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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4: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4: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 주해
1.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메시지를 말씀과 사역으로 전하시고 십자가와 부활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을 여신다.
1) 사탄은 말씀이 뿌려지면 즉시 빼앗는다.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면 환난으로 넘어지게 하거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으로 말씀을 막아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한다.
2) 좋은 땅에 말씀이 뿌려지는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또 들고 받아들여 풍성한 결실을 한다.
3) 듣고 또 듣는 좋은 땅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면서 말씀을 듣는다.
2. 하나님의 나라는 땅에 뿌린 씨앗과 같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 밭에 말씀의 씨를 뿌리면 땅(하나님)에 의하여 저절로 씨앗이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1)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다.
2) 겨자씨 한 알과 같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 겨자씨 한 알 같은 순종을 하는 것, 겨자씨 한 알 같은 봉사를 하는 것, 겨자씨 한 알 같은 헌신을 드리면 하나님이 그 한 알을 심으신다.
3) 하나님은 그 겨자씨를 모든 풀보다 크게 자라게 하여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게 하신다.
3. 비유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한지를 가르치신 예수님은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자는 제안을 하신다(35절).
1)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안대로 그를 모시고 배를 타고 간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자들도 다른 배들을 타고 함께 하였다.
2) 갈릴리 호수를 건너던 중에 큰 광풍이 일어났다.
막 4: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표준새]막 4:37 그런데 거센 바람이 일어나서, 파도가 배 안으로 덮쳐 들어오므로, 물이 배에 벌써 가득 찼다.
4. 갈릴리 호숫가에서 태어나 어부였던 제자들이 큰 광풍으로 어찌하지 못하고 “우리가 죽게 되었다”고 할 정도면 가공할만한 규모이고 특별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1) 물이 배 안으로 들어와서 배에 가득 차서 배는 바닷 속에 빠지는 지경이 된다.
- 아무리 어부들이어도 이런 광풍에서 배가 가라앉는 다면 헤엄쳐서 나올 수는 없다.
2)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배의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신다.
5.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작은 배의 뒤편에서 베개까지 베고 주무시고 있다는 것이 의아하다.
1) 예수님이 주무신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예수님도 피곤하여 곤할 수 있음을 말한다.
2) 그런데, 복음서 기자들이 “주무시는 예수님”을 보여주는 이유는 그분의 주권과 안정성과 평온한 모습을 말하기 위해서다.
3) 광풍 그리고 광풍으로 인하여 당황하여 광풍과 싸우다가 죽음의 위기로 불안해하는 제자들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평온하다.
6. 자신들은 당황하고 불안하여 난리가 났는데, 예수님은 평온히 주무시자 제자들은 짜증이 난듯하다. 그래서 원망이 썩인 목소리로 예수님을 깨운다.
막 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1) 예수님이 자신들이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않았다는 표현에서 짜증과 원망이 느껴진다.
2) 배를 타고 건너가자고 제안하신 분은 예수님이고, 제자들은 그 제안대로 바다를 건너다가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예수님은 평안히 주무시고 아무 도움을 주지 않으니 짜증날 만하다.
3) 신자들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다가 위기에 처했는데, 하나님이 죽음의 위기에 직면할 때까지 돕지 않으시면 제자들처럼 짜증을 내고 원망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
7.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돌밭에 씨앗이 뿌려진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막 4:16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막 4:17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는데 자신들의 생존을 책임지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2) 제자들은 돌밭에 말씀이 뿌려진 자들이지만, 그래도 그 원망을 예수님을 붙들고 하는 것이 지혜롭다.
3) 신자들 중에는 이런 상황이 될 때까지 돕지 않는 예수님께 실망하였다고 예수님을 깨우지 않고 끝까지 자기 힘으로 파도와 싸우는 성도들도 많다.
8. 평안히 주무시다 깨어나신 예수님은 제자들의 항변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큰 광풍에 당황하지도 않는다.
1) 대신에 바람을 꾸짖어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라고 명령하신다.
- 그러자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해졌다.
2) 꾸짖다(에피티마오): 악한 세력들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을 나타내는 전문 용어이다(막 8:26; 70인역/ 시 9:6; 67:31; 105:9; 118:21).
9. 제자들이 만난 광풍은 단순한 자연현상이나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1) 마가복음의 첫 독자들인 교회는 핍박을 받는 시기였다.
- 또한 성도들은 언제든지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다가 큰 광풍을 만날 수 있다.
2) 이럴 때, 마가는 이런 현상을 우연으로 보지 말고, 배후에 악한 세력이 있다라고 한다.
3) 배후에 악한 세력을 간파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 원망하는 식으로 예수님께 말하는 불신도 지적하고 있다.
10. 제자들의 문제는 첫 번째, 이 광풍의 배후에 악한 세력이 있음을 간파하지 못했고, 두 번째는 나와 함께 배를 타고 있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 예수님께 원망 투로 말한 제자들은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2)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모든 만물의 주권자, 자신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주”로 부르지 않고 “선생님”으로 알고 있기에 광풍으로 불안해하고 있다.
3)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다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과 환난을 직면했을 때, 그 배후에 악한 세력이 있음을 알아야 하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한다.
11. 우리 입장에서는 제자들의 반응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 없음을 책망”하신다.
막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1) 객관적으로 무서워하고 원망할 상황일지라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예수님이 함께하심으로 안전하다는 믿음이 있으면 주무시는 예수님처럼 평온하다는 것이다.
2) 예수님은 힘들게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잠잠하라, 고요하라”라는 명령만으로 즉시 바람이 그치고 바다는 잔잔하게 된다.
12. 이 모든 과정을 겪은 제자들은 “휴 살았다. 하마터면 죽을 뻔 했네,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다행이야”야 라고 하지 않고,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막 4: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1) 믿음이 없어서 책망을 받았지만 제자들은 역시 제자답다.
2) 예수님이 행하시는 모든 표적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가르키는 표지판이다.
3) 요한복음의 기록목적에서 요한은 이 모든 표적을 기록한 목적은 이 표적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다.
4) 제자들은 이 표적을 경험하고는 그 표적 자체에 주목하거나, 그런 표적을 다시 경험하려고 하지 않고, 그 표적이 가르키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5) 표적을 체험한 후, 표적을 행하신 그분이 누구인지를 알려고 하는 자는 믿음이 자란다.
13. 제자들은 2번 두려움을 느낀다.
1) 첫 번째는 광풍과 죽음의 위기로 인한 두려움이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40).”
2) 두 번째는 바람과 바다를 잠잠하게 하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심히 두려워 한다.”
- 제자들은 죽음의 두려움보다, 하나님의 현현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
3) 표적을 경험한 자는 마땅히 “하나님의 현현으로 심히 두려워해야 한다.”
14. 제자들이 단번에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신앙고백을 하지는 못한다.
1) 그래서 십자가에 앞두고 다가오는 광풍으로 인하여 다시 넘어지게 된다.
2) 그러나 이 광풍에서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신 주님은, 십자가라는 광풍으로 두려워하는 제자들도 도우시고,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게 하신다.
15. 신자의 삶은 예수님과 함께 배들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것과 같다. 교회라는 배도 이 세상의 바다를 항해하며 수시로 광풍을 만난다.
1) 신자가 평소에 가진 능력과 경험으로 이 광풍을 해결하지 못한다. 또한 그가 받은 훈련, 체험, 배운 가르침으로도 평안을 찾지 못한다.
2) 오직 이 배를 함께 타고 계신 그리스도만이 배(신자, 교회)에 평안함을 준다.
3) 내 안에 사시는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나의 주인”임을 믿을 때,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4) 그래서 요한은 요한일서의 기록목적이 “생명이 너희에게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배에 계시고, 그분이 내 안에 있음을 알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16. 예수님이 행하신 이 표적은 시편 105편의 말씀을 그대로 성취함이다.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과 그의 기이한 일들을 깊은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령하신즉 광풍이 일어나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시 105:24-31).
◈ 나의 묵상
나를 향해 하시는 말씀, 마음 가죽이 벗겨지고 마음에 새겨지기를 원한다. 나는 큰 광풍을 만난 이후로 지금까지 배에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싸우고 있다. 내 나름대로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순종하느라고 한 헌신과 댓가지불, 순종이었다. 그래서 탄탄대로의 역사가 있을 줄 알았으나 예기치 못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광풍을 만났다. 영적으로는 메마름과 비참함이라는 물이 들어왔고, 정신적으로는 우울과 불안과 공허라는 물이 들어왔다. 육체적으로는 이미 물이 상당히 들어와 있었다. 문제가 일어나면 주님이 즉시 그리고 알아서 광풍을 잔잔하게 해주시면 좋은데, 주님은 관여하지 않으셨다. 그러자 나는 제자들보다 더한 반응으로 두려워하고 주님이 왜 돕지 않는지를 항변했다. 제자들의 항변이 건방지지만 나는 더 격렬하게 항변하는 자이기에 제자들의 태도는 당연하게 보인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신다. “용호야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항변했다고 책망하지 않고, 불안해 했다고 책망하지 않고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신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내가 함께 있다는 것을 믿으라”고 하신다. 그렇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배를 타고 있음을 믿으면, 광풍이 문제인가? 설사 배가 가라앉고 광풍에 빠져서 죽어갈지라도 두려울 것은 없다. 다니엘처럼 죽는다 해도 감사하다. 그분의 말씀대로 행하다가 그분과 함께 있다가 죽는다면 그 또한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제자들처럼 나와 함께 있는 예수님을 믿지 못한다. 알지 못한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는데도 그분이 함께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내 마음은 수시로 불안하고 조급하고 분노한다. 그분이 내 안에 있음을 믿지 못함이 문제인데, 광풍과 파도가 문제라고 난리를 친다.
어찌 이리 믿음이 없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소망은 그 믿음이 없는 상태의 제자들을 주님이 도우시고 주님이 누구인지를 알도록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믿음이 있어야만 주님이 도우시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없어도 도와주시고 믿음이 자라도록 인도하신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믿음이 없다고 외면하지 않으시고 믿음이 없기에 믿음이 생기도록 가르쳐 주신다.
그래서 믿음이 없으나 말씀을 묵상한다. 그리고 죄인된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시고 좋아해 주시는 그 사랑으로 나아간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간다. 죄인 된 모습 그대로, 병든 모습 그대로, 믿음 없는 모습 그대로 나아간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납하여 주시는 그 사랑을 용납한다. 그리고 이렇게 믿음이 없음에도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음을 믿게 하신 것이 은혜다. 죄사함을 믿게 된 것, 십자가의 사랑을 믿게 된 것, 하나님을 아버지라 믿게 된 것이 주의 은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하였다. 복음의 말씀으로 겨자씨 한 알 같은 믿음이 심겨져서 자라기를 원한다. 오늘도 내 마음의 밭에 씨앗을 뿌린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 묵상 기도
주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렇게 복음을 알고 믿었고, 다양한 모양으로 하나님의 표적을 경험하게 해 주셨음에도 믿음이 없습니다. 광풍으로 당황하고 내 삶이라는 배에 물이 차오르면 무서워하고 원망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시면서도 일방적인 은혜로 도우시고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도록 인도하시는 그 사랑을 찬양합니다. 십자가 앞에서의 도망이라는 가장 큰 광풍에도 믿음이 없어서 넘어졌지만 결국 주님의 인자와 신실함이 제자들을 살렸고, 생명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그 인자와 신실하심을 의지합니다. 바라봅니다. 찬양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성령으로 알게 하여 주십시오. 만물 위의 하나님을 신앙하고 있음을, 만물 위의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심을, 만물 위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배를 타고 계심을 알고 믿게 하옵소서. 그 하나님 앞에서 광풍과 파도가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하옵소서. 교회라는 배에도 주님이 함께 타고 있음을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옵소서. 주님으로 인하여 교회가 광풍에도 안전함을 알게 하옵소서. 성도들의 삶에 수시로 광풍이 찾아옵니다. 이미 광풍을 맞고 있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주님이 배에 함께 타고 있음을 믿게 하옵소서. 그리고 믿음이 없어도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십시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복음을 통하여 내 안에 생명 있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