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들어간 검침원이 말했다 뭔가 섬뜩한 느낌 수천 개의 눈동자가 숨어서 쳐다보는 느낌 빈 부엌에서 갑자기 수도꼭지가 돌아가고 물이 나오는 느낌
꽃병은 그 집에서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다 그저 썩은 꽃이나 입에 물고 있을 뿐 창문이며 찬장이며 컵이며 밤새도록 달그락거리게 할 뿐 가끔 탁자에서 튀어 올라 제 머리를 산산조각 내볼 뿐 늘 같은 시각 같은 공중에 직선으로 누워 어디든 재빠르게 몸을 날릴 수 있을 뿐 침대 위에 머리칼을 늘어뜨리고 몇 분간 떠 있을 수 있을 뿐
그러나 그의 눈동자를 오래 들여다보면 그곳에서 꾸물꾸물 기어 나오는 벙어리 노숙 미친 여자가 있었다
그는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은 수줍은 사람이라는 평판
그가 죽자 꽃병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밤중에 머리를 감은 일 그가 죽자 꽃병이 두번째 한 일은 거울을 오래 들여다본 일
그가 죽자 꽃병이 아침마다 한 일은 얼굴이 송곳에 찔린 사람처럼 소리를 지른 일 새벽이면 지붕에 올라가서 봉화를 올리듯 세숫대야를 두드린 일
소음 신고를 받은 경찰관이 와 물었다 여기 몇 년째 살고 계십니까? 여기 안 살아요 그냥 집을 봐주고 있는 거예요 꽃병 물 갈아주고 우편물 받아주고 그림자 닦아주고 아기도 낳아주고 꽃병이 처음으로 말했다