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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니아의 처형
왕상 2:13-25
13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나아온지라 밧세바가 이르되 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냐 대답하되 화평한 목적이니이다
14 또 이르되 내가 말씀드릴 일이 있나이다 밧세바가 이르되 말하라
15 그가 이르되 당신도 아시는 바이거니와 이 왕위는 내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왕으로 삼으려 하였는데 그 왕권이 돌아가 내 아우의 것이 되었음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이다
16 이제 내가 한 가지 소원을 당신에게 구하오니 내 청을 거절하지 마옵소서 밧세바가 이르되 말하라
17 그가 이르되 청하건대 솔로몬 왕에게 말씀하여 그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왕이 당신의 청을 거절하지 아니하리이다
18 밧세바가 이르되 좋다 내가 너를 위하여 왕께 말하리라
19 밧세바가 이에 아도니야를 위하여 말하려고 솔로몬 왕에게 이르니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다시 왕좌에 앉고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자리를 베푸니 그가 그의 오른쪽에 앉는지라
20 밧세바가 이르되 내가 한 가지 작은 일로 왕께 구하오니 내 청을 거절하지 마소서 왕이 대답하되 내 어머니여 구하소서 내가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지 아니하리이다
21 이르되 청하건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왕의 형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소서
22 솔로몬 왕이 그의 어머니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그는 나의 형이오니 그를 위하여 왕권도 구하옵소서 그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을 위해서도 구하옵소서 하고
23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의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24 그러므로 이제 나를 세워 내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오르게 하시고 허락하신 말씀대로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우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아도니야는 오늘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25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매 그가 아도니야를 쳐서 죽였더라
왕상 2:13-25 / [처형되는 아도니야 왕자] 어느 날 아도니야가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를 찾아왔다. 밧세바가 물었다. `무슨 나쁜 일로 온 것은 아니냐?' 아도니야가 대답하였다. `절대로 나쁜 일로 온게 아닙니다. 14) 오직 한 가지 간청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밧세바가 `말해 보라'고 하자 15) 아도니야가 이렇게 말하였다. `이 왕위가 본래 제 것인 줄은 어머니께서도 잘 아십니다. 또 온 이스라엘도 제가 새 왕이 되기를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사태를 바꿔놓으셔서 이 나라가 제 아우의 것이 되었습니다. 16)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다만 한 가지 소원이 있어서입니다. 제가 왕위는 잃었지만, 그대신에 다른 소원이라도 한 가지 성취하기를 원합니다. 거절하지 마시고 들어주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냐?' 하고 밧세바가 묻자 17) 그가 말하였다. `저는 수넴 여자 아비삭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리따운 아비삭을 아내로 맞고 싶습니다. 제가 왕위에 오르지 못한 대신에 아비삭이나 아내로 맞아 위로받게 해달라고 솔로몬왕에게 부탁해 주십시오. 임금님이 어머니의 청까지 거절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18) 밧세바가 대답하였다. `좋다. 내가 임금님께 그대로 전하겠다.' 19)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소원을 전하려고 솔로몬왕에게로 갔다. 그러자 왕이 일어나 절을 하며 맞이하였다. 그리고 왕은 왕좌에 앉은 다음, 자기의 오른편에 자리를 마련하여 어머니를 앉게 하였다. 그러자 밧세바가 20) 이렇게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사소한 부탁이 하나 있어서 왔으니 거절하지 말고 들어주시오!' 왕이 대답하였다. `어머니, 안심하고 말씀하십시오. 제가 아무 것도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21) `수넴 여자 아비삭을 임금의 형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할 수 없겠습니까?'라고 밧세바가 물었다. 그러나 선왕의 후궁을 차지하겠다는 것은 왕위 찬탈의 상징적인 행동이었기 때문에, 어머니를 지극히 정중하게 모시던 솔로몬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어머니를 냉혹하게 책망하였다. 이러한 부탁은 실제로 아도니야에게 왕위를 넘겨 주라고 요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2) 그래서 솔로몬왕은 자기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이와 같이 냉정하게 말하였다. `어째서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요청하십니까? 차라리 그에게 왕위를 넘겨 주라고 요청하십시오! 그는 나의 형이 아닙니까! 그렇게 하면 아비아달 제사장과 요압 장군도 모두 좋다고 할 것입니다.' 23) 그러고 나서 솔로몬은 여호와를 두고 장엄하게 맹세하였다. `내가 이런 요청을 한 아도니야를 즉각 죽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오히려 내게 천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24) 그러므로 이제 나를 세워 나의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앉게 하시고, 약속하신 말씀대로 나와 나의 후손에게 이 나라의 통치권을 맡겨 주신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아도니야는 오늘 당장 처형해야 합니다!.' 25) 솔로몬왕이 그 자리에서 외국인 용병을 지휘하는 특전대장 브나야에게 눈짓을 하자, 그가 가서 아도니야를 쳐죽였다.
본문은 왕권 다툼에서 실패한 아도니야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음에도 불구하고 또 죽음에 이르는 어리석은 요청을 합니다. 특히 동정심에 이끌려 사리 분별없이 움직이는 밧세바와 악한 의도를 간파해서 신속하게 대처하는 솔로몬의 통찰력과 결단이 비교됩니다.
아도니야의 죽음에 이른 어리석은 요청(13-17) 다윗의 아들 중 살아 남은 자 가운데 가장 연장자는 아도니야였습니다. 그는 왕권을 얻는 권력 다툼에서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후처로서 이제 미망인이 된 아비삭을 아내로 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왜 이런 어리석은 요구를 했을까요? 첫째는 아비삭이 고령의 아버지에 비해 너무 어리고 탁월한 미모의 여인이었기에 자주 조우하면서 생겨난 연모의 정을 정욕으로 드러낸 요청이었습니다. 또한 왕이 되려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왕위를 노리려는 복선을 깐 요청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비삭은 다윗과 동침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그의 후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고대 근동에서 뒤를 잇는 왕이 선왕의 첩을 아내로 삼음으로써 자신의 왕위를 널리 인정받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압살롬도 백성들의 목전에서 아버지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함으로써 왕권 쟁취를 널리 선언한 바 있었습니다(삼하 16:20-23). 그러나 그런 요청이 아도니야 자신을 죽이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했습니다.
밧세바가 이르되 내가 한 가지 작은 일로 왕께 구하오니(18-21) 그러나 밧세바는 이런 아도니야의 어리석은 요청을 물리치지 못하고 쉽게 중재자로 나섭니다. 그녀는 아도니야의 우매한 탐심의 마음을 간파하고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또한 왕권을 빼앗아 오려는 숨은 저의를 정확히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동정심에 휘둘리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통찰력과 빠른 결단(22-25) 솔로몬 왕은 “어찌하여 어머니께서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청하십니까? 아주 나라까지 그에게 주라고 청하시지요! 제사장 아비아달과 군대 총사령관 요압이 아직도 아도니야를 지지하고 있는데 어머니도 그러하시지요.”라고 책망합니다. 마침내 지혜로운 솔로몬은 밧세바의 요청을 통해 아도니야의 숨은 저의를 정확히 간파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그를 처형시킵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행하는 결단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적용: 오늘 하루 당신의 생각이나 선택, 그리고 말이 본문 속에 나타난 아도니야의 길입니까? 밧세바의 길입니까? 솔로몬의 길입니까?
밧세바와 솔로몬처럼 우리는 각자 처한 상황에서 다양하게 반응을 합니다. 만약 악인과 악한 세력의 술책과 목적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도구로 이용당하게 됩니다. 솔로몬의 지혜와 분별력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세에 성령을 따라 행하며 어두운 영의 은밀한 전술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와 우리의 공동체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지혜와 지식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 설 교 >
죄악의 싹을 분별하십시오
열왕기상 2:13~25 / 우리들이 싸울 것은(찬350)
오늘 말씀의 제목은 ‘죄악의 싹을 분별하십시오’입니다. 사단은 매우 교활하고 음흉하여 쉽게 그 의도를 파악 할 수 없습니다. 마귀가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하는 장면을 생각 해 보십시오. 하와에게 던진 사단의 한마디 말속에는 어마 어마한 고단수의 전략과 전술이 숨 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의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3:1) 사단은 지금 하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하고, 하나님을 향해 서운한 마음을 품도록 의심의 질문을 던졌던 것입니다. 결국 사단의 계략에 속아 넘어간 하와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일렀던 선악과를 따먹었고 그 열매를 자기와 함께 있는 아담에게도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단은 첫 인간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들어 하나님을 대항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사단이 심는 죄악의 싹을 잘 분별하여 크기 전에 잘라 내야 합니다. 무엇보다 사단이 꾸미는 음모를 잘 분별하여 진을 구축하기 전에 박멸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생활에 열매가 맺힙니다. 초기 대응을 잘 못하여 사단이 세력을 구축하고 진을 구축해서 공격하면 엄청난 신앙의 손실을 맛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밧세바와 불륜을 범한 다윗에게 “이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삼하12:14)라고 했습니다. 사단의 세력이 우리 공동체와 우리 가정과 나의 삶 속에 비방할 거리를 얻을 수 없도록 초기대응을 잘해야 합니다. 초기대응만 잘하면 쉽게 사단의 세력을 무찌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사탄은 어떤 방식으로 공격해오는지, 또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사탄이 심는 죄악의 싹을 잘 분별 하여 물리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탄의 공격 방법론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첫째, 사탄은 교만한 자를 도구로 삼아서 공격해 옵니다.
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이르되 당신도 아시는 바이거니와 이 왕위는 내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왕으로 삼으려 하였는데 그 왕권이 돌아가 내 아우의 것이 되었음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이다” 사탄은 아도니아를 통해서 솔로몬의 왕국을 공격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솔로몬의 왕국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단순히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고 그 나라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징하며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은 세계만방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아도니아는 이스라엘을 이방나라와 같은 단순한 전제군주 국가의 하나로 보았습니다. 그래는 그는 밧세바에게 찾아가서 ‘당신도 아시는 바이거니와 이 왕위는 내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왕으로 삼으려 하였는데...’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아도니아는 아직도 왕권에 대한 야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왕위의 계승권은 다윗 가문의 장자인 자기에게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아도니야는 여전히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심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정한 이스라엘의 통치자로서 왕위 계승자는 하나님이 결정하신다는 이 지엄한 사실에 대해서 그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혈통적인 장자라는 이 명분만을 가지고 이방 나라에서 하는 장자 우선순위의 왕위계승권에 대한 생각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아도니야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 영적가치관이 아직 서 있지 못하고 순전히 인간적인 면에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아도니야는 이스라엘이 어떤 나라인지 자신의 아버지 다윗 왕이 남긴 신앙의 유산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심한 역사의식이요 한심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직 장자인 내가 왕위가 되어야 했는데...하나님 때문에 동생 솔로몬에게 왕위가 바뀌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도니야는 이것을 되찾는 방법을 은밀하게 추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역사와 인간사를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자꾸 자기중심적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사건을 해석하면 교만한 사람이 됩니다. 사실 아도니야는 혈통만 다윗 가문의 장자였지 한 나라를 하나님편에서 세울 만한 영성과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역사에 밀려납니다. 룻이 그랬고 에서가 그랬고 사울이 그랬습니다.
사단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교만한 자들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그래서 잠언서에는 교만은 패망의 선본이라고까지 표현한 것입니다. 사탄은 교만한 자를 자신들의 톨마니로 만들어서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훼방하고 파괴시키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탄의 도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 겸손이라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특히 이런 겸손의 가장 위대한 본을 보이신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낫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빌2:6~8) 예수님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외아들이셨지만 자기를 낮추시고 종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되 마구간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겸손의 모델입니다. 우리가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귀의 손아귀에 벗어나서 성령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을 품으면 즉시 그 교만한 마음을 알아보고 사탄이 그 교만한 마음의 중심에 들어옵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교만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스스로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라고 칭했습니다. 이사야 14장 12~13절에서 아침의 아들 계명성의 교만을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이것이 사탄의 정체입니다.
교만한 마음을 품은 아도니야의 마음 속에 사탄이 들어와서 또 하나의 음모를 시작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윗 왕이 죽은 이후에 솔로몬이 통치를 시작할 때 그의 왕국이 아직 든든히 서 있지 못할 때 다시 한 번 솔로몬의 통치를 무너뜨리고자 작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둘째, 사탄은 화평을 가장한 체 다가옵니다.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나아온지라 밧세바가 이르되 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냐 대답하되 화평한 목적이니이다”
아도니야가 밧세바에게 나온 것은 솔로몬이 왕이 됨으로써 밧세바는 태후의 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태후에게는 솔로몬 왕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는 힘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아도니아가 지금 밧세바에게 부탁하려고 나올 때 화평한 목적을 위해 왔다고 둘러댑니다. 그러나 사실 아도니아가 밧세바에게 부탁하려는 것은 다윗을 수종들었던 ‘아비삭’을 요구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비삭을 요구한 이면에는 은연중에 장자인 자신이 다윗의 진정한 후계자인 것처럼 부각시키려는 간교한 술책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근동에서는 후왕이 선왕의 첩을 취함으로써 백성들로부터 자신의 왕권을 인정받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살롬이 아버지 다윗 왕에게 반역의 깃발을 들 때 아히도벨의 충고를 받아 다윗의 후궁 10명과 동침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아비삭을 원하는 아도니야의 요구는 솔로몬에게 돌아간 왕권을 찬탈하려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도니야는 화평을 가장한 모습으로 밧세바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사탄은 항상 자신의 진짜 목적은 숨기고 겉모습은 화평을 가장한 체 나타납니다. 무엇보다 당사자를 유혹할 때 당사자를 위하는 것처럼 그 사람을 가장 잘 이해하고 밀어줄 것처럼 가장한체 속에는 시커먼 계략을 갖고서 음모를 꾸미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14~15절 말씀을 보면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항상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를 위하는 척 하면서 화평을 가장하면서 찾아오기 때문에 참으로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셋째, 사탄은 어떤 대상을 공격하려 할 때 쉬운 상대부터 골라서 접근합니다.
17~1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 그가 이르되 청하건대 솔로몬 왕에게 말씀하여 그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왕이 당신의 청을 거절하지 아니하리이다 / 밧세바가 이르되 좋다 내가 너를 위하여 왕께 말하리라”
아비삭을 아내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아도니야의 진짜 숨은 뜻은 무엇입니까? 아비삭을 자신의 아내로 받아들여 다윗 왕의 합법적인 계승자는 장자인 자신이라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공포하여 솔로몬의 왕위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술책이 숨어 있습니다. 사실 아도니아가 아비삭을 자신의 아내로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요구처럼 보입니다. 무엇보다 아비삭은 이스라엘 처녀 중에서 가장 아리따운 미스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아도니아가 마치 이쁜 여자와 살고 싶은 욕망에서 그랬을거라는 유치한 발상처럼 보입니다. 아마도 밧세바도 좋다 내가 왕에게 말하리라고 허락한 이유는 아도니야의 요청이 단순한 연애 사건으로만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음흉한 계략이 숨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도니야가 이 요구를 솔로몬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밧세바에게 부탁한 것은 솔로몬이 어머니 밧세바의 부탁을 반드시 들어 줄 것이라는 숨은 계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공격 목표는 솔로몬입니다. 그러나 방법은 밧세바를 통해서 솔로몬을 움직이려 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당구의 쓰리쿠션처럼 공격 대상자를 직접 대하지 않고 공격 대상자에게 가장 친하고 소중한 사람을 통해서 공격하는 전법을 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려고 할 때 사탄은 가장 사랑하는 수제자 베드로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방해 했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이것이 사탄의 고단수 공격법입니다. 아담을 향해 공격하지 않고 먼저는 하와에게 다가가 먼저 유혹해서 하와가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도록 하는 전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사탄은 항상 그렇습니다. 남편을 공격할 때는 아내를 통해서 남편을 죄짓게 합니다. 자녀들을 통해서 공격해 옵니다. 나의 직장 상사나 부모님을 통해서 신앙생활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정신차리지 않으면 그대로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교만한 자들을 도구라 삼아서, 화평을 가장한 모습으로 접근하되, 가장 사랑하고 친한 사람을 통해 나를 공격할 때.. 이런 음흉하고 교활한 사탄의 전략과 전술을 어떻게 물리쳐야 합니까?
❶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물리쳐야 합니다. 태후 밧세바가 아비삭을 달라는 아도니아의 청을 솔로몬에게 부탁하고자 왕궁에 찾아갔습니다. 이 때 솔로몬은 왕좌에서 일어나 어머니 밧세바를 향한 최고의 예우를 갖추어 영접한 후에 자신의 왕좌 옆 오른쪽에 앉혔습니다. 그만큼 솔로몬은 어머니 밧세바를 사랑하고 공경했습니다. 밧세바가 그런 아들에게 한가지 부탁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솔로몬은 “내 어머니여 구하소서! 내가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지 아니하리이다” 라고 화답합니다. 정말 솔로몬은 어머니의 부탁이라면 어떤 부탁이든지 들어주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 부탁이 ‘형님 아도니야가 다윗 왕의 수종들던 여인 아비삭을 아내로 달라’는 부탁인줄 알자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솔로몬은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곧바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바로 아도니아의 부탁을 거절할 뿐만 아니라 이 일로 아도니아의 목숨을 끊겠다고 하나님께 맹세까지 합니다. 왜? 솔로몬이 이처럼 아도니야의 숨은 계략을 빠르게 간파해 냈을까요?
그것은 솔로몬이 늘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23~24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의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 그러므로 이제 나를 세워 내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오르게 하시고 허락하신 말씀대로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우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아도니야는 오늘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아도니야가 죽게 된 것은 그가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질서를 깨뜨리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세우신 주권을 영접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읽어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그를 처형하겠다고 하늘의 하나님께 맹세까지 합니다. 솔로몬의 왕위의 자리는 사사로이 결정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계시를 통해서 다음 왕위계승자는 솔로몬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건축할 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왕위는 내가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이 있어야 하고 그 위에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왕은 자신의 생각과 뜻을 펼치는 정치를 해서는 안 됩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구속사를 완성해 나가는 대리 통치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사로운 인간의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왕위 자리를 계속해 노리는 아도니야는 하나님의 대적자요 원수인 셈입니다.
우리가 마귀 사탄과 싸우려면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철저히 영적인 싸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의 계략을 지혜롭게 분별하고 과감하게 그 싹을 자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영적인 싸움을 하는 사람은 말씀을 무기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생각이나 가치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의 기준이 되고 삶의 기준이 될 때 우리는 사탄의 세력을 분별하여 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40일 금식 후 광야에서 사탄과 싸울 때 매 번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사탄을 대적했습니다. 우리가 영적 분별력을 얻기 위해서는 날마다 큐티하고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영적인 분별력이 생기고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떤 것을 버려야 할지를 깨닫게 됩니다. 헷갈리면서 사는 사람을 보면 대부분은 큐티가 죽어 있고 기도가 죽어 있고 예배 생활이 무너진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왜? 밧세바는 분별하지 못하고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의도를 분별했을까요? 당시 밧세바는 중후한 인생의 경륜을 가지고 있고 솔로몬 왕은 이제 갓 20대에 청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인생을 오래 살았다고 영적 분별력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말씀을 더 가까이 하고 누가 하나님과 더 깊은 친밀한 기도를 했는가에 의해서 분별력은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시편 119편 98~100절을 보겠습니다.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더 많이 묵상하는 사람이 더 분별력있고 더 지혜롭고 더 성령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나이가 아닙니다. 이 때 까지는 솔로몬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말씀 붙잡고 하나님 앞에서 늘 기도로 살아왔는가를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도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큐티하는 삶을 결코 놓지 맙시다. 다시 한 번 큐티로 하루 하루를 시작합시다.
❷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사탄의 통로로 접근하면 과감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22절을 보겠습니다. “솔로몬 왕이 그의 어머니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그는 나의 형이오니 그를 위하여 왕권도 구하옵소서 그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을 위해서도 구하옵소서 하고”
그렇게 공경하게 어머니 밧세바를 모시다가 사탄이 어머니 밧세바를 통해서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솔로몬은 어머니 밧세바가 무안할 정도로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심지어 어머니께 화를 냅니다. “이것이 왕권을 구하고 있는지를 모르십니까? 어찌 그리도 분별력이 없으세요?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는 일은 지금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을 위해서도 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역모의 계략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아도니야가 하나님의 계시와 뜻에 의해 결정된 왕권에 도전했음으로 지금 곧바로 그를 처형해야 하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하고 브나야를 보내 아도니야를 처형시켜 버립니다.
사탄과 싸울 때는 인정사정 봐주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전쟁을 할 때 가나안 땅의 모든 호흡있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 죽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정복전쟁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할 때도 동일선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런 하나님의 명령을 적당하게 순종하여 살찐 소와 양과 염소를 살리고 아각 왕을 살렸습니다. 이것이 사울의 죄였습니다. 우리가 사탄과 싸울 때 분명하게 결단하고 사탄의 통로를 잘라내야 합니다. 죄의 싹을 분별하여 잘라 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통로가 된 자신의 수제자 베드로를 향해서 무섭게 책망했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사탄은 대화의 상대가 아닙니다. 사탄은 물리쳐야 할 존재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눈에 쌍불을 켜고 유혹할 자와 무너뜨릴 자를 찾아 헤메고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깨어서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교묘하게 틈타는 사탄의 궤계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음흉한 계략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죄악의 싹을 분별하여 제거 할 수 있는 영성’이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