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문학
지난해 연말 영화 ‘국제시장’을 10여 명이 함께 관람했다.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나이였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하나의 장면을 두고 세대별로 반응이 달랐다는 점이다. 문제가 된 것은 흥남철수 때 미 제10군단장 알몬드 장군이 무기와 장비를 버리고, 피란민을 수송 선박에 태운 장면이었다. 함께 영화를 봤던 30대 초반 청년은 “군인이 무기를 버리고 피란민을 태운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지적했다. “역사적 사실인데?”라고 했더니 “그렇더라도….(영화를 그렇게 만들면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말이었다. 하나의 피란 장면을 두고 어떤 이는 전투에 임한 ‘군인의 상식’에서 바라보고, 어떤 이는 ‘피란민의 절박함’에 방점을 찍기 때문일 것이다.
1930, 40년대 한국에서 태어난 세대가 물려받은 유산은 가난과 폐허, 절망과 고통이었다. 그들은 먹고 싶은 것을 먹지 않고, 입고 싶은 것을 입지 않았으며, 쉬고 싶어도 쉬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느라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걸음을 재촉했고, 밤이 깊도록 고단한 육체를 눕히지 못했다. 그들 대부분에게는 하루하루 끼니를 이어가는 일조차 벅찼다. 그렇게 그들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역사 이래 가장 강하고 부유한 대한민국을 건설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20, 30대에게는 다이어트가 걱정일지언정 배고픔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끼니가 절체절명의 과제였던 세대와 다이어트가 과제인 세대, 해야만 하는 일을 했던 세대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세대는 입장이 다르다. 그래서 한 세대는 또 다른 세대의 선택과 욕망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30대가 70대의 관광버스 막춤을 추하게 여기고, 70대가 빈둥거리는 젊은 몸뚱이를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까닭이다.
매일신문사는 전국 신문사 최초로 ‘실버문학상’을 제정했다. 시(한시, 시조 포함), 수필, 논픽션 분야에서 실버세대(1950년 6월 30일 이전 출생자)의 곡진한 경험이 담긴 작품을 받아 시상하고, 수상작 중 다수 작품을 매일신문에 연재하기로 한 것이다.
실버문학상을 제정하고, 수상 작품을 연중 지면에 게재하기로 한 것은 펄펄 끓는 실버들의 문학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함이다. 동시에 세대 간, 사람 간 이해와 소통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땀과 눈물이 묻어나는 작품을 통해 실버들은 ‘힘들고 어려웠지만 멋지게 한 세상 살아왔음’을 스스로 확인하게 될 것이고, 후배 세대들은 선배 세대들이 그 좁은 관광버스 안에서 막춤을 추는 까닭을 납득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문학적 완성도를 떠나, 한 사람이라도 더 실버문학상에 응모해주시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곧 세대 간, 사람 간 소통을 돕고, 삶을 풍요롭게 가꾸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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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간 매일신문 신춘문예 응모자 1/3은 실버세대"
작년 단편소설 응모 85세 '최고령'
◇실버 문학 열풍
최근 5년간 매일신문 신춘문예 현황을 살펴보면 전체 응모자의 3분의 1 가량이 실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시조와 수필은 물론이고, 동화, 동시 등 어린이의 감성이 필요한 영역까지 거침없이 도전장을 내민다. 깊은 생각뿐만 아니라 강한 지구력이 필요한 단편소설 부문에서도 만만치 않은 내공을 보여준다.
낙타 구멍보다 좁다는 신춘문예지만 당선자도 드물지 않다. 2012년 매일신춘문예 동시부문 당선자 권우상 씨는 당시 칠순이 넘은 나이(1941년생)로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그는 “흐른 세월만큼 눈물과 애환도 많았다. 더욱 멋진 동시를 쓰겠다”고 말했다. 칠순이 넘은 나이었지만 신춘문예가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선언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해 혼불 문학상에는 77세 할머니가 당선돼 문학청년들의 기를 죽였다. 또 2014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응모한 최고령자는 당시 85세로 단편소설 부문에 응모한 ‘문청’이었다.
문학에 실버 열풍은 매일신문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2014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 당선자는 85세 할머니였다. 201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자 역시 당시 65세의 실버였다. 200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는 당시 60세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다. 일본에서는 시바타 도요 할머니가 99세에 첫 시집을 낸 데 이어 2013년 당시 102세의 나이로 두 번째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같은 결과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제 실버들에게 문학은 생활이 됐다. 대부분 글쓰기 학교 수강생은 60대, 50대, 70대 순으로 많다. 텃밭시인학교 김동원 학교장은 수강생의 90%가 은퇴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ㅡ조두진 문화부 부장 earful@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