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13장 34절)
내가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처음 만난 것은 믿음의 친구를 통해서였다.
대학 3학년 겨울방학 때, 나는 당시 대구교육대 C.C.C.총순장으로 섬기던 친
구의 자취방에서 한달간 머물며 먹고 잔 적이 있었다.
우리는 그 좁은 자취방에서 밤낮 기타를 치며 찬양을 부르며 함께 기도했다.
기도내용은 주로 민족복음화와 캠퍼스복음화였다.그 후 나는 경북 의성에서
있었던 C.C.C.거지순례전도에도 참석했었다.그 때'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을 지은 최용덕 간사를 만나며 은혜를 나누었다. 참 행복했던 학창시절이었다.
내가 김준곤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책을 통해서였다.그 분의 유명한 '예수
칼럼'(1981년)을 구해 읽다가 나는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 한국 C.C.C. 창설
자이신 김준곤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신 분이었고, 영혼구령,
민족복음화, 캠퍼스복음화, 세계복음화에 미친 분처럼 보였다. 이 책은
예수 이야기로 가득하다.
하나님의 죄인사랑, 민족사랑, 이웃사랑이 절절이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김준곤 목사님의 신앙고백이고, 설교고, 기도고, 묵상이고, 명상록이며,
참회록이며, 독서노트라 할 수 있다.
故김준곤 목사님(1925~2009)은 전남 신안군에서 태어나, 7세 때 모친의
친척 되는 낙도의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로부터 복음을 접했다.일제 강점기 ,
8.15 광복, 6.25 전쟁 등 고난의 때를 보내며 믿음과 신학을 다지셨다.
목사님은 평생을 대학생 선교와 민족복음화 운동, 그리고 민족적인 영적각성
운동에 주력하셨다.예를 들면, 국가조찬기도회 창설, 전군(全軍) 신자화 운동
참여, 성시화 운동,구국 비상회개 금식기도운동, 세계기도성회,세계선교대회,
엑스폴로, 북한 젖염소 보내기 운동 등을 주도하셨다.
목사님은 꿈이 없는 청년 대학생들에게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예수 그리
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고 외치셨다.
십만 명 선교사 파송은 그의 비전이었다.그 꿈과 열정에 감동된 많은 학생
청년들이 예수를 위해 살겠다고 헌신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금식기도를 밥 먹듯이 하였다. 그는 보수 진보를
전부 품에 안고 가셨으며, 선교단체들도 품에 안았고, 통일과 북한에 대한
사랑과 용서가 깊으신 분이셨다. 그 분 삶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것은
예수 그리스도다.
목사님은 전도와 양육, 금식기도와 성령운동을 강조하셨다. 그래서
나온 것이 C.C.C.의 4영리와 신년원단 금식기도이다. 수많은 대학
생들이 4영리를 외우고 전하며 예수의 사람이 되어갔고, 신년원단
금식기도를 통해 성령의 사람이 되어갔다.
목사님은 병상에서 고통당하던 둘째딸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시며
인간의 고통 제로점에 서 보기도 하셨다. 넷째딸이 결혼승낙 받겠다
고 데려온 사위 후보에게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느냐?"왜에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허락하신 일화는 유명하다.
나라와 민족의 현실과 장래가 암담한 요즘, 故김준곤 목사님이 자꾸
생각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김은성 목사)
♬ 생명의 주님 찬양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