 구체적으로 추구하지 못하고 70이 넘었는데 이제는 은퇴 생활의 방식을 농사에서 찾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 하긴 꿈의 영역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어려서부터 늘 집 가까이에 텃밭이 있어서 할머니가 가꾸시는 것을 보고 자랐다. 손바닥 만한 밭에서 이것저것 농사를 지었으니 조금은 꿈을 실현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규모의 문제이다. 이름을 붙일 만한 농장을 이루어야 하지 않겠는가. ‘봄새물’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농장, 2021년은 그런 의미에서 개인사에 새로운 결단의 해로 기록되기를 희망한다.
선친의 호인 ‘봄새물’은 뜻이 쉬우면서도 깊이가 있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생동감이 넘치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새싹이 돋는 까닭이다. 새 세상이 다가오는 힘은 어디에 오는가. 바로 물이 아닌가. 아버님은 새 세상을 열어 나갈 물을 공급하고자 신학을 전공하고 신학자와 목회자로서 어려운 길을 걸으셨던 것이다. 누구든지 홍익인간, 사회의 일원으로 주변에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에너지를 공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가문이 ‘봄새물 정신’을 중심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하리라.
선친의 호가 아주 마음에 든다. 언제까지 살 수 있는지는 하늘만이 아는 일이고 주어진 날까지 마지막 꿈, 봄새물 농장을 일으켜 선친의 뜻을 구현하고 싶다.
침실에는 어머님 영정 사진이 걸려 있고 거실에 현관 쪽에는 아버님 초상화가 걸려 있는데 가끔 나는 그 액자 뒤쪽으로 펼쳐진 세계가 있고 그곳에서 부는 바람에 액자가 흔들리며 벽을 울리는 작은 파동을 느낀다. 나를 향한 부모님의 손길일 수도 있다. 죽음과 삶이 전혀 다른 세계인 것처럼 단절될 수 없다며 노크하는 소리라고나 할까. 죽음이 있음으로 해서 삶이 있으니 서로 늘 소통해야 함을 느낀다.
두 액자를 통해 나는 더 넓은 세계로 가는 문을 열 수 있다. 벽에 걸린 액자에서 부모님 모습을 봄으로써 느낄 수 있는 열린 감정이다. 이사를 마치고 한동안 액자 둘을 걸지 않고 벽에 기대어 세워 둔 적이 있었는데 집사람이 왜 벽에 걸지 않느냐는 말에 시부모를 대접하는 며느리 마음에 고마움을 느끼며 잘 보이는 곳에 걸었는데 그다음부터는 부모님이 더 가까이 느껴진다. 액자를 방치하다시피 했을 때는 잊고 지냈는데 이제 두 어른이 내 생활 속에 들어오셨다.
부모님이 생전에 보내신 시간이 나를 만들 것이 아닌가. 부모님을 비롯한 선조들이 지하에서 보내는 시간이 작은 액자에 응축되어 있는지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한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그 오랜 시간이 내 삶의 시간과 겹쳐 흐르고 있지만 모든 문화적 껍질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선조와 함께 지낼 시간이 멀지 않았다. 시간이라는 벽돌, 내 아래쪽에는 빼낼 수 없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부모님의 시간이 있다. 하루를 벽돌 한 장이라고 봤을 때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으리라.
봄새물 농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내가 쌓을 수 있는 벽돌을 부지런히 쌓아야 한다. 아버님은 자주 인생을 벽돌 쌓기에 비유하며 성실하게 공부하라는 훈계를 하셨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라고 해도 뭔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할 수 없지 않은가. 우리 가문은 죽음과 삶을 뛰어넘은 정신, 봄새물 정신으로 일관된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본다.
사실, 멀리 앞뒤를 바라보면 삶의 시간은 길지가 않다. 죽음이 누적된, 유구한 시간이 삶이라는 짧은 순간과 영원한 미래를 받치고 있음을 느낀다. 죽음은 고귀한 정신이 발효하는 시간, 후손은 늘 선조와 소통해야 정말 짧은 생을 사는 듯이 살면서 선조가 빚은 좋은 포도주를 맛볼 수 있지 않을까.
‘봄새물’ 정신은 ‘아브라함’의 정신과도 통한다. 지난날을 과감하게 떨쳐 버리고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정신은 오늘을 풍성하게 하리. 아브라함은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꿈을 꾸었다. 늙은 부부,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들까지 낳았다. 꿈은 바로 후손들이 생활 속에서 바라보며 쓸 수 있는 그릇으로 남겨지는 것이 아닐까. 선조가 남긴 유형, 무형의 그릇은 바로 문화, 후손이 생활하는 환경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다시 밭 이야기를 하면 선린촌에서는 1979년부터 2006년까지 텃밭을 가꾸었고 2016년 퇴촌에서도 들꽃 할머니가 밭을 조금 떼어 주어 고추, 토마토, 오이, 가지, 케일을 심었는데 금년 여름 우리 식구가 충분히 먹을 야채를 공급했다. 특히 고추는 풋고추로 먹고 남아 고추김치를 담았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긴 고추를 하나하나 배를 가르고 소를 넣어 오이소박이처럼 담갔는데 씁쓸하니 새로운 맛이었다. 퇴비를 듬뿍 주었더니 방울토마토도 잘 됐고 죽죽 길게 미끈하게 뻗은 것이, 잘 생긴 가지를 여한 없이 먹었다.
작년에는 무가 잘 됐다. 내가 심었던 무 중에 가장 큰 무를 수확했는데 금년은 신통치 않다. 초반에 벌레가 먹는 걸 방치했더니 반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빈자리에 파를 심었더니 싹이 잘 났다. 아직은 실파지만 겨울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성준이가 와서 무를 뽑기로 했는데 어젯밤에 일기예보를 보니 영하 3도로 내려간다고 해서 상추를 덮었던 비닐을 벗겨 무밭을 덮었는데 조금 모자라 끝자락 무는 몇 개 뽑았다. 성준이 뽑을 무는 남겨 둔 셈이다.
주위 사람들에게는 말을 못하지만 어린 손자에게는 ‘봄새물’ 농장을 가진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 농장이라고 불릴 만한 땅을 갖고 싶다. 소일거리이면서 부수입도 좀 나오고 후손들이 주말이나 방학 때 와서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
하지만 이 나이에 욕심일 수 있다. 퇴촌에 별장을 가지고 있는 박화자 권사님에게 퇴촌에서 방 하나 얻어 산다고 했더니 전세든 월세든 크든 작든 퇴촌에서 산다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을 했는데 듣자마자 뭔가 뜻이 있음을 깨달았다. 남에 어떻게 보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산다는 자체가 중요하지 않을까. 지금 너무 작다고 생각하는 밭에서 수확의 기쁨을 누리고 오늘을 주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행복한 삶이 아닐까.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꿈보다는 성에 차지 않을망정 조그만 밭에서 채소를 심어 가꾸어 먹는다는 현실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지만 늦어도 내년 중에는 좀 넓은 밭을 갖고 싶다. 그리고 식목일엔 나무를 심고 싶다. 돈이 모자라니 집까지는 구할 수 없고 절대 농지를 조금 사서 잠만 잘 수 있는 원두막에서 지내면 어떨까. 아니면 자동차에서 지내고 아니면 비닐하우스를 짓고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 정말 유목민처럼 사는 것이다.
나는 가끔 넓은 아파트 단지를 보면서 우거진 숲에 비한다면 황폐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곤 한다. 나무나 농작물로 가득한 것이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 사람은 옆에 가득 쌓아 놓고 죽을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소유를 줄여야 한다고 본다. 쓰지 못하고 쌓아 둔 재물은 결국 이 한 몸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아니고 결국 과시용이 아닌가. 그러니 살아갈 때 그 사람 주위에 쌓여 있는 재물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재물을 그 사람과 동격화 하지 말고 그 사람만을 보아야 한다. 재물은 정말 그 사람 것이 아니다. 잘 쓰일 때 그 가치가 있는 것이지 우상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재물은 옆에 가까이 있을 뿐이다.
가지와 고추를 다 거두었다. 먼저 바람에 안 쓰러지게 매어 두었던 끈을 다 잘라 모아 검은 비닐봉지에 모으고 고추와 가지를 뽑아 밭 한쪽에 던져 쌓고 지주를 뽑았는데 몇 개는 잘 뽑히지를 않았다. 그래서 지주 맨 아래쪽을 락킹 플라이어로 고정한 뒤 각목으로 고이고 손잡이 부분을 발로 밟아 지렛대 원리로 몇 개를 뽑으려고 해 보았지만 각목이 땅에 묻히고 지주가 찌그러지면서 용접한 부분이 떨어져 못쓰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지나가던 노인이 보더니 지주 꼭대기를 몇 번 쳐서 땅에 더 박은 다음 빼라고 해서 주먹 만한 돌로 몇 번 치고 당겼더니 신기하게도 쉽게 빠지는 것이 아닌가. 고맙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아연 도금을 한 지주지만 몇 년 지나다 보니 한여름 땅속에서 녹이 나고 땅이 다져지면서 굳은 땅과 엉겨 붙어 잘 빠지지 않는데 몇 번 치니 조금 움직이면서 밀착도가 떨어져 땅과 분리되면서 쑥 빠지는 것이었다. 지나가던 노인이 말한 요령은 농사의 지혜일 뿐만이 아니라 삶의 지혜였다. 무슨 일이든 힘으로만 하면 안 되고 뭔가 맥이 있는 것이다. 고추나 토마토를 심으면서 지주를 뺄 때 힘으로만 하려고 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아무리 당겨도 안 되어 지주를 좌우로 흔들어 휘어지기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삽으로 파낸 적도 있었는데 몇 번 톡톡 치니 쑥 빠졌다. 너무나 간단한 일을 몰랐던 것이다. 빼낼 지주를 오히려 박는다? 그 요령은 빼냄과 정반대인 박음으로 빼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 박음은 위냐 아래냐 하는 운동의 방향을 문제 삼는 박음이 아니라 굳어진 흙과 하나가 된 지주를 분리시키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관념에 갇혀 살면 이러한 일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도 그렇지만 국가적인 차원의 이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국토의 분단은 생각도 나뉘어지게 했는데 두 지역이 영원히 다른 생각만 하면서 따로 산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이 지역은 파란 생각만 하고 저 지역은 빨간 생각만 해야 한다면 사람의 두뇌 활동이 제대로 될 리가 없을 것이다. 노랑이나 회색은 생각할 수 없는가. 무한한 가능성을 제한하니 사고의 자유가 박탈된 세상이 아닌가. 이념이 다르다고 전쟁까지 치른 나라, 대한민국은 사상의 자유가 있는가. 봄새물 농장을 가꾸면서 보편적인 생각과 감정이 존중되는 생활을 글로 표현하고 싶다. 열린 감성과 생각을 만끽하고 싶다.
2022년 봄 드디어 ‘봄새물’ 농장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는데 그 대상은 어린 손자들이었다. 그 규모는 말하기 창피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텃밭으로 한 두둑을 얻었는데 길이는 100m 정도이지만 배추를 한 줄로 심을 정도의 폭이라 넓은 밭은 아니었지만 일하기 편하기도 했고 꿈 한 부분을 이룬 것 같아 마음이 편안했다.
1년에 10만원 내고 쓰기로 했는데 시작 지점에 팻말을 박아 이름이나 전화번호를 표시하란다. 연락하여 성준이, 수호 이름을 적어 놓겠다고 했더니 내 꿈을 알고 있는 막내아들이 ‘봄새물’ 농장이라고 쓰면 어떡겠느냐는 의견을 주어 유성펜으로 ‘봄새물’을 적어 놓았는데 꿈을 한 조각은 이룬 것 같아 마음이 흡족했다. 하긴 평수야 무슨 상관이 있으랴, 이름이 마음에 들면 되지 않겠는가.
단골 종묘상에 가서 방울 토마토, 고추, 가지, 토란, 들깨, 상추, 쑥갓 모종을 심고 긴 두둑의 반은 고구마 순을 사다 심었다. 방울토마토는 빨강, 노랑 두 가지를 심었는데 빨강은 샌디에이고에서 온 민성이가 아주 좋아해서 보람이 있었다. 일반 고추에 비해 꽈리고추가 잘 돼 많이 따 먹었고 여유 분은 장아찌를 담았는데 아주 맛이 있었다.
‘22년엔 할 일이 없어도 산책 삼아 아침저녁으로 텃밭을 오갔으니 건강에도 꽤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안 팔릴 것 같던 들꽃 상회가 팔리게 되어 퇴촌 생활 6년을 마감하게 되었다. 할머니가 살던 1층은 이번 물난리로 침대 다리가 반쯤 잠길 정도로 물이 들었는데도 팔렸으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다 제 주인이 있는 모양이다.
유성 펜으로 썼던 '봄새물'은 햇빛에 바래 보이지도 않게 되어 마음이 허전하다. 내년부터는 두 두룩을 얻어 여러 가지 심어 보려고 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사하더라도 고구마 같은 것은 5월에 심기만 하고 가을에 거두면 된다. 손이 많이 안 가는 작물을 심으면 1년 동안 몇 번만 와도 되어 내년 봄에도 텃밭을 계속할 생각이다.
혼자 사는데 이삿짐은 왜 그리 많은지, 시간은 충분한데 마음이 바쁘다. 그리고 이 나이에 정착하지 못하고 또 이사할 곳을 찾는다는 것이 처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집을 산 사람이 추워지기 전에 집을 고치고 들어와야 해서 거기에 맞추어 집을 알아 보아야 하는데 퇴촌에는 적당한 집을 구할 수 없었다. 강원도 쪽을 알아보아야 하는데 마음에 들지도 모르고 시간을 맞추기도 어려워 우선 아들 집에 우선 들어가 살다가 봄부터 다녀 보기로 했다. 이삿짐은 목돈 들여 이사짐센터에 맡길 정도는 아니다. 냉장고는 고장이나 버리기로 하니 큰 짐은 침대와 세탁기여서 침대는 분해해서 실으면 되어 막내 트럭을 이용하기로 했다. 하남 가는 길에 승용차로 조금씩 실어 나르기로 했는데 카트가 필요했다. 스타 필드에 가 보니 바구니를 장착할 수 있는 게 있어 샀는데 바퀴가 특이했다. 양쪽에 원형이 아니라 삼각형 바퀴가 달려 있는데 세 꼭지점에 작은 바퀴가 하나씩 배치되어서 밀거나 끌고 가면 밑변에 해당하는 둘은 땅에 닿아 구르고 위 꼭지점인 나머지 바퀴 하나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쉬고 있었다. 말하자면 큰 축 하나에 작은 축이 셋이 달린 바퀴인 셈이다. 나중에서야 그 원리를 알았는데 두 바퀴가 구르니 하중을 분산하는 효과가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바로 층계나 턱진 곳을 오르내릴 때를 대비한 바퀴 구조였던 것이다. 큰 삼각형 모양의 바퀴에 작은 바퀴 세 개가 달려 있어서 평지에서는 작은 바퀴 두 개가 작동하고 가다가 직각으로 오르내리는 길을 만나면 큰 바퀴가 돌면서 나머지 한 바퀴가 작동하여수레가 멈춤 없이 굴러가게 하는 것으로 아주 과학적이었다. 아주 유용한 카트였다.
카트와 막내 덕분에 2022년 10월 13일, 덕풍동 아들 아파트로 이사를 잘 마쳤다. 우리 가정이, 1979년부터 선린촌의 방이 셋인 단독주택으로 이사해 살다가 2006년 처음으로 분양받아 10여 년을 산 바로 그 아파트이다. 2016년 집사람과 큰아들은 미사 신도시,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로 들어가고 나만 퇴촌에 나가 살았었는데 다시 원래 살던 곳으로 유턴한 셈이다. 팔려고 내놓은 집이라 팔릴 때까지지만 어쨌든 넓은 공간에서 혼자 살게 되었으니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이 낯설지가 않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10년이라는 공백이 벽지 빛깔을 좀 바꾸었을 뿐이지 모든 것이 똑같아 정겹다. 바로 옆에는 선사시대 유적지와 정종의 4남 이무생, 선성군의 묘역이 있는데 산이 나즈막한 게 산책하기도 좋다. 정이 푹 든 곳이다. 이곳에서 뭘 하나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 큰아들이 쓰던 방에는 피아노도 놓여 있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남향이어서 퇴촌과는 달리 난방을 하지 않아도 20도 이상을 유지할 수 있으니 삶의 여건이 더 좋아진 것이다. 꿈같은 일이다. 세심하게 배려해 준 가족에게 감사하며 새 희망을 갖고 충실한 오늘을 살아 가면 뭔가 하나쯤은 건질 수 있을 것 같다.
덕풍동에 와서 가끔 상상을 한다. 시간의 간격이라는, 단단고 두꺼운 유리창 너머로 구석기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한다. 상상력은 광속보다 빨라서 어디든 순식간에 갈 수 있다. 지금도 우주가 팽창하며 빛이 달려가고 있지만 우리의 상상력은 그 빛이 닿지 않은 무한한 거리의 끝에 펼쳐진, 가능성만 가득찬 빈 공간까지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얼마든지 몇 천 년 전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에 살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은가.
첫댓글 봄새울농장을 여시려는 열정 존겨합니다. 하남으로 이사를 하셨군요. 잘하셨어요. 늙었으니 대충 살다가지 하니까 주변이 우중충하고 기가 바지는 것 같아요. 이사도 하고 죽는 날까지 뭔가의 사업은 자꾸 벌ㅇ어야 잡념도 없어지고 생기가 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거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숙명, 한반도의 동족의 비극, 서로 미워하고 두려워하면서 죽어가는 사람은 죽어가고 전쟁에 휘말리는 사람은 그 속으로 들어가고요, 운좋은 사람은 시대를 뛰어 넘겠지요. 희망적으로 역사가 진행되기를 기대하렵니다. 국민들이 정신차리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을 제압할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남 갈등과 쏠림의 민족사관, 설 지성인이라는 사람들, 바로보는 비평사관들을 가지는 국민이 선진국으로 리드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Evergreen님 방문 감사!
오랫동안 시조만 써서 수필도 한 편 올려야겠다는 급한 마음에 전에 썼던 내용을 덜컥 올리고 읽어 보니 디듬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퇴고를 계속하여 작품성을 갖도록 노력해야지요.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서두를 시작했지만 완성된 글이 아닙니다. 보완 정리하여 좋은 수필을 쓰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오푼한 봄새물 농장이 눈 앞에 그려집니다. 행복한 가족 분위기도 느껴지구요. 나날이 새로운 삶의 열매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사랑과 열의가 샘 솟네요.
외람되지만, 매혹적인 소재와 주제인 글을 세분화하여 두세편으로 나누어 글을 다시 정리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의 글에 여러 개의 주제가 펼쳐지면 독자의 집중에 방해가 되니까요. 나의 봄새울 농장과 아버지, 액자 뒤에서 펼쳐지는 부모님의 기억, 70중반에 시작하는 열정, 성경 말씀과 삶 꾸리기 등등. 많은 보석이 숨어 있어요.
회장님, 조언 감사합니다. 다시 글을 한번 정리하려고 열었는데 회장님 댓글이 올라 있는 것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허물고 다시 짓는다는 마음으로 도전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