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정말 마음 따뜻하고 용기있는 남편
권다품(영철)
나는 몇 살까지 살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자리에 누워서까지 꼭 오래 살고 싶지는 않다.
그냥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만 살 수 있다면, 그렇게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조용히 갈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듯이, 사람들의 생각도 내 생각과 얼마든지 다를 수 있겠다.
의지와 관계없이 오래 살아야 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그렇게 싱싱하던 아들이 갑자기 죽다보니, 새로운 삶을 찾아가버린 며느리 대신 손자를 키우기 위해 빈 박스들을 주워 팔아야 하는 노인들도 있을 것이다.
대소변도 받아내며 자리 보전을 해야하는 자식을 둔 어느 노모도, 할 수만 있다면 그 자식과 함께 죽을 수 있기를 기도할 지도 모르겠다.
노인들 중에는 자식들에게도 버림받고 몸이 불편한 배우자를 돌봐야 하는 노인들도 우리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힘든 사람들에게 정부에서라도 지원을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정치하는 놈들은 서로 싸우느라 그런 생각도 없는 것 같다.
그런 정치인 놈들을 생각하면 욕밖에 안 나온다.
이런 놈들을 보면 아예 기대도 안 생긴다.
이런 나라에 살다보니, 나는 집안 살림에 부담을 줄 정도의 치료비를 지불해 가면서,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집안에 그늘을 드리우고 싶지 않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처자식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지않고, 건강하게 살다가, 다른 사람에게 부담이 되겠다 싶을 때 죽을 수 있다면, 뒤가 깨끗해서 참 좋을 것 같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내가 들었던 그 분처럼 깨끗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 그 분은 70대 초반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두 내외는 오손도손 열심히 살며 자식들도 남부럽지 않게 반듯하게 키웠단다.
그렇게 자식들 공부를 시켜, 이쁜 짝을 맺어 결혼도 시키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손녀들도 생기고 ....
바르게 사신 분이라 자식들도 반듯하게 컸든가 보다.
항상 자식들이 주말에 내려가려고, 뭐 드시고 싶으냐, 뭘 사가지고 갈까 하고 여쭤보곤 했단다.
그런데, 어느날은 아무리 전화를 해도 전화를 안 받더란다.
놀란 자식들이 급히 내려가 보니, 유서를 남겨놓고 두 분이 같이 돌아가셨더란다.
"이만큼 살았으면 많이 살았고, 너희들 때문에 행복하게 살았다.
사실 너희에게 말은 안 했지만, 병원에 가니까 너희 어머니가 암이 점점 진행이 돼 간다더구나.
너희 어머니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기가 너무 힘도 들고, 또, 너희 엄마 가고 없는데 늙은 남자가 혼자 사는 것도 추할 것 같아서, 지금 둘이 같이 가는 것이 제일 행복할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다.
더 늙어서 혼자 사는 늙은이가 자식들에게 부담이나 주고, 자식, 며느리들 눈치나 보면서 사는 것은 내 성격으로는 안 될 것 같구나.
적은 나이도 아니고, 갈 때가 됐다 싶어서 가는 거니까, 우리가 죽었다고 놀라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끝으로, 부탁이 있다면, 너희 어머니와 둘이 같이 묻어다오.
2010 년 7 월 O 일, 애비가 ...."
그렇게 내외는 약을 같이 먹고 돌아가셨단다.
그 말을 듣고 정말 대단한 용기를 가지신 분들이구나 싶었다.
나도 그분들을 한 번도 보지는 않았고 그냥 전해들은 얘기다.
그런데도, 그 분들이 어떻게 사셨는지 보이는 것 같았다.
평소에 깨끗한 옷을 입고, 틈틈이 성경을 읽으시거나, 서재에서 책을 읽으시며 사셨을 것 같은 그런 분이었을 것 같다.
병이 더 심해지면 추해질 지도 모른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는, 그 멀고 무서운 길을 사랑하는 아내 혼자 어떻게 보낼까 싶어 아내와 같이 가 줄 줄 아는 남편!
그렇게 깨끗하게 맺고 끊을 수 있는 분들이라면, 마음 속의 욕심을 얼마나 비울 수 있어야 가능할까?
나도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죽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큰 복이 있을까?
내 나이 아직 젊기는 하다.
벌써 죽음을 생각할 나이는 아닐 것 같다.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죽느냐도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젊어서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이른 나이긴 하지만, 삶에 집착하면 추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가능할 지는 모르지만, 가끔 어떻게 죽는 것이 깨끗할 지 생각은 해보는 편이다.
그 대머리 영화배우로 유명한 율부린느는 아파서 죽으면서도, 죽을 때는 정말 자신이 수도없이 연기했던 황제처럼 의연하게 죽었다는 일화를 들었다.
자주 그렇게 생각하면 쪼매이는 의연해 질랑강?
안 그러면 고통을 겪으면서 죽어야 하는 환자들을 위해서 "안락사" 허용을 신중히 검토해 보든지.
2011년 4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