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하루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육신의 질병과 여러 가지 삶의 상황으로 인해 영적으로 침체된 지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자기 부인에 대한 애통함이 있는 줄 주님께서 아시오니
그 온몸과 마음을 어루만지어 회복시켜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는 마음이 날마다 더욱 간절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저는 점점 나아지는 자가 아니라,
오직 더욱 더 보혈을 의지하는 자여야 함을 알게 해 주십니다.
오늘도 그 보혈을 의지하오니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4.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26.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8. (없음)
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본문 주해)
24~28절 :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옷을 다 벗겨 겉옷은 네 조각으로 찢어서 군인들이 나누어 가지고, 속옷은 통으로 짠 것이라서 제비를 뽑아 한 사람이 차지한다.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요19:23~24)
십자가에 못 박은 시간은 제삼 시 즉 우리 시간으로 아침 아홉 시이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 있는 죄목을 적는 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썼다. 예수님 좌우 편에는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힌다.
29~32절 :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조롱받는 내용이 구약에도 나타나 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시22:6~8절)
‘지나가는 자들’(29절)이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보려고 몰려온 무리들이다. 이들이 머리를 흔들며 모욕하는 일은 시편 22편의 내용대로 일어난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조롱하는 말 역시 지나가는 무리들과 같다. ‘십자가에서 한번 내려와 보라’고 한마음으로 조롱하는 이들은 십자가에 달리심이 자기들과 같은 죄인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인데, 그들이 알 리가 없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죽어가는 예수는 결코 메시아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31절)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는 것을 가시적으로 알리신 기적의 사건을 가리키는 말이다. 소경이 눈을 뜨고 중풍 병자가 낮고, 청각장애인이 보며, 귀신이 쫓겨났다.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이 먹기도 했고, 풍랑 이는 바다가 잠잠하게도 하셨다.
이런 기적을 보았으나 그들은 돈과 권력을 사랑하는 세상 정신이 충만한 자들인지라 메시아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무리들이나 백성의 지도자라는 자들이나 간에 십자가에서 죽는 볼품없는 예수는 결코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일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또한 그들은 십자가에서 한번 내려오면 믿어줄 것이라고 비아냥댄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세상에 구원 얻을 자가 단 한 명도 없는 것이다. 그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영생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시는 죽음이었다.
한편, 누가복음(눅23:39~43)에는 회개한 한 강도를 이야기한다.
누가복음은 이방인에 대한 배려가 있다. 그러므로 한 편의 강도가 십자가 위에서 극적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은 이 사건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증거 되는 중요한 사건이 되는 것이다.처음에는 두 강도가 다 동일하게 예수를 비방했으나, 한 강도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시는 말씀으로 인해 이분은 자기 죄로 죽는 분이 아님을 알았던 것이다. 물론 이런 고백을 한 것 자체가 전적인 은혜이다.
(나의 묵상)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그 십자가에 달리신 동안 조롱받는 내용이다.
로마 군인들은 브라이도리온에서의 희롱(15:16~20)에 이어 오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옷을 나누어 가지고 제비 뽑는 일로 조롱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들은 평소처럼 죄인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 행하는 자신들의 일상을 무심하게 행하는 자들이다.
지나가는 자들로 표현된 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보기 위해 몰려온 무리들이다.
이들은 맥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 한번 내려와 보라고 조롱한다.
이들은 한때 예수님께서 베푸신 치유와 기적의 사건에 열광하여 ‘호산나’ 외치던 자였는데 어찌 이렇게 변심하였을까? 그것은 치유와 기적은 마음에 들었는데, 그 강력한 힘으로 자신들의 왕이 되어 줄 것 같은 사람이 계속 이해 못 할 말만 하고, 힘도 못 쓰고 당하기만 하니 자기들 나름대로의 분노가 터진 것이었다. 물론 종교지도자들의 사주가 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
백성의 지도자라는 자들 역시 한 가지로 예수님을 조롱한다.
자신들에 대해 사사건건이 시비를 걸고 오는 예수, 이미 누리는 자신들만의 부와 권력을 무너뜨리려는 위협적인 존재인 예수가 눈엣가시였는데, 이제 원하는 대로 그를 십자가에 달았으니 쾌재를 부르며 조롱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으켰던 기적처럼 십자가에서 내려온다면 믿어주마고 조롱한다.
그런데 이 와중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일이 벌어진다.
겨자씨에 생명의 싹이 돋는다.
그것은 이미 묵상한 바 있는 구레네 사람 시몬이 얼떨결에 십자가를 진 일과 본문에는 없지만 십자가에 달린 한 강도의 회심 사건이다.
겨자씨처럼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지만, 예수님 곁 가장 가까이에 있는 거의 모든 자들은 다 조롱한다고 정신이 없다. 각자 마음 내키는 대로 지껄이며, 각자 자신들에게 가장 유익한 삶을 살겠다고 아우성치고 있는 현장이다.
나는 이 무리들 가운데 어디에 있는가?
예수라는 인물에 아무 관심도 없는 사형수의 옷이나 가지려고 혈안 된 로마 군인처럼 살다가, 우여곡절 끝에 교회에 발을 디뎠다.
예수라는 분의 치유와 기적이 이 땅에서의 내 삶을 윤택하고 풍성하게 해 준다는 것을 믿고 따라다니던 무리가 되었었다.
그런데 가끔씩 눈앞에 십자가가 왔다갔다 하면서 걸리적거린다. 그것은 나와 코드가 맞지 않는다. 더 이상 보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으니 얼른 십자가를 외면한다. 그리고 성공과 부요를 가져다 주는 신을 예수님이라고 부르기로 작정하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내가 잘 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라는 결심까지 하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한다.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을 기대하며 살아가던 나는 어느새 유대 종교지도자들처럼 자기의로 마음이 높아진 자가 되어 있었다.
살아왔던 이 모든 세월 동안 나는 알게 모르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조롱하는 자로 살아왔던 것이다.
분명히 예수를 믿는다고 했던 세월이었는데 무심해서 조롱하고, 원대로 안 해 준다고 분노하고, 내 앞길을 막는다고 배척했던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23:34)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과 조롱 속에서도 이 말씀을 하시는 주님을 강도가 들었다. 그리고 이 말씀이 그를 회심시켰듯이, 그 말씀은 나를 용서하고 안으시는 말씀이었다.
내가 하는 짓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수 믿는다고 천방지축 설쳐댔던 30여 년의 긴 시간을 주님께서 한 매듭으로 묶어 주시고, 새 삶을 내게 보여주신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십자가로 열어놓으신 하나님 나라를 살게 하시는 것이었다.
이 영생의 삶은 십자가 없이는 누리지 못하는 삶인 것을 알게 되었다.
얼떨결에 은혜 속으로 진입하게 된 구레네 사람 시몬과 죽기 일보 직전에 회심하여 주님과 함께 낙원에 들게 된 한 강도....그 겨자씨 생명이 내게도 날아왔다.
자기중심적인,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 충실하던 자에게 주님은 그것을 못 박을 수 있는 십자가를 선물로 주셨다.
겨자씨 생명이 내게 날아오니, 그토록 조롱하고 외면하던 십자가가 나의 보배가 되었다.
(묵상 기도)
주님,
저는 무관심한 로마 군인들처럼 살았던 자이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분노한 무리들 속에 살았던 자이고,
입으로는 메시아를 달고 살지만, 이미 차지한 부와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메시아고 뭐고 보지 못하는 백성의 지도자들 속에 살았던 자였습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은혜를 받은 자가 감격하여 고백합니다.
십자가 보배를 가슴에 꼭 품습니다.
하지만 이 보배가 그저 제 입의 장식으로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어야 빛이 나는 보배임을 압니다.
저로 이 길을 따르게 하셨사오니
모든 걸음걸음도 성령의 주관하심만 믿습니다.
때마다, 일마다, 모든 순간마다 간섭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