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치아 코지마 델레다는 1871년 9월 28일 오전 2시에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의 누오로에서 다섯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조반니 안토니오 델레다는 법학을 전공했지만 인쇄소를 차리고 잡지를 인쇄했고 대체적으로 부유한 집안이었다. 그는 1863년에 누오로 시장이 되었다. 어머니는 프란체스카 캄보수인데 그녀는 딸의 교육을 전담했다.
그녀의 가족은 불행에 시달렸다. 오빠 산투스는 학교를 그만두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동생 안드레아는 절도 혐의로 체포되었다. 아버지는 1892년 11월 5일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남은 가족은 생활고에 시달려야했다.
그라치아는 작고 폐쇄된 누오로에서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작가로서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그라치아 델레다는 1890년에 ‘이스마일’이라는 가명으로 소설(Stella d'Oriente)을 신문에 연재했고 밀라노에서도 이 책을 단행본으로 출판했다. 구베르나티스, 본기 같은 작가들의 추천으로 1895년 새로운 소설(Anime oneste)을 출판했고 1897년에 사르데나의 자연을 주제로 한 시집도 출판할 수 있었다.
1899년 10월에 델레다 가족은 모두 칼리아리로 이사했고 이 도시에서 재무부 공무원 팔미로 마데사니를 만나 두 달 후인 1900년 1월 11일에 결혼했다. 남편은 그라치아의 문학적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1903년에 출판된 소설(Elias Portolu)로 작가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13년 대표작 중 하나인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Canne al vento)를 통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 이 작품으로 그녀는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소설가 D.H. 로렌스가 그녀의 팬을 자처하며 나섰다. 1926년 그녀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고 10년 후인 1936년 여름에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그라치아의 마지막 작품이 소설 코지마(Cosima)인데 사후에 발견되었다. 그녀가 사망하고 한 달 후에 안토니오 발디니가 편집해서 문학잡지에서 실렸고 그 다음해에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코지마〉는 그녀의 중간 이름 코지마를 주인공으로 소설의 형식을 빌린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마지막 작품으로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에 출간되었다.
소설의 이야기는 코지마라는 소녀의 성장담이 주축을 이룬다. 좋은 남편을 만나 결혼하는 것만이 여자의 ‘유일한 운명’이었던 시대에 코지마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결국 작가로서 빛을 보게 된다. 수많은 벽에 부딪히면서도 농부와 목동이었던 조상들의 강인한 영혼을 지녔음을 굳게 믿으며 코지마는 내면의 빛을 따라간다. 코지마가 들려주는 가족과 이웃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두근거리는 첫사랑 이야기, 신비로운 전설들을 듣노라면 어느새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우리의 삶과 방식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음이 놀라울 따름이다. 백여 년을 뛰어넘는 시공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우리의 삶은 그물처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또 다른 이야기의 축은 황홀함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사르데냐 섬의 풍광이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험준한 바위산들, 초록이 만발한 숲과 척박한 황무지로 이루어진 반어법적인 고향의 모습은 죽는 날까지 그녀를 사로잡았다. 마침내 꿈을 이루고 그토록 가고 싶었던 로마에서 평생 글을 쓰며 살았음에도 그녀의 시선은 늘 그곳으로 향했고 소설 속에는 사르데냐의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노년에 접어든 작가는 〈코지마〉에서 비상한 기억력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과 산과 바다의 풍경을 손에 잡힐 듯 묘사한다. 어린 코지마의 손을 꼭 붙잡고 요정과 거인들이 산다는 전설적인 숲을 노니는 듯한 기분에 빠져들게 된다.
이야기를 끝마칠 때 즈음, 코지마는 외할머니 꿈을 꾼다. 할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어지러움을 느낀다. 할머니에게 커피를 대접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세상을 떠난 나의 외할머니 또한 코지마의 외할머니처럼 체구가 작고 손발이 자그마하며 순수함으로 가득한 눈동자를 지닌 분이셨다. 지금도 나의 침대 곁에는 외할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할머니를 위해 손수 만든 앉은뱅이책상이 놓여있다. 서랍을 열고 녹슨 가위를 꺼내 손에 쥐어본다. 포목점을 하며 자식들을 뒷바라지했던 할머니의 손때 묻은 가위를. 가슴이 울렁거린다. 코지마가 느꼈던 어지러움과도 같은 것일까. “너무 예쁘세요, 할머니. 진짜 요정 같아요.” 코지마가 말한다. 그녀와 나의 꿈속에 찾아온 할머니들은 요정처럼 작고 아름답다.
“요정들은 수 천 년 전부터 산에 있는 동굴에 모여 살고 있다. 금으로 짠 그물로 매와 바람과 구름 그리고 사람들의 꿈을 잡아들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