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시대 사두가이들은 종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막강한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그들은 현세적인 사람들이었고 영적 존재나 부활을 부정합니다. 죽음 이후에는 그 무엇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우리 시대에도 낯설지 않습니다. 사실 죽음 이후에 대해서 누구도 말할 수 없긴 합니다. 죽음을 경험한 이는 말할 수 없고, 아직 겪지 않은 이들은 말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리 신앙은 하느님을 생사의 주관자라고 고백합니다. 그분 앞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 있다는 말씀은 곧 생명이신 하느님 신앙의 고백입니다. 죽음은 단절로 보이지만 하느님 안에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죠. 죽음으로 하느님께 돌아간 이들과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이 서로 무관하지 않고 하느님 안에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입니다. 그것이 성인들의 통공입니다. 죽음은 우리를 허무로 돌아가게 하지 않고 하느님께 돌아가도록 합니다. 그래서 위령 성월을 지내면서 살아계신 하느님 앞에, 죽었으나 여전히 살아 있는 영혼들을 생각합니다. 죽음 그 너머의 삶을 바라봅니다. 생명이신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 살아 있으니 죽음은 우리를 갈라놓지 못합니다.
* ‘죽다 간신히 살았다’ 혹은 ‘죽지 못해 산다’가 아니라 ‘죽어야 산다’가 우리 믿음이 되기를.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