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가 군입대와 복무, 전역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을 통제하는 병무행정 방식을 어쩔 수 없이 바꿀 모양이다. 전쟁이 2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평시와 전시(계엄령및 총동원령 발령) 병무행정 간의 괴리가 더 이상 내버려둘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이제는 남편과 자녀를 가정으로 돌려보내달라'는 어머니들의 요구가 많아지면서 병무행정을 손봐야 할 필요성도 높아졌다.
전쟁 전에 '병역 의무'에 따라 징집된(입대한) 군인들과 개전 초기에 자원입대 혹은 동원된 예비군들은 전역, 혹은 동원해제하고, 새로운 인력으로 '전쟁을 계속한다'는 큰 그림이 필요한 시점인데, 과연 묘안을 찾을 수 있을까?
우크라군 입대(위)와 동원 해제를 요구하는 어머니들의 시위 모습/사진출처:우크라군 합참, 스트라나.ua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리아나 정치권의 최대 화두는 '(병력) 동원'이다. 전선에서 죽거나 부상한 병력을 보충하고, 오랫동안 최전선에서 버틴, 지친 병사들을 교대해주는 일이다.
최고라다(의회) 국가안보위원회 로만 코스텐코 의원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역 군사위원(각 지역 병무청장/편집자) 해임 이후, 지지부진한 동원 작업으로 이제는 포탄 부족보다 동원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고 주장했다. 병력 동원 작업의 쇄신및 강화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계속 나오는 이유다.
◇ 우크라이나 군병력 규모는?
러시아군과 싸우는 우크라이나군 병력은 총 얼마나 될까?
최근 현지 TV 채널에서 대형(?) 오보가 터졌다. "국방부:전쟁 중 우크라이나 군인 1,126,652명 사망 혹은 실종"이라는 자막 뉴스가 지난 26일 우크라이나 TV 채널 '1+1'에 올라왔다. 러시아의 군사 텔레그램 채널들은 이 자막 뉴스에 주목했고, '밀리터리 옵저버'(Military Observer) 채널은 “1+1 TV 채널 경영진이 젤렌스키 대통령실로부터 전화를 받고 '오타'(誤打)에 대해 사과했다”고 전했다.
이 오타는 우크라이나군 병력 규모를 표시하려다, 잘못된 게 아니냐는 생각이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장을 지낸 블라디슬라프 셀레즈네프 전 장군이 얼마 전(지난 12일) 우크라이나군의 병력은 총 130만 명에 달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 병력 규모에 관한 새로운 데이터도 있다.
스트라나.ua(11월 24일)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방부 정무담당 책임자인 류드밀라 다라간은 우크라이나 여성 총회에서 "여군은 현재 6만2,100명으로, 전체 병력의 7%를 차지한다"고 세부 자료를 공개했다. 이를 역산하면 우크라이나군 병력은 총 88만7,100명이다. 6만2,000여명의 여군에는 1만 8,600명의 민간인(군무원)이 포함되어 있다고 했으니, 88만7,000여명 속에는 일정 규모의 군무원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스트라나.ua는 추정했다.
우크라이나 여군들/사진출처:스트라나.ua
이 수치에는 전쟁 발발이후 계엄령과 총동원령에 따라 동원된 예비역들과 지원 입대자들도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 보니, 우크라이나군 일부 부대(여단)의 평균 연령은 54세에 달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세르게이 레쉔코 대통령 실장의 고문은 28일 TV 방송을 통해 "최전선에 배치된 병력의 교대에 예비 병력까지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군사 장비 외에도 병력이 엄청나게 부족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54세의 중년이라면 전투에서 '공격 앞으로'가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그는 "110명 중대원 중 3명만 남은 중대도 있다"며 그간의 병력 손실을 인정했다.
◇ 사활이 걸린 젊은 병력 확보
젊고 건강한 군인들의 확보는 이제 우크라이나군이 장기전을 치르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 됐다. 유럽의 군사 전문가들은 "체력을 요구하는 오랜 참호전에서, 또 소규모 보병 전투에서는 젊은 인력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며 "안타깝게도 서방에서 훈련을 받고 전선에서 나간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평균 연령은 30~40세"라고 말한다.
우크라이나군 내부에서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제 3특수여단 사령관은 최근 "우리는 이제 (대)학생을 포함해 18~20세 청년 동원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론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징집 연령(혹은 동원 연령)을 낮춰 건강하고 체력이 좋은 청년들로 최전선에 배치된 '늙고 지친 군인'을 교체하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우선 법을 바꿔야 한다.
전쟁 초기에 나온 우크라이나의 나이 든 동원병 모습. 방탄복을 두겹 껴입거나, 메고 걷는 모습이 흔했다고 한다/사진출처:텔레그램 영상 캡처
우크라이나 최고라다(의회)는 우선 늙고 지친 병사들을 전역시키거나 동원을 해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의회에 파견된 정부 대표 표도르 베니슬라프스키는 28일 "의회가 입대(동원)후 18개월(1년 6개월)이나 36개월(3년)을 복무하면 전역(동원 해제)할 수 있도록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역 및 동원 해제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안이 됐다"며 "동원 과정에서 나타는 갈등 상황을 제거하고, 군사위원들(병무 담당 인력/편집자)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한 입법 조치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집권여당 '인민의 종' 다비드 아라하미아 대표가 병력 교대 및 동원 해제에 관한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 데 이어 젤렌스키 대통령도 지난 24일 군 최고 지휘관 회의에서 이를 논의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 난제중의 난제, 어떻게 병력을 보충하나?
가장 큰 문제는 전역 혹은 동원 해제후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는 일이다. 가뜩이나 군사위원회의 비리들이 잇따라 터져 나오면서 젊은이들의 동원 기피 현상은 더욱 심각해진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당국이 검토중인 방안은 △민간 '헤드 헌터'(인력 파견) 업체 위탁과 △수감자(죄수) 동원 △장애인 관련 동원 면제 범위 축소 △징집및 동원 연령 인하 등이다.
이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소위 '채용 전문 업체'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지난 27일 우크라이나 당국은 강제 동원을 피해 지하로 숨어 들어간 젊은이들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민간 채용 전문 회사들을 이용할 것"이라며 "단순히 전쟁터로 보내는 '동원'이 아니라, 적성과 기술에 맞는 보직을 찾아내고 이와 매칭시키는 '동원'을 추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소위 동원 병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한다는 것인데, 일단 '군대에 끌려가면(동원되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젊은이들의 불안 심리를 어떻게 극복할 지 의심스럽다.
우크라이나 동원 정책 변경에 관한 가디언지 보도/웹페이지 캡처
이와관련, 알렉세이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국방안보회의 서기(사무총장격 장관급)는 "죽는 것을 두려워하고 사격 자체를 기피하는 사람들도 군대에 가서 다른 업무를 맡을 수는 있다"며 "인력 파견 업체 두 곳과 협력해 전쟁터로 나가기 싫어 동원을 기피한, 우수한 인재들을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취업이나 직장 이전을 위해 과거 '헤드 헌터' 업체에 등록한 사람들까지 샅샅이 뒤지겠다고 하는 말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올 법하다.
또다른 병력 보충 방안은 수감자 동원이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의회는 유죄 판결을 받은 수감자들에게 군복무 등록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28일 전해졌다. '수감자 동원'은 러시아 민간 용병업체인 '바그너 그룹'이 원조 격이다. 죽은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 그룹' 수장은 지난해 러시아의 각 교도소를 돌면서 '전장에서 6개월 복무시 잔여 형기 면제' 조건으로 수감자들을 최전선으로 끌어왔다. 이를 거세게 비난했던 우크라이나 측도 병력 부족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
의회가 검토중인 새 법안에는 우크라이나 국적을 취득하기 전, 다른 국가에서 군 복무를 마친 사람들도 동원 대상자에 포함하고, 군 복무 의무가 있는 사람은 늘 신분증과 함께 군 등록 서류를 소지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도 포함된다.
가장 큰 논란을 부를 방안은 징집및 동원 범위의 확대다. 의회는 대학생과 장애인 아내를 돌봐야 하는 남성, (1급 장애인을 제외하고) 2, 3급 장애인을 돌보는 친인척에 대한 동원 면제 혜택도 박탈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자칫하면 국민적 저항을 부를 만한 법안이다. 의회가 섣불리 공론화하지 못하는 것도 그 폭발력, 휘발성 때문이다.
이를 진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우크라이나 당국은 '복무 연한'을 철저하게 지키겠다는 약속을 내놓고 있다. 동원 범위 확대 방안이 알려진 지난 24일, 다닐로프 서기는 라디오 방송에 나와 의무 복무 기간이 지난 징집병들은 전역 조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이 요청했고, 군은 가까운 시일 내에 이들을 전역시키기로 합의했다”며 “대상자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사진출처:페이스북
우크라이나는 개전 직후 발령된 계엄령과 총동원령에 따라 정기적인 군입대(징집)를 중지했고, 2020, 2021년에 소집된 현역들은 아직 전역을 못한 상태다. 다닐로프 서기는 이들을 최우선적으로 전역시키겠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법률에 따르면, 27세 미만의 남성은 군 복무 대상자(현역 입대 대상자)로, 동원에서는 제외돼 있다.
다닐로프 서기는 그러나, 계속 군에서 복무하고 싶은 병사들은 국방부와 별도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역시, 군 징집(입대) 연령을 확대한 것과 함께 러시아가 군병력 확충을 위해 먼저 시행에 옮긴 방안이다. '먼저 했으냐', '나중에 하느냐'의 차이 만큼이나 러-우크라간에는 다른 게 별로 없는 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