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씨름과 스모
얼마 전 TV채널 서핑을 하다가 「한식장사씨름대회」 중계를 잠깐 보았습니다. 이제는 일반 국민도 매스컴도 이 전통 씨름대회에는 관심이 옅어져 KBS가 억지로 중계를 하는 모양새 같았습니다.
우리 씨름도 옛날에 이만기나 강호동이 활약할 땐 인기가 대단했습니다만, 제가 주재할 당시 일본 씨름인 스모(相撲)도 유명한 치요노후지(千代の富士)나 다카노하나 (貴乃花)같은 역사(力士)가 활약할 땐 그 인기가 하늘을 찔러 매 대회 만원사례(満員御礼)를 내걸고 입장권 구하기가 어려워 여러군데 부탁해야 간신히 스모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장의 특석은 마스석(마스:됫박)으로 4인용 박스석인데 약 60만원 정도로 네명이 들어가 방석을 깔고 앉아 도시락과 캔맥주를 즐깁니다.
스모는 체급이 따로 없으니 선수들은 체중을 늘리고 늘려서 피부는 팽팽하게 탄력이 있고, 또 벌거벗고 있으니 많은 여성팬들이 스모 선수 팔이라도 한번 만져 보려고 구름같이 몰려들었습니다.
일본선수 보다 체격이 더 우람하고 얼굴 잘 생긴 외국인 선수들도 많았으니 호기심이 더했을지 모릅니다.
또 시합 중 거대한 체구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지극히 남성적 매력을 발산하기도 합니다.
한편 워낙 거구인 스모선수는 과연 화장실에서 볼일은 어떻게 보고 부부생활은 어떻게 할까라는 가쉽성 화제에도 오르곤 했습니다.
그래도, 인기 스모선수는 인기 프로야구 선수 못지 않게 일등 신랑감이어서 유명 여배우나 인기 여자아나운서를 아내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 스모는 원래 神道 神社의 종교적 의식에서 유래합니다. 그래서 자연히 황실과도 인연이 깊으며 유명한 신사에는 지금도 옛부터 의식을 행했던 작은 규모의 스모 경기장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신성한 종교적 의식을 행해야 했음으로 몸에는 삿바(回し)만 두를 수 있어 거의 나체상태로 시합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스모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우리 씨름과 몇 가지 상이한 점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 지극히 의식을 중요시 합니다.
시합 전에 활을 들고 하는 의식에서부터 몇번이나 왼다리 오른다리 들어올렸다 내려놨다 하고 소금도 뿌리고 합니다.
의미를 모를 땐 좀 지루할 정도였는데 그게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외국인도 꽤 있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스포츠에 특정 종교의식은 극력 배제하겠지만, 일본의 경우는 종교간 경계도 흐릿하고 그렇게 배타적이지도 않아 연유야 어떻든 특별히 이것이 종교적 색체를 띤 것이라고 보지 않고 단순히 고유 전통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2) 샅바잡기 싸움 없이 경기합니다.
우리 씨름은 본 게임에 들어가기 전 여하히 유리하게 샅바를 잡느냐가 승패를 크게 좌우합니다.
심판이 언제 휘슬을 불어 시합개시를 선언하느냐도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있습니다. 시합 전에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느냐 못하느냐가 시합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 시합은 완벽하게 공정하다고 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스모는 떨어져 있다가 신호를 하면 달려가 샅바를 잡든 그냥 몸으로 부닥치든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페어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샅바 잡는 것도 시합에 포함시킨 것입니다.
3) 우리 씨름은 확실하게 냅다 꽂아야 결말이 납니다.
스모는 씨름판 밖으로 밀어내면 승부가 결정납니다. 이 기술로 결정되는 승부가 대부분이어서 체중이 중요시 됩니다.
그래서 「짱꼬나베」라고, 보통 야채는 손으로 대충 찢어 넣고 닭이나 생선도 큰 덩어리로 둥둥 짤라서 커다란 가마에 넣어 끓여서
먹고 자고를 반복해 체중을 불립니다. 체급 제한도 없으니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유리합니다.
하지만 우리 씨름은 밀어내기 같은 싱거운 승부는 거부합니다. 씨름판 밖으로 나가면 들어와 다시 붙습니다.
그래서 한쪽을 철저히 메다 꽂거나 무릎을 꿀려야 결판이 납니다.
미지근한 거 말고 확실한 결말을 선호합니다.
4) 감정표현을 극도로 자제합니다.
스모도 가끔은 격렬한 시합을 합니다. 기술 중에는 상대방의 뺨을 손바닥으로 갈기는 것도 있는데 서로 때리기 시작하면 가관이기도 하지만 감정도 고조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든 시합에 이겼다 해도 감정표현을 극도로 억제합니다.
우리 선수처럼 시합 전에 관중을 향해 포효하거나, 상대를 쓰러뜨리고나서 하늘로 뛰어오르거나 주먹을 날리거나 만세를 부르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얼굴표정조차 바꾸지 않고 승부를 담담하게 받아 들입니다.
여기서 잠깐, 때는 1990년, 당시의 지존 이만기와 신예 강호동이 벌인 세기의 대결을 되돌아 보면 경기가 경기 외적인 요인에 의해 얼마나 좌우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강호동은 특히 스포츠계에서 엄한 하늘같은 선배 이만기와의 대결에서 처음부터 지난친 신경전을 펼치고 관중석을 향해 필요이상의 제스추어를 취하며 깝죽대며 상대의 심기를 건들이며 약을 올립니다.
첫판에서 이만기가 잠시 샅바를 놓치고 다시 잡으려고 방심한 틈을 타 강호동은 그대로 돌진해 넘어뜨리고 맙니다. 룰 위반은 아닐지라도 보기에 따라서는 페어하지 않은 듯 보였던 장면이었습니다..
그러자, 한 때 강호동을 지도해 주기도 했던 선배 이만기가 후배 강호동에게 「깝치지 마라, 이 xx야」라고 한 마디 하게 되고, 강호동은 이만기가 욕했다고 심판에게 항의해 감독끼리도 싸우고 난리가 납니다.
이윽고 치러진 두번째 판에서 이미 평정심을 잃은 이만기를 무례한 신경전의 강호동이 승리하고, 신구세대교체로 이만기시대의 종언을 고합니다. 뒷맛이 개운치않은 승부란 느낌이 컷습니다.
이후 강호동은 그의 시대를 열지만 석연찮은 그의 품성에 대한 의구심을 지금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씨름과 스모에서의 룰의 차이가 양국의 관습이나 국민성을 대변한다고 보는 것은 비약일 것입니다.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는 논쟁도 무의미하겠지요.
다만, 조금은 그 국민의 기질이나 종교적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은 있다고 보여집니다.
우리는 극단적으로 확실한 것, 우리편과 반대편 (friend or foe), 흑과 백(black or white)을 가리려 하고, 감정도 여과 없이 분출시키는 경향이 강한 게 아닐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면 솔직하단 소리를 들을지 모르지만, 지금처럽 우리 주변의 여러 측면이 얽히고 섥힌 복잡다단한 환경에서는 어느 정도의 감정자제와 더불어, 때론 Black도 White도 아닌 현실주의적「Grey Zone」을 좀 더 넓히는 것도 생각해 볼 일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공존이 가능하다면 그것도 방법이겠습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중국이냐 일본이냐하는 편가르기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입니다.
HJ
첫댓글 아주 세밀한 관점을 노출 하셨습니다. 감정의 자제는 종종 일본인으로 부터 볼수있는 것으로 지나번 쓰나미 참사로 폐허가 된 곳에서 홀로 서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없어진 가족과 집을 생각 하는것 이지만 눈물 한방울도 참고 있는듯 하였습니다.무서움을 풍기는 감정의 자제, 그것이 일본인의 저력인것 같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NHK로 스모 중계를 자주 보았는데 중국, 미국가면서 10년간은 못 보았습니다.
또 요즈음은 종편보느라고 아에 NHK는 보지 않으니 스모보는 재미는 잊어습니다.
일본에 5~6년이나 살았으면서도 귀국후 딱 한번 후꾸오까 바쇼에서 구경하였습니다
재미있는 스모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