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_권한과 책임
국가대표 선수 선발 권한은 국대를 운영할 스태프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권한을 가진 대신 선수들이 시합 중에 기록한 성적에 대한 책임 역시 지고 있지요. AG에 오지환을 데려갔던 선동열이 국정감사에 출석한 것도, 병역 문제로 시끌벅적했지만 결국 야구계에서는 선 감독이 별다른 욕을 먹지 않은 것도 선수 선발에 따른 권한과 그 결과에 대한 지분 때문입니다.
2루수, 그리고 옆구리 투수진에서 결원이 생겼는데 그 자리에 김진욱과 오승환을 선발한 것은 지금 스태프죠. 김진욱은 올림픽 기간 중 큰 실점이 없었으나 전체적으로 활용폭이 좁았고 '마흔살' 오승환은 첫 경기와 마지막 경기에서 블론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면 이 책임은 결국 스태프가 져야죠. 조상우가 매 경기 등판하다 결국 중요한 순간에 구위가 떨어진 것, 최종전 1점차에서 '82년생' 오승환이 2이닝을 책임져야 한 것이 결국 스태프의 책임이라는 뜻입니다.
'미래를 봤다'던 김진욱은 기대 만큼의 경험을 쌓지 못했고, '노련함이 필요했다'던 오승환은 원하던 만큼의 노련함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당시에 밝힌 이유가 감독의 진짜 속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겉으로 밝힌 이유조차 스스로 증명하지 못한거죠. '감독' 김경문은 베이징을 제외하면 업셋을 잘 당하지도, 또 업셋을 해내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실제 기대보다 오히려 낮은 성적을 냈네요. 미국-일본에게 진 건 전력상 이해할 수 있고, 도미니카도 뭐 야구 잘하는 팀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3등은 했어야죠. 결국 책임을 져야 합니다. 현 상태에서 그가 질 수 있는 책임이라고 해봤자 그 폭이 좁지만 말입니다. 뭐 기껏해야 국대 감독을 하지 않는 것 정도에 그치겠죠. 좀 더 많은 책임을 졌으면 좋겠는데 현실적으로 부과할 수 있을만한 페널티가 없네요.
02_과정과 결과
김경문 감독이 인터뷰에서 "결과만 가지고 이야기하면 감독이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지 않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 배경과 맥락을 잘 살펴달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김경문과 저의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저는 팬들이 미국과 일본에게 패해서 화가 난게 아니라 미국과 일본과의 경기에서 패배하게 된 과정과 배경, 그 맥락이 잘못됐다고 생각해서 화가 난 것 같거든요.
국가대표는 간단합니다. '지금 현 시점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가 가면 됩니다. 국제대회 경험이 그렇게 중요했다면 안산 대신 기보배가 나갔어야죠. 아니면 아예 김수녕 서향순을 부르던가요. 2004년생으로 아직 백신도 맞지 못해 방역복 입고 비행기를 탄 탁수선수 신유빈은 국제대회 경험이 많아서 올림픽 갔나요? 심지어 그 선수는 작년 1월에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였습니다. 경험 없는데 왜 그랬을까요? 간단합니다. 지금 잘 하니까.
물론 야구는 다른 종목보다 상대적으로 좀 오래 운동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 대표팀이 정말 '지금 가장 잘 하는 선수'를 골라 뽑아 갔는지는 생각해봐야됩니다. 물론 팀 전체의 밸런스를 고려하면 WAR이나 ERA순서로만 뽑을수는 없습니다. 중복되는 포지션이라든지 활용폭 같은 걸 모두 고려해야 하는 것도 맞죠. 하지만 그걸 모두 고려하고 봐줘도 도쿄 대표팀 '현 KBO 최고 전력'이라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과정이 그러니까 여론이 안 좋은거죠. 그런데 김경문 감독은 결과 얘기를 하네요. 게다가 좀 더 지켜보라고 해서 지켜봤는데 결과에 반전도 없었고요.
한마디 덧붙이면, 운동선수는 올림픽에 결과 내러 나갑니다. 물론 메달을 얻어야만 그 결과를 평가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종목을 막론하고 스포츠는 승자와 패자가 있고 점수와 순위가 있습니다. 리빌딩 중인 약팀의 감독이라면 결과 대신 과정을 보아달라고 할 수 있지만 프로리그를 운영하는 종목의 국가대표 감독이라면 결과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라고 그 자리에 간 건데요. 김경문 감독에게 한국 야구의 백년지대계 틀을 세워달라고 국대 감독을 맡긴 게 아니잖습니까? 저런 얘기는 유소년 야구팀 감독이 할 말이죠.
03_에이스는 어디로 갔나
박찬호-구대성-서재응-류현진-김광현-봉중근-윤석민-양현종...국제전 큰 경기에서 놀라운 성과를 냈거나, 아니면 적어도 '저 녀석 내보내면 그래도 6~7이닝은 잡아주겠지'하는 기대감이 있던 투수들입니다. 미국 프로야구에서도 공을 던져본 투수들이고요. 실제로 베이징 4강전에는 김광현이, 결승전에서는 류현진이 공을 던졌습니다. (김광현이 한일전에서 긴 이닝을 잡아주지는 못했지만) 국제대회에서 저런 이름값을 가진 투수들이 늘 있었는데 지금은 없네요.
원태인이 씩씩했고 이의리가 생각보다 잘 버텨줬으며 고영표도 기특했지만 경기 중반까지 투수전으로 끌고가거나 중요한 시점에 상대의 숨통을 틀어막는 역할까지는 아직 못 했습니다. 조상우가 매 경기 불려나와 호투하며 구위와 (막판에는) 투혼을 보여줬지만, 따지고 보면 이미 28살인 조상우도 방콕AG 당시 박찬호보다 2살 많죠. 베이징올림픽 당시 류현진-김광현과 비교하면 무려 6~7살 많습니다. 원태인과 이의리가 베이징 당시 류-김 나이와 비슷합니다만 아직은 당시 그들 만큼의 레벨이 아니죠
구창모나 송명기 소형준 같은 젊은 투수들이 건강했으면 좋은 모습을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정우영처럼 좋은 구위 가진 선수도 있고 배제성이나 신민혁 같은 투수도 눈여겨 보기는 합니다. (키움에도 구위 좋은 어린 투수가 있지만 그 선수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과거에는 완투형 투수가 많았고 요즘은 좋은 불펜이 많아서 분업화가 이뤄진 탓에 에이스급 선발이 없는걸까요? 글쎄요. 저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양준혁이 그랬죠. "한 경기를 믿고 맡길 투수가 없다"라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외국인 투수에 따라 팀 성적이 그렇게 달라지겠죠.
04_'인기 스포츠' 자리가 위태로운 야구
야구는 90년대 최고의 스포츠였습니다. 그러다 00년대 접어들며 e-스포츠 등에 밀려 시들해졌고 병역비리 사건으로 결정타를 맞았죠. 야구장에 관중이 40명 70명 들어오며 여기저기 텅텅 비었고 '위기론'도 이어졌습니다. 4번이나 우승한 팀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는데 인수할 팀이 나타나지도 않았죠. '이러다 야구 망한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극적으로 반전을 이뤄낸 게 06WBC-08베이징-09WBC 성적입니다. 국제전에서 많이 이기고 새로운 스타가 나오면서 다시 야구장에 관중이 들어차고 팀도 2개나 더 생겼죠. 그런데 그렇게 얻은 관심이 다시 사라질 위기에 놓였네요
지금의 야구는 그 시절보다 더 위기입니다. 올림픽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회면에 오르내리고, 정당하지 못한 과정을 지적받은 경우가 많아서죠. 사람들은 치열한 선발전 치르고 국가대표가 되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1020세대 양궁 선수에게 열광합니다.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 밖에서 힘들게 운동하면서도 씩씩한 경기력 보여주며 세계 4위에 올라선 높이뛰기와 다이빙 선수에게 감동 받았죠. 그에 비해 야구는 어떻습니까. 국제대회마다 병역 논란에 휘말리고, 방역수칙 위반해가며 술판 벌이고 역학조사에서 제대로 된 사실을 얘기하지도 않아 리그를 중단시킨 야구에 대한 세상의 눈은 어떨까요?
저는 프로야구가 인기 있는 스포츠이기를 원합니다. 병풍 시대 전후, '광클' 없이도 언제든 티켓을 구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직관하기야 편했죠. 하지만 썰렁한 관중석에서 선수들 고함소리만 들으며 응원하던 그 기억은 다시 떠올리기 싫습니다. 수원구장 3루 관중석에 앉아 소리 지르면, 1루 관중석에서 소리 지르던 현대유니콘스 팬과 대화(?)가 가능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 싫습니다. 하지만 야구는 경기시간도 길고, 플레이 사이사이 공백도 많아서 요즘 세대가 즐기기엔 지루한 놀이죠. 게다가 사회적인 문제도 자주 일으키고 국제대회 성적까지 안 좋으면 글쎄요...야구팬으로서 좀 슬프네요. 야구 이전에는 권투와 씨름이 가장 인기가 많았죠.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야구라고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 있을까요?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이번처럼 응원하기 싫을때가 있었나 싶네요.
국가대표라면 양손을 벌리고 응원해도 부족할판에.. 1선발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베이징올림픽 김경문감독이 지휘하며 프로야구 인기에 발판을 마련했다면 도쿄올림픽의 김경문은 프로야구 팬들이 등돌릴만한 이유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구구절절 맞는말씀입니다. 근십년간 한화경기 50프로 봐왔던 저조차도 손절할것 같으니까요..더이상은 야구판에서 꿈과 희망을 찾긴 어려울것 같네요..
4등 고소합니다. 달감독은 더 이상 감독으로 보고싶지 않습니다.
저도 오래된 야구팬인데...아마 당분간 야구 인기가 시들할것 같아요...야구팬들부터 지금의 작태에 화가 나 있어서요..
안 그래도 이미지 안 좋고, 인기 떨어지던 야구라 이번 대회가 정말 중요했는데, 이제 진짜 제대로 나락 갈 거 같습니다...
야구팬들의 애정어린 질타보다도, 기존에 안티야구인 사람들, 그리고 비야구팬들의 조롱이 장난 아니고 금방 끝나지 않을 거 같네요.
거기에 리그 내적으로는 타팀팬들 vs 한화팬들 구도고... 진짜 최악의 상황이네요.
공감100%로 공감합니다^^
정말 걱정이 되네요
주변에 야구 좋아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야구에 관심 끄는게 안타까웠는데 앞으로는 그 정도가 훨씬 심해질것 같네요
공감합니다. 선수를 비롯해 야구이해당사자들의 정신무장이 다시 필요한거 같습니다. 선진야구를 아무리 도입한다해도 목적의식없는 플레이는 별거없는 땅볼에도 죽기살기로 1루로 달리는 허슬플레이보다 감동을 줄수없으니까요
공감합니다..
그 외에 관중수가 줄어든건 코로나때문에 관중석에서 먹으면서 보지 못하는것도 큰이유인것 같습니다..
사실 라이트팬인 사람들은 극장에서 영화보듯, 소풍오듯 먹을꺼 먹으면서 야구보는게 좋거든요..제 아내와 아이들도 좋아하고요..
김태균 은퇴식때 코로나이후 처음 가봤는데 예상은 했지만 먹질 못하니 그 긴 시간 버틸수가 없겠더라구요..이러니 가족을 같이 가자고 얘기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대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이런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번 음주사태, KBO와 각 구단의 대처, 올림픽 참사 등은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동안 쌓인 나쁜 관습, 적폐 등이 쌓여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아마야구부터 시작해서 프로야구까지 싹 뜯어고쳐야 되는데 기존 세력들이 실권을 잡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변화가 이루어질지 회의적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자주 써 주세요...
자주 써주세요~ 요즘 좋은 글 보기가 쉽지 않아요.
이번 계기로 거품좀 빠졌으면 합니다
그들이 벌은 것이니 어쩔수 없죠 저도 너무 안타깝지만 진정한 반성과 개심이 없다면 그럼에도 야구 시청률이 높게 나오고 인기가 여전한 일은 없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