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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청춘ノ군대이야기 경순왕릉
음악과 대화 추천 0 조회 286 18.03.01 10:48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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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8.03.01 10:54

    첫댓글 6.25전쟁때 격전지였는지 비석에 총탄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으며,
    이곳에 주둔하며 근무했던 1973년 어느 중대장에 의해 발견 되어
    잘 보존 관리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 작성자 18.03.01 11:02

    귀부한지 43년 만인 978년(고려 경종3년), 왕건보다 35년을 더 살고 경순왕이 승하하니 소식을 접한 신라 유민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마지막 임금의 죽음을 슬퍼하었으며 경순왕의 운구를 모시고 장례를 치르러 경주로 가려는 행렬이거리를 가득 메웠지만 이쉽게도임진강을 건너지 못하고 운구행렬은 정지된다. 마지막 임금의 죽음을 계기로 혹여나 신라 유민들이ㅗㅇ요하거나 민중 봉기가 있을까 우려한 고려 조정은 "왕의 구(시신)는 도성에서100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국법이라며 운구행렬을 멈춰 세우니 그 장소가 지금의 임진강 고랑포 못미쳐이며 결국 경순왕은 더이상 남하하지 못하고 근처 나지막한 언덕에 모셔졌다. -자료-

  • 작성자 18.03.01 11:13

    이렇게 생각지 못한 곳에 묻히게 된경순왕릉은 임진왜란 이후 실전(失傳)되고 말았는데 1727년(영조3년)에 후손이 "경순대왕장지"라는 6자가 새겨진 지석을 발견하고 상소를 올려 왕명으로 릉(陵)을 정비하고, 장단부(長湍府)에서 제향(祭香)을 올리도록 했다.하지만 일제강점기를 지나고 6.25전쟁을 겪으면서 다시 잊혀졌는데 왕릉이 위치한 이곳에 휴전선과 가까운 민간인통제선 안에 위치한 까닭에 사람들의 발길이 멀어졌던 까닭이다. -자료-

  • 18.03.01 16:18

    왕릉치고 규모도 작고 초라한 능이라 몰락한 신라를 느낄수 있는 곳입니다.

  • 작성자 18.03.03 05:40

    허께비님! 안녕하세요.
    돌풍으로 우당탕 난리치는 하루였습니다. 돌품으로 오는 봄을 시샘하더군요.

    역대 신랑 왕릉에 비하면 작은 규모죠. 근데 아담한 모습이더군요.
    나라가 몰락해 갔던 당시에 모습을 느낄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도 연천군에서 잘 관리하고 있습니다.
    따뜻하기 시작하면 관광버스도 오면서 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더군요. 맹호

  • 18.03.02 07:26

    경순왈릉에대한이야기 잘보고갑니다 3월이 시작되엇지만 찬바람이부네요
    좋은 3월달맞이하세요

  • 작성자 18.03.02 17:54

    봄의 소식 함께 기다리며
    좋은 일 만 기대합니다. 맹호

  • 작성자 18.03.02 17:59

    예. 놀부짱님. 안녕하세요.
    비룡부대 철책 근무 하셨어요?

    작지만
    차분하게 잘 관리되고 있더군요.

    관광객들도 적당히 오고,
    봄엔 파릇파릇 잔디에 청량함도 있구요

  • 18.03.02 07:29

    79년 경순왕 릉 앞에서 군복무할 땐
    왕릉 이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했지요
    1년에 한번 시사철이나 돼야 사람 구경을 하던 민통선
    달랑 표석 하나 뿐이었는데 ~
    작년에 다녀와 보니 사진 처럼 잘 꾸며져 있더군요
    출입 금지란 표시가 있지만 수십년 만에 찾아갔으니
    경계를 넘어서 예를 올리고 온적 있답니다

  • 24.07.27 18:01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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