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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희망의 문턱을 넘어 원문보기 글쓴이: Swan
축일: 8월 4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Saint John Mary Vianney St. Jean-Baptiste-Marie Vianney St. John Baptist Vianney (Curé d'Ars), Priest (RM) Saint John Baptist Mary Vianney 본당 사제의 수호 성인
프랑스 리옹 근교에서 태어난 성 요한 비안네(1786-1859년)는 큰 어려움을 극복한 뒤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벨레 교구의 아르스 본당을 맡으면서 열심한 설교와 고행과 기도와 선행등 놀라운 방법으로 본당을 쇄신하고 발전시켰으며 프란치스코 3회원으로서 뚜렷한 명예를 심어 주었다. 그는 고해성사와 영적지도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와 그의 영적 권고를 경건히 듣곤 하였다.
*영국 산업혁명:1760~1830년, 프랑스 대혁명:1789년(1787~99년)
정상적인 초등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였으며, 라틴어 때문에 퇴학당하였습니다.(1814년) 1815년 그레노블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한 성인의 탄생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1818년 주민 230명의 한적한 시골인 벨레 교구 아르스의 주임사제로 부임하여 본당을 쇄신하고 발전 시켰다. 마침내 조용한 시골을 프랑스 전역으로부터 연 2만여명에 이르는 고해자들이 고해성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고해성사와 영적 지도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와 그의 설교를 경건히 듣곤 하였다. 그의 설교는 단순하지만 심금을 울리는 내용이었다. 그의 주교는 "저 신부만큼 모든 사제들이 미쳤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옹호하였다고 한다.
다른 세계나 다른 시간에 속한 존재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가? 길을 떠나자마자 항상 천상의 집을 그리워하는 존재이다. 우리의 정의와 공평에 대한 내적인 감각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공평과 정의에 대해 알 수 있겠는가? 마음속에 간직한 나침반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우리의 길을 인도한다. 따라서 우리 생각을 우리 보화가 있는 곳으로 향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사랑은 이 지상에서 누리는 행복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일치 외에 다른 어떤 것이 아닙니다. 위안을 받고 감미로움으로 충만해지며 놀라운 빛으로 눈부시게 됩니다. 녹아 합치된 두 자루의 초와 같아 아무도 그것을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 그 행복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행복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심으로 우리가 당신과 대화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나의 자녀들이여, 여러분의 마음은 작지만 기도는 그마음을 넓혀 주어 하느님을 사랑 할 수 있는 능력을 베풀어 줍니다. 감미로움을 남겨 주지 않는 기도는 없습니다. 잘 바치는 기도에서 고통은 마치 햇빛을 받는 눈처럼 녹아 버리고 맙니다. 기도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게 해주고 너무도 큰 즐거움을 가져다 주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해줍니다. 한번은 동료 사제들 대부분이 앓아 눕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그때 나에게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헷갈림이 조금도 없습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꼬와 성녀 콜레트는 우리 주님을 뵙고 사람끼리 서로 이야기하듯 그분과 대화했습니다. 또는 무엇을 청하고자 하는지 생각지도 않고 성당에 나오는지요! 어떤 이들은 자비로운 하느님께 흡사 이렇게 말하려는 듯합니다. 즉 우리 주님을 예배하러 나올 때 우리가 산 신앙과 완전히 순수한 마음으로 청한다면 청하는 것을 모두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 축일:10월4일,게시판676번.1403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그는 사제가 되기를 원했으나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신학 공부를 잘 해낼 수가 없었다. 이상을 가진 사람은 장애를 극복하며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일도 과감하게 실행한다. 그러나 사제가 되고자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개인 교수를 찾았다. 불가능한 행위를 필요로 하는 상황들이 항상 그를 따라다녔다. 엄격한 단식과 짧은 수면을 통해 자신을 이끌어 갔다. 겨울에도 그는 하루에 11,12시간 동안 성사를 주었고, 여름철에는 하루에 16시간씩이나 고해 성사를 주었다. 매일매일 자신을 아낌없이 주는 그런 일은 결코 견디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짐에 따라 신자들에게 봉사하는 시간은 더욱 늘어났다. 이상을 가진 사람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가 항상 넘치는 힘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현상인 것 같다. 그는 우리가 목적을 향해 가고 있는 순례자라고는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그것에 불을 붙인다면 조그마한 불꽃이 일어날 것이지만 공동 기도는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런 손님 중에는 성 베네딕토 라브르도 끼어있었다. 특히 신부가 없어 미사참여와 영성체를 마음대로 하지 못함을 비통하게 생각했다. 그는 일찍부터 신부가 되고자하는 생각을 가졌다. 부모에게 그런 뜻을 전하지도 못하고 매일 매일의 양을 치며 농가의 자녀로서 할 일을 다하며 지냈다. 물론 부모들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로부터 2년간을 더 집안 이을 돌보는데 소일했다. 그를 공부 시켜주기로 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속죄로서 고행을 하는 것이었다. 그 후 베리오르 소신학교에 입학했으나, 거기서도 역시 성적은 좋지 않았다. 그의 두터운 신앙심과 품행의 단정함은 전 학우의 겨우 신학부에 진급하게 되었고 마침내는 그의 소망인 사제 서품을 받게 되었다. 바레이 신부는 이미 연로해 때때로 병석에 눕게 되었으나 여전히 엄격한 고행의 생활을 계속했다. 은사는 제자에게 한 가지라도 더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즉 그가 부임한 지 2, 3개월이 되자마자 은사 바레이 신부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세상을 하직했기 때문이다. 아르스는 작은 마을인데, 주민들은 다 신자이지만 대개가 냉담하여 판공성사도 보지 않는 형편이었으며, 그의 덕에 경탄하게 되고 이어 그의 훈계를 명심하는 자들이 되었으며 그처럼 냉담하던 자들이 차차 신앙심이 깊어져 성실한 신자가 되었다 얼마나 많은 고행을 하며 초인간적 활동을 했을까? 그는 끊임없이 단식재를 지키며 감자만으로 식사를 했다. 이러한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신앙에 대해 실망한 자, 마음의 고민으로 위로가 필요한 자, 성인 신부를 만나고 난 후부터는 모두 기쁜 마음으로 돌아갔다. 그는 매일 장시간 동안 고해성사를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에게 성사를 보는 사람은 1년에 평균 2만명에 달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혹은 2,3일 동안 줄을 지어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 외의 다른 시련도 닥쳐왔다. 즉 그를 허무맹랑하게 악평하는 투서를 몇 통 받은 것이었다. 그는 매일 솔직하고 유효한 설교를 하며 충실히 자기 의무를 이행했다. 그의 성덕에 감동되어 신덕을 굳게 했다. 1859년 7월 29일엔 열 일곱 시간이나 고해 성사를 주고 성당에서 나오자 신자들에게 강복을 주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는 과로로 운명한 것이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