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기업은행, 영천은 한국마사회 유치 사활
전남광주 통합특별시 ‘공공기관 우대’에 TK 긴장
금융공기업 노조는 지방 이전 집단반발 본격화
정부 “대상·지역 미확정”…지금부터 정치력 싸움
“혁신도시 시즌2, 대구경북 더 이상 들러리 안 돼”
제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앞두고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말 그대로 전쟁에 돌입했다. 어느 기관 하나를 유치하느냐에 따라 일자리와 인구, 산업의 지형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대구경북도 예외가 아니다. 대구는 IBK기업은행을 정조준했고 경북도와 영천시는 한국마사회 본사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 부산은 금융 공기업을 노리고 있고,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정부의 통합지역 인센티브를 등에 업고 한국마사회를 비롯한 굵직굵직한 기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대구경북 시·도민 입장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도 실컷 유치전에 뛰어든 뒤 정작 알짜 공공기관은 다른 지역에 내주고 변변한 성과 없이 끝나는 것은 아닌가.
정부는 아직 어느 기관을 어디에 보낼지 결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 기관과 지역이 결정된 뒤 목소리를 높여봐야 늦는다. 지금부터 대구시와 경북도, 지역 정치권이 어떤 논리와 정치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향후 수십 년의 지역 산업지도가 달라질 수 있다.
대구가 노리는 IBK…‘신보+기업은행’ 명분은 충분하다
대구가 가장 공을 들이는 곳은 IBK기업은행이다.
기업은행은 이름 그대로 중소기업 지원을 핵심 임무로 하는 국책은행이다. 대구에는 이미 신용보증기금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 기업의 자금 조달을 보증하는 신용보증기금과 직접 자금을 공급하는 기업은행이 한곳에 모인다면 정책금융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구가 내세우는 ‘중소기업 정책금융 클러스터’ 논리가 결코 억지는 아니라는 얘기다.
대구경북은 자동차부품과 기계·금속, 섬유 등 전통 제조업은 물론 로봇, 미래모빌리티, ABB,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신산업 전환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지역이다. 수도권 대기업보다 자금 조달 여건이 취약한 중견·중소기업 비중도 높다.
그런 점에서 기업은행의 대구 이전은 단순히 공공기관 직원 몇백 명을 데려오는 차원을 넘어 지역 산업의 금융 인프라를 바꾸는 문제다.
하지만 장애물도 만만찮다. 기업은행 본점을 서울에 두도록 한 법률을 손봐야 하는 문제가 있고, 부산 등 다른 지역과의 경쟁도 피할 수 없다. 특히 정부가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을 하나의 금융클러스터로 묶어 특정 지역에 집중시키는 방식을 선택한다면 판세는 완전히 달라진다.
대구가 “기업은행을 달라”고 외치는 수준에서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정부가 기업은행을 지방 이전 대상으로 실제 검토하고 있는지, 금융 공기업 이전을 어떤 원칙으로 추진할 것인지, 신용보증기금과 기업은행의 연계성이 정부 평가에서 얼마나 인정될지를 지금부터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지역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 법 개정이 필요하다면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이 먼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여야가 따로 있을 이유가 없다.
렛츠런파크까지 품은 영천…마사회 본사는 다른 곳으로?
경북의 상황은 더욱 절박하다. 영천에는 오는 9월 렛츠런파크 영천이 문을 연다. 경북도와 영천시는 이를 기반으로 한국마사회 본사까지 유치해 영천을 대한민국 말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명분만 보면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
경마장과 마사회 본사를 연계하고 말 생산과 육성, 조련, 승마, 관광산업까지 연결한다면 단순한 기관 이전을 넘어 말산업 클러스터가 탄생할 수 있다. 경북도도 대구 군위를 포함한 여러 시·군과 말산업특구 확대에 나서는 등 광역적인 산업생태계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전남광주의 움직임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한국마사회를 비롯해 한국공항공사, 농협중앙회, 수협중앙회, 한국환경공단 등 굵직한 기관들을 유치 대상으로 거론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행정통합 지역에 대해 제2차 공공기관 이전 과정에서 우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점은 영천으로서는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한국마사회의 전남광주 이전이 확정됐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정부 역시 이전 대상기관과 지역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구경북은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야 한다. 영천에 수천억 원 규모의 렛츠런파크가 들어서는데 정작 마사회 본사는 다른 지역으로 간다면 지역민 입장에서 허탈할 수밖에 없다.
말산업이라는 기관 고유 업무와의 연계성을 중시할 것인지, 정부가 추진하는 초광역 행정통합에 더 높은 점수를 줄 것인지가 마사회 유치전의 최대 관건이 될 전망이다.
경북도와 영천시는 이제 “렛츠런파크가 있으니 마사회도 영천으로 와야 한다”는 당위론을 넘어야 한다.
마사회 본사가 영천에 있을 경우 경영 효율성이 얼마나 높아지는지, 지역 말산업과 어떤 경제적 효과를 만들어내는지, 다른 후보 지역보다 영천이 왜 우월한지를 수치와 자료로 정부에 제시해야 한다.
직원들은 “못 간다”…금융공기업 노조 반발도 변수
또 다른 변수는 공공기관 내부의 반발이다. 기업은행·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 노조는 지방 이전에 반대하며 공동 대응에 들어갔다. 예금보험공사와 한국무역보험공사 등에서도 지방 이전에 대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노조가 내세우는 논리는 분명하다.
금융기관은 금융당국과 시중은행, 기업, 글로벌 금융회사 등과 긴밀히 협업해야 하기 때문에 지방으로 옮길 경우 업무 효율과 금융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은 직원들의 이탈과 전문인력 확보 문제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우려를 무조건 지역이기주의라고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핵심 금융 기능이 서울에 있어야 한다는 논리 역시 지역민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금까지 수도권 집중을 정당화해 온 논리를 그대로 인정한다면 공공기관 지방 이전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지방에 기관을 옮기고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교통·교육·주거환경을 갖추고, 지역에 금융 및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지역균형발전에는 당연히 비용이 따른다. 그 비용조차 감당하지 않겠다면 정부가 말하는 지방시대는 구호에 불과하다.
대구경북이 요구해야 할 것은 ‘배려’가 아니라 ‘원칙’이다
이번 공공기관 이전에서 대구경북이 정부에 요구해야 할 것은 특혜가 아니다.
명확한 원칙이다.
기존 혁신도시와 산업적 연계성이 높은 기관은 어디인지, 지방으로 이전했을 때 지역산업과 가장 큰 상승효과를 낼 지역은 어디인지 객관적으로 따져야 한다.
그 원칙을 적용한다면 신용보증기금이 있는 대구에 기업은행을 배치하자는 주장은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 렛츠런파크와 말산업 기반을 갖춘 영천에 한국마사회 본사를 이전하자는 요구 역시 마찬가지다.
행정통합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지역에 알짜 기관을 몰아주는 방식이라면 또 다른 지역 불균형을 만드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제1차 공공기관 이전 이후 10여 년이 지났지만 수도권 집중은 오히려 심화됐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떠나고 지역 대학은 학생 부족을 걱정한다. 지방소멸이라는 단어는 이제 농어촌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제2차 공공기관 이전이 중요한 이유다.
이번 이전은 몇 개 기관을 지방에 나눠주는 시혜성 정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역마다 미래 먹거리 산업을 만들 수 있도록 기능과 산업을 연결하는 국가 재설계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 대구시와 경북도도 달라져야 한다.
희망 기관 수십 곳의 이름을 적어놓고 “유치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정말 필요한 핵심 기관 몇 곳을 선정해 지역 정치권, 경제계, 대학,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움직여야 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를 몇 번 만났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경쟁지역보다 얼마나 설득력 있는 이전 논리를 만들었는지가 중요하다.
이제 싸움은 시작됐다.
아직 정부는 기업은행이 대구로 간다고도, 마사회가 전남광주로 간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구경북에는 아직 기회가 있다.
그러나 기회는 기다리는 지역의 몫이 아니다.
대구에 기업은행을 유치해야 할 이유, 영천에 마사회가 와야 할 이유를 정부가 외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만들어내야 한다.
대구경북 시·도민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경쟁지역의 유치전이 아니다.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며 느긋하게 있다가 결정이 끝난 뒤 부랴부랴 반발하는 익숙한 모습이다.
제2차 공공기관 이전은 지역의 향후 20년, 30년을 결정할 수 있는 승부다.
대구경북이 또다시 남의 잔치를 구경하는 들러리가 될 것인지,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가져오는 주인공이 될 것인지 지금부터가 진짜 승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