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무릎
제게 아주 오래된 사진이 하나 있는데 어머니가 저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진 말고는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 몇 장 되지 않습니다. 아마 제가 한두 살 정도 되었을 때인 것 같은데, 젊고 예쁘게 생긴 어머니가 저를 품에 안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10대 초반에 홀홀단신으로 남한으로 피난 온 실향민입니다. 고향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큰 농장을 운영하는 부모의 6남매 중 외동딸이었던 어머니는 그 당시 남포항에 정박 중이던 미군 군함에서 나온 군인들의 손에 이끌려 함상에서의 성경학교에 참석하였다가 갑작스러운 전황으로 인해 부모도 모르게 그냥 그 군함에 실려 대한민국으로 오게 되었으니, 일평생 고향과 부모 형제를 눈물로 그리워만 하다가 지난 2020년 88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녀가 태어난 진남포가 아닌 영원한 본향으로 돌아갔습니다.
10대의 어린 소녀의 몸으로 부지불식간에 한국으로 피난을 와 친척 하나 없는 곳에서 어떻게 하다 평양에서 피난 온 부부를 만나 그 집의 양녀로 지내게 되었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말이 양녀이지 혹독한 식모살이와 그들이 운영하던 공장의 직공으로 혹사를 당하며 10대를 보내다가 20대가 되어 같은 교회에 다니던 청년을 만나 결혼하여 저희 형제를 낳은 것입니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 사랑할 줄 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자애로우셨던 아버지와는 달리 다분히 이기적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의 집에 양녀로 들어가 온갖 학대를 받으며 오로지 자신을 지켜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기에 그런 성품이 길러진 듯합니다. 심지어 아버지께서 병원(대구동산기독병원, 현 계명대학교동산의료원)에서 맛있는 초콜릿이나 쿠키 같은 것을 가져오시면 그것을 아들인 우리 몰래 숨겨놓고 혼자 먹었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남편이나 자식보다 자신이 더 소중했고 먼저 돌보며 지켜야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본인이 낳은 자식이라도 품에 안아줄 줄 몰랐습니다. 자식보다, 남편보다 자신을 먼저 보듬어 안아줘야 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 사랑 없이 저를 왕같이 모시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기에 어머니의 무릎을 모르고 어머니 품이 얼마나 포근하고 따뜻한지를 알지 못합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자주 불렀던 찬송가인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를 부를 때는 늘 가사를 그대로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없고 또 앉아본 기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1년 7월 7일에 태어난 사랑하는 아들 노엘은 참 복된 아이입니다.
태어나서부터 너댓 살 되기까지는 늘 아빠가 꼭 껴안고 다녔고 지금까지 엄마 아빠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들으며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2026년 7월 7일) 만 15세가 된 노엘이는 지금도 잠들기 전에 엄마와 마주 앉아 성경을 읽으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성경을 받아 적습니다. 그리고 잠자러 가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큰소리로 외칩니다.
"엄마, 꼭·끌·뽀!"
꼭 끌어안고 뽀뽀를 안 해주면 잠들지 않는 노엘이를 보며 내 어머니의 무릎을 그리워합니다.
어머니는 참 예쁘고 감성이 풍부하며, 그림도 잘 그리고, 옷도 잘 만들고, 노래도 잘 불렀고 머리도 아주 많이 좋았던 분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지낼 때 홍익대 전신인 미술대학교를 다녔다고 들었습니다. 그 뒤로 대구로 이사 와서 여전도사가 되려고 신학 공부도 잠시 하다가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