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명예기자단이 ‘성가정 탐방’ 이란 기획으로 2008년 성가정 축복장 수여 가정을 취재한다. 이들 가정을 직접 찾아가, 성가정의 모습을 닮기 까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또 어떤 보석 같은 사연들이 숨겨져 있는지 발견해나가고자 한다.
그 첫번째 주인공은 중앙성당 유종환(시몬)·김영희(소화 데레사) 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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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럼 빈자리가 저절로 채워졌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우리 예성이가 삼촌 자리를 채워줬네요 ...허허허"
새로운 한 해와 더불어 새 생명이 주는 기쁨에 흠뻑 젖어 있는 중앙성당 유종환(시몬)·김영희(소화 데레사) 가정을 찾았다. 딸 주연(글라라) 씨가 얼마 전 손주 예성이를 낳고 친정에 머물고 있어 집안에는 웃음이 떠날 줄 모른다. 지난 1월 10일 아들 유가별(프란치스코, 외방선교회 소속)을 파푸아뉴기니로 떠나보낸터라, 가족들에게는 예성이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진: 부인 김영희 씨와 모친 황보복길 씨가 예성이를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다.)
- 손주 이름을 ‘예’수님과 ‘성’인들을 닮으라는 뜻으로 ‘예성’이로 지으셨다고 하시고, 아드님의 이름도 가브리엘 천사를 뜻하는데, 혹시 손주인 예성이도 사제로 봉헌하고 싶은 남다른 기대로 이름을 지으신 건지요?
▲유종환 (이하 유) : 물론 성소가 있어야 하겠지만, 할 수만 있다면 예성이도 성소의 길을 걷는다면 좋겠지요. 주위 분들은 아들을 먼 타지에 보내놓고 어찌 사냐고 말씀하시지만 솔직히 저희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기쁨이 더 많기 때문이죠. 가별이 역시 파푸아뉴기니로 떠나면서 혹시 사고로 그 곳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꼭 그곳에 묻히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순교의 마음으로 가기 때문이라면서요. 그런 아들이 너무나 대견스럽습니다.
- 가족들의 이런 신앙이 어머니 황보복길(말가리다) 님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유종환 씨 모친 황보복길(말가리다) [▼사진] : 우린 이산 가족이에요. 평양 살 때 남편이 청진으로 출장간 사이에 전쟁이 터져 남편, 큰 아들과 헤어지고 가별이 아범(유종환 씨)과 남으로 내려왔죠. 전쟁이 끝나고 포로 교환 얘기가 나왔을 때 다시 북으로 가려 했지만, 그때 명동성당 수녀님께서 북한 체제도 그렇고 남편과 큰아들 생사여부도 확실치 않은데 괜한 큰 고생을 할 수도 있다고 극구 말리셨어요. 그렇게 아들과 단둘이 남아있게 됐고, 그때부터는 오로지 하느님께 매달렸습니다. 원래는 가별이 아범을 신부님 만들려고 했는데 그게 안됐어요. (웃음) 하지만 이렇게 며느리도 보고 손주의 손주도 보고 너무 좋네요.
우리 가족 신앙의 못자리, 어머니
- 어머니의 신앙적 영향이 크셨겠군요.
▲ 부인 김영희(이하 김): 어머님이 물려주신 가장 큰 가보는 신앙이죠. 며느리로서 주로 보고 들은 건 ‘겸손과 평화’ 예요. 제 여동생이 수녀가 되기로 결심한 것도 어머님을 통해 신앙적으로 깊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었어요. 더 신비한 것은, 동생이 수녀원 입회한 후 저희 집에 한동안 머물러 있던 동생 친구들 2명도 줄줄이 바로 수녀원으로 들어갔다는 거죠. 어머님과 함께 한 방에서 지냈었는데, 신기하게도 모두 성소가 있었나봐요. 전해 듣기로는 수녀원에서 “이미 그 가정에서 기본적인 수도자 생활은 다 배우고 왔다”고 그러더래요. 저희 어머님이야말로 신앙 못자리예요.
가족 식사 시간이 보통 2시간, "대화가 중요하죠"
- 지금처럼 화목한 가정을 이뤄가시는 비결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김: 우리 가족은 정말 대화를 많이 해요. 신앙의 대물림도 역시 대화에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 대화 시간, 장소가 따로 필요한 건 아닙니다. 가족이 다 모이는 식사 시간이 제일 좋아요. 우리 가족은 보통 식사 시간이 2시간이죠.
▲유: 어찌 보면 바보처럼 살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우리 가족은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려고 애쓰며 살아왔습니다. 항상 주어진 대로,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아왔고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많은 은혜만큼은 못되더라도 늘 이웃을 위한 일이라면 아낌없이 나누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베푼 후에는 더 많은 은혜를 받는 은총을 누렸다고 생각합니다.
- 힘든 시절은 없으셨나요?
▲유: 물론 있었죠. 자동차 회사에서 나온 뒤 몇몇 직업을 거치며 힘든 시기를 보냈었습니다. 그러다 7년 전 페인트 일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어찌나 텃세가 심한지, 그때 갖은 수모를 겪었고 제가 일이 없으면 바로 가족이 굶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모두 다 가정을 위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고 그 힘은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얻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차츰차츰 일거리가 생기더라고요. 얼굴만 봐도 신뢰가 간다며 일을 주는 경우도 많았죠. 그래서 이렇게 어엿한 페인트 가게까지 갖게 됐습니다. 어렵던 시절을 견뎌내며 열심히 일해 주님께 커다란 봉헌을 할 수 있었을 때, 온 식구가 눈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봉사 부부" 25년 침술 봉사, 17년 목욕 봉사
- 그런 어려운 시기를 거치시면서도 꾸준히 이웃을 위해 봉사해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유: 모든 침 시술을 배웠고 자격증도 있어서 25년 정도 틈틈이 봉사해왔습니다. 노인 분들과 특히 냉담자들을 위한 선교를 목적으로도 봉사를 하고 있어요. 어제도 여주로 봉사를 다녀왔는데 한 달에 두 번 정도 내려갑니다. 주변에서는 침술원을 차려도 되겠다하지만 이익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어요. 올 8월쯤에는 아들이 있는 파푸아뉴기니로 가서 침 봉사를 할 계획입니다. 저 역시도 외지 선교 활동을 하고 싶었거든요.
- 부인 김영희 씨는 17년간 목욕봉사를 꾸준히 해오시면서 냉담자를 회두하셨다고 하던데,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 김: 그게 벌써 17년이 됐나요. 당시 저희가 살던 곳으로 이사 온 가족이 있었는데, 그 집에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군대 휴가 차 와 있다가 연탄가스로 전신불구가 됐어요. 그 바람에 그 엄마가 냉담자가 됐죠. 아들을 보살펴 줄 봉사자를 찾았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었는데, 제게 부탁하기에 기꺼이 시작했죠. 한 달쯤 지났을까 제게 봉사비라며 돈을 주시더라고요. 저는 하느님의 사람으로 와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차라리 그 돈으로 사람을 구하시라고 했죠. 제가 바쁘면 우리 식구들이 돌아가며 봉사를 했죠. 결국 그 모습에 그 엄마도 회개를 하셨어요.
▲ 왼쪽부터 유종환 씨, 모친 황보복길 씨, 부인 김영희 씨, 손주 장예성, 딸 유주연 씨
- 훌륭한 성가정을 이루는데 다른 가정에 도움 말씀을 주신다면?
▲유: 많은 가족들이 가톨릭 관련 서적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스무 살 넘어 처음 어머니께 받은 책 한 권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읽어온 책이 성가정을 이루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가톨릭 관련 서적을 많이 읽게 해주었으면 합니다. 너무나 좋은 책들이 많이 있는데, 책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 (주변을 둘러보며) 그러고 보니 상당히 많은 책을 모으셨는데, 모두 가톨릭 관련 서적인가요?
▲유: 네. 40년 넘게 모은 책이 벌써 1,500권이나 되네요. 지금 페인트 사업을 하기 전 자동차 회사에 근무 할때도 보너스를 받으면 무조건 책을 샀으니까요. 작년 가을에 230권은 저희 성당에, 320권은 수녀원에 기증을 했어요. 참 뿌듯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이러한 가정으로
-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유: 기도하는 어머니, 봉사하는 아내가 우리 가정의 뿌리입니다. 다시 태어나도 이러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싶고 또 이렇게 만들 겁니다. ..................................................................................................................................................................
요즘처럼 경제가 어렵고 살림살이가 만만치 않아졌다는 얘기가 자주 회자된 적도 드물다.
그러나, 우리는 어려울 때나 혹은 살만 할 때도 세속적, 물질적인 가치만이 가정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세상 속에서 깊은 신앙 속에서 기도와 봉사로 살아온 유종환 김영희 씨 가정의 존재는
더욱 빛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의 어려움이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듯, 힘들수록 버틸 수 있는 의지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주는 통로 역시 언제나 ‘가정’이라는 것을, 이 가정은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상희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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