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작품.
종류 캔버스에 유채
크기 180x90cm
제작년도 1883년
소장 파리 오르세 미술관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는 1881년과 1882년에 이탈리아와 알제리 등을 여행하였다. 이 여행은 그가 인상주의에서 멀어져 자신만의 길을 가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882년 미술상 폴 뒤랑 뤼엘은 르누아르에게 도시와 시골의 춤을 주제로 두 점의 대작을 주문하였다. 이 두 점의 회화는 도시와 전원의 파리 사람들이 즐기는 유흥을 묘사한 르누아르의 마지막 작품이며, 그가 인상주의와 고전주의 예술 사이에서 양식의 변화를 겪던 시기에 그려졌다.
《시골의 무도회》와 더불어 《도시의 무도회》는 1880년대 이후 르누아르 화풍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데, 그의 그림에서는 점차 윤곽이 분명해지고 선이 지배적으로 나타나며 물감 처리도 더 매끈해졌다. 화면구성이나 주제의 선택에서 인상주의적인 분위기가 드러나는 한편, 선의 표현에 있어서는 앵그르와 라파엘로의 고전주의 회화로 복귀하고자 하는 화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도시의 무도회》에서 르누아르는 1881년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한 친구 폴 로트와 자신이 가장 좋아한 모델이자 화가이며 모리스 위트릴로의 어머니 수잔 발라동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수잔 발라동은 르누아르를 비롯해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퓌비 드 샤반의 모델이었고, 이 모든 이들의 연인이었다. 이 그림의 모델로 섰을 때 그녀의 나이는 17세였으며,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이 아이가 뒤에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가 된다)를 임신한 상태였다.
르누아르는 이 그림에서 상류사회의 무도회를 엄격하면서도 우아하게 표현하였다. 춤을 추는 두 사람 간의 절제된 거리감은 《시골의 무도회》의 역동적인 자세와 대조를 이루며, 정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색채에 있어서도 푸른색이 감도는 배경의 대리석 기둥과 역시 푸른빛을 띠는 실내의 나무, 남자가 입은 검은 턱시도와 여성의 흰색 드레스가 도회의 차가운 기운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한없는 아름다움이다.
"내게 그림이란 소중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다.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 르누아르의 되뇜처럼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그의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