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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 제 17장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
궁중의 관리가 되었던 다윗이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을 능욕한 블레셋의 용장 골리앗을 죽임으로써 일약 용사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당시의 다윗의 나이는 약관 22-23세 정도였기 때문에 궁중에서 수금을 타며 사울의 병기 잡은 자로서 공적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블레셋이 침공을 한 것이다. 사울과 그의 군대들은 블레셋의 침공을 막기에 역부족이었으나 다윗이 골리앗을 격파함으로써 명실 공히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던 것이다.
1. 이스라엘을 모독하는 골리앗 (17:1-11절)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신 후 블레셋이 침공했는데 블레셋은 이스라엘 영토 안으로 침공하여 양군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으나 골리앗의 등장으로 힘의 균형이 이내 깨어지고 만다. 블레셋 사람들의 이 같은 공격은 사울과 요나단에 의하여 패전한 믹마스 전투로 인한 손상당한 민족적 위신을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은 사울 왕이 악신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었기 때문에 통치력이 많이 상실되었고 그로 인하여 전의가 급속히 떨어졌다.
블레셋 군대는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였고 에베스담밈에 진을 쳤으며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엘라 골짜기에 진을 치고 전열을 벌렸다. 엘라 골짜기는 유대 남부에 있으며 이곳은 여름철을 빼고는 항상 골짜기에 물이 흘렀기 때문에 ‘와디’ 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블레셋과 전투할 때는 물이 말랐으므로 여름철이 분명하다. 양군은 골짜기를 경계로 낮에는 양편 언덕에 대열을 갖추고 늘어서 있다가 밤에는 장막으로 돌아가는 것을 계속했다. ‘골짜기’라는 말 ‘가이’는 일반적인 골짜기 ‘에멕’과 달리 좁고 급격한 경사를 이루는 협곡을 뜻하기 때문에 서로 전면전을 벌이지 못하고 마주 대치한 상태로 상당 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블레셋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직역하면 ‘둘 사이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단신으로 싸워 전쟁의 승패를 판가름하기 위해 나온 선봉장을 의미한다. 전군을 대표하는 선봉장이 적군의 선봉장과 전투를 하는 방식은 세상 나라들 사이 특히 헬라 지방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나 성경에서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즉 블레셋 사람들은 헬라권에서 이민 온 족속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적장의 이름은 골리앗인데 그 이름의 뜻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가 가드 사람이라는 것과 거인 족속인 아낙 자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의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283cm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그의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철판을 붙인 갑옷을 입었으며 그 무게는 57.5kg이었다.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며, 창자루는 베틀채 같았는데 창자루에 고리가 달린 가죽끈을 묶어 놓은 것을 말한다. 창날은 철 육백 세겔로서 7kg에 해당하는 무게이다. 골리앗은 거대한 신장에 알맞게 육중한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으며 마치 우뚝 솟은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았다.
골리앗은 자신이 블레셋 군대의 대표로 자처하면서 이스라엘 군대에게 대표를 뽑아 보내라고 호통을 쳤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협곡을 경계로 서로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지형 형편상 전면 전쟁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둘째, 자신의 힘을 과시하여 이스라엘의 어떤 장수도 능히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골리앗은 언덕 위에서 골짜기 아래로 내려와서 중간쯤에 우뚝 서서 언덕 위에서 대진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올려다보고 조롱하며 전투를 부추겼을 것이다. 자신은 블레셋 군대의 대표이며 사울 왕의 종들 중에서 한 사람을 택하여 내려 보내라고 종용하였다. 그는 블레셋 군대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여 흥분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하였다. 그의 제안은 선봉장끼리 싸워서 진 쪽은 이긴 쪽에게 항복하게 하자는 것이었지만 결국 싸움에 패배한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볼 때 그의 말은 거짓이요 허언이며 다만 상대를 협박하기 위한 기만 술책에 불과하였다. 골리앗은 이스라엘을 두 가지로 모욕했는데 이스라엘 군대는 사울의 노예 혹은 종이라는 것과, 겁쟁이들이기 때문에 블레셋의 종이나 되라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은 크게 놀랐는데 ‘하타트’라는 이 말은 극단의 공포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처럼 사울 왕과 군대 전체가 골리앗의 기세에 겁을 먹고 기가 질려 두려움으로 전전긍긍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사울 왕에게서 여호와의 신이 떠나버렸기 때문이었다.
2. 다윗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17:12-20절)
하나님께서는 치욕적인 상황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다윗을 전장으로 인도하시고 블레셋과 싸워 이기게 하셨다. 다윗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의 아들이었는데 ‘에브랏’은 고대 명칭으로 족장 야곱의 아내 라헬이 산고로 죽은 곳이며, 선지자 미가는 메시야가 태어날 곳으로 예언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은 스블론 지파의 베들레헴과 구별되었고 에브랏 사람이라고 하여 이새가 베들레헴 본토인임이 증명되었다. 유다 베들레헴은 성군 다윗의 고향이었으며 장차 메시야가 태어날 곳으로 구속사의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이새에게는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으며 장성한 세 아들은 전쟁에 나갔다. 당시에 전쟁에 나갈 수 있는 나이는 20세 이상이었기 때문에 다윗은 수금을 타기 위하여 사울에게 갔지만 사울의 병이 호전되자 집으로 돌아와서 양을 치고 있었다. 골리앗은 40일 동안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괴롭혔는데 이는 이스라엘 측에서 골리앗을 상대할 사람을 내보내지 못했으며, 전면전 역시 불가능했기 때문에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갔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전황이 길어지고 40일이 지나자 이스라엘 진영에 양식이 고갈되었을 것을 염려하여 이스라엘 각 가정에서는 싸움에 징집된 자식들에게 일종의 병참 지원을 했는데, 이새 역시 세 아들의 안위를 위하여 복은 곡식 한 에바와 떡 열 덩이를 형들의 양식으로 보내고, 치즈 열 덩이는 천부장에게 선물로 주어 안부를 물어오게 하였다. 다윗은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기 위하여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전쟁터로 갔는데 이는 다윗의 순종과 부지런함, 책임감이 잘 나타나 있다. 다윗이 이스라엘 진영에 도착했을 때 군대가 진영을 갖추고 적과 싸우려고 고함을 치며 출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3. 골리앗을 무찌를 자 다윗 (17:21-40절)
다윗은 전장에 도착하자마자 자기가 가지고 온 짐을 짐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군대로 달려가서 형들을 만났다. 다윗은 자기가 가지고 온 짐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전하지 않고 병참 장교의 손을 거쳐 형들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마침 그 때에 골리앗이 적진으로부터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였고 다윗은 이 말을 직접 듣게 되었다. 골리앗의 말을 듣고 그 모습을 본 이스라엘 군대는 심히 두려워하고 사기가 저하되고 떨림에 사로잡혀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40일 동안 이 같은 고통을 계속해서 당했기 때문에 이제는 두려움이 절정에 달하여 싸울 용기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병사들은 도망을 치면서 사울 왕이 약속한 사실 즉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 주어질 세 가지 상급을 말해 주었다.
첫째, 왕이 많은 재물을 주어 그를 부하게 한다는 것이다.
왕이 큰 재물을 약속했다는 것은 사울 왕가가 그동안 많은 재정을 보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왕의 딸을 그에게 주어 사위로 삼겠다는 것이다.
사울에게는 ‘메랍과 미갈’이라는 두 딸이 있는데 메랍은 다른 사람과 결혼했지만 미갈은 결국 다윗에게 주었다. 왕의 사위가 된다는 것은 매력적이고 의미심장한 일이었으며 차기 왕으로 선정된 다윗에게는 왕좌로 나아가는 길을 평탄하게 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셋째, 그의 아버지 집에 세금을 면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당시 백성들에게 나라에서 주는 혜택은 부역의 면제와 세금의 감면이었다. 이 두 가지는 나라에 공을 세운 자에게 내리는 큰 혜택으로 가문의 영광이었다.
군사들의 말을 들은 다윗은 의분이 일어나 자신이 골리앗을 죽일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그러나 다윗의 의분은 단순히 자신의 영달이나 공명심, 재물 때문이 아니라 오직 골리앗에게 당한 민족적 치욕 및 신성 모독을 제거하려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치욕’이라는 말 ‘헤르파’는 골리앗이 이스라엘에게 준 모욕과 동일한 말이다. 다윗이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라고 반문한 것 더 큰 상급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골리앗을 죽이는 일의 당위성, 시급성을 말하는 것이다. 즉 다윗은 골리앗을 향하여 ‘할례 받지 않은 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자’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에는 다윗이 언약 백성으로서의 자부심과 하나님께서 자신과 반드시 함께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담겨 있다. 다윗은 하나님을 부를 때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했는데 이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만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엘로힘 하임’은 블레셋이 섬기는 다곤 우상의 무기력함과 무가치함을 경멸하는 말투인 것이다. 이것은 골리앗이 다곤 우상의 이름을 빙자한 저주가 아무런 효험이 없다는 것이며 사울 통치하의 무기력하고 침체된 이스라엘 군대의 무감각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다윗의 말을 들은 다윗의 큰 형 엘리압이 다윗에게 노를 발하였는데 그의 노는 다윗의 거룩한 분노와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곧 자신의 편협한 소견에서 비롯된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분노였다. 큰 형의 입장에서 볼 때 막내 동생은 너무나 어리고 철없는 철부지였을 것이다. 거기에다 자신을 제쳐 두고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질투심과 시기심이 작용했을 것이다. 엘리압은 다윗을 책망했는데 그가 양을 지키는 임무를 태만했다는 것과, 쓸데없이 나라의 일에 참견했다는 것이다. ‘교만’은 목동의 주제를 벗어난 이기적 욕심과 어린 나이에 어른들의 일을 참견하는 것을 지적하는 말이고, ‘완악’은 피흘리는 전쟁을 보고 즐기는 사악한 심성을 지적하는 말이다. 이런 말들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을 지적할 때 사용하는 말로서 엘리압은 다윗의 거룩한 열정과 의분을 한낱 이기적인 교만과 사악함으로 매도하고 격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은 다윗이 아니라 엘리압 자신의 내면에 내포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윗은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라고 반문했는데 이 말은 자신은 결코 책망을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울 의사를 밝히는 말 외에 아무 교만한 말이나 완악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라는 말 역시 다윗은 골리앗으로 인해 빚어진 이스라엘의 위급한 상황을 목격하면서 강렬한 신적 소명 의식을 느꼈고 바로 이 같은 소명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아버지를 통해 다윗을 이곳으로 인도하신 것이라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이어서 다윗은 골리앗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백성들 역시 사울의 세 가지 상급에 대해 확인하여 주었다.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다윗이 한 말을 왕에게 고하였고 사울은 다윗을 불렀으며 다윗은 왕에게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고하였다.
첫째, 골리앗을 인하여 사람이 낙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말은 ‘한 사람이라도’라고 번역함이 옳다. 시골의 일개 목동에 불과했던 다윗이 한 나라의 통치자요 군대 총 지휘관인 사울에게 이러한 말로 위로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둘째, 주의 종이 가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 말은 결코 만용이나 교만이 아니었다. 오직 할례 받지 못한 이방 족속 블레셋 사람의 그 모멸스러운 치욕과 경멸로부터 여호와의 군대인 이스라엘의 명예를 되찾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영광을 회복해야 하겠다는 거룩한 열정에 불타 믿음과 확신으로 결연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었다.
사울은 다윗의 호기를 보고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으며 그를 아끼는 마음으로 조용히 만류한다. 그 이유는 다윗은 아직 군인이 되기에는 어린 소년이며 실제 전투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과, 골리앗은 다윗의 나이 때부터 전투 경험을 많이 쌓아온 백전의 노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용기는 가상하나 결과는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기 때문에 그의 요청을 거절한 것이다.
여기서 다윗은 자신은 전투 경험은 없지만 ‘전투 능력’은 충분히 있음을 강력히 호소한다. 그 증거로 목동으로서 양떼를 지킨 경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자와 곰은 양떼를 지키는 목동에게는 가장 경계해야 할 대표적인 맹수로서 그것들이 양을 해치고자 할 때 다윗이 도망하지 않고 사투를 벌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윗은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곰의 머리를 치기도 하고 수염을 잡고 쳐죽이기도 했었다. 다윗은 자신의 양떼를 해하려 한 맹수와 이스라엘을 해하려 한 골리앗을 암시적으로 동일시하면서 사자와 곰을 쳐죽인 자신이 골리앗도 반드시 죽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다윗은 자신의 힘으로 사자와 곰을 이겼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자신을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기 때문에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손에서도 반드시 건져내신다는 것이다. 골리앗에 대한 다윗의 도전은 결코 일시적인 흥분이나 충동으로 인한 만용이 아니었다. 이 싸움은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고 여호와를 능멸하고 있는 골리앗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전투이며, 반드시 할례 받지 못한 자를 징계해야 한다는 원칙과, 이스라엘의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결연히 자원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전투는 전체 전투를 결정짓는 중요한 결투였고, 이 전투의 승패에 따라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압제와 위협으로부터 자유하느냐 아니면 또 다시 속국으로 전락하고 마느냐 하는 기로의 한 판 승부였다. 따라서 사울은 40일 동안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선뜻 도전자를 내보내지 못하고 망설였던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도전 의사는 인간적인 충동이나 상급에 눈이 어두워 무작정 던지는 만용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거룩한 열정과 확고한 신앙에 근거한 것이었으며 그의 논리적인 설득에 사울은 크게 감동을 받고 마침내 골리앗과 일전을 허락하게 된다. 사울은 다윗의 승리를 강력히 염원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승리를 축복하였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이 축복은 미래형으로 ‘계실 것이다’라는 기원이다.
사울은 다윗이 골리앗처럼 중무장하기를 원하여 자기의 군복을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갑옷도 입혔으며 왕의 칼을 그의 허리에 차게 했다. 마치 골리앗과 같은 복장을 하고 무장을 시킨 것이다. 이는 사울이 다윗의 신앙과 경험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결과였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싸우려는 다윗에게 인간적인 전투 장비는 무가치했던 것이다. 다윗은 왕의 명령을 거절할 수 없어 일단 군복을 입고 무기를 소지했으나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사울의 체격이 보통 사람들보다 현저하게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다윗은 군복을 벗고 막대기와 돌 다섯 개를 골라 목자의 제구에 넣고 손에 물매를 들고 골리앗에게로 나아갔다. 막대기는 보통 버드나무의 껍질을 벗겨 만든 것으로 목자의 지팡이를 가리킨다. 이 지팡이로 목자는 산에 오르거나 나뭇잎을 칠 때, 양이 웅덩이에 빠졌을 때 사용하였다. 당시 엘라 골짜기에는 매끄러운 돌이 많았는데 다윗은 시내 바닥에서 단단하고 매끄러운 차돌을 주워 물매에 넣었다. 물매는 양가죽으로 만들었으며 던질 돌을 넣을 수 있도록 넓게 엮어져 있었다. 이 물매는 지팡이와 더불어 목자의 필수품으로 옆길로 새는 양을 인도하고 맹수들을 쫓아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매 돌을 던지는 실력이 대단했으며 전투에서 무기로 사용했던 것이다.
4. 골리앗을 무찌른 다윗 (17:41-54절)
다윗과 골리앗의 접전이 드디어 시작되었으나 서로 대결을 벌이는 두 사람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골리앗은 당시 아군이나 적군 할 것 없이 모두 인정하는 용사였으나 다윗은 시골에서 막 올라온 동안의 소년이었다. 골리앗은 누구의 근접 공격도 용납하지 않는 완전 무장을 하고 있으나 다윗은 물매 돌 몇 개만 가지고 나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골리앗은 거인인 자신의 힘을 생존과 승리의 유일한 근거로 생각하고 있는 교만한 자였으나 비록 나약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지하는 겸손하고 믿음의 사람이었다.
다윗의 연소함과 왜소함, 그리고 허술한 무장을 본 골리앗은 다윗을 조롱하고 독설을 퍼부어 업신여겼다. ‘보고’라는 말 ‘라아’는 자세히 관찰했다는 말이다. 그가 본즉 다윗은 나이가 어린 소년으로 그 머리카락이 붉고 용모가 아름다웠다. 요즈음 말로 하면 미소년으로 전쟁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돌이었던 것이다. 골리앗은 우선 다윗에게 분노를 일으키게 하고 동시에 겁을 주기 위해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라는 말은 영어로 하면 ‘Am I a dog' 이다. ’내가 개냐‘ 라는 말인 것이다. 다윗이 막대기를 들고 나왔기 때문에 비꼬는 말로 한 것인데 전투에 나오는 선봉장이 칼이나 창을 가지지 않고 막대기를 들고 나온 것을 보고 철없는 소년의 장난이라고 비꼰 것이다. 당시에는 싸우기 전에 자신이 믿는 수호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상대방을 경멸하는 일이 보편적이었다. 그러므로 다윗 역시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저주했던 것이다. 골리앗은 다곤 신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했는데 결투를 벌이기 전에 저주와 위협으로 독설을 퍼부어 스스로 사기를 앙양시키고 기선을 장악하기 위함이었다. 전투에서 이긴 사람은 상대 장수의 옷을 벗긴 후 신체에 모욕을 가하는 경우와, 시체를 그대로 방치하여 새나 들짐승의 먹이로 주어 모욕했는데 골리앗 역시 다윗에게 그렇게 해 주겠다고 장담하고 호언했던 것이다.
골리앗의 저주를 받은 다윗은 군대의 무기보다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싸우겠다고 함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성전을 수행하는 자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골리앗이 무장하고 있는 칼과 창과 단창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무력을 상징한다. 그러나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무장했는데 ‘예호와 체바오트’는 이스라엘을 그의 군대로 삼고 친히 지휘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그 이름으로 골리앗과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다윗의 싸움이 개인 또는 국가의 싸움이 아니라 블레셋 족속의 신 다곤과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 간의 싸움으로 인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의 헛된 목석의 신들은 살아 계신 여호와의 능력 앞에 여지없이 거꾸러질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성전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첫째, 여호와를 대적하는 원수들을 심판하심으로 온 땅을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운행하시고 섭리하시는 여호와를 널리 증거하는 데 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둘째, 성민들에게는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깨닫게 하여 오로지 믿음으로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
만약에 이스라엘 군대 내에서 골리앗과 비슷한 용사를 선발하여 전투를 하게 하여 이겼다면 그 승리의 전과는 그 용사에게 돌아갔을 것이지만 다윗이 창이나 칼도 없이 막대기와 물매만으로 승리한다면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승리요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의 모든 승패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따라 좌우된다.
*시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상방 간에 저주와 기선 제압의 모든 행위가 끝나자 골리앗이 다윗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며 전진해 왔으며, 다윗 역시 후퇴하지 않고 더 빠른 속도로 골리앗을 향하여 달려갔다. 이러한 다윗의 적극적인 전투 자세는 오직 여호와의 능력을 힘입어 싸우려는 신앙적 용기였다. 골리앗은 중무장으로 인해 행동이 둔했던 반면 다윗은 목동의 복장과 소도구로 인해 민첩한 행동으로 블레셋 진영으로 가까이 다가갔으며 빨리 달리는 동시에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골리앗을 향하여 발사하였다. ‘물매’는 블레셋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이스라엘 목동들의 병기였으며 골리앗 역시 다윗이 물매를 가지고 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골리앗은 중무장을 했기 때문에 일개 물매로 타격을 입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였을 것이다. 그 결과 다윗이 던진 돌은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박혔고 그는 단 한 발의 돌에 맞아 땅에 엎드러져 죽었다. 이는 다윗의 물매 던지는 실력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40일 동안이나 온갖 모욕과 조롱을 당하셨던 하나님의 진노가 물매 속에 함께 하여 골리앗을 응징하신 것이다. 골리앗은 땅에 그대로 엎드러졌는데 이는 여호와의 법궤 앞에서 블레셋의 신 다곤이 엎드러진 것과 흡사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칼이나 창이 없어도 능히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이 입증되었고 다윗이 던진 돌이 골리앗을 쳐서 엎드러지게 한 것은 다니엘의 환상 중에 나타난 뜨인 돌이 큰 신상을 부순 사건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므로 다윗의 물매 돌 사건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우상을 징치하고 사탄의 세력을 엎어버리신다는 사건의 전조와 같은 것이었다.
다윗은 골리앗을 발로 밟았는데 이 행위는 완전한 정복을 상징한다. 이는 블레셋 민족에 대한 이스라엘의 완전한 승리를 나타내며 동시에 그리스도를 통한 사탄 세력의 멸절과 승리를 예표하는 것이다. 전쟁의 관례상 상대의 무기로 상대의 목을 치는 것은 그 장수에 대한 수치심을 안겨 주는 것이다. 다윗은 골리앗을 밟음과 동시에 그의 병기든 자가 가지고 있던 칼로 그의 목을 베었다. 이 칼은 후일 다윗이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도로 받아 자신의 호신용으로 사용하였다.
블레셋 군대는 골리앗의 죽음을 보고 전의가 상실되어 도망치기에 급급하였으며 결과적으로 블레셋은 자기 영토인 가드와 에그론까지 후퇴했고 이스라엘은 대승을 거두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와서 블레셋 사람들이 버리고 간 진영을 노략하였는데 승전국 군사가 패전국 진영을 노략하는 일은 다반사였으나 이 사건은 달리 해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합법적인 탈취를 뜻하는 ‘솰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불법적인 탈취를 의미하는 ‘솨사스’라는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그 물건들이 하나님을 모욕하고 이스라엘을 조롱했던 블레셋 사람들의 소유물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께 바쳐진 저주받은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들은 영적 지도자의 조언에 따라 처분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임의로 취하여 하나님 앞에 거룩함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다윗이 골리앗의 머리를 예루살렘에 가지고 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었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난해한 부분이다. 당시 예루살렘은 가나안 족속인 여부스 족속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그곳으로 가지고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울 왕이 기거하고 있는 기브아 왕궁을 예루살렘이라고 표기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자기 장막이라는 말 역시 베들레헴에 있는 자기 집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자신을 승리하게 하신 여호와께 바치기 위하여 성막에 보관했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후일 그 칼을 다윗이 성막에서 회수한 것으로 보아 여호와의 영광과 명예를 기리기 위해 성막에 기념물로 바친 것이 분명하다. 결국 다윗은 적장의 머리는 왕에게 드리고, 그가 무장했던 무기는 여호와께 드린 것이다.
5. 다윗과 사울의 재 상면 (17:55-58절)
블레셋 선봉장 골리앗을 향하여 달려가는 다윗을 본 사울은 그의 군 사령관 아브넬에게 그가 누구인지 물었다. 아브넬은 사울의 숙부 넬의 아들로서 사울과는 사촌지간이다. 아브넬은 군장으로서 능력 있는 무사이며 사울을 보필하였고, 사울이 죽자 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옹립하여 사실상 북이스라엘의 실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사울 왕의 첩이었던 이스바 와의 통간 사건으로 이스보셋으로부터 질책을 당하자 격노하여 다윗에게로 귀순하려 했다가 귀순하는 과정에서 요압 장군의 계교에 걸려 살해당하고 만다.
사울은 아브넬에게 다윗이 누구의 아들이냐고 물었다. 물론 다윗이 사울 앞에서 수금을 탔었고 이새에게 세금을 면제하여 준 사실이 있었지만 당시 사울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기억력이 상실 되었을 것이며, 방금 다윗에게 자기의 군복을 주고 골리앗과 싸움을 허락했으나 그토록 용감하고 놀라운 승리를 한 청년이 어떤 혈통과 신분적 위치에 있는 가문의 자식인지 알고 싶었을 것이다. 아브넬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고 했고 사울은 다윗에 대해서 다시 물어보라고 할 때에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그의 머리를 손에 들고 사울 왕 앞으로 인도되었다.
틀림없이 다윗은 골리앗의 머리를 승리의 기념물로서 존경하고 충성하는 왕에게 바쳤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궁금해 하는 왕에게 자신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라고 대답했다. 사울이 다윗의 가문에 대해 물은 것은 어느 지파에 속하는지, 그의 조상들은 어떤 유명한 인물인지, 자기 수하에 속한 신하들 중에 한 사람인지 그 모든 것이 궁금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울은 유능한 장수만 보면 모두 등용하고 자기 군사로 삼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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