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중턱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지대의 마을, 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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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 모여 다시 배에 올라탄다. 그리고 배는 다음 코스인 장도로 향한다. 여전히 바다는 오리무중. 앞이 안보이지만 해상 GPS에 의지해 항해를 계속 한다. 이런 조그마한 배에 이런 조건 아래서 항해하는데 해상GPS는 필수품이다.
어느 정도 갔을까. 앞에 커다란 바위가 보이는데 위로 눈을 돌리니 바로 섬이었다. 배는 왼쪽에 섬을 끼고 돈다. 그러나 안개 때문에 제대로 구별을 못해 계속 가다보니 마을로 가는 입구를 놓쳐버렸다. 분명히 입구가 보이지 않았는데. 목사님은 입구가 있다며 다시 되돌아서 가니 그제야 입구가 나타난다. 안개가 어느 정도 걷힌 상태였다. 안개 때문에 지나쳤다가 다시 안개가 걷히고 나서야 찾았던 것이다.
시멘트로 된 방파제가 아주 짧다. 방파제는 한 개가 있고 오른쪽은 바위였다. 바위와 방파제 사이로 안으로 들어가는데 폭이 아주 좁아 1톤 안팎의 FRP선 외 웬만한 배는 들어갈 수 없을 그런 규모였다. 폭이 1미터 정도 정도다. 오히려 튼튼한 방파제 폭이 더 넓게 보인다.
배가 방파제에 닿자 내려서 안을 보니 겨우 한 척의 FRP선이 경사진 시멘트 위에 올려져 있었다. 일종의 선양장인데 경사도가 30도 이상은 됨직 하다. 배가 내려가지 않게 암벽에 밧줄로 매달아두었다. 조그만 선착장으로 0.9톤의 작은 배가 들어와서 기계의 힘으로 와이야케이블로 배를 묶어서 육지로 올린다. 그래야 잊어버리고 안심하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배도 3척 이상은 정박시킬 수 없을 것 같다. 그 옆 왼쪽으로 마을로 가는 또 다른 길이 있다. 주변은 온통 거친 암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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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장도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깊은 수심 위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직벽 해안이다. 남쪽은 급경사, 북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남동쪽 해안에는 해식애가 발달하여 장관을 나타낸다. 그리고 마을로 들어가는 길 역시 바위를 타고 가야 했다. 웬만한 노인들이 다니기에는 아주 위험한 길이다.
제대로 계단이 있을 턱이 없다. 해발이 제법 높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올라가니 좌우로 길이 있다. 오른쪽은 배가 묶여있는 선양장으로 가는 계단길이고 왼쪽이 마을로 가는 길이다. 마을로 가는 길은 시멘트길인데 이끼가 많이 껴서 쉽게 미끄러질 정도로 위험하다. 그래도 숲길이라 좋다.
섬의 생김새가 일자형으로 길어서 ‘진섬’으로 불러오다 한자 표기에 따라 장도로 부르게 된 ‘장도(長島)’. 이름처럼 섬이 동서 방향으로 길게 늘어진 모양을 하고 있으며 대마도, 소마도, 흰여를 거느리고 있다. 약 250년 전 김해 김씨가 처음 섬에 들어왔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후손이 전혀 없어 알 수 없고 조선시대 영조 때 경주 최씨 최성기가 진도에서 이주하여 일가를 이룸으로써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 걸어가니 내리막에서 길이 갈라진다. 아래로는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이고 직진은 마을로 가는 길인데 그 오른쪽에 비문이 있다. 40여 년 전에 이 섬에서 섬 발전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한 김귀근 김정자 부부 교사의 비석이라고 한다.
비문을 지나 왼쪽으로 난 경사진 길을 올라가면 폐가가 몇 채 보이고 그 뒤로 태양열발전시설이 있다. 그런데 그 옆에 6기의 바람개비가 보인다. 바로 풍력발전시설인데 규모가 작은 것이다. 아마도 400W짜리인 듯 싶다. 6개가 모여 2.4kW의 전력을 생산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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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오지낙도에 태양광 발전이나 내연발전을 통한 24시간 전기 공급이 가능해졌다. 지금껏 소규모 자가발전기에 의지해온 남해안의 섬마을은 모두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지만 여전히 살기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이곳 역시 마을은 섬 밖에서 보면 제대로 구별할 수 없을 것 같다. 경사진 곳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나무에 가려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태풍으로부터의 보호용 구조다. 원래 이곳은 2가구만 살았다는데 현재 3가구가 산다고 한다. 한 가구가 최근에 이사를 왔다는 것이다. 인구가 워낙 적은 관계로 여객선과 우체부도 들어오지 않는다.
마을 북쪽에 아주 조그만 선착장 시설이 있지만 겨울에는 북서풍을 정면으로 받기 때문에 유배지처럼 갇혀 살아가는 섬이다. 장도 역시 원도 바로 옆에 있는 섬으로 완도군에 속해 있지만 생활권은 여수이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인근에 위치한 초도를 통해 여수로 나간다.
‘금일장도길 13’번 집에는 예전에 목사님이 출연했던 <느낌표>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집이라고 한다. 오랜만에 왔다고 반긴다. 안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동안의 변화된 모습을 이야기 듣는다.
비교적 높고 험한 산줄기가 동서로 뻗어 지형이 거칠지만 섬 전체에 숲이 울창하다. 이 섬에는 물이 많다. 그래서 길에도 물이 흥건하게 뿌려져 있고 곳곳에서 물기가 발견되기도 한다. 마을 중간지점에 수도꼭지 두 개가 달린 대형 물탱크가 있다. 간밤에 내린 비로 물탱크가 가득 차 넘칠 지경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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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해산물을 채취하면서 살아간다. 부근 해역은 난류성 어족의 회유가 많고 고등어와 전갱이, 삼치 등이 잡힌다. 기타 수산물로 김, 미역, 톳, 도미, 전복 등이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노령으로 주로 고기를 잡아 생활한다.
식물 경관과 아울러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일부에 속하는 장도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사철 감성돔을 낚을 수 있다는 것. 조황 또한 꾸준하여 외지 꾼은 물론 전남 일대의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이 섬은 낚시가 잘 되므로 낚시꾼들이 연년 중 그치지 않는다. 예전에는 5천원의 입어료를 받았지만 지금은 받지 않는단다.
많은 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지리적 여건 때문이다. 장도는 초도와 더불어 녹동권 해역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안쪽으로는 조금 멀리 시산도로부터 시작하여 부도, 섭도, 다랑도, 무학도 등 내만 섬들과 일대에서 가장 원도권인 거문도와의 중간에 있다. 또한 좌우로 평도, 손죽열도와 황제도가 둘러싸고 있어 그야말로 트라이앵글의 중심이다. 이것은 산란을 하기위해 들고 나는 감성돔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면서 찾아드는 감성돔과 낚시꾼들이 조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꾼들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도 좋은 여건인 것이다.
게다가 이런 중간 기착 섬이 가지고 있어야 할 깊은 심해처가 있다는 점이다. 넓은 면적의 초도가 비슷한 지점에 있으면서도 사철낚시가 어렵고 조류가 조금이라도 세어지면 탁한 뻘물로 인해 조과의 기복이 심하고 낚시기간이 짧은 것은 얕은 수심의 뻘층에 섬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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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장도는 남쪽 직벽지대가 30m의 수심으로 일대 해역을 통틀어 가장 깊은 심해처를 가지고 있다. 봄~여름에도 15~20m 수심서 대물감생이 또한 직벽 연안이 연속적으로 꾸불꾸불 이어지면서 많은 홈통으로 되어있어 감성돔에게 아늑한 안방을 제공해준다.
이런 모든 점들이 시사하고 있는 것은 우선 붙박이 감성돔이 안주할 수 있는 훌륭한 거처를 제공해줄 뿐더러 만삭의 몸을 풀고 피곤에 지친 감성돔이 편안한 마음으로 머물면서 회복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원도로 빠지는 감성돔의 마지막 기착지 역할을 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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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대에다 경사가 진 만큼 집집마다 평지가 아닌 탓에 모두 높이가 다 다르다. 화려한 집들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환경에 적응하는 집들. 그리고 계단같은 형태의 마을 풍경. 지붕 아래까지 이어지는 돌담과 시멘트 담벼락을 통해 우리는 이 섬이 얼마나 자연재해에 노출되어 그것을 방어하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치열한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어느 집에 들어서더라도 담장을 통해 밖을 보면 드넓은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지만 안개가 자욱한 해상은 회색 그 자체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다. 그래봤자 몇 분 걸리지 않는 작은 섬 마을. 무성한 넝클이 스레트지붕을 덮고 있고 돌담과 돌담 사이의 골목은 돌계단으로 되어있어 경운기 하나 움직일 수 없는 골목길이다. 인기척에 놀란 제법 큰 게가 빠르게 도망을 간다. 낡고 오래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지만 어딘가 아쉬움이 묻어나는 말 그대로 오지의 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