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羽化 / 이미경
신평 어른의 과수원에서 연기가 피어오른 건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후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동네 사람들은 과수원 근처의 밭에서 일하고 있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지만 쓰레기나 잡목을 태우겠거니 하며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농촌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과수원 한가운데서 불이 났을 때 어른은 한평생 드나든 과수원이라 손바닥 보듯 환히 안다는 자신감이 앞섰다. 자신의 나이가 아흔넷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물통에 있는 물을 가져와 뿌리고 윗옷을 벗어 불길을 잡으려고 애썼다. 하늘이 인간에게 내린 형벌은 마음이 육체의 노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불과 바람은 한통속이 되어 빠르게 내달렸고 어른의 행동은 세월의 흔적이 덕지덕지 붙어 굼떴다. 연기가 가득 차서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노인은 출구를 향해 뛰었다. 그러나 마음과 다르게 발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불은 어른의 허점을 발견한 듯 뜨거운 열기로 목구멍을 마구 할퀴며 넘어갔다.
불은 귤나무의 반을 태우고 울타리로 옮겨 붙었다. 방풍림으로 심은 키 큰 삼나무 울타리로 불길이 덮칠 때야 마을 사람들은 신평 어른의 과수원에 불이 났다는 것을 알았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소방차가 도착했지만, 화마는 더 맹렬히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녔다. 물이 닿으면 숨죽이고 있다가 다시 서서히 타오르며 영역을 넓혔다. 물과 불의 팽팽한 긴 줄다리기가 끝나자 연기를 덮어쓴 어른의 모습이 보였다. 검찰은 어른의 부검을 지시하고 자식들의 보험 여부를 조사했다. 하필이면 이웃 마을에서 보험금을 노린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과수원에 불을 지른 사건이 있어서 민감한 시기였다. 변고로 돌아가신 어른을 사흘이 지나도록 편하게 모시지 못하는 자식들 마음은 불길에 갈라진 땅보다도 더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마을 사람들은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사람의 일이라며 애석해했다. 최고령자였던 어른은 마을버스로 장에 가서 수박을 사서 올만큼 건강했다. 그뿐만 아니라 애먹이는 자식이 없었기에 복 많은 늙은이라며 모두 부러워했다. 화장장은 떠나는 사람과 남은 사람의 경계를 알려주었다. 죽은 이는 화장로로, 산 사람은 화장로 옆에 마련된 관람석으로 갔다.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길 위에서 유족들은 오열했다. 마지막 배웅이었다. 이제부터 노인 홀로 가야만 하는 길이었다. 미지의 산도를 따라 홀로 세상에 나왔듯이 가는 길 또한 알지 못하는 곳일 터였다.
장례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불 들어갑니다.”
둘째 며느리인 나는 가슴이 미어졌다. 평생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농사를 짓다가 화마에 돌아가셨는데 또 뜨거운 불길이라니. 더군다나 시부모께 물려받은 우리 과수원에서 일어난 일이라 마음이 더 무거웠다. 아범이 퇴직하면 지을 것이니 그냥 버려두라고 했지만, 아버님은 날마다 과수원에 가셨다. 집이나 땅은 사람 발소리를 들어야 상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시원한 땅속으로 모셨다면 마음이 조금은 덜 아팠을까?
“아버님 빨리 나오세요.”
불길이 들어가기 전에 어서 나오라는 진심을 담아 내가 먼저 목이 터지라 외쳤다.
“아버지 재게재게(빨리빨리) 나옵써”
슬픔으로 가라진 아들, 딸 목소리가 컥컥 새어 나왔다. 울음소리는 절정에 달했다. 여기저기서 들리던 다른 이의 울음소리가 일제히 멈춘 듯 우리 통곡 소리만 들렸다. 이도 잠시, 죽은 이가 더 높은 세상으로 가기 위해 육신을 벗는 동안 살아 있는 사람은 바깥으로 나왔다.
때를 맞추어 음식이 도착했다. 떠나는 사람과 남은 사람의 구별이 허기인 듯 모두 수저를 들었다. 그러고 나서 남자들은 담배를 피우고 여자들은 커피를 마셨다. 커피의 향이 감미로웠다. 맛보다는 향을 더 좋아하는 나는 커피 향을 맡으며 무심히 하늘을 보고 있었다. 파란 하늘에 나란히 흐르던 구름이 잠시 잠깐 나비 형상을 하더니 이내 사라졌다. 문득 아버님이 세상의 짐을 벗어 버리고 우화등선하는 느낌을 받았다. 아버님은 평생 땅과 함께 정직하게 살다가 귀천하셨다. 자연이 주는 만큼 거두며 내 것 아닌 것은 단 한 번도 탐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가진 것 안에서 나눔의 기쁨을 누렸다. 웃음이 많은 분이었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이 몸에 밴 성실한 분이었다. 많이 웃어서인지 아버님 얼굴이 하회탈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옥돔을 무척 좋아하셨는데 자손들이 모이면 한 점이라도 더 먹이려고 여기가 제일 맛있다며 비쩍 마른 대가리부터 집었다.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아득하지만 순간이더라!”
아버님 말씀이 구름과 함께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