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63]아름다운 사람(15)-박영돈이라는 분
<시간여행>(근현대 유물수집 사무실)에서 문화유산국민신탁 김종규 이사장의 『사인본』 도록 다음으로 발견한 책이 『野樵二十五賢士手簡寫本集』과 『1962년 國防部長官 朴炳權 內務部長官 韓信 兩將軍手簡寫本』을 함께 묶어놓은 앨범 크기의 두툼한 책이었다. 야초野樵는 이 앨범을 엮은 박영돈朴永弴이라는 분의 호이고, 현사賢士는 어질고 뛰어난 선비(학자나 문인)이며, 수간手簡은 본인이 받은 손편지를 말함이니, 25명의 현사들로부터 받은 손편지의 진본眞本을 영인影印한 사본寫本 묶음집이다. 또한 1962년에 당시 국방부장관 박병관과 내무부장관 한신의 손편지를 같은 방식으로 묶은 것인데, 오고간 봉투를 보니, 박영돈이란 분이 육군 일등병, 상병, 병장 시절에 감히 꿈도 꾸지 못할 두 장관(양장군)으로부터 받은 손편지들이었다.
럴수, 럴수, 이럴 수가? 어떠한 연유로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릴만한 국방과 내무장관이 군대 쫄병인 이 분에게 너무나 정중하게 예를 갖춰 손편지를 쓴 것일까? 본인이 보낸 손편지는 사본이 없으니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엄청나게 궁금하게 만들었다. 또한 현사 25명의 손편지는 호기심에 부채질을 해, 부지런히 책(?)을 넘기는데, 현사들의 이름이 모두 낯익은 분들이다. 소설가 박종화 김동리 오영수 이주홍, 철학자 박종홍 박사, 시인 조지훈 신석정 서정주 이영도 유치환, 화가 오지호, 서예가 여초 김응현, 사학자 황수영 박사 김원룡교수 신용하교수 한문학자 벽사 이우성교수, 서지학자 이겸노(통문관 관장), 석정 스님, 이지관 스님, 1999년 안기부장 이종찬 등이다.
더구나 이 현사들이 보낸 편지의 내용을 보면 하나같이 정중한 예를 갖추며 고맙다고 쓰여 있지 않은가. 도대체 이 분이 누구이길래 당대 각계의 명사名師들과 손편지 교류를 했단 말인가? 학력도 전북 완주의 화산국민학교 졸업이 끝이고, 약력이 경남여고 정원사 5년, 부산은행 경비(수위) 30년. 지극히 평범하고 이름없는, 야초野樵라는 호처럼 들에서 나무나 풀을 베는 듯한 사람인데, 어찌된 일일까? 수수께끼는 앨범 뒷장에 붙여진 2007년 노무현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표창장으로 조금 풀렸다. “보각국사 비문 복원을 통하여 국가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다”가 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를 표창한 이유였다. 보각국사라면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지은 일연(1206-1289) 스님의 법명이 아닌가? 아하-, 재야在野의 이름없는 서지학자書誌學者여서 내가 한번도 못들어본 사람이구나.
1971년 청계천에서 우연히 보각국사비(군위 인각사, 보물 428호) 탁본 일부를 산 것을 시작으로 35년 동안 국내외에서 탁본 30여종을 찾아 4050자를 7년간 모두 집자集字, 복원했다는 것이다. 삼국유사를 집필하고 일연이 그곳에서 열반한 인각사 보각국사비는 원래 3.9m로 웅장했으나 몸체가 동강나고 비문이 10% 정도만 남을 정도로 훼손되었다고 한다. 금석문金石文의 정점으로 평가돼 명나라에서도 탁본을 요구할 정도였으니, 그 복원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얼마나 큰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역시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임을 또한번 느끼게 된다.
손편지는 지금 거의 사라졌다고 해야 할까. 옛 분들은 편지 한 줄도 정성을 다했다. 어떻게 국방부장관이 일개 졸병에게 이토록 정성을 다해 편지를 주고 받았을까? 박영돈일병이 무슨 사연으로 편지를 썼는지 모르지만, 장관조차 감동할 만한 내용이었기에 답신을 보냈으리라. 신기하고 믿기도 어려운 일이다. 직업의 귀천貴賤을 갖고 일개 여고의 정원사와 지방은행의 수위를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니나, 누가 봐도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아마도 편지마다 문자향文字香이 폴폴 풍기는 진짜 향기롭고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었을까? 대한민국 최고의 철학자(박종홍)가, 유명한 소설가(박종화 등)와 시인(조지훈 등)이 그와 편지를 주고받았으니, 그는 자기 삶에 있어 ‘영광’이라고 생각했을 터, 이토록 정성스레 앨범으로 묶었으리라. 귀한 자료이다. 아직 살아계신 듯한데, 검색을 해도 알 수가 없는, 무명의 서지학자가 일연스님의 비문을 복원했으니 어찌 놀랍지 아니한가. 뵌 적도 없지만 경의를 표한다. 이런 분들이 우리 사회를 맑고 향기롭게 만드는 비타민같은 분이 아닐까 싶어, 기록으로 남긴다.
추기: 전북지역에 일찍부터 유명한 수필가 목경희여사가 계셨다. 개인적으로는 친구의 자당으로, 나를 친자식처럼 예뼈해주셨다. 큰 아드님이 바둑해설가로 유명한 박치문씨이다. 그분의 수필집을 거의 다 읽었는데, 감히 ‘전북의 박완서’라 할 만한 문인이다. 아름다운 글을 많이 남겼다. 말년에 새벽기도를 가다 교통사고로 기억력을 잃은 채 별세했다. 평생 중앙의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3000여통을 골라 서한집 『숲의 향연』을 펴냈는데, 나와 주고받은 편지 서너 통도 실려 있다. 흐흐. 박영돈 선생의 '수간사본집'을 보며, 그분이 떠올라 새삼스레 서한집 『숲의 향연』을 뒤적여보는 주말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